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철·복원 거쳐 자리한 임고서원
유물관·조옹대·수련원 등 조성
정비 거쳐 ‘역사문화공원’ 탄생
송탑비·선죽교·포은단심로까지
서원 일대 역사 느껴지는 볼거리

 

영천 임고면 양항2리는 고려말 충신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임고서원을 품고 있다. 뒤쪽으로는 나즈막한 산이, 앞으로는 자호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복숭아 농사를 주로 짓는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충효(忠孝)와 같이 전통적인 가치관은 고리타분한 옛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이라도 첫 구절만 들어도 알만한 시조 ‘단심가’다. 고려말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의 문병을 온 정몽주에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며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워보자고 회유를 한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이 ‘단심가’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정몽주는 결국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는다.

조옹대에서는 임고서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영천시 임고면 양항2리는 고려말 충신이자 조선 성리학의 시조로 추앙받는 정몽주(1337~1392)선생을 기리는 임고서원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임고서원은 처음부터 이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명종 8년(1553)에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고천리 부래산 아래에 창건되어 임금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36년(1603)에 현재의 위치에 중건되었다. 고종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5년에 복원을 하고 1980년에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 새로운 서원을 지었다. 현재의 신서원이다.

이후 임고서원은 2006년부터 시작된 성역화사업을 통해 포은유물관, 선죽교, 조옹대, 연못,충효문화수련원 등을 만들고 주변을 재정비해 역사문화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포은유물전시관에 들르면 선생의 일대기와 이름에 얽인 설화, 임고서원의 역사를 알 수 있고 충효문화수련원에서는 전통문화체험을 비롯해 인성교육과 숙박까지 다양한 맞춤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임고서원 입구에는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라고 쓰인 커다란 비석이 서있다.

 

임고서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면 바로 서원 쪽으로 가기보다는 도로 쪽으로 걸어나와서 차근차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라고 쓰인 커다란 송탑비다. 비석의 글씨는 퇴계 이황 선생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겼다. 뒤편에는 숙종, 영조, 고종이 짓고 쓴 시를 새겨놓았다.

 

임고서원 입구의 ‘선죽교’는 개성에 있는 선죽교를 그대로 본떠 옮겨놓았다.

 

이쯤에서 왼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두 개의 돌다리가 보인다. 바로 ‘선죽교’다. 선죽교는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의해 피살된 곳이다. 개성에 있는 선죽교 모양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옆으로 선죽교를 보면서 건널 수 있도록 또 하나의 다리를 놓았다. 선죽교의 본래 이름은 선지교였는데 포은 선생이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대나무가 솟아나왔다고 해서 선죽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리 앞에 놓인 비석의 ‘선죽교’라는 붉은색 글씨는 한석봉의 글씨를 탁본해서 새겼다. 서원 입구에는 ‘단심가’와 포은 선생의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를 새긴 비석이 자리잡고 있다.

 

임고서원의 강당인 ‘흥문당’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서원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이 넘고 높이가 30m, 둘레가 5.95m에 이르는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전국의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서원의 강당 흥문당의 대청마루에도 걸터 앉아보고 문루인 영광루의 나무계단도 올라보고, 느린 걸음으로 서원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포은 선생이 낚시를 즐겼다는 조옹대(釣翁臺)에 올라본다. 정자 앞쪽으로는 무괴정(無愧亭), 뒤쪽에는 조옹대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아래쪽에는 연못(용연)이 조성되어 있다. 정자에 오르면 영천9경 중 2경으로 꼽히는 임고서원이 한눈에 들어온다.시원한 바람은 덤이다. 무더위를 핑계로 오르기를 포기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풍경이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면 서원 둘레로 조성된 포은단심로를 따라가보는 것도 좋다. 2.2㎞, 5㎞, 7.5㎞ 등 세코스로 이루어진 포은단심로는 임고파출소 주차장이나 조옹대에서 출발을 하면 된다.

 

임고서원을 중심으로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며 카페거리가 조성됐다.

 

관광객 증가하며 카페거리 형성
소박하지만 저마다의 개성 자랑

더위를 피하려면 서원 주변의 카페 중 한 곳을 찾으면 된다. 서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서원중심으로 트렌디한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자연스럽게 임고카페거리가 형성되었다. 시작은 2012년 문을 연 ‘나무그늘’카페다. 3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카페는 앞쪽으로는 서원이, 옆으로는 복숭아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선정하는 ‘뷰카페 100선’에도 이름을 올린 카페는 복사꽃이 피는 봄에는 더욱 인기다.

 

임고카페거리의 ‘카페 온당’은 ‘책방서당’이 함께 있어 특별하다.

