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직면] 몽실언니마을-걷다보면 곳곳에 ‘몽실언니’ 흔적…권정생 문학세계 마주하다
몽실이 엄마 따라 기차 탄 운산역
난남이 위해 구걸하던 운산장터
권 선생이 자주 찾던 일직우체국
몽실공원부터 몽실문화센터까지
마을 구석구석 권 선생 숨결 스며

해방이 된지 1년 반이 지난 1947년 봄, 일곱 살의 몽실이는 엄마인 밀양댁을 따라 집을 나선다. 구불구불한 우찻길을 따라 10리를 가면 장터 마을이 있고 기차 정거장이 있다.
아동문학가 고(故) 권정생 선생의 대표작 ‘몽실언니’ 작품 속 이야기다. ‘몽실언니’는 분단과 참혹한 전쟁, 그리고 가난의 그늘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간 소녀 몽실이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1984년 출간 이후 100만부 이상이 팔리며 지금까지 꾸준히 초등학생 필독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권정생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던 안동시 일직면 일대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책 속에 이름이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몽실이가 엄마를 따라 기차를 탔던 곳은 운산역, 몽실이 동생 난남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구걸을 하러 다녔던 곳은 운산장터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안동시 일직면 운산리는 ‘몽실언니마을’로 불린다. 남안동IC에서 차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운산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몽실언니마을’이라는 글씨와 함께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 반겨준다. 운산이라는 지명은 ‘구름이 덮인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함안 조씨 일가가 피난 오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후에 마을이 지금 위치로 옮겨지면서 옛마을은 ‘구운산(舊雲山)’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235가구 430여 명이 살고 있다. 일직면소재지 마을이라 주민도 많고 꽤 번성해보이지만 이곳 역시 주민의 평균연령이 70대를 넘어서며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운산리가 몽실언니마을로 불리게 된 것은 지난 2014년부터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일직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추진위원회에서는 단순한 마을정비사업을 넘어 이곳을 ‘아동문학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동문학 중심지’ 조성 목표
간판 정비·벽화·조형물 세워
마을 어르신 중심 인형극 공연
손수 그린 엽서 전시·판매까지
지역 문화예술 관광자원화 나서
마을전체를 몽실언니라는 테마로 꾸미기 위해 먼저 간판정비사업부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은 물론 동네통닭집, 한약방, 미용실, 세탁소 등의 간판을 통일시키고 몽실언니 작품 속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마을주민들을 위한 문화센터와 마을회관에도 몽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몽실문화센터 옆에 있는 몽실공원에는 몽실언니와 권정생 선생의 조형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엄마까투리 시소도 있다.

몽실공원에서 출발해 일직면행정복지센터를 지나 보건소, 우체국, 운산역, 몽실문화센터로 이르는 길은 몽실언니와 권정생 선생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일직면행정복지센터는 몽실의 아버지 정씨가 마을 청년들과 함께 전쟁터로 가기 위해 트럭에 몸을 싣는 장소로 나온다. 또한 이곳은 권정생 선생이 정부 양곡을 배급받던 장소이기도 하다.

행정복지센터 벽에는 선생의 모습과 엄마까투리 등 선생의 작품을 주제로 한 벽화가 그려져있다. 행정복지센터를 나와 마을을 느릿느릿 걸어가노라면 몽실언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살기가 막막해진 몽실이는 동생 난남이를 데리고 장터마을에 구걸을 하러 가는데 이때 동생에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일직우체국 옆 추녀 밑에서 기다리게 했다. 일직우체국은 권정생 선생이 작품의 원고나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치기 위해 자주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일직파출소 앞에 있었으나 지금은 이전을 했다.

운산역은 살강마을에 살던 밀양댁이 일곱 살 몽실이를 데리고 댓골로 개가하기 위해 이용한 역이고 훗날 난남이가 있는 일직면 망호리 노루실과 영득이, 영순이가 사는 청송군 현서면 댓골을 오가기 위해 몽실이가 이용했던 역이기도 하다. 운산역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기차가 달리지 않는다. 지난 2020년 11월 12일 폐역이 된 후 기차레일도 사라지고 역사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한때는 문학투어코스로 마을을 찾는 이들도 꽤 있었고 이들을 위해 몽실언니 스탬프투어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했지만 몇년간 코로나팬데믹을 겪으면서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권정생 선생과 몽실언니에 대한 마을주민의 자긍심은 여전하다. 지난해 이러한 안타까움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안동 예비시범사업의 일환으로 ‘15분 문화공간 조성: 까르르 웃는 마을’ 프로젝트에 몽실언니마을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까르르 웃는 마을’은 안동 동서남북 생활권역별로 한 마을을 정해 마을별 문화테마의 차별화를 통해 지역 관광자원화를 추진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을기획자 이태랑 씨는 남쪽마을로 몽실언니마을을 주목했다.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이를 마을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이태랑 PD는 미술, 연극강사를 섭외해 3달동안 꾸준히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뭔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한다고’하면서 주저하던 어르신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연극에서 강아지똥 역할을 맡은 김귀순 어르신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며칠만에 대본을 다 외워오셨다.

