뒤늦게 한글에 눈 뜬 어르신들
시 배우며 인생에 큰 전환점
2014년 보람할매연극단 창단
이름 알려지며 전국 순회공연

 

칠곡군 북삼읍 어로리마을은 서진산 줄기 북사면에 위치하고 마을 앞으로 국도 4호선이 통과한다.평범한 농촌마을이 시 쓰고 연극하고 랩하는 ‘보람할매연극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기 좋은 청정마을 북삼읍 어로리, 낙동강으로 흐르는 경호천에는 봄에는 유채꽃과 이팝나무길, 가을에는 코스모스 눈길을 끌지~~” 마을회관에서 경쾌한 리듬을 탄 신나는 랩이 흘러나온다. MZ세대 복장과 현란한 몸동작이 눈길을 끈다. 청년들이 농촌에 위문공연을 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열창하는 래퍼는 청년들이 아니라 70·80대의 할머니들이다. 춤 동작에 힘이 있고 목소리도 경쾌하다. 기운이 넘친다. 흥도 보통이 아니다. 실력도 만만치 않다. 칠곡군 북삼읍 어로1리 할머니들로 구성된 ‘보람할매 연극단’(이하 연극단) 단원들이다.

어로1리는 서진산(742) 줄기 북사면에 위치하고, 마을 앞으로 국도 4호선이 통과한다. 낙동강으로 흐르는 경호천에는 사철 푸른 물이 흐른다. 예전에 낙동강과 경호천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漁夫)들이 많이 살았고 경호천에 갈대밭(蘆田)이 무성해 그 첫 글자를 따서 어로라 불렀다. 통상적으로 어부골로 부른다. 지금은 마을 주변에 중소기업들이 많이 입지해 있지만 예전에는 벼농사를 주로 짓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다.

평범하던 농촌마을에서 청년들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랩이 울려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시작은 할머니들이었다. 그것도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 평생학습도시를 지향하는 칠곡군에서 성인문해교실을 시작했다. 어로리도 그 중의 한 마을이었다. 70·80대의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ㄱㄴㄷ부터 배웠다. 처음에는 아무리 외우고 써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공부가 이렇게 어렵나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선생님이 꾸준히 가르치고 응원을 했다. 한글을 배우자 눈앞에 딴 세상이 펼쳐졌다. 이를 두고 할머니들은 ‘심봉사가 눈을 뜬 것 같다.’고 했다. 버스 번호판이 보였고, 가게 간판도 읽을 수 있었다. 은행에서 예금청구서를 직접 써서 돈을 찾을 때는 세상의 주인이 된듯했다.

이후 마을이 인문학마을로 선정되고 시(詩)를 배웠다. 첫 반응은 모두가 비슷했다. ‘시가 뭐꼬?’ 시는 할머니들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그동안 말로 전달하고 머리로 기억하던 구술문화에서 문자를 통한 기록문화로 전환된 것이다. 할머니들의 시는 사투리에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틀리지만 지나온 삶의 애환과 미래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어로리의 인문학이 빛을 내면서 전국단위 행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대구사이버대학에서 운영하는 ‘정호승 시인과 떠나는 시 낭독열차’도 마을에서 진행됐다. 서울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면서 ‘인생이야기’라는 주제로 독자와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다. 마을에선 홍덕률 대구사이버대 총장(현 한국사학진흥재단이사장)의 인문학특강, 보람할매연극단의 연극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어로리 마을회관과 야외공연장

 

어로리 할머니들은 늘 자신감에 넘쳐있다. “우리 마을은 못하는 것이 없다. 시키고 가르쳐주면 뭐든지 한다.”고 자랑한다. 시에서 연극으로 발전한 계기도 단순했다. 칠곡군에서 개최하는 성인문해교실 장기자랑에 참가했다. 다른 마을에선 모두가 노래와 춤, 풍물을 가지고 출전했다. 어로리는 연극이었다. 동화 흥부전을 각색한 5분짜리 짧은 연극 ‘흥부네 박터졌네’였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노래와 춤 위주의 장기자랑에서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연극단은 2014년 창단됐다. 현재 8명의 단원들이 활동한다. 많을 때는 14명까지 활동했었다. 최연소 단원은 57세, 최고령은 78세다. 연극단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초청공연이 쇄도했다. 서울 한옥마을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을 순회하다시피 했다.

연극의 최대 난적은 대사 암기였다. 외우고 또 외워도 까먹기 일상이다. 틈만 나면 외우는 수 밖에 없다. 밥을 짓다가도 외우고, 밭일을 하다가도 외운다. 주방과 안방, 거실, 화장실, 냉장고문 집안 곳곳에 대본을 붙여놓았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집안 물건들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흡사하다.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아둔 대본을 읽어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이뿐이 아니다. 노래와 연기 연습도 빠트릴 수 없다. 연극단은 매주 1회 2시간씩 함께 모여 연습을 한다.

 

은퇴한 연극단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2017년엔 ‘칠곡인문학마을축제’의 일환으로 ‘어로마을연극제, 실버연극경연대회’도 열렸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전국단위 연극제가 열린 것은 이례적이다. 안동의 실버극단 ‘왔니껴’의 ‘그리운 예안장터’를 비롯해 부산 남구노인복지관 ‘한우물’팀의 ‘홍도야 우지마라’ 등 전국의 실버연극단 8개 팀이 참가해 경연을 펼쳤다. 연극단에서는 ‘거울 속에 누구요?’를 무대에 올렸다.

