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
사도세자 향한 충절 어린 북비고택
독립운동가 이승희 생가 한주종택
아름다운 한주정사, 촬영지로 각광
과거급제 빌던 신라 고찰 감응사
영험한 약수 솟는 옥류정도 볼거리

한개마을드론
한개마을은 전국에서 8곳 뿐인 국가지정 민속마을 중 하나로 해발 331.8m의 영취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듯 뻗어내리고 마을 앞에는 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세를 갖고 있다. 영취산 자락을 따라 60여채의 집들이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채 자리잡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차로 조금만 달려가면 마치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기품있는 기와집과 소박한 초가, 흙과 돌을 섞어 만든 토석담을 따라 이어진 고샅길이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곳, 바로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이다.

한개마을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전국에서 8곳 뿐인 국가지정 민속마을 중 하나다. 국가지정 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역사적, 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은 ‘살아있는 문화재’로 안동 하회마을, 제주 성읍마을, 경주 양동마을, 고성 왕곡마을, 아산 외암마을, 영주 무섬마을, 영덕 괴시마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마을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개마을 표지석
한개마을 표지석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때 진주 목사를 지낸 이우 선생이 1450년 경 마을에 터를 잡은 이래 6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마을로 해발 331.8m의 영취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듯 뻗어내리고 마을 앞에는 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세를 갖고 있다. 한개는 ‘큰 개울’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한’은 크다, ‘개’는 개울 또는 나루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마을 앞으로 큰 개울이나 나루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영취산 자락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60여채의 집들 대부분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건립되었으며 대부분의 집들이 지붕, 대청마루, 부엌, 툇마루 등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중 교리댁, 한주종택, 북비고택, 진사댁 등 10곳이 경북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개마을은 17세기 월봉 이정현 선생 등 대소과에 모두 33명의 합격자를 낸 선비의 고장으로, 이원조·이진상 선생 같은 이름난 유학자와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을 배출한 마을로도 이름높다.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현재는 35가구 4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토석담-다시
토석담을 따라 이어진 고샅길이 옛 모습 그대로 잘 간직되어 있다.

 

마을을 찾으면 발길 닿는대로 무작정 둘러봐도 좋지만 안내소에서 지도 한장 챙겨들고 차근차근 둘러보는게 좋다. 계획없이 다니다보면 놓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마을 해설사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한복을 빌려 입고 길게 뻗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이 품고 있는 세월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응와종택은 공조판서를 지낸 이원조 선생이 살던 집으로 북비고택이라고도 불린다.
응와종택은 공조판서를 지낸 이원조 선생이 살던 집으로 북비고택이라고도 불린다.

 

대감댁이라는 큰 표지석과 소슬대문을 갖춘 응와종택은 공조판서를 지낸 이원조 선생이 살던 집으로 북비고택이라고도 불린다.

 

북비고택
이석문 선생은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 사도세자에 대한 충절을 간직하며 살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북비(北扉)라는 현판이 붙은 작은 문이 보인다. 사도세자의 호위 무관 이석문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와 세손의 만남을 도운 죄로 파직을 당해 낙향한 선생은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 사도세자를 기리며 지냈다고 한다.

 

한주정사는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한주정사는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한개마을의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한주종택은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이승희 선생이 아버지(이진상)의 호를 따서 지은 한주정사는 수양버들과 기품있는 소나무,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다. 특히 지난 2021년 방송된 KBS 2TV 인기드라마 ‘연모’에서 이휘(박은빈)와 정지운(로운)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폐전각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도 한주정사를 비롯한 마을을 배경으로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다.

 

한개마을 뒤쪽으로 산길을 600m정도 오르면 감응사에 도착한다.
한개마을 뒤쪽으로 산길을 600m정도 오르면 감응사에 도착한다.

 

한개마을에는 숨은 볼거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마을 뒤편에 있는 감응사다. 한주정사를 나와 산길을 따라 600m 정도 오르면 감응사에 도착한다. 감응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년) 보조국사 체칭에 의해 창건됐으며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옥류정 샘물은 약수로 이름 높다. 앞을 보지 못한채 태어난 애장왕의 왕자가 꿈에 나타난 신령이 알려준 대로 이곳 약수에서 씻고 그 물을 마신 뒤 눈이 나아 감사의 마음으로 세운 절이 감응사다.

 

감응사 가는 길에는 누군가의 소원이 차곡 차곡 쌓인 돌탑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감응사 가는 길에는 누군가의 소원이 차곡 차곡 쌓인 돌탑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예로부터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이들이 한개마을을 지나면서 이곳 감응사에 급제의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감응(感應)은 믿거나 비는 정성이 신령에 통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시험을 앞둔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이 많이 찾는다. 감응사 가는 길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차곡 차곡 쌓인 돌탑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마을전체 경관을 위해 방치되어있던 집들을 복원하고 있다.
마을전체 경관을 위해 방치되어있던 집들을 복원하고 있다.

