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로 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
모례장자 집에서 소와 양 돌보며
수많은 박해 속 꿋꿋이 불법 전파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 창건
불도 열렸다 해 지명도 ‘도개리’

구미초전지_드론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는 아도화상이 불교를 전파한 곳으로 신라불교초전지마을로 불린다. 폐교된 송도초등학교 부지에 신라불교초전기념관을 중심으로 전시가옥과 전통한옥, 숙박동 등이 마련되어 있어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과정부터 어떻게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대부분의 국가나 민족은 그들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 종교는 바로 그들의 정신이고 신념이다.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뿌리내린 종교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종교도 변천을 거듭한다. 새로운 종교가 생겨나고 다른 종교가 유입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과정에서 고초를 겪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초기 전파 과정에 심한 탄압을 받지만 굴복하지 않는 선각자들의 희생을 거치면서 뿌리를 내린다.

기독교가 로마에 정착하기까지 250년 동안 심한 탄압을 받았다. 우상과 황제 숭배를 하지 않고 국가통합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천주교가 조선에 전파되는 과정에도 신해박해와 을묘박해 등 4대 박해를 겪으면서 수많은 순교자를 낳은 후에야 자리를 잡았다.

이 땅에서 1600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도 마찬가지다. 해동고승전의 기록에 따르면 불교를 인정하지 않던 신라에 고구려 승려 정방과 멸구비가 들어와 포교활동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고, 아도화상 역시 불교를 전파하려 했으나 박해가 심해 여의치 않았다. 일선현(구미)의 모례장자의 집에서 소와 양을 돌보면서 3년간 불법을 전했다. 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이 순교한 것을 계기로 불교는 신라에서 공인을 받았다. 아도화상이 3년 동안 모례장자의 집에 숨어서 불교를 전파한 곳이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다. 신라불교초전지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도개리의 어원도 ‘불도’가 열린 곳이라는 것에서 나왔다.

아도화상_동상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화상

 

신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파한 아도화상은 어머니 고도령과 고구려에 사신으로 온 위나라 사람 아굴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출가해 열여섯 살에 위나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현창화상의 문하에서 공부한 후 열아홉 살에 귀국했다. 신라로 들어와 불교를 전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일선현에 있는 모례의 집에 숨어서 불교를 전파했다.

미추왕의 딸 성국공주의 병이 깊어졌을 때 향을 피워 치료하고 포교를 허락받았다. 흥륜사를 짓고 불법을 전했으나 미추왕이 죽자 다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다시 모례장자의 집으로 돌아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수도를 하다가 입적했다고 전해진다.

 

모례정_다시
모례장자의 집터에는 1600년동안 한번도 마르지 않았다는 오래된 우물, 모례정이 있다.

 

아도화상이 가축을 돌보았던 곳을 지금도 ‘소천골’과 ‘양천골’로 부른다. 소와 양 일천 마리를 키운 곳이라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아도화상이 품삯도 받지 않고 떠나려 할 때 모례장자가 아쉬워하자 ‘집 안으로 들어오는 칡순을 따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추운 겨울에 칡 순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따라가자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아도화상이 이곳에 절을 짓겠다면서 시주를 청했다. 바랑에 아무리 쌀을 넣어도 가득 차지 않다가 1000석을 넣자 가득 채워졌다. 그 시주로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를 창건했다.

모례장자의 집터에는 모례정이란 우물이 남아 있다. 1600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백용성 조사는 ‘신라불교 초전지인 이곳을 잘 가꾸어 성역화하라’는 유훈을 남기기도 했다. ‘초전지’란 ‘처음 전해진 곳’이란 말이다.

 

아도화상과 초전지 전경
아도화상과 초전지 전경

 

신라불교초전기념관 중심으로

전시가옥·생활관·교육관 운영

신라시대 의복·승복 입어보고

전통한옥 숙박·사찰음식 체험

흥미롭고 교육적인 프로그램 인기

 

지난 2010년 경상북도 3대 문화권사업으로 선정되어 230여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신라불교초전지마을이 만들어졌다. 폐교된 송도초등학교 부지를 중심으로 43,977㎡의 면적에 조성됐다.

신라불교초전기념관을 중심으로 전시가옥과 전통한옥 숙박동, 단체생활관, 교육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초원과 모례정, 아도화상의 동상이 있다.

 

신라불교초전기념관에서는 아도화상이 어떻게 신라에 불교를 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신라불교초전기념관에서는 아도화상이 어떻게 신라에 불교를 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기념관에서는 아도화상에 의하여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과정에서부터 훗날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우게 되는 과정까지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보여준다.

제1관인 ‘아도, 신라로 향하다’에서는 도개2리가 신라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라는 근거와 불교를 배척하던 신라에서 아도화상이 어떻게 불교를 전했는지 알 수 있다.

제2관 ‘신라 불교의 향이 퍼지다’에서는 아도화상이 향으로 성국공주의 큰 병을 고친 후, 사찰 창건과 박해를 피하는 과정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제3관 ‘신라, 불교의 꽃을 피우다’에서는 불교 역사와 탁본체험, 염주 만들기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체험 공간들이 조성돼 있다. 고증을 거친 신라시대 의상이 준비되어 있어 전통의상 체험도 할 수 있다.

