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죽장면 상사리] 천혜 자연에 옛 솜씨 더해…구수한 장 맛 익는 마을
한국전쟁도 피해갔다는 오지마을
된장 맛에 반해 만든 기업 ‘죽장연’
마을서 키운 콩으로 정성껏 담은 장
세계시장서 인정받는 식재료 우뚝
누구나 감탄하는 장맛의 비결은
맑은 물·시원한 바람·따뜻한 햇살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제조기술
그리고 상사리 어르신들의 ‘손맛’

한국인의 밥상에서 된장·간장·고추장 같은 장(醬)은 오랫동안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한 집안의 전통과 손맛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장맛이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장담그기는 길일을 택해서 신성하게 해야되는 집안의 큰 행사였다. 지난 2024년 12월 ‘한국의 장(醬)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면서 한국인의 삶과 지혜를 담은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직접 장을 담는 가정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옛 방식을 고집하며 우리의 전통 장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포항 북구 죽장면 상사리 주민들이다.
해발 450m에 자리잡고 있는 상사리를 가려면 옻재를 넘어 가야되는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아 마을을 처음 찾아오는 이들은 ‘이곳으로 가면 마을이 있는게 맞나’하고 당황스러워 할 정도로 포항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신라말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 일행 중 다섯 선비가 남아 이곳에 숨어 살았다 하여 오사리라 불리던 마을은 일제강점기때 상사리와 하사리가 되었다. 산 속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덕분에 한국전쟁 때도 풍문으로 소식을 들었을때는 벌써 전쟁이 끝났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지마을이었던 상사리는 최근 명품 된장마을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을 입구 병보천을 건너는 죽장연 1교 앞에 서면 ‘죽장연’과 ‘오가향’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방식으로 된장을 만드는 두 회사가 나란히 한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상사리가 명품 된장마을로 이름을 알리게 된 데는 ‘죽장연’(竹長然)(대표 정연태)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포스코 협력회사를 운영하던 정연태 대표의 부친은 1990년대 후반 포스코의 ‘1사 1촌 운동’으로 포항에서 가장 오지마을로 꼽히던 상사리와 처음 인연을 맺는다. 수확철 마을 일손도 돕고 농기계 정비·수리, 독거노인 돕기 등 꾸준히 교류가 이어졌고 마을 주민들은 감사의 뜻으로 직접 담근 된장을 선물했다. 이 된장 맛에 감탄해 해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직원들이 모여 장을 담고 그 장을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사용을 했다고 한다.

유학을 다녀와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정대표가 2009년 부친의 건강악화로 포항으로 내려오자 부친은 ‘맛있는 장을 우리만 먹지 말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상사리에 온 그는 운명처럼 장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선친께서 남긴 말씀은 두가지였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할 것, 전통방식을 지킬 것.” 사업을 하다보니 이런 부친의 뜻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지만 정 대표는 이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죽장연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콩으로 주민들과 함께 장을 담근다. 먼저 콩을 불려 무쇠가마솥에 넣고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 삶은 뒤 뜸을 들인다. 이렇게 잘 삶아진 콩을 으깨 일정한 모양으로 뭉쳐 메주를 빚는다.

건조대에서 하루를 말린 메주는 유기농 볏짚으로 주민들이 직접 꼬아 만든 각시에 엮어 대나무 건조대에 매달아 5~10도의 온도, 30~40% 습도를 유지하며 40일간 건조시킨다. 이렇게 하면 유익균인 바실러스 서브틸리스 균이 잘 증식이 된다. 1차 발효가 끝나면 다시 25도의 온도, 습도 60%의 황토방에 짚을 깔고 메주를 쌓아올려 20~30일정도 2차 발효를 시킨다. 메주가 잘 건조되면 매년 정월 좋은 날을 골라 주민들이 함께 모여 무형문화재 옹기장인이 빚은 숨쉬는 항아리에 장을 담는다.

죽장연의 장원에는 3천개가 넘는 장독이 연도가 표시된 팻말 뒤쪽으로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8년~9년이 지난 된장은 빈티지 저장고에서 따로 관리한다. 죽장연은 된장에도 와인의 ‘빈티지’ 개념을 도입해 생산 연도와 그 해의 날씨, 숙성 과정과 테이스팅 노트까지 기록해 특별함을 더한다.
이렇게 관리한 덕분에 죽장연 장은 세계 프리미엄 식재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아웃스탠딩 인 더 필드’(Outstanding in the Field Korea)라는 글로벌 미식 행사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죽장연에서 열려 세계인들에게 전통 장의 가치를 알리기도 했다.

죽장연의 장은 국내외 내로라 하는 셰프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미국 뉴욕 ‘단지’레스토랑의 후니 킴 셰프는 이곳의 장맛을 본 후 ‘경이롭다’(Marvelous)라는 찬사를 보냈고 지금도 꾸준히 죽장연 장을 사용한다. 그 외에도 에드워드 리, 코리 리 등 미슐랭 셰프들과 국내외 유명 음식점 셰프들이 앞다퉈 죽장연의 장을 찾고 있다.