 

주민 힘모아 옛 모습 지키기 온힘

방치된 집 복원해 마을 경관 정비

곳곳에 꽃 심고 여행자 쉼터 마련

체류형 관광지 목표 저잣거리 조성

마을 전통가옥 활용 숙박시설 구축

감응사 템플스테이 등 추진 계획

 

한개마을은 한개민속마을보존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똘똘 뭉쳐 최대한 상업화를 피하고 옛 모습을 그대로 지켜나가고 있다. 마을 전체 경관을 위해서 주민들을 설득해 방치되어있던 집들도 복원하고 마을 곳곳에 작약과 국화 등을 심어 가꾼다. 더운 여름에 풀 뽑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을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마을회관과 월봉정 등을 개방하고 여행자 쉼터도 조성해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극와고택 사랑채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고 뒤쪽의 안채는 기와지붕이다.
극와고택 사랑채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고 뒤쪽의 안채는 기와지붕이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를 가면 지나친 상업화로 인상을 찌푸리게 될 때도 있는데 이곳에는 카페나 식당 하나 없다. 상업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마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해 보기 드문 청정지역이라며 반기는 이들도 있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월곡댁 사랑채.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월곡댁 사랑채.

 

최근에는 한개마을을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체류형 관광지로 자리잡게 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저잣거리 조성사업도 그 중 하나다. 먹고 마실 수 있는 저잣거리와 홍보관 조성, 주차공간 마련 등 전체적인 틀은 잡아놓았지만 복잡한 절차 등으로 아직은 갈길이 멀다.

 

한개마을의 아름다운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담이다. 
한개마을의 아름다운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담이다. 

 

전통가옥을 활용한 숙박시설도 준비중이다. 지금도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집이 있지만 군에서 마을집 3채를 매입해 숙박과 체험이 가능하도록 수리중이다. 월봉정에서는 은퇴하고 마을로 귀촌한 주민이 한문과 예절수업을 진행한다. 이밖에도 고택과 마을회관을 활용한 음악회와 전통 혼례체험, 약과만들기, 임산부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감응사 역시 마을과 연계한 템플스테이를 준비중이다.

 

한개마을과 영취산 주변으로 '비움'과 '채움'을 테마로 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한개마을과 영취산 주변으로 ‘비움’과 ‘채움’을 테마로 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한개마을과 영취산 주변으로 ‘비움’과 ‘채움’을 테마로 한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다. 총 6.3km, 8가지 코스의 ‘비채길’이다. ‘비움의 길’은 1구간 노여움비우길, 2구간 슬픔비우길, 3구간 욕심비우길, 4구간 미움비우길, ‘채움의 길’은 5구간 기쁨채우길, 6구간 즐거움채우길, 7구간 사랑채우길, ‘과거길’은 8구간 선비의 길이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걸으면 더 좋다. 마을 탐방을 끝내고 나면 안내소 앞 우체통에 엽서 한장 넣고 오는 것도 잊지 말자. 1년 후에 도착하는 느린우체통이다.

한개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삶의 터전이다. 마을을 찾는 이들은 공개된 집 외에는 함부로 대문을 열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대구 도심에서 차로 4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한개마을은 가까우면서도 전혀 다른 시간과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치에 자부심을 안고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며 그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다.

추홍식·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이봉근 이장
이봉근 이장

 

이봉근 이장 “문화유산 넘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이렇게 한 성씨가 오랫동안 한 곳에서 전통을 지키며 살고있는 마을은 드물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봉근 이장은 학업과 군복무를 위해 잠시 마을을 떠난 것을 제외하고는 쭈욱 마을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해 사업을 하며 바쁜 가운데도 2년째 이장직을 맡아 마을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일한다.

성산이씨 집성촌인 한개마을은 마을보존회를 만들어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이 이장은 한개마을보존회 부회장도 함께 맡고있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고, 최대한 상업화를 하지 않고 옛 모습을 지키자고 주민들이 마음을 모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을 경관을 위해 주민을 설득해 비어있는 집도 다시 복원하고 마을 곳곳에 작약과 국화 등을 심고 가꾼다. 수익이 나지 않지만 기꺼이 불편과 고생을 감수한다. 그렇지만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도 있다. 한개마을이 선조들의 삶이 그대로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이 오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당부한다. 가끔씩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허가받지 않고 드론을 띄워 집 내부를 촬영하기도 해 집 안에서도 편히 쉬지도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개마을이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마을 기업을 통해 숙박이나 체험, 해설 등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저잣거리를 조성해 마을은 찾는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민속마을이 고리타분한 공간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도 한다. 도시 청년들이 일정기간 고택에서 머물며 전통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하거나 마을에 청년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고민중이다.

최근에는 대구대 학생 100여명이 마을을 찾아 숙박체험을 하며 마을 환경 개선에 힘을 보탰다. “한개마을에 오시면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지친 분들이 이곳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찾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세종대왕자태실
세종대왕자태실

◇세종대왕자태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이다. 왕실에서는 후손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전국의 명당에 태 항아리를 안치시켰는데 그중 성주의 세종대왕자태실은 규모나 가치면에서 으뜸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세종대왕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9왕자 중 큰 아들 문종을 제외한 18왕자의 태실과 원손인 단종태실 등 19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문화재적 가치도 높다. 주차장에서 태실까지 솔숲을 따라 올라는 길도 아름답다.

300여미터 떨어진 생명문화공원과 태실문화관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태실문화관에서는 장태의 역사, 조선 왕실의 출산의례, 태실의 조성과정과 구조 등을 볼 수 있다.

가볼만한곳성밖숲
성밖숲

◇성밖숲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성밖숲은 수령 300~500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 55그루가 모여있는 군락지로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사계절 내내 다른 매력으로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8월이면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왕버들의 신비로운 모습과 함께 나무 그늘 아래에 핀 보랏빛 맥문동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201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고, 2018·2019년 대한민국 10대 생태테마관광지로도 선정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