 

한옥체험관
한옥체험관

 

초가로 지어진 전시가옥은 의(衣)·식(食)·주(住)·법(法)을 주제로 구성됐다. 의(衣)에서는 신라시대의 의복과 승복체험, 아도화상 되어보기를 할 수 있고, 식(食)에서는 신라시대 식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주(住)에는 옛날의 주거형식을 재현하고 농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투호나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도 체험할 수 있다. 법(法)은 아도화상과 함께 몸과 마음이 쉬어가는 명상의 공간이다. 성불관과 자비관, 경성관, 해탈관 등 6채가 있어 숙박체험도 할 수 있다.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으로 지은 전통 한옥으로 6인실과 10인실이 있다. 단체생활관과 교육관은 30인까지 수용할 수 있다.

 

농촌체험휴양마을
모례가정체험휴양마을은 식당·카페·공방을 운영해 관광객에게 식사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발우공양 사찰음식 체험과 전통 향의 가치를 배우고 생활 속에 활용할 수 있는 향낭 만들기 체험도 인기다. 자연과 한옥에서 즐기는 피크닉 상품, ‘모례:랑’도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야외 잔디광장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 피크닉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햇볕이:랑’, 한옥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한옥 피크닉인 ‘한옥이:랑’, 전문 배우들이 춤과 노래를 이용해 신라불교초전지의 유래를 알려주고 아름다운 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물결이:랑’도 있다. 

신라불교초전지를 가꾸기 위한 주민들의 애정과 노력도 남다르다. 신라불교초전지 정보화마을과 모례가정권역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어 있고, 초전지 발전위원회도 구성되어 있다. 2005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된 이후 전자상거래와 정보콘텐츠를 구축하여 주민들의 정보 생활화를 지원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쌀과 멜론, 곶감, 단호박 등 계절 농산물을 판매하여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9년 전국 정보화마을 운영평가에서 명품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고령자의 교통안전교육을 비롯해 농업직불제 교육, 스마트폰 사용법 등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주민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정보화마을로 찾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모례가정권역 체험휴양마을에서는 식당과 카페, 공방을 운영해 초전지마을을 찾는 불교신도나 관광객들에게 식사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공방에선 아이들의 백일이나 첫돌 사진을 촬영하고, 기념품으로 떡을 만드는 체험도 한다. 수영장과 놀이시설, 모래놀이시설도 갖추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지만 연간 이용객이 2000여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아오면서 이곳은 불교 성지인 동시에 명품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최규열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김기철 도개2리 이장
김기철 도개2리 이장

 

김기철 이장  “초전지마을-사찰 연계 성역화 사업 박차”

 

“우리 마을이 신라 천년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꽃 피운 신라불교초전지마을이라는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 더욱더 가꾸고 발전시켜 불교 신자는 물론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을 수 있는 성지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김기철 도개2리 이장은 이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 도개2리에서는 신라불교초전지의 성역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백제불교초전지인 영광군 법성포와 자매결연을 맺고 행복바라미축제를 개최하고 상호 방문을 통하여 공동발전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3차례에 걸친 신라·백제불교초전지 학술세미나도 개최했다.

김 이장은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7년 귀향해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도개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과 체육회장, 발전협의회 부회장 등 지역의 많은 사회단체에 참여해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오다 2013년 주민들의 추대로 이장직을 맡아 지금까지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지금은 이장직 뿐만 아니라 정보화마을과 체험휴양마을, 초전지마을, 초전지발전위원회를 총괄하는 운영위원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이장 취임 후에는 마을 안길포장과 농로 확·포장 등 주민생활 편의 시설을 확충하면서 초전지마을 성역화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350m에 이르는 마을 담장을 황토와 자연석, 기와를 활용한 전통 담장으로 정비함으로써 깨끗한 마을 환경을 조성했다.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전통 담장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라면서 담장을 배경으로 한 장의 인생샷을 남긴다. 앞으로 김 이장은 초전지마을과 인근에 있는 전통사찰(도리사, 문수사, 자비사)을 연계하는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일선리문화재마을
 

◇일선리 문화재마을…수몰민 고향집 옮겨와 이룬 마을

구미 해평면에 있는 일선리 문화재마을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가 10점이나 있는 마을이다. 전주 류씨 집성촌으로 본래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400여 년 터를 잡고 살고 있다가 1978년 임하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자 이곳으로 집단 이주했다. 이때 단순하게 주민들만 이주한 것이 아니라 살던 집과 누각, 정자도 함께 옮겨왔다. 고향에 있던 건축물을 해체한 후, 원·부자재를 가져와 다시 세운 것이다. 생활 공간이었던 주택은 물론 마을에 있던 문화유산자료들도 그대로 옮겨왔다. 그렇게 가져와 다시 지은 문화유산자료가 ‘수남위종택’과 ‘만령초당’ 등 10점이나 된다. 그때부터 문화재마을로 불렀다. 마을 안에는 고택들이 즐비하다. 언덕에 큰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다시 흙담을 세우고 기와를 덮은 모습이 고풍스럽다.

마을 입구에 ‘수류우향’(水柳寓鄕)이란 글씨를 새긴 큰 비석이 서 있다. 이곳을 고향 삼아 머문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주 당시 문중에서 집단이주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에서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70가구가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풍수가들은 ‘태조산 자락으로 낙동강이 휘감고 돌아 흘러 내려가는 곳으로 문과 장원이 끊이지 않는 명당’이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