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와룡면 희희락락 산매골] 호미 대신 붓·악기…평범한 농촌마을, 예술꽃 피우다
시인 이위발·화가 이혁발 씨
마을로 이사 오며 변화 시작
선 하나 긋기도 어려웠던 주민들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작곡도
길을 걷다가,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눈에 띄는 전봇대는 대부분 회색이라 무심히 지나치기 마련이다. 안동시청에서 도산서원 방향으로 35번 국도를 10분 남짓 달리다 만나는 안동시 와룡면 이하1리의 전봇대는 알록달록 예쁜 그림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보물찾기 하듯 전봇대그림을 하나하나 찾아보니 전봇대 13개, 배전용 전주 11개에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그림이 있다. 이 마을의 전봇대는 각각 하나의 캔버스이고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니 마을이 하나의 갤러리다. 전봇대 그림을 그린 이는 모두 마을 주민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터널 아래 양쪽 축대에도 그림이 있다. 전봇대 그림을 찾아 걷다보니 길 양옆으로 예쁜 꽃들과 집집마다 잘 꾸며진 정원들도 발길을 잡는다.
나지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이하1리는 산매골과 솔골, 역전 등의 자연부락이 포함되어 있다. 산매골은 예전에 나무를 베기 위한 산막이 세 개 있었다고 해서 삼막골이라 불리다가 산막골이 되었다가 산매골로 굳어졌다. 솔골은 골이 길고 주위의 산에 우람한 노송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전은 1930년대에 중앙선이 부설되고 1942년 이하역이 생기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하역은 2007년이후 여객업무가 중단된 후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되었다가 중앙선 복선화로 2020년 폐역이 되었다. 마을에는 90여가구 1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법정동은 이하리지만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희희락락 산매골’로 부른다. 희희락락 산매골은 예술가 마을이다. 특별할 것 없이 조용하던 농촌마을의 변신은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안동시에서 살던 이위발 시인이 아늑한 동네 풍광에 반해 마을로 이사를 오고 뒤를 이어 화가인 동생 이혁발 씨가 마을 주민이 되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지금은 마을에 시인이 2명, 천연염색공예가 1명, 화가 3명, 음악가 1명이 살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희희락락 산매골’은 주민 모두가 ‘1인 1예술’을 하는 예술가 마을로 변신 중이다.
안동 예비문화도시 프로젝트 추진
‘1인 1예술’ 마을로 변신 시동
시인 10명·화가 13명 등 탄생
모두 숨겨진 끼·재능 꽃피워
지난 2022년 안동시가 예비문화도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문화도시 안동, 깊은 안동 프로젝트-마을문화 난장’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주민들은 ‘만들자! 예술마을, 놀자! 1주민 1예술, 즐기자! 예술잔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예술가마을로의 변신을 꾀한다. 먼저 ‘시민제안 실험실, 생활 실험 百서’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14명의 주민이 추상화 그리기를 시작했다. 마을주민인 이혁발 화가가 수업을 진행했다. 학창시절 이후 수십년간 그림과는 담을 쌓았던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는 붓을 들고 선하나 긋는 것도 어려워했다. 이씨는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보는 눈’ 키우기부터 시작했다.
다음은 ‘자유롭게 그려보기’를 통해 그리는 즐거움을 깨닫도록 이끌었다. 전봇대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부터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씨도 놀랄만한 작품들도 많이 나왔다. 김수한씨는 볏짚을 묶어 크기가 다른 붓을 만들어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마을주민들의 예술적인 감각과 안목도 점점 높아졌다. 처음에는 “이런걸 왜 해야하나?”며 어려워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마을 곳곳에 그려진 자신들의 작품을 보며 뿌듯해한다.
지난해부터는 마을주민 모두가 기쁘고 즐겁게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희희락락 산매골’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전체적인 기획은 이혁발 씨가 맡았다.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을 주민들이 자유롭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작곡을 한다. 산매골 주민들에게 예술은 어렵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마을 주민 중 대충 꼽아봐도 시인이 10명, 화가가 13명, 작곡가 3명, 작사가 2명, 가수 3명, 사진가 11명, 염색가 12명, 색소포니스트 2명, 조각가 1명, 행위예술가가 1명이다. 시인이자 작곡가, 화가이자 행위예술가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도 있다.
주민들의 평균연령이 60대 후반을 넘어서지만 예술을 하는데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77세의 전봇대 화가, 83세의 염색공예가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마을 예술가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갈 것이다. 2022년부터 열고 있는 마을잔치에는 국수, 두부 등 먹거리를 나누며 마을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전시하고 시낭송, 색소폰 연주, 그리고 주민들이 작사 작곡한 마을노래도 만들어 부른다.
“날이 밝아오면/ 교회에서 들려오는 풍금소리에/눈 비비고 문밖나서면/ 우아한 백로가 문안올리고/ 마을전설 들려주는 바람에/ 어머니 품속같은 산매골” 마을주민인 이위발 시인의 시에 김순한 씨가 곡을 붙였다. 마을잔치때는 안동시를 비롯, 인근 마을에서도 찾아와 북적인다.
대부분 농산어촌은 도시에 비해 예술기반이 약하고 체험기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마을주도의 문화활동을 통해 산매골 주민들은 모두가 숨겨진 끼를 발견하고 예술가가 되었다. 함께 모여 작업하다보니 마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이웃과의 정도 더 돈독해졌다.
