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한번 9로 끝나는 해
안전조업 비는 ‘풍어제’ 열려
마을 대대로 수백년 이어와
지역 관광 효자상품 자리잡아

영덕-부흥1리드론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들어선 주황색 지붕이 어우러진 영덕군 남정면 부흥1리는 마치 유럽의 아름다운 해안도시를 보는 듯하다. 맑은 수질과 수온, 적당한 파도와 바람 등 서핑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어 최근 서핑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유럽에 면적이 한반도의 9% 정도인 작은 나라가 있다. 슬로베니아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이탈리아·크로아티아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처럼 보이지만 아드리아해와 접한 32km의 짧은 해안선이 있다. 이 짧은 해안선은 보석같은 마을을 품고 있다. 중세풍의 건축물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해안선과 조화를 이루는 주황색 지붕이 한 폭의 그림 같은 마을이다. 연중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휴양·관광지다. ‘아드리아해의 작은 베네치아’로 불리는 피란(Piran)마을이다. 우리에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랜즈’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피란마을과 흡사한 마을이 동해안 7번 국도 옆에 있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들어선 주황색 지붕, 좁은 골목길이 많이 닮았다. 장사해수욕장에 있는 문산호(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갑판에 올라서면 흡사 중세 유럽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곳이다. 그곳은 영덕군 남정면 부흥1리다. 과거 강릉유씨 집성촌이었던 마을로 현재 60호의 가구에 110여 명의 주민들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반농반어’마을이다.

 

동사당
처음 마을에 터전을 잡은 ‘양씨와 배씨 할아버지’를 모신 동사당.

 

대부분의 어촌마을은 안전 조업이 가장 큰 소망이다. 부흥1리에도 안전 조업을 기원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처음 마을에 터전을 잡은 ‘양씨와 배씨 할아버지’를 모신 ‘동사당’(洞社堂)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음력10월 15일에 안전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제관은 10일 전부터 외출을 중단하고 몸을 정갈히 한다. 제사를 마친 후에도 연말까지 모든 행동을 조심한다. 주민들도 제를 지내기 10일 전부터 육식을 금하고 외출을 자제한다. 예전에는 주민 중에서 제관을 선정했으나 현재는 스님을 제관으로 모셔 와서 지낸다. 제사를 마치면 전 주민이 모여서 음복을 한다. 제사를 10월에 지내는 것은 제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제관으로 선정되는 것은 영광이지만 해를 넘길 때까지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제관의 부담을 가볍게 하기 위한 조치다. 10월에 제사를 지내고 두 달만 지나면 새해가 되어 제관의 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돌담이 이어지는 풍경이 정겹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돌담이 이어지는 풍경이 정겹다.

 

10년에 한 번 9로 끝나는 해에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서 성대하게 지내는 풍어제는 마을 대대로 수백 년을 이어온 큰 행사다. 다음번 풍어제는 2029년에 열린다. 그동안은 3박4일 동안 지내왔으나 2019년부터 2박 3일로 변경했다.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당을 중심으로 악사 등 15명이 참여해 별신굿과 안녕굿, 용왕굿 등 다양한 전통굿을 펼친다.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전통굿인 동시에 마을 축제다.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부흥리 해안의 갯바위는 고생대에 형성된 화강암으로 전복·해삼·미역을 키워내는 보물이다.
부흥리 해안의 갯바위는 고생대에 형성된 화강암으로 전복·해삼·미역을 키워내는 보물이다.

 

마을의 특산물은 전복과 해삼, 미역이 있다. 마을 앞 바다가 내어주는 보물이다. 전복은 종패를 바다에 방사하고 3년이 지나면 채취한다. 3년을 자란 전복은 1kg당 5~6미의 대전복으로 자란다. 해삼도 마찬가지다. 어린 해삼을 바다에 방사해 자연 상태에서 자라게 한다.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자연산이다. 미역은 갯바위에서 채취한다. 깊은 물 속의 미역은 잠수부나 해녀들이 채취하고, 갯바위 상단부에 있는 미역은 짬꾼들이 채취한다. 짬꾼은 잠수를 하지 않고 가슴까지 물에 잠긴 상태에서 채취하는 사람을 말한다. 짬꾼들이 채취한 미역을 몸미역이라고 부른다.

마을 특산물인 전복과 해삼, 미역을 키우는 일등공신은 갯바위다. 부흥리 앞에서 북쪽 해안으로 이어진 갯바위는 고생대에 형성된 화강암이다. 우리나라의 화강암은 주로 중생대나 신생대에 형성된 것이지만 이곳은 약 2.57억년 전 고생대에 형성된 것이다. 화강암은 쉽게 풍화되기 때문에 고생대의 화강암이 원래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드물어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4월에 경주에서 포항, 영덕, 울진으로 이어지는 고생대 화강암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갯바위가 마을 주민들의 소득원인 전복과 해삼, 미역을 키워내는 보물인 셈이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바다를 주제로 한 벽화.
마을 곳곳에 그려진 바다를 주제로 한 벽화.

 

‘어촌뉴딜 300사업’ 선정

벽화 그리고 조형물 만들고

유럽처럼 이색적 경관 조성

마을 전체가 포토존 같아

 

마을이 지금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변모한 것은 ‘어촌 뉴딜300사업’을 통해서다. 어촌·어항을 연계·통합하여 접근성과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수산업과 관광사업을 발전시켜 지역의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부흥1리는 지난 2020년 ‘어촌뉴딜300사업’에 선정되면서 80억원의 사업비를 지원 받았다. 한적한 어촌마을로선 결코 적지 않은 사업비다. 처음에는 큰 사업이라 망설였지만 주민들이 직접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모아 성사시켰다. 지붕을 주황색으로 칠하자는 아이디어도 유럽의 관광지처럼 이색적인 경관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나왔다. 멀리서 보면 아드리아 해변의 ‘피란마을’을 보는 듯하다.