대사 한마디 말하는 것도, 색연필을 쥐고 그림 한장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강사들의 칭찬은 어르신들의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1월 4일 운산장터에서 열린 ‘몽실언니마을 동화나라 할머니’행사에는 70대부터 90대까지 26명의 어르신이 무대에 올랐다. ‘강아지똥’ 연극과 ‘황소아저씨’ 인형극, 시낭송 무대가 펼쳐지고 어르신들이 손수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엽서 전시와 판매까지 이루어졌다. 마을주민과 가족들은 물론 안동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마을을 찾았다. 마을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권정생 선생과 동화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마을에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행사가 열린 운산장터는 예전에는 1일과 6일에 오일장이 열리던 큰 장터였지만 지금은 그 명성은 사라지고 주차장처럼 사용되고 있던 곳이다. 시낭송을 하신 김명순 어르신은 “그동안은 사는 낙이 없었는데 이걸 하고 나니 이제 150까지 살고 싶어졌어. 내년에도 또 하자”라고 말을 했다.
자신감을 얻은 어르신들의 ‘올해는 왜 안하냐’는 재촉에 다시 한번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어르신들은 봄부터 기다렸지만 올 봄 경북 북부를 덮친 대형산불로 인해 원래 계획보다 미뤄져 8월이 되어서야 다시 연습을 시작하게 됐다.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은 조탑리에 있고 선생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인 ‘권정생 동화나라’는 망호리에 있다. 그 중간에 몽실언니마을이 있다. 마을주민들은 몽실언니마을이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전국의 학생들은 물론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씩 들러 권정생 선생의 숨결과 동화 속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현기·배수경기자
<우리마을은>

김윤 이장·윤선숙 부녀회장 “마을 전체를 하나의 동화마을로”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며 최고의 보물로 여겼듯이 권정생 선생 역시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런 존재입니다. 일직면이나 운산리를 이야기하면 잘 모르는 사람도 권정생 선생이나 ‘몽실언니’, ‘엄마까투리’를 이야기하면 다들 잘 압니다.”
일직면 운산리 김윤 이장과 윤선숙 부녀회장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각각 69세와 71세의 나이지만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며 소멸되어 가는 마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하고 상권도 살리려면 권정생 선생과 몽실언니를 브랜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우리 마을 뿐 아니라 일직면 전체가 하나의 동화마을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김 이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이곳 운산리를 떠났다가 환갑이 넘어 다시 귀향했다. 이장이 된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단다.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어쩌다보니 이렇게 오래 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한 수 위고, 좋아하기만 하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상수’라는 의미의 지호락(知好樂)과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좌우명으로 삼아 마을 일에 기꺼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나선다. 김 이장은 일을 추진할 때 마을주민들이 다 같이 혜택을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24살에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는 윤선숙 부녀회장도 벌써 10년째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열린 ‘몽실언니마을 동화나라 할머니’행사의 구심점이 되어 어르신들을 모으고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르는데 숨은 공로자다.
‘몇년 전에 비해 침체된 몽실언니마을이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생력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체계적이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이들은 ‘지금은 폐역이 된 운산역 1만여평의 부지에 권정생 선생을 기리면서 아동문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배수경기자

△권정생동화나라…권정생 선생 문학정신 깃든 곳
“집을 허물고 기념관도 짓지말고 무덤도 만들지 말고 빌뱅이언덕에 뿌려달라” 라고 선생은 유언을 남겼지만 2013년, 폐교된 일직남부초등학교에 선생을 기리기 위한 어린이 문학관 ‘권정생 동화나라’가 문을 열었다.
운동장 곳곳에 몽실언니, 엄마까투리, 강아지똥 등 선생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포토존이 있고 동화나라 안에 들어서면 선생의 유언장, 책상, 소반, 일기장 등 유품과 육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어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제 예금 통장이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라는 선생의 유언장을 만나게 되면 가슴 한구석 뭉클해져 온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
권정생 선생 생가라고 부르는 이도 있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선생이 1983년부터 2007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소박하다못해 초라한 대여섯평 남짓한 흙집에서 선생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작품을 썼다.
집 내부는 권정생 동화나라에 재현해 놓았다. 집 뒤편 빌뱅이 언덕은 동화 ‘엄마까투리’의 배경이기도 하고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시대의 유적인 5층전탑(보물 제 57호)이 있는 조탑리에 있는데 5층 전탑은 지금 수리중이라 볼 수가 없다. 집 근처에 선생이 1968년부터 종지기로 일하며 문간방에서 살았던 일직교회가 있다. 일직교회 벽에는 강아지똥 벽화가 그려져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