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산지역의 중심 역할
120년 지나며 서서히 빛 잃어
주민 힘 모아 도시재생 시작
2019년부터 예산 167억 투입
복합커뮤니티센터 구심점 삼아
생활인프라 개선·공동체 회복

경산역전마을드론
경산 역전마을은 경산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행정구역으로는 사정동과 옥산동, 옥곡동 일대를 말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낙후되었던 마을은 ‘경산 역전마을 르네상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활기를 되찾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1905년 1월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됐다. 6년 전에 제물포와 서울을 잇는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기차에 대한 소문은 들었으나 그때까지 직접 본 사람은 드물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기차는 신기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산처럼 크면서도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는 기차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문물이었다. 역으로 들어올 때 울리는 기적소리는 천둥소리 같았다. 부산 초량역을 시작으로 밀양과 청도, 경산, 대구 등 많은 기차역이 들어섰다. 철도는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류가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번화가가 형성됐다.

경산역전마을은 경산역을 주변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경산역전마을은 경산역을 주변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경산역도 마찬가지였다. 역 주변은 단번에 경산지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가게와 집들이 들어섰다. 그때부터 역전마을로 불렸다. 행정구역으로는 경산시 사정동과 옥산동, 옥곡동 일대다.

그렇게 역전마을이 형성된 이후 12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변화도 겪었다. 언제까지나 번창할 것만 같았던 역전마을이었지만 시대의 변화는 피해 가지 못했다. 경제발전과 함께 교통수단이 자동차로 바뀌고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도시 외곽에 조성된 편리하고 쾌적한 신도시로 사람과 상권이 이동했다. 과거 번창했던 역전마을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결국 사람과 상권이 모두 떠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았다.

이런 현실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주민들이 나섰다. 스스로 마을을 가꾸고 다듬어서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을을 만들자고 힘을 모았다. 자치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경산 역전마을 르네상스 도시재생사업’이다.

 

역전마을복합커뮤니티센터
역전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복합커뮤니티 센터에는 카페와 빨래방, 공동육아나눔터, 청소년 진로 상담 및 동아리실 등이 있다.

 

역전마을은 2017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고 2018년 선도지역 지정,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공영주차장 설치와 도로개설, 르네상스 광장, 복합커뮤니티센터 건립 등에 167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장기 프로젝트였다.

사업의 핵심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일상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물리적 정비와 생활편의 확충, 공동체 회복이라는 3대 전략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진행했다.

사업 추진의 첫 시작은 쪽방촌으로 불리던 코발트광산 하역 근로자 숙소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광산에서 채굴한 코발트는 경산역을 통해서 반출했다. 이때 코발트 하역에 종사했던 근로자들이 이용했던 3~6평 정도의 20여 동의 숙소가 있었다. 해방과 동시에 광산은 폐광됐으나 여전히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건물은 노후되고 생활환경은 열악했다.

쪽방촌 정비는 도시재생사업의 모티브가 된 사업이지만 토지매입과 건물 철거 과정에 어려움이 많아 2024년에야 완료됐다. 이 과정에 거주자를 설득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해 입주시키는데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성된 도시재생사업 협의체는 ‘경산역전마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으로 발전해 나갔다.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된 ‘역전마을 복합커뮤니티센터’는 지상 4층, 연면적 1361㎡ 규모로 건립됐다. 1층에는 역전카페와 빨래방이 있다. 2층에는 공동육아나눔터, 3층에는 청소년 진로상담 및 동아리실이 있다. 4층은 협동조합 사무실과 회의실로 운영된다. 역전카페와 빨래방은 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조합원들은 카페 운영을 위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빨래방은 무인 셀프 방식으로 운영되며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공동육아나눔터는 여성가족부와 신한은행 협력사업으로 육아에 필요한 기자재를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과 수유실, 프로그램실 등으로 구성됐다. 청소년 진로상담 및 동아리실에서는 청소년상담사나 청소년지도사 등 전문가가 상주하면서 진로상담과 동아리 활동은 물론 학교밖 청소년 상담센터로도 운영된다. 복합커뮤니티센터는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복합커뮤니티센터 바로 옆에는 30면의 주차장을 설치해 주민들의 주차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차장은 카페, 빨래방과 함께 주민 수익사업이다. 수익금은 취약계층 고용과 공동체 프로그램 등에 재투자된다. 지역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역전아트센터는 지역 작가들과 학생들의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청소년들의 이용이 많은 복합커뮤니티센터 바로 앞에 위치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의 문화예술 체험 기회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다.

철도관사를 리모델링한 역전마을 주민커뮤니티 센터에는 기해누리작은도서관이 있다.
철도관사를 리모델링한 역전마을 주민커뮤니티 센터에는 기해누리작은도서관이 있다.

 

예전 경산역 승무원들이 거주하던 철도관사를 리모델링 한 주민커뮤니티센터에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세대 통합형 공간인 기해누리 작은도서관이 자리잡았다. 이곳에서는 원예수업과 원어민 영어수업, 경제수업도 무료로 진행된다.

테라리움을 제작하고 전시와 체험판매까지 이루어지는 테라공방.
테라리움을 제작하고 전시와 체험판매까지 이루어지는 테라공방.

