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진보면 진안4리] 간고등어 지고 수백리…보부상 애환 서린 객주의 고장
영덕서 고등어 등 해산물 싣고
진보에 이르면 소금 쳐 염장
‘피쉬로드’따라 내륙지방 운반
이 과정서 간 배고 숙성되어
간간한 맛의 간고등어 만들어져

조선시대 보부상이나 장꾼들의 삶은 고단했다. 등짐을 지거나 수레를 끌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높은 고갯길을 넘었다. 이른 새벽 영덕을 출발한 장꾼들은 100리를 걸어 해질 무렵 청송 진보에 도착하면 하룻밤을 묵는다. 무겁게 지거나 끌고 온 짐은 대부분 동해의 해산물이었다. 그중에는 고등어가 빠지지 않았다. 영덕에서 청송을 거쳐 안동이나 영주 등 내륙지방으로 통하는 길은 피쉬로드(Fish Road)로 불릴 만큼 많은 생선들이 공급된 길이었다.
조선 중종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경상도 영해도호부에 고등어가 난다는 기록이 있고, 허균의 ‘도문대작’에도 고등어는 경상도와 강원도의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1900년대 일본인이 만든 한국수산지에도 고등어는 조선인이 좋아하는 것으로 판로가 매우 넓고 배를 갈라 다량의 소금을 뿌려 판매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기록을 볼 때 고등어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좋아한 생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해의 생선이 진보에 이르면 소금을 친다.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염장을 하는 것이다. 염장을 한 고등어는 다음날 안동과 영주 등 내륙지방으로 운반된다. 이 과정에서 간이 배고 숙성되어 간간한 맛의 간고등어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안동지방의 특산물로 자리잡은 간고등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진보 사람들은 간고등어의 출발지는 진보라고 한다.

보부상이나 장꾼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김주영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만나면서 소설 ‘객주’가 탄생했다. 소설 ‘객주’를 테마로 문을 연 객주문학관이 청송군 진보면 진안4리에 있다. 새밭골과 옹기도막, 본마을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진안4리에는 청송전통옹기와 오누이저수지 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다.

작가 김주영의 소설 ‘객주’
이들의 고단한 삶 생생히 그려
객주문학관 열고 기념공간 마련
100년 역사의 ‘청송전통옹기’
이무남 옹기장의 셋째 아들
4대째 전통옹기 명맥 이어와
객주문학관은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 ‘객주’를 테마로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폐교된 진보 제일고등학교를 증·개축해서 2014년 개관했다. 문학관은 김주영 작가의 문학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영상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시설, 작가의 집필실인 여송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도서관은 작가가 소장했던 자료와 국내에서 간행된 소설책들을 전시한 소설 전문 도서관이다. 2층과 3층에 마련된 전시실에서는 소설 객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보부상들의 활동상이나 조선 후기의 상업사를 엿볼 수 있는 조형물들이 재현되어 있다. 지게와 저울 등 보부상들의 도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소설 객주의 육필 원고와 취재 때 사용한 카메라, 수십 개의 철필 등 작가의 소장품도 볼 수 있다.
스페이스 객주에는 이인, 최석운, 김선두 등 중견 화가들의 작품과 작가의 소설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상설 전시된다. 영상교육실에서는 소설 ‘객주’를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창작스튜디오는 문화예술에 도전하는 신진 작가와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다. 예술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문학, 미술, 사진 강좌도 열린다.
바로 옆에 있는 청송민속관에서는 농업이 주산업인 청송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주민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종류의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을 볼 수 있다.

문학관 바로 옆에 청송전통옹기가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제 25-1호) 이무남 청송 옹기장의 셋째 아들인 이호섭 대표가 4대째 전통 옹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가업인 옹기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옹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이다. 2021년 작고한 고(故) 이무남 옹기장은 상주에서 옹기를 만들다가 좋은 흙을 찾아 청송으로 터전을 옮겼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청송에서 오색점토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옹기도막(옹기를 만드는 작업장)을 놀이터삼아 흙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자연스럽게 옹기를 배웠다.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옹기를 시작해 이제는 옹기 경력이 30년을 넘긴 전문가다.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옹기 수요가 줄어들어 가고 있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만든다.

수작업으로 성형을 하고 건조한 옹기는 잿물을 발라 가마에서 굽는다. 1200도까지 가마 온도를 올려서 4시간이 지나면 잿물이 녹아 반들반들해지고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 작은 가마는 6일 정도 걸리지만 큰 가마는 15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요즘은 큰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 작은 옹기를 주로 굽는다. 한국의 전통 옹기가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본 수출도 한다.

31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2개의 저수지가 붙어 있다. 오누이상저수지와 오누이하저수지다. 예전에 가뭄이 심하게 들자 비봉산 자락에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계속 둑이 터졌다. 이때 오누이가 둑이 터지는 원인을 찾아내고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더이상 둑이 터지지 않았다. 착한 오누이가 만들었다고 해서 오누이못으로 불린다. 나중에 그들이 죽고 나서 저수지 옆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저수지 물이 아무리 불어도 무덤은 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한다.

