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샘·감나무 많아 ‘감천’
오원노, 400년 전 마을 조성
아들 시준은 조선 최고 명궁
임금 선조가 손오병서 하사
둘째도 임진왜란 때 큰 공적
100가구 중 낙안 오씨 70%

 

낙안 오씨 집성촌인 영양 감천마을 앞 반변천 맞은편 절벽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나무숲이 있다. 마을을 지나는 외씨버선길 5길은 마을출신 항일 서정시인 오일도의 이름을 따 ‘오일도의 길’로 부른다.

 

 

“내 연인이여! 좀 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애수의 가을, 가을도 이미 깊었나니./ 검은 밤 무너진 옛 성 너머로/ 우수수 북성 바람이 우리를 덮어 온다./ 나비 날개처럼 양상한 네 적삼/ 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매 무서워라./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조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 한여름 영화를 자랑하는 나뭇잎도/ 어느덧 낙엽이 되어 저-성뚝 밑에 홀쩍거린다. / 잎사귀 같은 우리 인생 한번 바람이 흩어 가면/ 어느 강산 또 언제 만나리오”(오일도 시인의 ‘내 여인이여, 좀 더 가까이 오렴’ 일부)

영양 감천마을 앞 반변천 천길 절벽에서 사철 푸른 측백나무 숲을 보고 지은 오일도 시인의 시(詩)다. 감천마을은 측백나무 만큼 진한 문학의 향기를 품은 마을이다. 원래 이름은 ‘지곡’이었으나 400년 전 낙안 오씨들이 정착하면서 ‘동곡’으로 불렸다. 조선 정조 때 주자의 무이구곡과 닮았다고 해 ‘운곡’으로도 불리다가 마을 뒤 산기슭에서 단맛이 나는 샘이 있고 감나무가 많다고 하여 ‘감천’으로 불린다.

 

낙안 오씨 종택 감호헌

감천마을은 낙안 오씨 집성촌이다. 400년 전 오원노와 아들 오시준이 영해에서 이주해 와 마을을 열었다. 지금도 100가구에 150여 명의 주민 중 낙안 오씨 집안이 70%를 넘는다.

오시준은 1562년에 무과에 장원 급제해 사헌부 감찰을 제수받고 창주진관구 병마첨절도사를 제수받은 무인이다. 칠원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오시준 현감 애민선정 송덕비’를 세워 선정을 기념했다. 조선 최고의 명궁으로 불릴 만큼 무예가 뛰어나 선조 임금이 손오병서를 하사하고 훈련원에 원사비(遠射碑)를 세웠다. 적십자병원을 건립하면서 원사비를 이전했으나 기록을 남기지 않아 현재는 원사비를 찾을 수 없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한다.

둘째 아들 오수눌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학봉 김성일의 휘하에서 왜적과 싸워 여러 번 공을 세웠다. 또한 영해부사 한효순의 창의에 가담해 영덕으로 도주하는 왜병 수십 명의 목을 벴다. 위험을 무릅쓰고 의주에 몽진해있는 선조 임금에게 남쪽의 승전 소식을 최초로 전했고, 행주산성에서 권율장군과 함께 왜병을 물리쳤다. 정유재란에는 정재룡 장군과 함께 용담천월변에서 왜병 수만 명을 참살했다.

마을 앞 심천지 옆에 있는 감호헌이 그의 호를 딴 낙안오씨 종택이다. 국헌종택으로도 불린다. 심천지 옆에 수백년이 넘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줄지어 있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해 은은한 연향을 풍긴다. 1987년부터 6년 동안 방송됐던 KBS 2TV의 ‘TV손자병법’에서 만년과장 이장수 역을 맡았던 배우 오현경이 이 마을 출신이다.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직장생활에서 중간관리자의 애환을 잘 연기했다는 평을 듣는다.

 

마을 입구에 문학테마공원 조성
낭만주의 시인 오일도詩공원도
기와로 지은 3백평 생가도 있어
입암면 선바위~영양전통시장
11.2㎞ 구간 ‘오일도의 길’ 명명
천 맞은편 천연기념물 측백수림

 

마을출신 항일 서정시인 오일도 시비.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영양문학테마공원과 오일도시공원이다. 영양문학테마공원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 서정시인 오일도 등 영양 출신 문학가들의 소개와 작품들을 상징하는 조형벽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은 문자의 장, 시간의 장, 문학의 장, 영감의 장, 예술의 장, 명상의 장, 생동의 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옆에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항일 서정시인 ‘오일도’(1901~1946) 시인을 기념하는 오일도시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오 시인의 대표작들을 새긴 시비들이 세워져 있다. 영양군에서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최하는 ‘오일도 전국 백일장’이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초등부와 중등부, 고등부, 대학·일반부로 나누어 진행하는 백일장에는 글쓰기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오일도의 본명은 ‘희병’이지만 아명인 ‘일도’를 필명으로 사용했다. 일본 릿교대학 철학부를 졸업하고 귀국 후 근화학교에서 무보수 교사로 근무하면서 시 전문지인 시원(詩苑)을 창간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통제가 강화되자 고향인 감천마을로 돌아와 ‘과정기’ 등의 수필을 쓰면서 칩거했다. 광복 후 상경해 ‘시원’의 복간을 위해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변의 애가’,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등 낭만주의을 기조로 한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지성으로 감정을 절제하기보다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했다는 평을 듣는다.

