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함창 담꽃새마을] 어르신 손맛으로 빚은 전통장, 마을 변화 일구다
콩 선별부터 된장 완성되기까지
조상 지혜 담긴 전통방식 고수
시간 오래걸리지만 품질 보장
구매자들 “인생 된장” 후기 남겨
2017년 영농조합법인 설립
어르신들 제작 전과정 참여
농한기 마을에 의미있는 수입
어르신들 삶의 활력소 되기도
“맛나저라(맛있어져라)~맛나저라~” 마을 한 편에 늘어선 수십 개의 배불뚝이 장독대 옆에서 어르신들이 새끼줄을 꼬며 외우는 주문이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상주시 함창읍 신흥3리는 어릴적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해듣던 정겨운 옛 이야기처럼 푸근함과 구수함이 가득하다. 새끼줄 꼬기는 마을에서 나는 콩으로 만든 메주를 묶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요즘은 마트나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된장을 전통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만들고 있는 모습은 도시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귀한 풍경이다.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오봉산 아래에 위치한 신흥3리는 본래 오봉산 정상 부근에 있었으나 고지대라 생활이 불편했던 탓에 70여 년 전부터 하나 둘 산 아래로 내려와 새로운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신흥리(新興里)라고 이름 붙였다. 쌀농사 위주의 소농이 대부분이었던 신흥3리는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긴 농한기에는 돈벌이가 마땅치 않았다. 변화는 마을로 귀농한 젊은 농부들이 벼농사 대신 잡곡농사를 늘리면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2017년 ‘담꽃새 메주된장마을 영농조합법인’(이하 담꽃새)이 설립되면서 마을 어르신들도 그 변화에 동참했다. 담꽃새라는 이름은 신흥3리의 자연부락 이름인 새담, 꽃들, 새마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만들었다. 담꽃새에서는 마을에서 생산된 국산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된장과 간장을 담가 판매한다. 담꽃새의 핵심 인력은 마을의 어르신들이다. 메주쑤기부터 된장, 간장 담기까지 모든 작업에 마을 어르신들이 참여한다. 콩 선별에서 된장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모두 공동작업으로 진행된다. 첫해에는 모든 어르신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된장을 담그도록 했다. 현재는 품질의 균일화를 위해 그중에서 가장 맛있는 된장으로 선정된 방식대로 담가 판매한다. 평균연령 70대의 어르신들은 담꽃새의 당당한 조합원으로서 배당을 받고, 일한 만큼 일당도 받는다. 큰 돈이 아닐 수 있지만 긴 농한기 동안 일도 수입도 없이 보냈을 때를 생각하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수입이다. 무엇보다 마을의 수익사업에 당당히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어르신들에게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마을의 된장은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진다.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며 자라난 콩이 잘 익으면 수확해 커다란 솥에 삶는다. 예전에는 무쇠로 만든 가마솥에 콩을 삶았지만 지금은 담꽃새 생산공장에서 특수 제작한 전기 스팀 솥에 콩을 삶는다. 삶은 콩을 으깨어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 볏단 위에 올려 말리면 메주의 겉면은 마르고 속은 촉촉한, 이른바 ‘겉바속촉’ 상태가 된다. 황토방에서 건조와 발효의 과정을 거친 메주는 장독대로 옮겨져 따스한 햇살을 받아 숙성된다. 다음 순서는 장 담그기다. 천일염으로 만든 소금물에 메주를 담그고 대나무로 고정 후 다시 소금물을 부은 다음 달군 숯과 건고추, 참깨를 넣는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담꽃새의 장담는 방식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담꽃새만의 제품 특징이 된다.