 

서원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 온당’의 한 켠에는 작은 책방 ‘서당’이 함께 있다.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구입하고 시원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앉으니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책이 있는 공간이 서원을 품은 마을과 잘 어울려 외지에서 일부러 카페를 찾아오는 이도 많단다. 임고서원 안쪽으로 작은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카페인포레스트’도 인기다. 이름난 관광지의 카페들이 대부분 대형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임고카페거리는 소박하면서도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와 메뉴를 내세운 카페들로 선택의 폭을 넓힌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눈길을 끄는 임고초등학교는 2003년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임고초 졸업생들이 가꾼 숲 눈길
양항2리 ‘벚꽃 예쁜길’ 숨은 명소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풍경 선사

 

마을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임고초등학교다. 면사무소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어린이 대여섯명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정도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수령이 100살이 넘는 나무들이다. 이 숲은 1924년 임고 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임고초 1·2·3회 입학생들이 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은행나무를, 8회 졸업생들이 히말라야시다를 심으면서 조성됐다. 2003년에는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동안 잘 가꾼 숲은 학생들에게는 야외교실이, 인근 주민에게는 휴식공간이 되어준다. 지금은 본관 공사로 운동장에 콘테이너 교실이 설치되어 있다.

양항2리 입구에는 마을의 상징이 담긴 포토존이 있다.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는다. 특히 봄, 가을에는 서원 주차장은 물론 길가에도 차를 못 댈 정도란다. 양항2리의 봄은 꽃의 향연이다. 영천의 벚꽃명소라 하면 ‘영천댐 벚꽃100리길’을 많이 떠올리지만 숨은벚꽃 명소가 양항2리에 있다. 자호천 강변 둑길을 따라 2km남짓 쭉 이어지는 ‘벚꽃 예쁜길’은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걸으며 벚꽃을 즐기기에 좋다. 주변으로 복숭아밭이 펼쳐져있어 복사꽃과 어우러진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올해 4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봄따라 강따라’를 테마로 한 가볼만한 곳 5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임고서원 은행나무는 가을에는 놓쳐서는 안될 풍경을선사한다. 그렇다고 봄, 가을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우고 발길을 붙든다.

양항2리는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마을이다. 포은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 특색있는 카페,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발길을 향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마을이다.

<서영진·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양항2리 최진규이장

 

최진규 이장 “볼거리 넘치고 복숭아 맛 좋아…자랑스러워”

 

 

“자랑스러운 마을입니다”

최진규(60) 이장은 마을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포은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임고서원이 마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을 주민들은 자긍심을 가진다.

“대구에서 마을까지 채 1시간도 안 걸리고, 영천시에서도 10분이면 옵니다. 교통도 편리하고 면 소재지라 면사무소, 경찰서, 보건소, 우체국, 초등학교 등이 마을 안에 있어서 생활하기도 편리합니다”

10대 때 아버지를 따라 마을로 들어온 최 이장은 지금까지 43년째 마을을 지키고 있으니 이제는 토박이나 마찬가지다.

양항2리는 원래는 200세대가 넘었으나 임고서원 성역화 사업과 도로확장 공사 등으로 마을은 오히려 축소가 되어 지금은 110세대에 2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임고면의 다른 마을과 달리 양항2리는 다양한 성씨들이 모여산다. 그만큼 주민들의 화합과 단합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서로 얼굴 붉히고 화내고 그런 일이 없어요. 제가 의견을 내면 다들 말없이 따라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외지인이 들어와도 텃세도 없어요.”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양항2리도 주민 평균연령이 60대 후반일 정도로 어르신들이 많다. 마을에서는 청년에 속한다는 최이장은 어르신들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 “어르신들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갑니다. 전화기나 소형가전제품이 고장나면 아침 일찍 집으로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양항2리의 주소득원은 복숭아와 마늘이다. 햇살을 받으며 맛있게 익어가고 있는 복숭아.

 

마을의 주요 농산물은 복숭아와 마늘이다. 강수량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해 당도높은 최고품질의 복숭아를 생산한다. 대월, 천홍, 경봉 등 다양한 품종의 복숭아들이 6월부터 8월까지 나온다. 무더위에도 쉴 틈이 없다.

“보통 임고서원하면 은행나무 덕분에 가을에 가볼만한 곳으로 떠올리는데 봄에 자호천변 벚꽃 예쁜길이 진짜 명소입니다. 마을에서 조금만 가면 캠핑명소로 이름난 임고강변공원,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영천댐하류공원 등이 있어요. 임고서원과 함께 계절마다 가볼만한 곳이 많으니 양항2리로 많이 놀러오세요”

 

 

[가볼만한 곳]

정몽주 생가

 

◇ 정몽주 생가…포은 정몽주의 숨결을 따라
정몽주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 자리잡고 있다. 임고서원에서 차로 4분거리다. 생가 입구 오른쪽에는 선생의 석상이, 왼쪽에는 ‘충의단성’(忠義丹誠)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포은 선생의 후손이 중국에서 공수해온 홍보석으로 세웠다고 한다. 선생이 지은 시조도 돌에 새겨져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 사랑채, 머슴방 등 세 채의 건물이 있고 뒤쪽에는 사당이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임고강변공원

 

◇ 임고강변공원…물놀이·캠핑 성지 ‘인기’

임고강변공원은 임고면 덕연리 영천댐 하류 자호천 강변에 조성된 공원이다. 약 5만㎡의 하천 부지에 광장·분수·정자·농구장·족구장·산책로·주차장·자전거대여소 등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 물놀이장 2군데에서 쾌적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강 건너 절벽에는 인공폭포도 있다.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에서도 소문난 무료 캠핑 성지로 주말이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