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뒤편, 영남대로 옛길 그대로
80년 넘은 정미소는 아직도 ‘쌩쌩’
불탄 유천극장 손봐 문화공간 조성
전파사·사진관·대포집 벽화로 재현
새마을운동 본산인 상록수회관 등
과거 모습 여전히 간직한 삶의 터전

청도유천마을드론
유천문화마을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한마을처럼 붙어있는 청도읍 유호1리와 내호리를 아우르는 이름이다. 유천마을은 근대와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마을로 살아있는 추억의 거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사람의 몸에 혈관이 있다면 땅에는 도로가 있다. 도로는 땅의 혈관이다. 혈관을 통하여 인체에 필요한 영양분이 운반되듯 도로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고 간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로는 관서대로(한양-의주)와 영남대로(한양-부산)다. 관서대로의 폭은 장정 네 사람의 어깨 폭의 너비, 영남대로는 두 사람의 어깨 폭 너비였다고 전해진다. 관서대로가 중국과의 교역이나 외교사신을 맞이하던 길이라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영남대로는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나 보부상들이 오고 가던 생활의 길이었다. 도로를 관리하기 위해 역도제(驛道制)를 운영했다. 주요 거점에 역참이 설치되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했다. 종9품 역승을 파견하는 17개의 역승도와 종 6품 찰방을 파견하는 24개의 찰방도가 있었다. 그 아래에 524개의 속역이 있었다.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청도에는 찰방도인 성현역과 속역인 유천역과 오서역, 매전역, 서지역 등이 있었다. 청도와 밀양 경계 지점, 유천역이 있던 유호리와 내호리 일대가 번창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유호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유천역(철도)을 중심으로 근대화된 마을이 조성되고 상권이 형성됐다. 그러나 60~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인구의 도시 유출로 침체의 길을 걷는다. 사람은 줄어들고 빈 점포는 늘어났다.

 

80년이 넘은 정미소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간다. 농가에서 보내온 벼를 보관하면서 연락이 오면 도정을 해주는 방식도 옛날 그대로다.
80년이 넘은 정미소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간다. 농가에서 보내온 벼를 보관하면서 연락이 오면 도정을 해주는 방식도 옛날 그대로다.

 

예전의 번창했던 마을을 그리워하던 주민들이 지난날의 영광을 되살리자고 뜻을 모아 유천문화마을을 조성했다. 살아있는 추억의 거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활력이 넘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근대거리의 모습이 비교적 잘 간직되어 있고 대부분의 건물이 실생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어 특별하다. 근래에 불고 있는 레트로문화도 한 몫을 했다.

 

유천역사
옛 유천역 자리에 유천역사를 복원해 놓았다. 역사 앞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역무원의 모습도 재현해놨다.

 

유천문화마을은 청도읍 유호1리와 내호리다. 두 마을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고려 때부터 유천역이 있어 유천으로 불렸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유천역이 설치되면서 인근 지역 중심 상업지로 발전했었다. 경부선 철도가 복선화되면서 유천역은 상동면으로 이전됐다. 예전 유천역 자리에 역사를 복원해 놓았다.

조선시대 유천마을을 거쳐 갔던 영남대로의 옛길이 마을 뒤편에 아직도 남아 있다. 유천문화마을은 근대와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다. 근대거리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보존된 곳이다. 추억을 되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추억의 거리다. 오래된 건물에서 생활하고 장사를 한다.

 

영신정미소내부
80년이 넘은 정미소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간다. 농가에서 보내온 벼를 보관하면서 연락이 오면 도정을 해주는 방식도 옛날 그대로다.

 

80년이 넘은 영신정미소는 오늘도 힘차게 돌아간다. 녹슨 함석지붕과 판자문, 벼를 이송하는 송판으로 만든 승강기는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농가의 벼를 정미소에서 보관하다가 도정해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도정해주는 방식도 그대로다.

