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산세가 높아 외부와 단절
넓은 들판 펼쳐져 자급자족 가능
정감록 십승지 중 제1승지 꼽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모여들어
현재 300여명 남아 명맥 이어가
마을 평균연령 70대 ‘소멸 위기’

영주금계마을드론
소백산 자락 노적봉과 갈매봉 줄기가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아 마치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 지세를 갖고 있는 금계마을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서 말하는 십승지 중 제1승지로 꼽히는 마을이다. 김선국 사진작가

 

금방 부쳐낸 부추전과 접시 가득 담아낸 편육과 떡, 미니사과, 거기에 잔치국수 한그릇까지. 정성껏 차려진 테이블에 앉으니 색소폰 소리가 흥겹게 울려퍼지고 민요타령이 뒤를 잇는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농촌에서 듣기 힘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더해진다. 복화술쇼와 버블마술이 이어지자 너른 마당을 넘어 마을 골목길까지 박수와 환호소리가 퍼지며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지난 8월 30일 영주시 풍기읍 금계마을에서 열린 ‘행복음악회’ 풍경이다.

 

지난 8월 30일 열린 금계마을 행복음악회에서 주민들이 마당극 '하모니카'를 공연하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열린 금계마을 행복음악회에서 주민들이 마당극 ‘하모니카’를 공연하고 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주민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선보이는 마당극 ‘하모니카’ 무대였다. 교복차림의 주민들이 ‘봉숭아 학당’을 연상케 하는 콩트로 웃음을 자아내고, ‘고향의 봄’, ‘오빠생각’ 등을 하모니카로 연주하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60대와 70대의 주민 10명이 3개월간 준비한 공연이다.

처음에는 하모니카를 불 줄도 몰랐지만 꾸준한 연습 끝에 완벽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대본부터 연출, 연기까지 모두 주민들의 손으로 빚어낸 마당극은 금계마을만의 특별한 콘텐츠다. 첫 작품인 ‘금계야, 날아라’는 풍기인삼의 탄생이야기를 다뤄 영주 세계풍기인삼엑스포 등 큰 무대에서도 박수갈채를 받았고, 지난해는 마을 전통주의 탄생을 웃음과 해학을 담아 만든 ‘수승금계주’ 무대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 8월 30일 열린 금계마을 행복음악회에서 주민들이 마당극 ‘하모니카’를 공연하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열린 금계마을 행복음악회에서 주민들이 마당극 ‘하모니카’를 공연하고 있다.

 

올해의 ‘하모니카’ 무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며 “내년에는 어떤 공연이 무대에 오를까” 벌써부터 기대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겉보기에는 작은 농촌마을의 음악회지만 프로그램 하나하나 수준높은 무대로 채워진 이날 행사에는 금계마을의 자긍심이 깃들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정감록 제1승지이자 풍기인삼시배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정감록 제1승지이자 풍기인삼시배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풍기역에서 2km 남짓 달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鄭鑑錄 第一勝地 豊基人蔘 始培地 金鷄一里’(정감록 제1승지 풍기인삼 시배지 금계1리)라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금계마을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十勝地), 그중에서도 제1승지로 꼽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전쟁이나 흉년, 전염병과 같은 재난을 피해 자손 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피난처로 기록된 열 곳의 땅을 말한다. 대부분 산세가 높아 외부와 단절되고, 안쪽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영월 영월읍, 봉화 춘양면, 합천 가야면 등이 승지로 꼽히는 마을이다. 이 가운데 금계마을은 신라 말 도선국사가 “훗날의 안전을 도모할 곳은 소백산 아래 풍기 금계동”이라 말할 정도로 풍수지리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명당으로 꼽혀왔다. 소백산 자락 노적봉과 갈매봉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선 마을은 금빛 닭이 알을 품은 듯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를 갖고 있다.