 

마당정원 꾸미기로 출발한 테라공방은 테라리움을 제작하는 공간으로 전시와 체험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창작경제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찻길 옆 도담공원에는 다양한 어린이 놀이시설과 파고라,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도담공원
기찻길 옆 도담공원에는 철도 레일을 설치하고 기차를 형상화한 놀이시설로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경산역과 인접해 있는 점을 감안해 공원에 철도레일을 설치하고 놀이시설은 기차를 형상화해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철도변을 따라 280m의 도로를 개설해 주민 통행이 한층 더 편해졌다. 역전마을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예전보다 밝아지고 사람 간의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대경선이 개통되면서 새로운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유동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역 주변의 상권이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오히려 대도시로 자본 유출이 심해져 상권이 더 위축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주민커뮤니티센터원예수업
주민커뮤니티센터에서 진행하는 원예수업.

 

마을 서쪽 자리잡은 성암산

높진 않지만 수많은 설화 품어

노승과 수행하던 호랑이

훗날 산신령 되었다 전해져

성암산 아래 경산현충공원

전사자 1천240명 위패 봉안

 

마을 서쪽에는 경산의 진산인 성암산(聖岩山)이 있다. 469m로 많이 높은 산은 아니지만 수많은 설화를 품고 있다. 성암산의 8부 능선에 성암굴 또는 범굴로 부르는 바위굴이 있다. 신라 때 노승이 어린 동자승을 데리고 동굴에서 수도를 하고 있던 중 비녀가 목에 걸린 호랑이가 나타나 살려달라는 시늉을 했다. 호랑이가 부녀자를 잡아먹다가 비녀가 목에 걸린 것이었다. 노승이 앞으로는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 비녀를 뽑아 주자 잘못을 뉘우친 호랑이가 바위굴에서 동자승과 함께 수행에 정진해 훗날 동자승은 성암대사가 되고 호랑이는 성암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 바위굴을 범굴로 불렀다.

성암산 이름에 대한 설화도 전해져 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들이 경산지역을 휩쓸고 있을 때 경산향교의 교복(향교의 노비) 강개명이 공자와 맹자, 안자, 증자, 자사 등 다섯 분의 위패를 범굴로 가져다 숨김으로써 화를 면하게 했다. 이때부터 범굴을 성스러운 굴(성암굴)로 부르고 산은 성암산으로 불렀다. 전쟁이 끝난 후 강개명은 다섯 분 성인의 위패를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면천되어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났다. 성암산 아래에 경산시현충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충혼탑과 6.25참전호국영웅기념탑, 월남참전기념탑, 무공수훈자공적비가 있다. 충혼탑 뒤에 있는 봉안실에는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전사자 1240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김주오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오희순 조합장 “삶의 향기 묻어나는 마을로 변신”

오희순 조합장(경산역전마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역전마을 르네상스 도시재생사업은 마을 전체를 바꾸어 나가고 있는 사업으로 생활의 편리성을 높이면서 주민 공동체문화를 활성화해 삶의 질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사업이다”면서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추진해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마을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오 조합장의 방침은 경산시와 함께 수립한 물리적 환경정비와 생활편의 확충, 공동체 회복으로 압축된 3대 전략에 잘 나타나 있다.

오 조합장은 경산지역에서 35년 동안 건축사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다. 건축분야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가다. 처음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당시에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참여하게 됐다. 사업 추진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건축사라는 직업과도 무관하지 않다면서 마을에서 주민협의체 대표로 추대해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이후 사회적 협동조합이 설립되면서 다시 조합장에 추대되어 역전마을 르네상스 도시재생사업을 이끌고 있다. 주민 역량강화를 위해 5년간 총 150시간 이상의 교육과 회의, 선진지견학을 실시했다. 복합커뮤니티센터 건축과 운영에 노력을 기울여 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센터가 되도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센터는 마을일을 협의하는 공간인 동시에 주민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생활편의시설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면서 수입사업으로 추진하는 카페와 빨래방, 주차장의 운영을 활성화시켜 조합의 자립화를 도모할 방침이라고 했다. 또한 역전아트센터와 테라공방, 학교밖 청소년상담센터 등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청소년은 물론 주민 모두가 사랑하는 시설로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은 경산지역 출신인 삼성현(三聖賢)의 정신과 업적을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삼성현은 한국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원효대사, 한국 유학의 종주로 추앙받고 이두(吏讀)를 집대성한 설총,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를 일컫는다.

공원 내 삼성현역사문화관은 2015년 개관한 전문박물관으로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체험학습실, 온가족실, 느린 우체국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2층에는 상설 전시공간인 원효실과 설총실, 일연실이 있다.

사이버박물관에서는 삼성현과 관련한 내용들을 전시한다. 원효실에서는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고 화쟁사상을 통하여 한국불교를 통합하고 대중불교를 꽃피우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삼성현역사문화관
삼성현역사문화관

 

설총실에서는 최치원과 함께 신라 3대 문장가로 이두문자를 집대성했고 삼국시대 유학의 선구자였던 설총의 삶을 소개한다. 아버지인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도 소개된다. 일연실에서는 고대 신화와 설화, 향가를 모은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의 생애를 볼 수 있다. 일연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관을 정립하고 고대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을 비롯해 경산시사직단, 경산동의한방촌, 유아숲체험원, 레일썰매장 등 다양한 체험·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년 삼성현백일장과 미술대회도 개최한다. 

매주 월요일에 휴관하고 관람료는 무료다.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공원로 59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