 

유천극장
1967년에 세워진 유천극장은 지역의 문화공간이었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청도군에서 매입해 재건축해 개관했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유천극장은 재건축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월 2회 영화상영과 문화행사장으로 이용된다. 인근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연습 장소로도 이용된다. 유천장터에서는 지역의 자생단체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문화행사도 연다.

 

적산가옥 리모델링해 관광자원화

이호우·영도 남매 시조시인 생가는 

백일장·시낭송 등 다채로운 행사

가게 열어 주민 직접 붕어빵 굽고 

쫀드기 등 추억의 먹거리도 판매

관광객 북적이는 마을 조성 ‘온힘’

 

청도 유천문화마을에는 60~7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벽화가 눈길을 끈다. 집집마다 365일 태극기도 계양되어 있다.
청도 유천문화마을에는 60~7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벽화가 눈길을 끈다. 집집마다 365일 태극기도 계양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적산가옥과 수동식 소방차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60~70년대의 모습을 그린 벽화와 함께 ‘1974년은 임신 안 하는 해’, ‘가족 잃고 한탄 말고 연탄가스 미리 막자’와 같은 시대상을 보여주는 표어를 보면서 관광객들은 ‘그때는 그랬지’라는 말과 함께 추억 속에 빠져든다.

 

옛모습을 살려 그려놓은 벽화.
옛모습을 살려 그려놓은 벽화.

 

마을 중앙로 양편으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서 그려놓은 전파사와 사진관, 대포집도 만날 수 있다.

 

1971년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으고 청년 50명이 직접 지은 상록수회관은 유천마을 새마을운동의 본산이다.
1971년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으고 청년 50명이 직접 지은 상록수회관은 유천마을 새마을운동의 본산이다.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1년에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으고 청년 50명이 직접 지은 상록수회관도 관심을 끈다. 회관은 주민 쉼터인 동시에 새마을운동을 의논하는 새마을운동의 본산이었다.

마을의 모든 집에서는 일 년 내내 태극기가 게양한다. 마을 출신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의미다. 한 마을에서 10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온 것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이호우, 이영도 오누이 시조시인 생가
이호우, 이영도 오누이 시조시인 생가

 

마을에는 오누이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이영도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된 한옥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형’을 이룬다. 이호우 시인은 전통 시조 형식에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아냈고, 이영도 시인은 여류 시조 시인으로 시조집 ‘청저집’을 남겼다. 오누이 시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오누이공원’과 ‘청도시조공원’도 있다.

 

유천문화마을 안내도
유천문화마을 안내도

 

현재 유천문화마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을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계속 업그레이드시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물론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한다.

적산가옥은 안전진단 후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부식이 심한 부자재들은 새것으로 교체해 안전성을 보강하고 2층에는 뮤직박스를 설치했다. LP판 1600장도 확보했다. 1층에는 유천문화마을의 정체성과 부합되는 업종을 유치할 계획이다.

맞은 편에 있는 철공소도 대장간으로 복원해 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유천극장은 활용 횟수도 늘리고 활용 용도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이호우, 이영도 남매 시조시인의 생가에서는 문학단체와 협력해 백일장과 시낭송 등 다양한 문학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남매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념하는 문학관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마을을 찾는 이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포토존도 만들었다.
마을을 찾는 이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포토존도 만들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청도천에서 행해졌던 유천어화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유천어화는 밤에 횃불을 들고 고기잡이를 하는 것으로 멀리서 보면 횃불이 아름다운 꽃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는 추억 상품을 판매하는 마을가게를 새로 열었다. 추억의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관광객들의 건의가 있어서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많이 망설였으나 일단 한번 해보자고 의견을 모으고 시작했다. 예전 국밥집을 리모델링해 붕어빵과 어묵, 빙설, 팝콘, 커피 등 손쉬운 간식류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90세 어르신이 직접 뜬 손뜨개 수세미도 판매한다.
90세 어르신이 직접 뜬 손뜨개 수세미도 판매한다.

