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금구맛대추 정보화마을] 정보화로 고소득 이룬 대추 주산지…젊은이가 돌아오다
긴 세월 금호강 퇴적물 쌓여
대추 재배 최적 환경 갖춰
2005년 정보화 마을 지정
쇼핑몰 통해 매출 점점 증가
홍수나면 금빛 거북 닮아 ‘금구동’
과수원 그린벨트 묶여 미개발
자연 그대로 풍경 펼쳐져 장관
젊은이 유입으로 일손 부족 해소
가도 가도 대추밭길, 경산은 우리나라 대추의 70% 정도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금구리는 경산 대추의 약 40%를 생산할 정도로 가도 가도 대추밭길이 이어져 있다. 금호강이 범람할 때마다 모래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사질토가 되었는데,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금호강의 퇴적물이 쌓여 토심이 깊고 배수가 양호하여 금구리의 토양은 대추 재배에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경산시 압량면 금구리는 2005년 제4차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어 ‘금구 맛대추마을’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게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대추를 마을의 대표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주로 건대추를 직거래로 판매한다. 대추를 말리지 않고 생으로 출하하는 것보다는 노동의 양은 많지만 건조한 후가 더 가격이 비싸고, 도매상에 내는 것보다는 소비자와 직거래가 서로에게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경산으로 넘어오는 금강 잠수교를 통한 유동 인구가 많아서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가능하고,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면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매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금호강으로 자전거를 타러 오는 사람도 많아서 금호강 가의 한 농가는 사과 과수원 앞에 아예 자판기와 쉼터까지 설치해 놓고 있었다. 쉬어가라는 의미이다. 쉬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매출로 연결되니 주인 좋고 손님 좋은 격이다. 인상 좋게 웃으면서 반겨주는 젊은 사람이 더 반가웠다. 깨끗하게 잘 정리된 과수원은 새들이 날아들어 과일을 쪼아먹는 피해를 막기 위해 망을 설치해 놓았으며, 어디 한 군데 눈 갈 곳 없이 단정했다. 과일을 수확하는 철이 아니라도 오며가며 자판기의 커피를 마시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제 막 익어가는 대추밭이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들판의 끝은 금호강이다. 마을의 남쪽으로는 오목천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금호강이 흐르니 농사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들이 넓다 보니 일조량이 풍부해서 일제 강점기에는 사과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다고 하는데, 온난화되어 가는 기후로 인해 사과 농사를 짓지 않게 되면서 포도를 재배하다가 다시 대추밭으로 바뀌었다. 전국 최대의 대추 주산지라는 명성답게 수십 년 묵은 고목으로 자란 대추나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대추밭에는 대추를 수확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추는 나무 아래에 비닐을 깔고 대추 수확기로 나무를 흔들어 수확을 한다. 따는 건 기계의 힘을 빌지만 대추를 줍기 위해서는 사람 손이 일일이 필요해 수확철이 되면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일손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농업은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어 있으나 여전히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분야인데, 마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일할 사람은 줄어드니 대추를 줍는 것 같은 단순 노동에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금구리는 5∼6년 전까지만 해도 대추나무에 병이 없는 마을로 알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빗자루병이 발병하여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대추나무의 암이라고 불리는 빗자루병은 한번 걸리면 치유가 거의 불가능하여 결국 나무를 베어내야 되는데 온 마을이 이 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대추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지 않고 넓게 퍼지는 천근성 뿌리여서 퇴비를 넣고 로타리를 치는 과정에서 뿌리가 많이 상한다. 빗자루병의 매개충인 마름모무늬 매미의 유충은 땅속에 있다가 상한 뿌리끼리 전염되어 피해가 늘어난다. 거기에다 올해는 오랜 장마로 인한 각종 병충해 때문에 피해가 심한데 점점 온난화되어 가는 기후의 영향으로 앞으로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대추밭을 폐원하고 복숭아를 심는 농가가 늘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머지않아 기후 때문에 사과밭이 사라졌던 것처럼 대추밭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금호강의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마을은 홍수가 나면 물 위에 떠 있는 금빛 거북을 닮았다 하여 금구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고, 금호강의 후미에 있어 금구라 불리기도 한다는데 대체로는 앞의 설을 믿고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건네말과 신광이 있는데 건네말은 금구에 있는 북쪽 마을로 금호강 건너편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신광은 금구의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늙은 봉황이 앉은 모양과 같다고 해서 노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데 마을은 이 모래톱 위에 만들어졌다. 제방을 쌓으면서 더이상 금호강이 범람하는 일도 없어 마을은 점점 커지게 되어 지금은 약 170여 호가 살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금호강 쪽으로 가다 보면 온통 대추밭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라는 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길이다.