 

마을 담장에 그려진 인어아가씨 벽화. 인어의 긴 머릿결이 바로 푸른 바다다. 
마을 담장에 그려진 인어아가씨 벽화. 인어의 긴 머릿결이 바로 푸른 바다다. 

 

바다를 주제로 한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도 만들었다. 방파제도 확장했다. 옹벽과 방파제에 그려진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는 역동적인 마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갓 잡은 싱싱한 문어를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지르는 해녀 그림에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담장에 그려진 인어아가씨의 긴 머릿결은 바로 푸른 바다다. 그 머릿결 바다에는 거북이와 물고기가 살고 해초도 자란다.

 

황금빛 물고기 조형물은 관광객들이 인생샷을 남기는 포토존이다.
황금빛 물고기 조형물은 관광객들이 인생샷을 남기는 포토존이다.

 

긴 낚싯대를 들고 옹벽에서 유영하는 고래를 낚아 올리는 소년의 모습에서 마을의 미래를 본다. 갯바위를 배경으로 만들어 놓은 황금빛 물고기는 관광객들이 한 컷의 인생샷을 남기는 최고의 포토존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물고기의 상반신만을 표현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워낙 아름다운 마을이라 어디든 초점만 맞추면 마을 전체가 포토존이다.

긴 낚싯대를 들고 옹벽에서 유영하는 고래를 낚아 올리는 소년 조형물. 
긴 낚싯대를 들고 옹벽에서 유영하는 고래를 낚아 올리는 소년 조형물. 

 

인근 부흥해변 ‘서핑의 성지’

수질·수온·파도 등 최적의 조건

7번 국도와 인접 접근성 좋아

전국 최고 관광지 도약 기대

 

부흥해변은 최근 제주도의 이호테우해변과 강원도 양양 해변과 함께 서핑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맑은 수질과 수온, 적당한 파도와 바람 등 서핑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고 7번 국도와 연접해 접근성도 좋다. 서핑을 하면서 마을을 바라본 이들은 모두 환상적인 풍경에 탄성을 내뱉는다. 지난해 10월에는 부흥해변에서 국내 최초 여성서핑대회인 ‘코리아 와히니 클래식 24’가 열렸다. 프로부와 아마추어부, 비기너부 3개 부문에 국내외 70여 명의 여성 서퍼가 참가했다. 영덕군에서는 서핑센터를 건립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는 서핑센터 옆에 카페와 숙박시설, 지역특산물 판매장을 갖춘 복합지원시설을 건립해 주민들의 소득증대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동해안의 비경과 여가시설이 어우러지면 누구나 찾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마음으로 뭉쳐 마을을 가꾸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때 전국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마을이다. ‘부흥(富興)’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부자마을로 발전해 나가는 마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강석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유시우 부흥1리 어촌계장
유시우 부흥1리 어촌계장

 

유시우 어촌계장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마을”

“우리 마을은 전국 어디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마을입니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바탕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오고 싶은 관광명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유시우 부흥1리 어촌계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부흥1리는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을 바탕으로 그린 한 폭의 수채화같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언덕배기에 주황색 모자를 쓴 것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흡사 유럽의 유명관광지를 연상케 하는 마을이다.

유 어촌계장은 30년 동안 공공기관에서 일하다가 퇴직 후 고향을 지키고 있다.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고향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농협 이사부터 영덕군 새마을문고 회장까지 많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공공기관에서 익힌 행정능력을 고향 발전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2019년부터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7년 동안 마을 이장직을 맡아 봉사했었다.

이장이 되면서 ‘어촌 뉴딜 300사업’에 도전했다. 대규모 사업비를 투입하는 사업이라 마을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너무 큰 사업이라 망설이는 주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선정되는 행운을 얻었다. 직접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PPT자료를 활용해 제안설명을 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 같은 열정에 주민들도 호응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함께 참여해 유럽의 관광지 같은 마을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는 서핑센터 옆에 복합지원시설을 건립해 주민들의 소득과 연결되는 시설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한다. 매사에 열정적인 유 어촌계장의 모습을 볼 때 그 꿈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국내 유일 바다 위 호국전시관

부흥1리와 연접해 있는 장사해수욕장 한편에 커다란 배 한 척이 떠 있다. ‘문산호’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장사리 해안에서 6일 동안 상륙작전을 전개했던 함정이다. 2700t급 전차상륙함(LST)이다. 1997년 3월, 제1해병사단 수색대가 해안 수색 끝에 선체와 유골 1점을 발견했다. 침몰된 문산호를 재현해 2020년에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개관했다.

772명의 대원으로 편성되었던 육군본부 직할 제1유격대대는 중고등학생이었던 학도병이 주축이었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 장사 상륙작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국내 유일 바다 위의 호국 전시관으로 1~2층은 전시 공간, 3~5층은 전망대와 쉼터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1층은 상륙작전의 이해를 돕기 위한 프롤로그에서 시작해 상륙작전 전 과정을 소개하는 ‘6일의 여정’과 772명의 영웅들을 기억하는 ‘작전, 그 후’, 영웅들을 추모하는 ‘추모의 빛’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꿈의 항해, 그리고 희망’, 기획전시관, 계승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야외 갑판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장사리 퓽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영덕군 남정면 동해대로 3560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