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다지마을] 주민 힘모아 일군 마을기업…‘월급받는 농촌’ 꿈 영근다
외지인이었던 신길호·김은래 부부
지역 주민과 농업회사법인 세워
농산물 생산·가공·유통·체험학습
소멸위기 농촌에 활력 불어넣어
포항시 남구 동해면은 호미곶면, 구룡포읍과 함께 한반도의 호랑이 꼬리쪽에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MBN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현역가왕’에서 1대 가왕을 차지한 전유진(포항동성고) 양이 살고 있는 곳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삼국유사 설화 속 바다를 끼고 있다. 동해면의 제일 남쪽에 자리잡은 금광리는 노다지를 품고 있다.
동해면 앞바다에서 훈련하던 해병대 장교(소령) 신길호 씨는 전역 후 잠시 기업체에 근무하다 간호장교(중령)였던 아내 김은래 씨와 함께 금광리에 정착해 포항노다지마을(이하 노다지마을)을 세웠다. 2013년의 일이다. 노다지마을은 전통적인 의미의 마을이 아니라 ‘노다지를 캐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든 농업회사법인이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맑고 푸른 전원마을, 금광1리’라는 커다란 입석 옆으로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외벽이 인상적인 노다지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한쪽 공원에 무심히 자리잡고 있는 고인돌이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하는 금광리는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인 ‘금광리’에서 착안해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사박사 마을주민들과 마을에서 나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아 ‘노다지마을’로 이름 지었다. 첫 시작은 자본금 2천만원이었다. 그렇지만 목표는 컸다. 바로 ‘월급받는 농촌마을’을 만드는 것. 농업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해 고령화로 소멸위기에 처한 마을에 귀농귀촌인이 찾아오도록 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을 뒷산에 닭을 키워 유정란을 생산했다. 노다지란은 입소문이 나 잘 팔렸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과감히 정리하고 고추, 콩, 귀리, 단호박, 고구마 등의 농산물 생산과 냄새 안나는 청국장, 떡볶이 떡 등 가공 식품 생산으로 전환했다. 지역민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가공, 유통하고 체험학습까지 가능하도록 6차산업의 시스템도 만들었다.
설립 3년만에 우수마을기업 선정
연 매출 9억 넘는 탄탄한 회사로
게 껍질 키틴 분해 미생물 생산
처음에는 갑자기 외지에서 들어와 농사를 짓고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때 이상하게 생각했던 주민들도 휴경지로 뒀던 밭을 무상으로 빌려주는 등 앞장서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설립 3년만에 지역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의 일자리도 만들고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아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포항시를 대표하는 농특산물 인증 브랜드인 ‘영일만친구’ 상표도 달았다. 설립 5년만에 직원도 24명으로 늘어나고, 연 매출 9억을 넘어서는 탄탄한 회사로 성장했다. 2018년 노다지마을 산하에 미생물 연구소도 세웠다. 박사 1명, 석사 2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하면서 제품개발을 했다. 게껍질을 이용한 키틴분해미생물과 쌀뜨물 EM액비 등을 활용한 친환경 비료 등이 그 결과물이다. 게껍질분해미생물 생산은 국제 적정기술학회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게는 특산물로 인기지만 맛있게 먹고 난 뒤에 나오는 껍질은 골칫덩이다. 비린내도 나고 날카롭고 부피도 커서 쓰레기처리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자연분해도 어렵다. 이런 게껍질이 노다지마을에서는 친환경 비료의 재료로 환영받는다. 게껍질을 말리고 분쇄하고 미생물제제를 섞어 만든 친환경 퇴비는 골칫덩어리인 쓰레기도 처리하고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일석이조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발견한 것이다.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 생산하는 떡볶이 떡, 청국장 등은 노다지마을의 인기제품이다. 떡은 100% 국산 쌀에 합성보조제를 쓰지 않고 쌀, 치즈, 소금 등 심플한 재료로 만들어 급속냉동으로 맛과 식감을 잡았다. 치즈떡볶이떡과 소떡소떡은 소스까지 포함되어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는다.
국내산 자색 고구마 분말, 국내산 단호박 분말 등을 사용한 진심 가래떡도 인기다. 친환경 귀리를 자체 개발한 특허균주를 활용해 발효시킨 발효귀리 가래떡도 있다. 이름 그대로 진심이 담겨있어서인지 특별한 홍보없이도 꾸준하게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자체 생산시설은 식약처 평가에서도 우수한 위생평가 성적을 거두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지자체에서 성공사례 벤치마킹을 위해 찾을 정도로 승승장구만 하던 노다지마을에도 위기가 왔다. 연중 고추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학교급식과 친환경 판매장 등 확실한 판로를 개척하고 이제는 성장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코로나 펜데믹이 터졌다. 학교수업은 가정에서 하는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고 당연하게 학교급식도 중단됐다. 계획했던 급식 재료납품도 못하게 됐다. 노지농사를 짓다보니 태풍이나 가뭄, 이상고온 등 예측할 수 없는 기상상황이 발목을 잡을 때도 많았다. 지난 2022년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쳤을때는 마을 앞 도로까지 물이 들어차 수확을 앞둔 농산물이 다 물에 떠내려갔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들을 믿고 응원해 준 사람들과 선뜻 주주가 된 마을 주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했다.(24명인 주주의 70%가 마을주민이다.)