사실 지금의 담꽃새 된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주위의 말만 듣고 메주를 발효하는 과정에 기계를 이용했지만 막상 해보니 가운데에 위치한 메주만 발효가 되고 위아래 있는 메주는 썩어버렸다. 된장은 만들어보지도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폐기해야 했다. 고민 끝에 다시 전통 방식으로 돌아갔다. 옛날 구들방식 자연발효를 위해 공장 안에 황토방을 만들고 살강을 설치해 메주를 매달아 놓았다. 이렇게 하니 잘 발효된 메주를 얻을 수 있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터진 코로나도 담꽃새에 영향을 미쳤다. 그때 도움을 준 곳이 경북 농식품유통교육진흥원이다. 경북 농특산물 온라인 쇼핑몰인 ‘사이소’에 유통에 취약한 마을의 제품을 입점시키고 가공업체와 로컬푸드, 농협 등 온오프라인 판로까지 연계해 주는 사업 덕분에 마을은 다양한 경로로 식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사이소를 통해 담꽃새 된장을 구매한 손님들이 ‘인생 된장’이라며 칭찬을 가득 담아 남겨준 후기들에 조합원들은 큰 힘을 얻는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한 해 동안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된장을 담그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옛날에는 된장의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 장 담그는 일이 일종의 성사였다. 장을 담기 3일 전부터는 부정한 일을 피하고 당일에는 목욕재계하고 음기를 발산하지 않기 위해서 창호지로 입을 막고 장을 담갔다고 한다. 담꽃새의 된장도 마찬가지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된장을 만들 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담꽃새의 된장은 항상 말날(午日)에만 담는 것이 원칙이고 올 한 해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거나, 나쁜 일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스스로 당번에서 빠지겠다는 얘기를 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얼마나 담꽃새 된장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담꽃새는 된장 판매와 더불어 된장 항아리도 분양한다. 소비자들이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된장을 담그고 필요할 때마다 와서 본인 항아리의 된장을 퍼가거나 택배를 통해 받는다. 올해도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장독대를 분양 받았다. 또한 담꽃새에서는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 판매도 함께 한다. 마을의 농가에서 생산한 쌀과 겉보리, 콩, 감자, 비트, 오이 등 농산물을 담꽃새를 통해 판매한다. 소량다품종을 재배하는 어르신들은 농산물 보따리를 들고 시장에 팔러 가는 일이 사라져 좋아하신다.
10월의 마을은 여느 달과는 달리 분주하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노꼬바리축제’ 때문이다. ‘노꼬바리’는 학창시절 학교 가던 길 논두렁에서 도시락 까먹고 땡땡이치는 것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하루라도 힘든 농사일을 접어두고 즐겁게 즐기자는 의미를 담은 축제다. 이날은 모두가 어린 시절 개구쟁이로 돌아간다. 주민들의 난타공연, 오봉산 댄스공연, 색소폰 연주, 어르신 교복 콘테스트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 2019년 경상북도 농촌축제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담꽃새 마을은 상주시 슬로시티 1호 마을로 선정됐다. ‘슬로시티’란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 자연 생태를 존중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담꽃새 마을은 마을 어르신들이 예부터 지켜온 전통을 존중하고 마을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마을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살고 싶은 마을’이 됐다. 매일 새로워지는 자연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담꽃새 마을에 있다.
이재수·김민주기자
<우리 마을은>
조희제 대표“요양원 갖춘 마을 복지회관 만들 것”
조희제 담꽃새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07년 고향인 신흥3리로 귀농해 지금은 마을에 소문난 콩 박사이자 나누리영농조합법인의 이사를 겸하고 있다. 나누리영농조합법인은 신흥리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158농가가 참여해 콩, 밀, 오이 등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한다. 논에 벼 대신 수입의존도가 높은 밀, 콩 등의 작물을 심으면서 수익률을 1.5~1.8배 정도로 높였다. 콩은 대형마트와 장류제조업체를 통해 판로를 확보했지만 마을 자체에서 이를 감당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제 고향마을이기도 한 이곳엔 어머니 또래 어르신들이 많아요. 수확기엔 이런저런 일거리가 있지만 겨울이 되면 집에 갇혀지내다시피 하는 게 늘 안타까웠어요. 큰돈은 아니더라도 일거리가 있으면 좋을 텐데 고민이 많던 차에 우리 마을의 논콩으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담꽃새 메주, 된장은 조합원 어르신 3명씩 6개 조가 돌아가며 제품을 만든다. 1~2월이 가장 바쁘고 3월에 마지막 장을 담근다. 새끼줄 꼬는 것부터 된장을 만드는 거의 전과정을 어르신들이 맡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드실 연세이신데도 워낙 오랜 세월 일한 노하우를 가지신 분들이라 척척해내신다. 법인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조합원과 마을 어르신들의 돈을 벌게 해드릴 수 있어 그 자체로 보람이 크다.
