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예천 경계 왕의산 남쪽 자락
영월 호장 엄흥도 후손 집성촌
신도비·상의재·충절사·공원 등
마을 곳곳 선생 충절 기리는 시설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도 입소문

문경위만1리드론
문경시 산양면 위만1리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릉에 모신 충의공 엄흥도 선생의 후손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왕의산 남쪽 자락, 문경과 예천군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는 위만1리는 겨울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대서 만든 ‘우마이얼음썰매장’ 운영으로 마을을 알리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위선피화 (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선을 행하다 화를 입는다면 내 기꺼이 달게 받겠다.’

세조에게 왕위를 뺏기고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은 1457년 10월 24일 유시(酉時, 오후 5시~7시)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를 한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이 있었지만 영월 호장 엄흥도 선생은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영월 엄씨 선산인 동을지산(장릉)에 모셨다. 위험하다고 만류하던 이들을 향해 선생은 위와 같은 말을 남긴다. 이후 엄흥도 선생과 후손은 고향을 떠나 숨어 살다 1560년 경 선생의 4세손인 엄한의 선생이 문경시 산양면 위만 1리에 터를 잡게 된다.

마을에 들어서자 푸른 벼가 바람에 출렁이며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그려낸다. 한낮의 햇살 속,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이른 점심을 나누고 있었다.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해 논밭에서 오전 일을 마친 어르신들에게 이 시간은 잠시의 쉼이다. “매운탕 끓였는데 같이 먹어요” 정겨운 밥상에 슬쩍 끼어앉아 넉넉한 정을 함께 맛본다.

 

엄흥도테마소공원
마을 입구에는 충의공 엄흥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의 시계탑은 단종이 세상을 떠난 시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위만1리는 왕의산 남쪽 자락, 문경과 예천군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영월 엄씨 집성촌으로 마을 중간에 소의 머리를 닮은 소재봉(牛嶺峯)이 있어 우만(牛巒), 우마이로 불리던 마을에는 현재 72가구 1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충의공 엄흥도 선생 테마 소공원이 조성되어있다.
마을 입구에는 충의공 엄흥도 선생 테마 소공원이 조성되어있다.

 

마을 입구에는 충의공 엄흥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선생의 동상과 시계탑, 그리고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있다. 평범해보이는 시계탑에는 단종이 세조에 의해 최후를 맞은 시간이 숨어 있다. 1457개의 벽돌은 1457년을, 사각탑 10단은 10월을, 원형탑 24단은 24일을, 기단 6각형은 유시(6시)를 상징한다. 시계탑에 쓰인 글자는 충의공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후 남긴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8자와 ‘엄충의공’(嚴忠毅公) 4자를 더해 12자다. 글자 배열이 무분별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자 하나하나에 1부터 12까지의 숫자가 숨겨져 있다. 이는 당시 대부분 충의공과 뜻은 같이 하고 있었지만 밖으로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엄흥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상의재.
엄흥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상의재.

 

폐교가 된 의산초등학교 앞에는 충의공 엄흥도신도비가 있고 학교 뒤쪽으로는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상의재가 있다. 경북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상의재는 영조 32년(1756)에 세워졌는데 순조33년에 의산서원으로 승격된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다가 1900년경에 상의재로 복원되었다. 상의재에서는 음력 3월 초정에 후손들이 모여 선생을 기리는 향사를 지내고 10월 초정에는 입향조 엄한의 선생의 묘사를 지낸다. 

 

충의공 엄흥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충절사
충의공 엄흥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충절사

 

영조 26년(1750)에 건립된 충절사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풍수상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소재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1월 1일에는 주민들이 소재에 올라 해맞이 행사를 가진다. tvN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이기도 하다.
풍수상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소재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1월 1일에는 주민들이 소재에 올라 해맞이 행사를 가진다. tvN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이기도 하다.

 

풍수상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나지막한 소재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해 첫날이면 주민들은 소재에 올라 한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해맞이 행사를 가진다. 단오때는 아름드리 회나무에 그네를 묶어 그네뛰기도 하고 씨름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관광지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겨울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대 얼음썰매장을 운영한다. 이용료도 무료, 썰매 대여도 무료라 인기다.
겨울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대 얼음썰매장을 운영한다. 이용료도 무료, 썰매 대여도 무료라 인기다.

 

언제부터인가 농산어촌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는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고령화와 소멸이다. 위만 1리 역시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70, 80대에 평균연령이 60대를 넘어서지만 다른 마을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30대부터 50대까지의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청년회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30~50대로 구성된 청년회 주축

겨울마다 논에 얼음썰매장 조성 

입장료·썰매 대여·컵라면 무료

수입 없고 신경쓸 일도 많지만 

아이들 웃음소리에 마을 ‘활력’

 

보통 농촌마을의 겨울은 바쁜 농사일이 끝난 뒤 다음해를 준비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지만 위만1리의 겨울은 또다른 활기로 넘친다.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대서 만든 얼음썰매장 덕분이다. 마을의 옛이름을 딴 ‘우마이 얼음썰매장’은 지난 2022년 처음 문을 열었다. 마을을 알리기 위해 청년회가 아이디어를 내 마을회관 건너편 논 3300㎡(1천여평)에 얼음썰매장을 조성했다. 입장료도 없고 썰매 대여도 무료다. 컵라면도 무료로 대접한다. 첫 개장때는 ‘몇 명이나 오려나’ 걱정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에는 주말이면 300~500명 가까이 찾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바로 옆 논에는 제기차기, 팽이치기, 투호놀이, 연 날리기 등 민속놀이도 준비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첫해에는 비닐하우스에 쉼터를 마련했다가 2023년부터는 육묘공장에 겨울축제장 운영본부 및 쉼터를 마련해두고 더욱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겨울이 되면 ‘썰매장 언제 개장하냐’는 문의도 많이 온다. 컵라면 등 물품 후원도 이어졌다.