연극단의 활동은 각종 수상실적으로 증명된다. 2014년 경상북도 평생학습박람회 연극대회 최우수상과 2016년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 경상북도 대상과 전국대회 동상, 행정자치부의 행복한 공동체 발표한마당 공감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마을 회관 벽면 한편은 상패들로 장식되어 있다.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동상으로 받은 시상금 1백만 원은 칠곡군 호이장학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에 열린 1기 단원들의 은퇴식은 눈물바다였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기쁨과 감동의 눈물이었다. 14명의 단원 중 9명이 고령으로 은퇴했다. 그동안 활동사진이 담긴 졸업앨범을 증정하고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행사도 진행했다. 핸드프린팅은 마을회관에 전시되고 있다.

 

보람할매연극단 단원들(왼쪽부터 서복희 대표, 최순자 단장, 정송자, 김춘나, 손분석, 장윤자 씨)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의 열정
전문강사 초빙 랩까지 배워
‘수니와 칠공주’와 랩배틀도
그녀들 도전은 현재진행형

 

보람할매연극단의 열정은 멈출 줄을 모른다. 이젠 랩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20년 문화마을 선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마을 소개를 랩으로 했다. 서두에 언급했던 랩 가사가 바로 그것이다. 전문강사를 초빙해 배우면서 랩이 청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일상의 모습이 그대로 랩에 스며들었다. 랩은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지천면에 ‘수니와 칠공주’라는 또 다른 래퍼그룹이 만들어졌다. 보람할매연극단과 수니와 칠공주의 랩 배틀대회도 열려 선의의 경쟁도 벌였다.

반복되는 가사를 외우고 간단한 손동작으로 춤을 추는 랩이 치매 예방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한노인회에서도 랩을 치매예방 프로그램으로 채택했다. 올 1월에는 칠곡군과 대한노인회가 ‘K-할매 콘텐츠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랩 스승인 랩퍼 탐쓴과 함께한 ‘보람할매 연극단’.

 

이뿐만이 아니다.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콘텐츠로도 활용됐다. 고용노동부의 ‘친해지길 바라 캠페인-니들이 라떼를 알아?’에도 참여했다. “어로리 어로리 칠곡할매들 한글배워 랩까지 하지 못하는게 없는 칠곡할매들 고추 따도 흥이 나고 땅콩을 캐도 흥이 나는데, 니는 스트레스 받았나? (중략) 사이좋게 지내~ 인생 뭐 없데이.”로 끝나는 3분 41초 분량의 이 영상물은 11개월 만에 조회수 118만 회를 기록했다.

연극단의 할매들은 시를 쓰고 연극에 랩도 한다. 이젠 탁구와 장구도 치고 그림도 그린다. 단원들의 말처럼 ‘못하는 것이 없는’ 연극단 할매들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박병철기자·홍상철수필가>

 

 

[우리 마을은]

서복희대표, 최순자 단장(왼쪽부터)

 

서복희 대표·최순자 단장 “공연 인력 양성…지속가능한 연극단 만들 것”

 

“마을에서 살았지만 마을 일에는 사실 좀 무관심했어요.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연극단 대표를 맡아 활동하면서 연극단을 좀 더 발전시키고 마을을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서복희(58) 보람할매연극단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최순자(77) 단장은 ‘성주에서 시집와 평생을 여기서 살았지만 글을 배우고 연극과 랩을 하는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면서 글에서부터 연극, 랩까지 배울 때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가장 행복한 일이 되었다고 한다. 연극을 시작한지 11년이 되었다는 최단장은 아직도 무대에 오를 때는 떨린다서 앞으로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생각이라고 했다. 매주 연습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연극단에 들어와 함께 활동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서 대표는 “지금까지는 선생님들이 만든 각본과 공연계획에 따라 할머니들은 연기만 했었지만 앞으로는 마을 안에서 각본을 쓰고 공연기획까지 수립 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 지속가능한 연극단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농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쉽지 않은 일이라 고민이 크다고 했다. 홍상철수필가

 

 

[가볼만한 곳]

 

신류장군 유적지

 

◇신류장군 유적지

658년 청나라의 요청에 의하여 조선은 나선정벌에 나섰다. 흑룡강 일대에 출몰해 노략질을 일삼는 러시아군을 토벌하기 위한 출병이었다. 함경도 병마우후 ‘신류’가 총포수 250명을 거느리고 출병해 러시아의 스테파노프선대 11척 가운데 10여 척을 화공으로 불태우고 적장과 병사들을 괘멸시켰다. 나선정벌이 이루어진 1658년 4월 6일부터 8월 27까지 141일 간의 전투내용을 기록한 출병일지가 북정록이다. 북정록에는 출정 배경과 부대편성, 군량미 운송, 러시아군 정벌상황, 출정로 등 나선정벌에 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나선정벌의 공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이후 경상도 김해부사와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펼쳤다.

신류는 1619년 칠곡에서 출생해 27세에 무과에 급제한 무장이다. 신류장군유적지에는 승무사와 존성재, 북정문, 선위문, 비각이 있다. 유적지 내외에 배롱나무가 많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바로 옆에 두만지 호반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약목면 신유로 172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