담꽃새는 예전부터 꿈꿔온 바람이 있다. 공동 숙식과 요양원 기능을 갖춘 마을 복지 회관을 만드는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면 혼자 살 수 없죠. 그러면 결국 요양원으로 떠나세요.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가기 싫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울컥해요.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는 아쉬움과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픔, 외지 요양원 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거예요. 우리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밥도 해먹고 운동도 하고 치료도 받는 공간을 담꽃새 마을에 만드는 게 제 최종 목표입니다.”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마을 안에 있는 요양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양시설은 사회복지기관에 위탁해 동네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 부분도 잘 케어할 수 있도록 해야죠. 또 우리 마을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부녀회원들이 많이 있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가볼만한 곳>
◇공검지
상주 공검지는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다. 제천의 의림지, 김제 벽골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로 알려졌다. 조선 후기 고종 이후 점진적으로 논으로 개간되어 그 흔적만 남아있다 1993년 상주시가 지금의 공검지로 복원했다. 공검지 제방은 판자와 판자사이에 흙을 넣고 다짐을 하는 판축기법으로 쌓아 올렸다. 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사다리꼴이 되도록 쌓아 올렸으며 잔자갈과 흙을 다질 때 진흙을 사용해 공급을 없앰으로써 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
천혜의 자연생태 환경 덕분에 2011년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경북기념물 제121호이기도 하다. 저수지 전체에 연꽃이 심겨져 있으며, 연꽃을 감상 할 수 있도록 저수지 중간에 방사형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삵, 큰고니, 붉은배새매 등이 서식하고 있다. 공검지 바로 옆에는 공검지 역사박물관도 위치해있어 공검지와 농경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자연환경해설사가 배치되어 자연환경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경천섬
경천섬은 낙동강의 상류에 위치하며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에 따라 형성된 20만㎡ 규모의 섬으로 그 섬을 둘러싸고 있는 생태 공원을 경천섬 공원이라 부른다. 나비모양의 산책로를 따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비봉산 절벽의 풍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봄이면 유채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상주보에서 회상나루터, 경천교로 이어지는 낙동강 투어로드는 휴식과 운동을 겸할 수 있는 트레킹코스로 인기가 좋다. 경천섬 주변에는 국립 낙동강 생물자원관과 회상나루 관광지, 상주보 수상레저센터, 자전거 박물관, 국제승마장, 밀리터리 테마파크 등이 있다.
◇함창사마소
함창읍 신흥리에 있는 함창사마소는 조선 중기 함창의 생원과 진사들이 설립한 협의기구이다. 상주 함창사마소에서 발견된 유물은 경상북도 상주의 사마록봉안소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3종의 고서로 1690년경 편성(編成)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녕사마록’, 1692년에 편성된 ‘함녕사마록계안’, 1713년에 편성된 ‘함녕사마록’이다. 이 책들은 조선시대에 함녕 및 함창 지역 출신으로서 사마시에 합격한 인물들을 정리한 명단이다. 처음 작성되기 시작한 것은 1690년대이나 이후 꾸준하게 추록되어 조선시대 말까지의 합격자 명부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실시된 사마시는 모두 229회였는데 그 합격자의 명단인 ‘사마방목’은 현재 170회분에 정도만이 국내외에 전하고 있다. 그런데 본 유물은 경상도의 함창 및 함녕 지역의 합격자만을 따로 정리하여 문서로 남겼다는 점에서 지역사와 행정사에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지역 출신 합격자 267명(중복자 포함 시 475명)의 명단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역 내에 사마소를 따로 설치하여 이를 관리하였다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이 책들은 2013년 8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2호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