 

오일도 시인 생가.

 

마을 한 복판에 오시인의 생가가 있다. 3백여 평의 대지에 44칸의 기와집으로 주춧돌과 기둥이 웅장한 느낌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으로 대문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사랑채, 왼쪽에는 글방이 있다. 이 글방이 오시인이 공부했던 방이다.

사랑채에는 ‘국운헌’이란 당호와 ‘한묵청록’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 때 김성일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선조인 ‘오수눌’의 호(국헌)에 구름 ‘운’자를 더해 국운헌으로 지었다고 한다. 국화와 같은 절개와 구름처럼 높이 떠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문 옆에 일년내내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영양 감천리 측백나무숲.

 

감천마을에는 외씨버선길 5길이 지나간다. 입암면 선바위관광지에서 영양전통시장까지 이어지는 11.2km 구간으로 ‘오일도의 길’로 명명되어 있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 군이 모여 만든 총 길이 246km의 길로 전체 13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4색 13길이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마을 앞 반변천 맞은편 절벽에 영양 감천리 측백나무숲(측백수림)이 있다. 하늘에 맞닿을 것 같은 절벽에 사철 푸른 빛을 띠고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절벽 밑에는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반변천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 114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측백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제1호인 대구 도동측백수림을 비롯해 모두 5개소다. 모두 높은 절벽에 군락지를 형성하고 자생한다.

예전에는 절벽에서 자라는 측백나무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특히 부인병에 좋다고 알려졌었다. 감천 측백나무숲에도 멀리서 측백나무를 약재로 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는 마을의 청년들이 반변천을 헤엄쳐 건너고 높은 절벽을 기어올라 측백나무를 잘라서 왔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약재로 구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보호하기 때문에 무단으로 채취할 수도 없다. 감천 측백나무숲의 진한 향기가 감천 마을의 문학의 향기와 함께 영원히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춘기자·홍상철수필가>

 

 

[우리 마을은]

 

오성택 이장

오성택 이장…”정갈함 유지 노력…농산물 직판장 설치 추진”

 

“마을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면 ‘마을이 참 깨끗하고 정갈하다.’입니다. 서정시인인 오일도 시인을 닮았다고나 할까요”라고 오성택(66) 이장은 말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오일도시공원의 깨끗이 정비된 잔디와 어우러진 시비들을 시작으로 골목길과 전통기와로 단장된 담장을 보면 누구나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황토빛 골목길에는 쓰레기는 물론 풀 한 포기도 없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다듬고 가꾼 결과라고 오 이장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오 이장은 이곳 감천마을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토박이 농사꾼이다. 사과와 영양 특산물인 고추를 재배한다. 7년째 마을 이장직을 맡아서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30대 중반이던 30년 전에도 5년 동안 이장직을 맡아서 했으니 이번이 두 번째로 맡은 이장인 것이다. 두 번에 걸쳐 이장직을 수행하면서 무엇보다도 마을 환경 정비에 힘을 쏟았다. 마을에 조성된 영양문학테마공원과 오일도시공원을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 주자는 생각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 관광객 편의를 위한 널찍한 주차장과 화장실도 같은 생각에서 설치했다. 5년 전에는 마을 오수처리장을 설치해 반변천이 생활오수로 오염되는 것을 막는데 일조를 하기도 했다.

오 이장은 그동안 주민들의 노력과 영양군의 지원으로 마을 환경은 잘 정비된 만큼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또한 문향이 흐르는 감천마을에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마을 홍보도 적극적으로 실시해 관광객을 늘리고 농산물 직판장을 설치해 주민들이 생산한 사과와 고추, 쌀, 콩, 산나물 등의 농산물을 판매해 농가소득을 올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홍상철수필가>

 

 

[가볼만한 곳]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영양산촌문화박물관은 산촌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산촌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고 산촌문화를 조사·연구하고 전시와 교육을 통하여 전승·보존 하기 위한 것이다. 크게 실내 전시장과 실외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내 전시장에는 산촌의 살림살이와 마을살이, 농경활동, 화전경작 등 다양한 생활양식이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한 자치규범에 따라 이루어지는 멍석말이와 협동심이 바탕이 된 영풀베기, 물대기 등을 통해서는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공간이 되고 있다.

야외 전시장은 다시 전통생활체험장과 전통문화공원으로 나뉜다. 전통생활체험장에는 서낭당과 투방집, 굴피집, 너와집을 재현해 놓아 산촌지역의 문화와 주택양식을 볼 수 있다. 민속놀이 체험공간도 있다. 전통문화공원에는 효자 오삼성과 황경걸, 의좋은 형제, 흥부와 놀부, 연자방앗간, 호랑이와 곶감, 선녀와 나무꾼 등 전설과 전래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조형물로 제작해 전시하고 있어 학생들의 인성교육장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매주 월요일에 휴관하고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동절기 5시)까지다. 관람료는 무료다. 영양군 입암면 영양로 963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