작은 농촌마을이지만 예쁜 책방도 있고 염색공방도 있고 화훼 농원도 있어 마을을 찾는 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위발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모메꽃 책방은 2018년 문을 열었다. 멀리서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카페도 겸하고 있다.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인 시인은 책방 이름도 이육사 시인의 시 ‘초가’에서 따왔다. 모메꽃은 나팔꽃을 닮은 메꽃의 안동사투리다. 책방 건물 벽에는 동생인 화가 이혁발씨의 작품 ‘육감도’가 그려져있다.
창밖으로는 펼쳐지는 초록풍경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책방 옆에는 염색공예가인 시인의 아내가 운영하는 천연염색공방 ‘꽃바라기 염색’이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전시와 체험, 판매도 함께 한다. 햇살 좋은 날에는 바람에 날리는 염색 작품들도 멋스럽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산매골녹색체험마을’에서 하루 묵으며 마을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다. 황토방 1개를 포함한 방 3개, 거실, 부엌까지 갖춘 체험관은 10명에서 30명까지 머물 수 있다. 숙박비도 하루 20만원(10명 기준)으로 저렴하다. 미리 예약하면 두부와 인절미만들기, 고추·고구마 등 수확 체험도 할 수 있다. 체험마을 앞에는 재활용자재를 활용해 만든 90m 길이의 미니짚라인도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주말은 몇달치 예약이 이미 완료됐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복주머니길’이라 이름붙인 마을 산책로도 걸어보면 좋다. 체험마을에서 무궁화 길을 따라 모메꽃책방을 거쳐 산매저수지를 돌아 다시 체험마을로 올 수 있다. 총 산책거리는 2km 남짓 30분쯤 걸린다. 길이 잘 닦여있어 걷기에 좋다. 밀림처럼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지현기·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김순한 대표·이혁발 기획자 “매년 주민들 작품집 꾸준히 낼 것”
희희락락산매골은 안동시의 지원을 받아 시작됐지만 모든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서 만들어간다. 그 중심에 김순한 대표와 기획을 맡고 있는 이혁발 화가가 있다. 물론 마을이장, 노인회장 등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도 있다.
이하1리에서 태어나 자란 김순한 대표는 안동시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 2019년 퇴직 후 귀향을 했다. “힘든 거 없어요. 기획자가 다했어요” 평범하던 마을이 예술가 마을로 변신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겠냐만은 그는 공을 기획자인 이혁발 씨에게 돌린다. 이혁발 씨는 사실 문화계에서는 꽤 유명한 화가이자 행위예술가이다. 그의 주도아래 마을은 차근차근 문화적 터전을 다져나가고 있다. “예술마을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예술가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매년 주민들의 시, 그림, 노래, 사진 등을 담은 작품집은 꾸준히 내고 싶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예술활동이 이어져가고 주민들의 삶이 더 풍요로와지기를 바랍니다”
전봇대 그림의 특성상 작품이 산발적으로 있어 앞으로는 마을 주택 벽이나 마당, 길 가에 다양한 작품들을 더 채워 마을을 야외 미술관처럼 조성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산매골녹색체험마을도 좀 더 활성화 할 방안을 모색중이다. 마을을 찾는 이들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올해는 마을앞 지방도에 인도도 따로 만들 예정이다. 예술가마을인만큼 인도도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산책로로 추천하는 복주머니길도 초행길에도 헷갈리지 않게 이정표도 세워서 걷기 좋은 길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예술가 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봇대 그림도 올해는 마을 밖까지 확대한다. 이름하여 ‘산매골~샘골~경류정 전봇대 화랑’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의 지원으로 8월말부터 연말까지 전봇대 250개에 그림을 그린다. 산매골(이하리)에서는 30명의 마을화가들이 참여하고, 옆 마을인 이상리에서 20명, 주하리에서 15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주민 화가가 중심이 되고 지역화가들도 합류한다.
“마을에 오면 다른 곳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안동 진성이씨 종택과 뚝향나무…조선시대 사대부가 고택
안동시 와룡면에 자리잡고 있는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퇴계 이황의 큰집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고택이다. 본채 왼쪽으로 퇴계 선생이 이름지었다는 아름다운 별당 ‘경류정’이 자리잡고 있다.
경류정 앞에 있는 주하리 뚝향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세종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이 평안도 정주판관으로 있을때 가져와 심은 것이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곧게 자라지 않고 전체가 옆으로 퍼지면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수령이 600년이 넘고 높이가 3,3m, 둘레가 2.3m, 옆으로 넓게 퍼진 가지의 길이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6m에 달한다.
◇선성수상길…물 위 그림처럼 아름다운 길
안동 예끼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선성수상길은 이름그대로 물위에 그림처럼 아름답게 놓인 길이다. 선성현 문화단지와 안동 호반자연휴양림을 연결하는 이 길은 1km길이에 폭이 2.75m의 데크로 조성되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부교((浮橋)로 안동호의 수위변동에 상관없이 물위를 걸을 수 있다.
선성수상길 중간에는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예안국민학교 위치에 풍금과 책걸상, 그리고 마을 흑백사진이 전시되어있다. 안동 선비순례길 1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며 선성현 관아를 재현한 체험관광단지인 선성현문화단지와 벽화 등 볼거리가 많은 예끼마을까지 함께 돌아보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