진보4리는 1906년 이현규 의병대장이 이끄는 진성의진(眞城義陣)이 일본군 헌병 오장 무토부대를 격파한 전승지이기도 하다. 영양군 유생 이현규는 을사늑약에 격분해 의병을 모집해 진성의진을 편성했다. 진보면 장수령에서 강원·경상지역 의병 소탕작전을 벌이다가 퇴각하는 일본군을 진성의진이 격파하고 파천면 어천리까지 추격해 헌병 오장 무토와 경상북도 지사 마쓰오 등 1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를 기념하는 항일의병 오누이지 전적기념비와 내산 이현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마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밤이 아름다운 진보’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진보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야간 조명시설을 설치해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했다. 어지럽게 엉킨 전선과 전주들을 정비하는 전선 지중화사업도 추진 중이다.
자율방재단을 조직해 안전한 마을만들기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방재단원들은 마을 곳곳을 순찰하면서 축대나 담장 등 위험시설물을 사전 점검해 재해 발생을 예방하고 재난 발생시에는 응급복구에도 참여한다. 마을회관에서 매주 2회 전문강사를 초빙해 요리교실과 노래교실 등 농촌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주민들의 건강증진과 건전한 여가생활을 위한 파크골프장 설치공사도 한창 추진 중이다.
윤성균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신재철 이장 “전통이 살아있는 산골마을, 관광명소 도약”
“우리 마을은 산골지역이지만 들이 넓고 상업지역과 농촌지역이 융합된 지역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입니다. 객주문학관과 청송전통옹기가 있고 공사중인 파크골프장이 연말에 완공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고장이 될 것입니다.”라고 신재철 진안4리 이장은 말한다.
신 이장은 22년째 토목건설업을 운영한 토목건설 분야 전문가다. 동시에 자율방재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는 봉사자이기도 하다. 단원들과 함께 마을 곳곳을 순찰하면서 축대나 담장 등 위험 요인이 있는지를 사전 점검해 예방조치를 취하고 재난 발생시에는 먼저 달려가 응급복구작업에 참여한다. 토목건설 전문가이기 때문에 재난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고 대응도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월 산불 발생 때는 영농회장 등 주민들과 함께 밤새도록 마을 주변에 물을 뿌리는 방재 활동으로 마을이 산불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마을 이장직을 맡은 신 이장은 주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에 대하여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청송군에서 농어촌버스 무료화 추진에 따라 이용객이 증가한 새밭골에 버스승강장을 설치해 어르신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종전에는 승강장이 없어 어르신들이 비바람을 맞으면서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제는 승강장 안에서 편하게 기다릴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그동안 영농폐기물을 모을 장소가 없어 수거한 폐기물을 공터에 쌓아두던 것을 집하장을 설치해 그곳에 모음으로써 마을이 한층 깨끗해졌다.
앞으로는 객주문학관과 청송전통옹기, 오누이저수지, 진보전통시장을 하나로 연결하고 융합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연말에 완공되는 파크 골프장에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포토존을 설치해 이용객들이 한 장의 인생샷을 남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체육시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홍상철 수필가

◇군립청송야송미술관…이원좌 화백 작품 360점 ‘한눈에’
청송야송미술관은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에 있는 폐교된 신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군립미술관이다. 청송 출신 야송 이원좌 화백이 평생 한길을 걸으면서 이루어 놓은 작품 360여 점을 전시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한다. 대전시실에서는 이 화백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표작들을 주기적으로 교체전시한다. 주요 작품으로 ‘주왕운수도’와 ‘야송산수관’, ‘주왕산 제3폭포’ 등이 있다. 중소 전시실은 미술관에서 주관하는 기획전이나 초대전이 열린다.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지역 예술인들에게 제공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 청량대운도전시관이 있다. 이 화백의 대표작인 ‘청량대운도’를 전시하는 단독 전시관이다. 하나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하여 건립된 전시관은 유례를 찾아보기 쉽지않다. ‘청량대운도’는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실경 산수화로 가로 4,560cm, 세로 650cm에 이르는 대작이다. 서울 천도 600주년(1994년)을 기념해 1992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약 180일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대형 작품으로 평가됐지만, 작품 크기가 상상을 초월해 어느 곳에서도 전시할 수 없어 20년이 넘게 수장고에 보관만 해야 했던 작품이다. 2013년 이 화백의 고향인 청송군에 위치한 야송미술관에 ‘청량대운도’만을 위한 전시관이 세워져 누구든지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제작에 매진하면서 건강이 악화되는 등 숱한 곡절 끝에 탄생한 필생의 역작이다. 이 화백은 “그림은 천년을 관통하여 인류를 평화롭게 하는 침묵의 언어, 긴긴 동지섣달 밤잠을 설치며 청량대운도를 구상했다.”고 화기에서 밝혔다. 관람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