 

십승지터에는 마을의 역사와 풍수에 관한 비석이 서있다.
십승지터에는 마을의 역사와 풍수에 관한 비석이 서있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 자리한 십승지터에는 ‘동국의 명승이요 세상을 기리는 보배로다, 적선한 집안의 후손이라야 들어가 살리라. 금계가 첫째이니 좋은 운이 천년에 뻗으리라’로 시작되는 풍수이야기와 마을의 역사를 담은 비(碑)가 서 있고, 바닥에는 전국의 십승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돌지도가 있다. 해마다 음력 2월 15일에는 느티나무 아래 제단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정감록 1승지라는 이름때문인지 한국전쟁 당시에는 ‘풍기로 가야 산다’는 말이 돌며 많은 피난민이 금계마을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피난1세대 어르신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2세대 몇가구가 남아있다.

 

풍기인삼 시배지인 개삼터에 세워진 개삼각.
풍기인삼 시배지인 개삼터에 세워진 개삼각.

 

금계마을은 풍기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삼 시배지다.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산삼 공납에 시달리던 백성을 위해 소백산에서 종자를 채취해 이곳에서 인삼 재배를 시작했다. 키우기가 까다로운 인삼이지만 이곳의 기후와 토양이 잘 맞아 재배에 성공하면서 부족한 공납을 채우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 수 있었다. 최초의 인삼밭 자리에 2017년 주세붕 선생을 기리고 인삼의 뿌리와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개삼각을 세웠다. 해마다 5월 8일 열리는 개삼제에는 함안 무릉마을에서 주세붕 선생의 후손들도 마을을 찾는다.

 

풍기1승지 둘레길에는 빨갛게 익은 미니사과나무가 반겨준다.

 

한때는 인삼이 주소득원이었지만 지금은 주민 대다수가 사과농사를 짓는다. 여느 농산어촌처럼 주민들의 고령화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인삼 재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인삼소비가 줄어들며 가격이 떨어진 것도 원인이다.

164세대 304명의 주민들이 사는 금계마을의 평균연령이 70대를 넘어서며 주민들은 ‘정감록 제1승지마을’, ‘풍기인삼 시배지’라는 의미있는 마을이 소멸위기에 처한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행복명당문화센터는 주민문화활동의 거점역할을 한다.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행복명당문화센터는 주민문화활동의 거점역할을 한다.

 

마을회관 리모델링을 시작으로 2013년 ‘농촌건강장수마을’사업을 통해 마을주민들의 건강관리는 물론 서예, 공예, 풍물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고, 2015년 ‘창조적마을만들기’사업으로 스마트 건강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 2022년 영주시가 추진한 ‘정감록 제1승지 문화마을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변화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문을 연 행복명당문화센터는 마을 문화활동의 중심이 된다.

 

주세붕 인문학포럼
주세붕 인문학포럼

 

이곳에서 주세붕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되새기는 포럼도 열고 마당극 연습도 하고 다양한 배움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금계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엮은 금계마을 빌리지스토리.
금계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엮은 금계마을 빌리지스토리.

 

인삼이 주소득원이었던 마을

노동력 줄어 대부분 사과농사

2013년 ‘건강장수마을’ 사업

공예·풍물 등 문화활동 시작

마을 어르신 삶 기록으로 남겨

영상 아카이브 작업도 추진

 

소멸위기에 처한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마을을 지켜온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박물관 사업도 추진했다. ‘금계마을 빌리지 스토리’는 65세 이상 주민 4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기를 썼으면 책이 한권이야’, ‘삼포의 여전사’, ‘금계마을의 직녀’ 등 각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는 어르신들의 얼굴도 그려넣었다. 어르신들의 시집살이 이야기와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가 생생하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영상 아카이브 작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산림청 주최 무궁화명소 공모전에서 수상한 무궁화길.
산림청 주최 무궁화명소 공모전에서 수상한 무궁화길.

