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옛날솜씨마을] 금손 어르신들이 알려주는 옛것의 가치
2003년 전통테마 마을사업 지정
많은 재주·경험 가진 어르신 참여
청소년 대상 체험 프로그램 운영
두부·인절미 만들고 공예품 제작
황토염색 키트는 학교 수업 활용
다목적용 자체 체험관 확보 과제

아카펠라라는 음악 장르가 있다. 무반주합창으로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구현하는 음악이다. 각각의 음역대에 맞는 목소리가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최고의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말처럼 굉장히 매력적이다. 조화가 만들어 낸 명품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도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사람 간의 조화, 계층 간의 조화, 지역 간의 조화, 시간 간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조화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곳이 있다.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다. 할머니들이 ‘옛날솜씨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각종 체험을 통하여 할머니와 어린이들이 조화를 이루고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다.

마을 환경도 ‘유·불·선’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성리학의 세계관을 반영한 구곡문화를 담은 무흘구곡이다. 부처님의 영기가 서린 불령산과 그 기슭에 천년고찰 청암사가 있다. 무흘구곡의 또다른 이름은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옥동천(玉洞天)이고 청암사로 오르는 왼편 계곡은 불령동천(佛靈洞天)이다.
한 마을에 유교와 불교, 도교의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자연환경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평촌리는 촌이지만 넓은 들이 있어 평촌으로 불린다.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전통테마마을’이기도 하다. 현재는 ‘옛날솜씨마을’이란 이름으로 농촌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체험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옛날솜씨마을의 역사는 길다. 지난 2003년 농촌진흥청이 추진한 전통테마 마을사업으로 지정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전통테마마을은 농촌자원의 가치 증진을 통해 농촌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사업이었다. 도시민들의 소득증대와 주5일 근무제의 확산, 관광 인프라의 확충으로 농촌체험관광의 수요가 급격히 증대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었다. 막상 지정은 받았으나 처음에는 어디서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한 끝에 우선 마을 어르신들이 가진 솜씨와 마을 특산품을 활용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어르신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술을 잘 빚는 사람, 두부를 잘 만드는 사람, 바느질 솜씨가 좋은 사람, 공예품을 잘 만드는 사람 등 솜씨 좋은 사람이 많았다. 다만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아 묻혀 있었을 뿐이었다. 그 재주와 솜씨를 이용해 도시 학생들을 겨냥한 체험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두부 만들기 체험이었다. 마을에서 생산된 품질 좋은 콩이 많았다. 명절이나 가을철에 농사일을 마치면 모든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마을 어르신들은 누구나 두부를 만들 줄 알았다. 미리 콩을 불려놓았다가 체험객들이 오면 콩을 맷돌에 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맷돌에서 하얀 콩물이 흘러내리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큰 가마솥에 콩물을 끓이고 걸러서 간수를 뿌리면 우윳빛 콩물이 순식간에 몽글몽글 엉겨진 순두부가 된다. 작은 두부 틀에 면포를 깔고 순두부를 떠넣고 누름돌로 눌러 놓으면 단단한 두부가 된다. 두부체험은 2인 1조로 협력해서 진행한다. 만든 두부는 체험장에서 시식을 하고 집으로 가져간다. 가장 인기 있는 체험 중의 하나다.

이 밖에도 오미자 고추장 만들기와 인절미 만들기 술빚기, 황토염색, 짚풀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진행한다. 체험에 사용되는 재료는 모두 마을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한다. 오미자 고추장체험은 고춧가루에 조청과 오미자액을 혼합해서 만들고 체험을 마치면 집으로 가지고 간다. 황토염색은 황토에 매염제로 쓰이는 천일염을 혼합하고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넣은 손수건을 염색해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건조한다.
현재 5개의 체험관을 운영한다. 모두 주민들의 시설을 임차해 사용한다. 다만 제5전시장은 마을 입구에 있는 무흘구곡전시관 2층을 이용한다. 이곳에선 자신이 그린 그림을 컵에 전사해서 나만의 머그컵 만들기 체험을 한다. 체험과정에 어르신들은 자신이 가진 특기를 활용해 잘하는 분야를 전담하는 분업화를 하고 있다. 두부를 잘 만드는 어르신은 두부 체험을 하고, 염색을 잘하는 어르신은 염색체험을 담당한다.
모든 체험이 마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체험장을 찾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체험키트를 제작해 학교로 보낸다. 체험에 필요한 재료와 사용 설명서를 함께 넣어 누구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설명서를 보고 체험을 진행한다. 오미자 고추장 만들기와 황토염색 키트 2종이 있다.

