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치산마을] 팔공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편안한 휴식이 깃든 곳
치산계곡과 총 길이 60m 폭포
퇴계 이황 詩 지을 정도로 ‘장관’
임진왜란 땐 지맥 끊으려 말뚝
폭포 2㎞ 상류 부분엔 ‘진불암’
하류엔 원효대사 창건 ‘수도사’
조선 불화 ‘노사나불 괘불탱’도

“새로 솟는 폭포가 빼어나 천 길 성난 우레 같구나. 평상에 기대어 구경하는 곳에 아지랑이 푸르름은 몇 겹이런고.” 퇴계 이황이 신녕현감으로 있던 제자 황준량과 함께 치산폭포를 찾아 그 아름다움을 중국 ‘여산’에 비유하면서 지은 시(詩)다. 치산폭포는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신녕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북쪽 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치산계곡 중턱에 있다. 높이 30m 총 길이가 60m에 이르는 3단 폭포다. 수량이 풍부하고 폭포의 물안개가 푸른 숲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폭포를 찾아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오늘날에는 팔공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휴식처인 동시에 사진작가들이 추천하는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폭포 위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지맥을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고 전해지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치산계곡은 영양 수하계곡과 영덕 옥계계곡, 봉화 고선계곡과 함께 경북의 4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치산계곡을 품고 있는 팔공산은 1193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대구 동구와 군위군, 경북의 경산시·영천시·칠곡군에 걸친 웅장한 산이다. 77개소의 경관자원과 수달, 담비 등 멸종위기종 15종 등 총 5296종의 야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국보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1980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그 산록에 영천 치산마을이 있다.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이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산141-5)에 속해 있다.

꿩 엎드린 형상…雉 써서 ‘치’산
꿩 많아 꿩마을로 불렀단 설도
돌 많아 담장도 밭두렁도 돌담
풍수가들에 따르면 치산마을은 복치형(伏雉形)이라고 한다. 꿩이 엎드려있는 형상이라 꿩 치(雉)자를 써 치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꿩이 엎드려있는 것은 북서쪽 마을인 백학리 뒤편에 매봉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꿩이 엎드려서 품에 품은 새끼를 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팔공산의 지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후삼국시대 고려 태조 왕건이 동수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었을 때 신숭겸이 왕건의 옷으로 바꿔 입고 후백제군을 유인해 왕건을 탈출시켰다. 이때 왕건은 목숨을 건졌으나 신숭겸을 비롯한 8명의 장수가 순절해 팔공산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는 치산리는 꿩이 많아 꿩산마을로 불렸는데 ‘꿩산’이 ‘꽁산’으로 불리다가 ‘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꿩을 꽁으로 부른다. 이외에도 8고을에 걸친 산이라는 설과 8성인이 득도했다는 설이 있다.

치산폭포 2km 상류 부분에 고려 문종 때 ‘혼수대사’가 창건한 진불암이 있다. 창건 당시 한 수행승의 적선으로 부처님의 진신을 친견하였다고 하여 진불암으로 불렸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예전에는 스님들이 70여 명에 이를 정도의 큰 사찰이었다. 현재는 적멸보궁과 삼성각, 누각, 공양각, 산신각이 있다. 적멸보궁 위쪽에 석가모니 고행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치산폭포 아래쪽에는 신라 진덕여왕 1년(647)에 자장율사와 원효대사가 함께 창건한 수도사가 있다. 처음 이름은 금당사였다. 이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하여 수도사로 불린다. 법당인 원통전과 산신각, 선방, 요사채 등이 있다. 원통전에는 후불탱화와 지장탱화,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보물 제 1271호인 ‘노사나불 괘불탱’은 조선 숙종 때 그려진 길이 7.36m 폭 4.32m의 괘불도다. 거친 삼베 바탕에 채색하는 방식으로 둥근 원안에 노사나불이 독존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둥글고 넓적한 얼굴과 약간 처진 눈썹, 둥글고 풍만한 어깨, 화려한 색상 등에서 조선시대 효종과 숙종 대의 전형적인 불교 양식을 보여 준다.

팔공산 둘레길 제10구간 통과
마을 앞엔 500살 넘은 보호수
암반수로 키운 미나리 특산물
마을에는 조선 중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권응수 장군을 배향한 귀천서원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영천성을 탈환하는 등 여러 곳에서 전공을 세워 선무2등공신 화산군에 봉해진 무장이다.
경덕사로 불리는 귀천서원은 1676년에 창건됐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다시 복원됐다. 영정각과 강당, 권응수 장군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비각 앞에는 하단부에 금이 간 하마비가 있다. 나라에 어지러운 일이 생기면 하마비가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앞에 500년 된 느티나무(동제나무)가 있다. 500여 년 전 의성 김씨들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정월 보름날에 마을의 안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마을 이장과 경로회장, 새마을지도자, 마을 총무가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제관으로 참여한다. 예전에는 농악대를 앞세우고 3~4일 동안 마을을 돌면서 성대하게 치렀으나 이제는 많이 간소화됐다.