 

옛날식 과자와 쫀드기도 판매한다. 90세의 할머니가 손수 뜬 수세미 등 유천문화마을 기념품도 있다. 처음에는 마을가게에서 설거지할 때 쓰라고 가져온 것을 마을에서 판매하자고 권유해 판매를 시작했다. 첫 번째 판매액 3만 원을 전달했을 때 할머니는 “평생 물건을 팔아보기는 처음”이라면서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주민들이 독학으로 연구해 구워낸 앙증맞은 붕어빵
주민들이 독학으로 연구해 구워낸 앙증맞은 붕어빵

 

붕어빵을 판매하기로 했으나 굽는 기술을 배울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두 달 동안 연습을 했다. 밀가루 반죽과 팥소의 농도 조절, 온도와 시간 등등 수없이 연습을 했다. 어떤 때는 반죽이 너무 되고 어떤 때는 묽었다. 온도 조절이 서툴러 태우기도 했다. 이렇게 완전히 독학으로 붕어빵 굽기를 터득했다. 연습을 할 때마다 주민들이 시식에 참여해 맛을 평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천문화마을의 앙증맞은 붕어빵이 탄생했다.

이처럼 유천문화마을을 가꾸는데 모든 주민이 참여한다. 박제가 아닌 살아있는 근대거리를 품은 유천문화마을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박효상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신상헌 유호1리 이장
신상헌 유호1리 이장

 

 

신상헌 이장 “관광객들이 다시 찾고 싶은 마을 조성”

“우리 마을은 청도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지역이고 사람들의 심성이 좋아 인정이 많은 곳입니다”라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마을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어 조만간 예전의 명성을 되살리는 마을이 될것”이라고 신상헌 유호1리 이장은 자랑한다.

마을은 예전에는 유천역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드는 중심지였으나 경부선 복선화에 따른 기차역의 이전과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이 심화되면서 상권이 많이 위축된 곳이다. 최근에는 관광을 통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자는 주민들의 의지와 레트로 문화의 확산으로 근대거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의 풍경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신 이장은 부산에서 수산물 유통업을 하다가 13년 전 이곳으로 귀촌했다. 지금도 유통업을 하면서 마을 이장직까지 1인 2역을 하는 열성파다. 마을을 지키고 상권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이장직을 맡았고, 올해는 상가연합회 회장직까지 겸하고 있다. 상가를 활성화시키고 관광객들을 계속 유치시키기 위해서 근대거리를 중심으로 추억을 되돌아보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광객들이 다시 찾고 싶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를 위해 관광객의 기호에 맞는 먹거리 메뉴 개발과 휴식공간 마련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상인들에 대한 서비스 교육과 상가 소유자를 상대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속가능한 마을 발전을 위해 성공한 관광지보다 실패한 관광지에 대한 벤치마킹을 실시해 타산지석으로 삼는 등 주민들의 역량 강화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은 중단된 ‘유천어화’를 재현해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유천어화가 재현되면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는 신선한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고 신 이장은 말했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청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청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새마을운동 역사·정신 배우다

청도읍 신도리에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은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농어촌 환경개선과 소득증대, 의식개혁을 추진한 새마을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1969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 수해지역 시찰을 위해 전용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 신도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안길과 제방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보았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을 가꾸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대통령은 이듬해 4월 22일 한해 대책 지방장관회의에서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 보자’라는 새마을운동을 제안했다.

1971년 전국 3만 3천여 농어촌마을에 시멘트 335포대를 지원하여 마을 환경개선사업을 자발적으로 추진하도록 한 것이 새마을운동의 시발점이다. 이제는 새마을운동의 저력과 가능성이 국제사회에서도 성공적인 지역개발모델로 평가받고 있으며, 빈곤·기아 등의 지구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새마을광장과 기념관, 테마파크가 있다. 숙박과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새마을광장에는 대통령전용열차가 있다. 1926년 덕혜옹주가 이용하던 1등 전망차를 1955년 대통령 전용열차로 리모델링해 사용하던 것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철도박물관에 보존, 전시 중인 열차를 복제해 전시하고 있다. 청도군 청도읍 새마을1길 34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