금구동의 과수원은 모두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서 개발이 불가능한 곳이다. 거기에다 금호강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체의 개발행위를 할 수 없는데, 그러다 보니 조금만 마을을 벗어나면 오히려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게 되었는데 다행히 취락지구는 그린벨트에서 해제되어 주거환경은 좋은 편이다. 금호강 철새도래지가 가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봤더니 강 숲에 앉은 새들이 인기척에 후다닥 날아올랐다. 과연 금구동이란 이름을 가질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경산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축복받은 지역이다. 경산 시내와 가까워 도심에 살면서 농사를 지으러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온다니 다행이다. 농촌지역에 사람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본 농촌은 생각 외로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시 생활에 맞지 않거나 그 땅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다. 이제 농사도 거의 기계화가 되어서 예전과 같은 노동집약형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일에 비해서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 기계를 다루거나 힘든 노동을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필요한데 스스로 그렇게 마을로 찾아들고 있다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마을의 끝에는 오목천과 금호강이 합수되는데 그곳에 경산배수장이 있었다. 물이 그만큼 많은 동네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토양은 사질토여서 물 빠짐이 좋아 과수 농사에 적당해서 마을은 예로부터 부유했다.
개발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있는 금호강이 있어 마을은 그럴 수 없이 아름다웠다. 금강 잠수교를 건너면 대구 쪽의 마을에서 운영하는 행복식당이 있어 국수 한 그릇 먹으며 쉴 수도 있다. 금강 잠수교에서 금호강을 바라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 걸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머지 않아 마을은 대추가 익어가면서 온통 붉은 들판으로 변할 것이다. 마을은 수확을 기다리느라 고요했지만 곧 들판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과수원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서 과수원 사잇길을 걷는 그 재미도 남다른 마을이었다.
김주오기자·천영애시인
<우리마을은>
조준광 감사…”대량으로 대추 농사 지어 가구당 수입 늘어”
“우리 마을은 정보화가 엄청 빨랐어요. 농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퇴직하고 이 마을로 들어왔는데 정보화에 대해서 엄청 신경을 많이 썼어요. 배운걸 가르쳐 주고 하다 보니 이젠 정말 앞서가는 마을이 되었어요. 이젠 저는 나이가 들어서 뒤로 물러나 있고 젊은 사람들이 잘해 주고 있답니다.”
마을 감사를 오랫동안 맡았던 조준광씨는 농업선진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경산시나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교육생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농업에 대한 전문성을 넓힐 수 있었다.
지금도 대추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조씨는 대추 빗자루병 때문에 일부 과수원은 폐원하고 복숭아로 대체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복숭아는 수확이 빠른 조생종을 많이 심는데 일찍 수확하는 만큼 노동의 양이 확연하게 적어질 뿐만 아니라 매출도 높아서 선호한다고 한다.
“이 마을은 수입이 엄청 높은 동네예요. 다른 곳은 대추를 말리지 않고 생물로 내는 바람에 제값을 못받지만 우리 마을은 전부 건 대추로 내거든요. 거기다가 젊은이들이 대량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가구당 수입이 엄청 늘었지요.” 그러고보니 들판에는 젊은 사람이 군데군데 보였다. 대추 수확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잘해요. 저도 자꾸 배우긴 하지만 젊은 사람들만큼은 못 따라가요. 젊은 사람들이 머리도 좋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우리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뒤로 물러났죠.”
노인들이 노동에서 벗어나고 젊은 사람들이 그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바람직한 세대교체일 것이다.
다만 시골의 노인들은 뒤로 물러나 있다고 해도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간단한 일을 돕기 때문에 한가할 틈이 없다.
천영애시인
<가볼만한 곳>
◇금호강과 철새 도래지…산책·드라이브 코스 최적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되지 않은 탓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의 취락지구에서 대추밭 사잇길을 지나면 금호강이 나오는데 가까운 곳에 철새도래지도 있다. 마을과 이어져 있는 금강잠수교에 내려가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살과 오랜 세월 동안 물속에서 자란 나무들을 볼 수 있다. 그 사이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이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한다. 금호강 둑에서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강을 건너면 안심습지가 있어 온갖 수생식물이 자라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강둑으로 산책을 해도 좋고 자전거를 타도 좋은 곳이다. 일부 구간은 차를 타고도 달릴 수 있으니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임당토성…옛 압독국 지배층 무덤 분포
4∼6세기에 경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옛 압독국의 지배층이 묻힌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은 임당동 구릉 위에 분포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고분군은 개간과 도굴 등으로 거의 훼손되었으나 1982년부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하면서 그 실태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하여 금귀걸이,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 반지 등 430여 점의 유물뿐만 아니라, 장신구와 마구류, 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분군 위에는 흙으로 성을 쌓은 임당 토성이 있고 토성을 올라가면 당시 지배층의 생활공간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압독국은 신라에 편입되어 신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유물의 흔적이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토성은 임당 유적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임당 들과 금호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외부의 침입을 막기에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