마을 집집마다 걸려있는 재미있고 색다른 문패도 눈길을 끈다. 정형화된 문패가 아니라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들이 어르신들의 집에서 묵으면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스토리를 만들어서 만든 문패라 더 의미가 있다.

‘언제나 신혼같이, 금잔디집’, ‘ 우리 할배가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했지, 술 빚는 집’ 등 집집마다 그 집에 스며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 정겹다.
체험활동을 발생한 수익은 참여한 어르신들이 분배한다. 매달 같지는 않지만 한 사람당 매월 60~70만원 정도의 수익금이 배당된다. 체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여행을 다닌다. 일 년에 2~3회 국내여행을 다녀오고 해외여행도 다닌다. 그동안 일본과 대만,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5개국을 다녀왔다. 관광도 하지만 다른 나라의 농촌체험활동을 살펴보고 체험도 해보는 벤치마킹을 위한 여행이기도 하다. 여행을 갈 때는 언제나 박정미 사무국장 부부가 가이드로 나선다.
체험마을로 자리를 잡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좀 더 원활한 체험을 위해 다목적용 자체 체험관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불교·유교·도교의 조화
불령산에 859년 창건 청암사
인현왕후 머물러 왕후길 조성
사찰 가는 길엔 계곡 불령동천
신선이 살 만큼 아름다운 경관
마을 앞엔 무흘구곡 7곡·8곡
옛날솜씨마을은 체험 뿐 아니라 유불선사상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로 불교와 유교, 도교의 유적이 함께 있다. 불교 유적인 청암사는 해발 1,317m의 불령산에 위치한다. 신라 헌강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 개조인 혜철조사가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 청암사승가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조선 19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기사환국으로 폐서인이 되어 청암사에서 3년 동안 머물다가 갑술옥사로 다시 왕후로 복위했다. 인현왕후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인현왕후길이 조성되어 있다.

청암사 입구에 우비천이라고 하는 작은 옹달샘이 있는데 소의 콧등처럼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어 이 물을 마시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우비천 표지석 위에는 물을 마신 후 관광객들이 놓고 돌로 눌러놓은 지폐들이 있다. 수도암에서 마을 앞으로 흐르는 계곡에는 무흘구곡 중 7곡인 만월담과 8곡인 와룡암이 있다.

마을 입구에 무흘구곡전시관이 있다. 마을에 있는 옥동천과 불령동천은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고 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다.
정상진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박정미 사무국장 “위생·체험객 응대, 이젠 어르신들이 더 신경써”
박정미 옛날솜씨마을 사무국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철강회사에 근무를 하던 중 부모님이 치매로 스스로 생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귀국했다. 30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서 부모님을 돌보면서 지냈다. 그때도 마을에서는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큰 관심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사무장을 맡아서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2012년부터 체험마을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현실의 벽은 높았다. 박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제 생각과 마을 어르들의 생각에 너무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그 간극을 좁히는데 꼬박 4년이 걸렸어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순수한 마음과 좋은 솜씨를 가졌지만 경영능력과 체험객 응대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위생과 청결을 수없이 강조해도 실천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유별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화장실 청소를 강조하면 “무슨 화장실 청소를 그렇게 많이 하느냐? 그렇게 자주 안해도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박 사무국장은 포기하지 않고 청결한 위생관리와 체험객 응대, 안전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어르신들을 설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어르신들이 더 철저하게 체험장을 운영한다.
올해로 옛날솜씨마을 체험장 운영 역사가 22년에 이른다. “22년이란 긴 시간 동안 꾸준하게 운영되는 비결은 어르신들이 믿고 따라오고 함께 마음을 모은 결과입니다. 이제는 외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부모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사말을 해 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해결할 과제도 많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고령화되면서 언제까지 체험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체험을 주도할 젊은 사람들을 영입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다목적 자체 체험관 건립도 쉽지 않은 과제지만 멈추지 않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박 사무국장은 각오를 다진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수도암…신라시대 도선국가 창건 사찰
수도암은 청암사와 함께 신라 헌강왕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해발 10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다. 본당인 대적광전과 약광전, 나한전, 관음전, 선원 등이 있다. 약광전석불좌상과 수도암동서삼층석탑,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개주도선국사’라는 글씨와 함께 190여 자의 글씨가 새겨진 신라비가 있다. 2016년까지 단순한 돌기둥으로 알고 있던 김천 수도암 신라비가 수도암 비로자나불 조성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비석이라고 학계에선 보고 있다.
도선국사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암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온다. 도선국사가 앞으로 이 도량에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 수도산과 수도암으로 불렀다고 한다.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고 하고 불령산으로도 불린다. 대적광전 앞에서면 멀리 가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