제주도와 사촌지간이라고 할 만큼 마을에는 돌이 많다. 팔공산에 큰 홍수가 나면서 돌들이 떠내려오고 그 위에 마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어디라도 조금만 파면 큰 돌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경지정리를 하지 못해 대부분의 농경지가 다랭이논으로 남아있다.
그 돌들을 이용해 쌓은 돌담이 이제는 마을의 명물로 남아있다. 집 담장도 논밭두렁도 모두 돌담이다. 돌담에 낀 이끼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팔공산 둘레길 제10구간이 치산마을을 통과한다. 치산마을에서 부귀사에 이르는 7.7km이다. 전 구간이 청량함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코스다. 치산마을에서 치산폭포를 거쳐 동봉으로 이어지는 2개의 등산로도 개설되어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이색적인 풍경의 카라반과 캐빈하우스가 조화를 이루는 치산캠핑장도 있다.
모과와 미나리, 마늘이 마을 특산물이다. 최근에는 오이와 깻잎 재배도 많이 한다. 예전부터 치산마을의 모과는 전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의료 환경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 모과는 훌륭한 약재였다.
2001년부터 재배하기 시작한 미나리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8월 말부터 9월 초에 줄기를 10cm 정도로 잘라 논에 심은 후 1월부터 3월까지 수확한다. 지하 100m 암반수를 이용해 재배하기 때문에 깨끗해 치산미나리는 청정미나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밤에는 물을 넣어서 수온을 관리하고 낮에는 물을 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재배하기 때문에 속이 차고 향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1월부터 수확을 시작하면 미나리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차량 행렬이 줄을 잇는다. 마을 진입로 주변에 농가마다 판매장을 설치하고 판매한다.
영천은 마늘 주산지다. 마늘산업특구로 지정됐고 신녕농협에 마늘경매장도 설치됐다. 치산마을 역시 대부분의 농가에서 마늘을 재배한다. 주로 대서종을 재배한다. 미나리와 마늘, 오이, 깻잎 등 작물의 재배로 농업소득이 증가하면서 주민들의 생활도 풍족해지고 귀농인구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청년 귀농이 많아 치산마을은 젊은 마을로 변화해나가고 있다. 서영진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임종도 이장 “미나리 재배로 소득 높아져 귀농 증가”
“우리 마을은 젊은 마을입니다. 경관이 좋고 소득이 높아 귀농귀촌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귀농이 늘고 있어 희망이 있는 마을입니다”라고 임종도 치산2리 이장은 마을 자랑을 늘어놓았다.
치산마을은 팔공산 국립공원 자락에 위치해 풍광이 좋은 곳이다. 특히 치산계곡은 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녹음이 우거져 살기 좋은 마을로 정평이 난 곳이다. 마을에 사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임 이장은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그동안 마을 이장을 비롯해 새마을지도자, 재향군인회 면회장, 농촌지도자회장 등 많은 단체를 맡아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었다. 주민들의 추대로 3차례나 이장직을 맡아 마을을 위해 봉사했다. 이장 경력이 15년이 넘는다.
2000년 처음 이장직을 맡았을 때 마을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미나리 재배를 도입했다. 겨울철 농한기에 미나리 재배를 통하여 농가 소득을 높이자는 생각에서다. 처음 도입할 때만해도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미나리가 돈이 되겠느냐? 한 번도 재배해보지 않았는데 기술은 어디서 배우며, 판매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 이장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설득했다. 5년 정도 지나면서 많은 농가들이 동참했다. 현재는 18농가에서 6만 6천여 ㎥ 정도 규모로 늘어났고 평당 5만원 이상의 조수익을 올리는 효자 농산물로 자리 잡았다.
산림청 산촌생태마을 사업에 응모해 치산모과돌담 산촌생태마을사업에 선정되는 성과도 거두었다. 마을 환경개선사업도 계속 추진했다. 마을 우회도로를 개설하고 하천제방 정비로 홍수 피해를 줄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상수도 공급사업을 완료해 먹는 물 걱정이 없는 마을로 만들었다.
앞으로는 청년 귀농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청년들의 귀농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청년들이 마음 놓고 마을에 정착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청년들에게 농촌에서도 소득이 보장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젊은 마을이 만들어 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 시안미술관
시안미술관은 2004년 박물관미술관진흥법에 의거 등록된 제1종 미술관이다. 영천시 화산면에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노베이션해 탄생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자 전문미술관이다.
문화서비스 기획과 프로그램 제공을 통하여 지역의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개관 이후 100여 회 이상의 특별 전시와 미술관 교육프로그램과 현대미술 분야 연구사업을 수행하는 시각예술 전문기관이기도하다. 2015년에는 교육부로부터 교육기부 우수기관에 선정됐다.
4개의 전시관과 자료실, 수장고, 영상세미나실을 갖추고 있다. 6천여 평의 잔디 조각공원과 야외음악당이 있다. 자연 속의 특별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오픈그린’, 예술을 위한 도구와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도구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오디너리팔레트,’ 방문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카페 시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