상사리의 또다른 명품장 제조업체 ‘오가향’(五家香)은 전통장류제조사 사범 자격을 갖춘 권현구 대표가 직접 생산한 콩과 고추로 전통 방식 그대로 장을 생산한다.
상사리에 처음 터를 잡은 다섯 선비의 향기를 담는다는 의미로 ‘오가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죽장연 정연태 대표는 권현구 대표를 ‘죽장연 태동의 1등 공신’이라고 말한다. 죽장연이 마을에 자리잡을 때 부지 선정부터 공장설비까지 전 과정을 그가 맡아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업체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사리 마을에서 생산된 전통 장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따로 또 같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름난 와인회사들이 ‘떼루아’(Terroir)를 강조하듯, 상사리는 산과 바람, 물이 함께 만든 된장의 명산지다. 상사리에서 생산되는 장맛의 비결은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콩과 200m 지하에서 뽑아 올리는 암반수, 그리고 골짜기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에 있다. 여기에 마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장 제조법과 어르신들의 손맛이 어우러져 상사리의 명품 장이 탄생한다.

상사리의 된장은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 만들지만 위생설비는 현대식으로 갖춰 생산한다. 상사리는 현재 110가구, 13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평균 연령은 70대다. 주민들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자칫 전통 장의 명맥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생산 방식도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매뉴얼화 했다.
명품 된장마을은 누구 한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사리 명품 된장을 만드는 명인은 솜씨 좋은 어느 한사람이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이다. 포항의 오지마을 상사리 사람들은 이렇게 느리지만, 단단하게 전통을 이어가며 명품된장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기영·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권현구 이장 “자연과 함께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마을로”
권현구 이장과 상사리와의 인연은 2009년부터 시작된다. 처음 죽장연이 마을에 자리잡을 때 부지 매입부터 공장 설비, 작업공정의 매뉴얼화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꼼꼼히 챙긴 이가 바로 권이장이다.
혼자 사택에 거주하면서 ‘한국 최고의 장류업체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매달렸다. 처음에는 장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공정별로 온도, 습도, 시간까지 집요하게 파고 들고 공부한 덕분에 지금은 전통장류제조사 사범 자격까지 갖춘 진짜 전문가가 되었다. 마을에 연고도 없지만 죽장연의 설립때부터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작업하는 사이 정이 들어 2014년에는 아예 마을로 이사를 와 정착을 하게 된다. 퇴직을 한 후 마을의 옛 이름인 오사리에서 이름을 따 ‘다섯 선비의 향기를 담는다’는 의미를 담은 ‘오가향’(五家香)을 설립했다. 부부가 직접 농사지은 고추, 콩 등으로 장을 담는다.치유농장을 꿈꾸며 농장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고 사과도 재배한다.
6년간 마을 새마을지도자를 하면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다 올해 이장이 되었다. 외지인이 이장을 맡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주민들과의 유대가 깊어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한다.
“때묻지 않고 순수한 마을 주민들이 지금처럼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라면서 “죽장면은 포항의 산소창고라고 할 정도로 공기와 물이 맑고 깨끗합니다. 지금은 마을 앞까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접근성도 좋아 많은 분들이 상사리를 찾아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권 이장은 마을은 찾는 사람들이 좋은 공기를 마시고 힐링하고 갈 수 있게 자연과 함께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밝힌다.
포항시 산림조합에서 조성한 산림선도경연단지가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 심어놓은 두릅이나 엄나무 등이 잘 자라면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임도를 활용한 산악트레킹이나 폐교(상사초등학교)활용 방안 등도 고민중이다. 그는 상사리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여러권의 책을 내기도 한 작가이기도 하다. 상사리가 명품된장마을로 자리잡을 수 있기까지 권 이장의 역할이 컸던 만큼 앞으로 그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낼 마을 스토리가 기대가 된다.
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입암서원
조선 효종 8년(1657년)에 건립된 입암서원은 장현광, 권극립, 정사상, 손우남, 정사진 등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3년에 복원되었다. 17세기 최고의 성리학자로 꼽히는 여헌 장현광 선생은 임진왜란 시기에 죽장면 입암리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서원 주변으로 오래된 향나무와 은행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서원 앞을 흐르는 가사천변에 높이 20m, 둘레 10m의 커다란 입암이 우뚝 서 있다. 맑고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여름철에는 물놀이하는 피서객으로 붐빈다.
장현광, 정사진 등이 학문을 강론하던 일제당은 입암서원의 부속건물로 1600(선조33)에 건립되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거두 노계 박인로가 1629년 입암의 풍광에 반해 ‘입암가’ 29수와 ‘입암별곡’을 남긴 곳이라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