사업확장보다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의 몸집도 좀 줄이고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직원에게 맡겨놓았던 부분들도 기본부터 하나씩 공부해나갔다. 설립당시 대표였던 신길호 씨는 2019년 전국 최초의 민간인 출신 면장으로 주목을 받으며 잠시 전남 순천시 낙안면장으로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와 지금은 노다지마을 친환경 농업센터장으로 농사에 전념한다. 신 센터장은 농업에 애착이 크다. 전임 대표가 마을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부인인 김은래 씨가 대표가 되었다.
요즘은 쪽파 연중생산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쪽파는 심는 것부터 손질까지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쪽파 작업에 손을 보탠다. 쪽파는 1년에 한번 씨앗이 나오고 수입이 안돼서 노다지마을에서 생산하는 쪽파씨는 온라인 판매 전국 1, 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다. 1년 내내 쪽파를 생산해 연중 균등한 소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 겨울에는 구룡포에서 나는 질좋은 과메기에 노다지마을에서 생산한 쪽파 등 야채세트를 더해 상품으로 구성해 판매한다. 떡종류도 꾸준하게 생산한다.
노다지마을은 위기의 순간이었던 2021년에도 행정안전부 주관 ‘모두愛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내실있는 기업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간판 마을기업으로 꼽히는 ‘모두애마을기업’은 마을기업으로 지정된 지 만 2년이 경과하고,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이 3억 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공동체성과 사회공헌활동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
2024년 현재 노다지마을은 대표를 포함해 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수가 줄고 매출도 줄었지만 실패는 아니다. 여전히 농사지어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인력과 땅을 활용해 함께 잘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다지마을의 도전은 계속 되고 있다. 지금 노다지마을은 다시 농업으로 노다지를 캐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 중이다.
<김기영·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김은래 대표 “마음 편하게 모두 잘사는 마을 조성”
“‘마을기업이니까 팔아줘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너무 좋은데 마을기업이래’ 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김은래 노다지마을 대표는 간호장교로 포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노다지마을의 첫 기반은 해병대 전역 후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사업기획과 실무 경험을 쌓은 신길호 전임대표가 잡았다. 지금은 김 대표가 바톤을 이어받아 농업에 진심인 남편을 대신해 마케팅을 비롯한 전반적인 회사경영을 꼼꼼하게 챙긴다. 김 대표는 회사가 튼튼하게 잘 서는게 첫번째 목표이며 마을 기업을 통해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같이 잘 사는 마을이 되는 것을 꿈꾼다. 금전적으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 편하게 잘 사는 마을이 되기를 바란다. 지역자본으로 지역주민들이 직접 생산가공하는 노다지마을의 제품들을 마을 기업이니까 사주자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찾아서 사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금광리에 정착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오랫동안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과 새롭게 마을에 들어온 귀농인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도 당연하게 맡아서 한다.
노다지마을에서 생산하는 게껍질을 이용한 친환경 비료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다. 수산부산물 중 가장 골칫덩이는 성게와 굴, 게껍질 등이다.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돼 보관과 처리에 제약이 있다. 지난 2022년 수산부산물재활용에 관한 법과 시행령이 의결되면서 굴과 성게껍질은 별도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이 생겼다. 그렇지만 아직 게껍질은 폐기물로 분류가 돼 보관과 처리에 제약이 있다. 친환경 비료를 만드는데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이 나오는 게껍질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게껍질을 말리고 분쇄해서 비료를 만드는 것은 당장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꾸준하게 이어갈 생각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마을에서 시작해 마을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노다지마을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금광리를 넘어 동해면까지 눈을 돌린다. 김 대표는 동해면에서 엄마들과 함께 교육공동체 ‘맘마미아’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맘마미아’는 포항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시민문화활동인 ‘삼세판’(삼삼오오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엄마표 간식을 먹고 공부도 하고 엄마들은 원데이 클래스 등을 통해 자기개발을 한다. 앞으로는 노다지마을 교육장에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함께 운동을 하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볼 생각이다.
[가볼만한 곳]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세오녀’설화를 주제로 조성한 테마공원이다. 신라 아달라왕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와 세오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간 뒤 신라에서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가 일본에서 세오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니 다시 빛을 찾았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테마공원이다. 영일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한 공원에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벽, 전시공간인 귀비고, 한국뜰, 초가집으로 조성된 신라마을과 거북바위 등이 있다. 일월대에 올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보는 동해바다의 풍경이 일품이다.
◇호미곶 해맞이광장
2000년부터 해마다 새해 첫 날이면 ‘호미곶한민족해맞이축전’이 열리는 장소. 1월 1일이 아니더라도 해맞이광장을 찾아 상생의 손을 보며 새해의 다짐을 다시 되새겨 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광장 진입로에 조성된 경관농업단지에는 유채꽃, 메밀꽃, 해바라기 등이 시기별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광장 옆에 있는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도 꼭 들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