 

특별한 가로수길도 눈길을 끈다. 마을 입구에서 금계천을 따라 조성된 무궁화길은 산림청 공모전에서 수상한 명소다. 십승지터에서 이어지는 제방길에는 사과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봄에는 하얀색 사과꽃,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붉게 익은 미니사과와 무궁화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풍기1승지 둘레길’ 코스에 포함되어 올해도 두차례에 걸쳐 걷기대회가 열렸다. 주민들은 개삼각에서 참가자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사과가 익으면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미니사과를 따먹을 수 있도록 해 재미를 더한다.

과거에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어 환난을 피할 수 있었던 금계마을은 이제는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져 더이상 오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소백산 자락에 안긴 포근한 풍경과 마을 공동체의 따뜻함이 어우러져 ‘좋은 운이 천년을 뻗으리라’는 예언처럼 여전히 십승지의 기운을 품고 있다.

김교윤·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이장길 금계1리 이장
이장길 금계1리 이장

 

 이장길 이장 “마당극, 마을 대표 콘텐츠 자리잡아”

“토박이는 아니지만 금계마을에 터를 잡은 지 2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이곳이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장길 금계1리 이장은 올해로 11년째 이장직을 맡아 마을 대소사를 두루 챙기고 있다. 금계마을이 정감록에 기록된 제1승지라는 자부심은 그가 일하는 원동력이다.

이 이장은 2022년부터 추진된 ‘정감록 제1승지 문화마을 조성사업’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관광객이 찾아오면 직접 차를 대접하고 십승지터와 개삼각을 함께 둘러보며 해설사 역할도 자처한다. 풍기인삼의 탄생을 다룬 ‘금계야, 날아라’, 마을 전통주를 소재로 한 ‘수승금계주’, 올해 선보인 ‘하모니카’ 공연까지, 마을 대표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마당극도 이 이장이 대본을 쓰고 음악감독, 조명감독, 매니저 역할까지 맡아 무대를 완성시켰다. ‘하모니카’ 공연에는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와 연주도 했다.이 이장은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연습하느라 배우들이 고생이 많았다’고 주민들에게 공을 돌린다. 지난해 문을 연 행복명당문화센터의 활용방안도 고민 중이다. 주민들의 문화생활 거점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주세붕 선생 역사관과 문학관 등으로 자리잡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2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인삼과 사과를 활용한 마을 대표 음식 개발에도 나섰다. 주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읍내 요리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메뉴개발이 끝나면 부녀회를 중심으로 체험과 판매로 이어갈 계획이다.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마을에 정착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그의 말 속에는 소멸 위기 마을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최근 아이 셋을 둔 가정과 신혼부부가 마을에 이사를 오면서 마을에 활력이 더해졌다. 아이 웃음소리에 마을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가 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 하나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해졌다.

이 이장은 사람박물관 사업의 일환으로 ‘금계마을이야기’ 책을 펴낸데 이어 영상아카이빙 작업도 계획중이다.

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금선성
금선정

 

◇금선정

1781년 풍기군수 이한일이 금계 황준량(1517~1563)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과 함께 세운 정자다. 500년 세월의 소나무숲 사이로 금선대라 불리는 너른 바위 위에 얹힌 금선정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살려 조화롭게 배치했으며 모든 기둥의 길이가 다른 것이 특색이다. 금선정사에서 학문에 몰두하던 황준량 선생이 이곳을 자주 거닐었다고 알려져있다. 금선정 위쪽으로는 황준량 선생 추모비가 있고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인 계양정이 자리잡고 있다.

가볼만한곳-인삼박물관
영주인삼박물관

 

◇영주인삼박물관

영주 풍기는 우리나라에서 인삼재배를 처음 시작한 지역이다. 풍기 인삼의 우수성과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세워진 영주인삼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2층 건물로 전시실, 기획전시실, 어린이체험장 등이 있다. 풍기 인삼의 역사와 생육시기별 인삼의 모양 등 재배과정, 인삼의 효능 등을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숲길을 오르는 느낌으로 죽령옛길을 재현해놓았다.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와 인접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