 

겨울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대 얼음썰매장을 운영한다. 이용료도 무료, 썰매 대여도 무료라 인기다.
겨울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대 얼음썰매장을 운영한다. 이용료도 무료, 썰매 대여도 무료라 인기다.

 

겨울이면 썰렁하던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이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 마을 전체에 활력이 돌았다. 날씨가 추워 집에만 계시던 어르신들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고 일부러 썰매장을 찾기도 하고 마을을 찾은 이들에게 대접할 어묵도 직접 꽂아주는 등 일손을 보탰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수록 안전과 주차문제 등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주민들이 몇 년 째 계속 얼음썰매장을 여는 이유는 ‘마을을 알리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마을의 이름이 알려지면 마을에서 생산하는 쌀과 단호박 등 농산물의 판로도 자연스레 열리게 될거라고 생각한다.

 

폐교된 의산초등학교는 오미자가공공장 '레드인'이 들어서 있다.
폐교된 의산초등학교는 오미자가공공장 ‘레드인’이 들어서 있다.

 

공동체 교육·특산품 개발 추진

찰지고 맛좋은 ‘위만쌀’ 브랜드화

내년부터 생활환경 개선사업 돌입

오미자 가공 체험 프로그램 계획 

새로운 농촌관광 모델 구축 총력

 

위만1리는 최근 문경시의 ‘소규모 마을 활성화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1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주민 주도의 참여형 모델로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마을회관 2층을 리모델링해 주민 교육장을 마련했고, 공동체 교육과 특산품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의 주요 특산물인 쌀은 찰기와 맛이 뛰어나 재구매율이 높다. 주민들은 이를 ‘위만쌀’ 브랜드로 개발해 판로를 넓히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동안 얼음썰매장 운영 등으로 경험을 쌓은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마을은 새로운 농촌관광 모델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위만 1리는 tvN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위만 1리는 tvN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는 24억 원 규모의 생활여건개조사업 지원도 확정돼 내년부터 빈집 철거, 슬레이트 지붕 정리, 생활환경 개선 작업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구)의산초등학교에 들어선 오미자가공공장 ‘레드인’도 마을을 찾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청년회에서는 애향인의 날을 정하고 총동창회를 여는 등 출향민들에게도 고향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농산어촌이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 그렇지만 역사와 전통이 뿌리깊은 마을 위만 1리는 청년들이 앞장서고 어르신들이 든든하게 지원을 하며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 신승식·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엄경일 위만1리 이장
엄경일 위만1리 이장

 

엄경일 이장 “모든 주민 똘똘뭉쳐 마을 알리기 총력”

“우리 동네는 단합이 최고의 자랑입니다. 문경시 어느 마을과 비교해도 자랑할 만합니다.”

엄경일 위만1리 이장은 ‘단합’을 마을의 자랑으로 제일 먼저 꼽는다. 마을 토박이로 벼농사도 하고 소도 키우는 엄 이장은 4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다. 집성촌으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친인척이라 단합이 잘되고 불화가 없다. 안건만 내면 다들 잘 알아서 해줘서 마을 일을 추진하는데 신바람이 난다고 한다.

집성촌으로 장점도 있지만 혹시나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마을로 귀촌한 사람들도 청년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잘 어울린다. 대부분의 농촌마을에서는 마을을 떠나는 이들이 많지만 위만1리는 마을로 귀농귀촌하는 젊은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활력이 넘친다.

지난 2022년부터 마을 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우마이 얼음썰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썰매도 직접 만들고 운영을 위해 마을주민들이 총출동해야 되지만 불만은 없다. 동네를 알리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마을이 알려지고 그렇게 되면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판로도 쉽게 열릴 거라 믿는다. 이제 겨울하면 ‘우마이 얼음썰매장’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어느정도 정착이 되어 다른 계절에도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올 수 있는 방안을 궁리중이다.

마을의 특산품 중 하나인 단호박은 6월말 7월초에 수확하고 숙성기간을 거쳐 7월말 경에 판매가 시작된다. 이때를 맞춰 ‘단호박축제’를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생활여건개조사업이 완료되면 마을은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행복하고 활력있는 마을로 자리잡을거라 생각한다.

엄 이장은 모든 것을 어르신들 위주로, 어르신들 편하게를 외치며 어르신 공경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사심없이 일을 추진하니 다들 잘 따라준다며 위만1리를 문경에서 제일 좋은 마을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주암정
주암정 

 

◇ 주암정

주암정은 조선시대 유학자였던 주암 채익하(1633-1675)선생을 기리기 위해 1944년 그 후손들이 지은 정자다. 석문 9곡 중 2곡인 금천은 강가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있는데 주암정은 그중 배 모양의 바위(舟巖)에 선실처럼 지어졌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기단 없이 바위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원래는 금천 바로 옆에 있었으나 큰 홍수가 나면서 금천의 물길이 바뀌어 주변이 논밭으로 바뀌고 현재는 정자 앞에 작은 연못이 있다.

여름철이면 정자 옆 바위를 타고 핀 능소화, 연못의 연꽃이 어우러진 풍경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숨은 사진 촬영 명소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금천을 사이에 두고 주암정 맞은편 바위 위에 세운 정자, 경체정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경체정은 1935년 채성우를 비롯한 7형제를 기리기 위해 손자 부자가 지었다고 한다. ‘경체’는 형제간 우애가 깊어 집안이 번성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