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여명 거주 70대 이상 다수
젊은 농부 중심 대체 작물 고민
경로당 인근 ‘남관 화백 생가 터’
푯말 없이 주민 기억에만 의존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는 산위에서 내려다봤을때 내(川)가 흐르는 모습이 아홉구(九)자 형태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초록으로 뒤덮인 높낮이가 다른 산이 겹겹이 서 있다. 도로 양 옆으로는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나무가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맛있는 건 용케 알고 달려드는 불청객을 쫓기 위해 비닐로 된 독수리 한마리가 끈에 매달려 날아다닌다. 눈 앞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잠시 차창문을 열고 온 몸으로 공기를 들이마신다.
지금은 어딜 가던 길이 잘 닦여 있어서 전국 어디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지만 청송은 과거에는 산길을 수백리 이상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덕분에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어 ‘산소카페’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물이 맑고 공기가 좋다.

 

마을정자나무
수령 300년이 되는 느티나무.

그동안 청송으로 가는 길이 험난했던 것은 영천과의 경계에 있는 노귀재(502m)와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자현(522m)때문이었다. 지난 2011년 노귀재에 터널이 뚫린데 이어 지난 6월 삼자현 터널이 개통되어 청송은 이제는 더이상 꼬불꼬불 옛길을 달려 어렵게 닿는 곳이 아니다.

삼자현은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울창해 산짐승이나 도적들이 자주 나타나 혼자서는 넘기가 어려워 ‘세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는 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터널이 개통되면서 부남면과 이웃한 현동면으로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 물론 포항, 대구도 가기 쉬워졌다. 시간상으로는 10여분 남짓 단축되었을 뿐이지만 꼬불꼬불 옛길을 달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운전이 편해졌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 도착했다.

구천리는 마을 뒤쪽에 있는 매봉산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내(川)가 흐르는 모습이 아홉구(九)자 형태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남면에서는 면소재지인 대전리 다음으로 큰 마을이다. 예전에는 이곳이 부남면 소재지였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장날의 시끌벅적함이 싫다고 해 이웃마을인 대전리로 면소재지가 옮겨갔다고 한다.

139가구 280여명의 주민 중 최고령은 94세이고 나머지 주민들도 70대 이상이 주를 이룬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는 서너가구 남짓이고 대부분이 토박이다. 외지인이 많지 않은 이유는 텃세때문이 아니라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마을은 같은 성을 가진 집성촌인 경우가 많지만 구천리는 여러 성씨의 집안이 사는 각성받이 마을이다. 대부분 한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덕분에 누구네 집에 제사가 있는지, 생일이 있는지 이웃집 대소사가 훤하다.

 

구천마을 경로당 앞 정자는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다.
구천마을 경로당 앞 정자는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다.

 

한낮 무더위가 조금 가시고 나니 골목길 이쪽 저쪽에서 어르신들이 느린 걸음으로 한분 두분 경로당 앞 정자로 모여든다. 조심스레 들고온 소쿠리를 열어보니 먹기 좋게 잘 쪄진 단호박과 맛이 알맞게 든 오이김치가 들어있다. ‘커피 한잔 태워오까’, ‘내가 태워오께’, 서로 커피를 타겠다는 짧은 실랑이는 ‘내가 더 맛있게 태운다’는 한마디로 승부가 결정난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정자에 앉은 어르신들은 때마침 그곳에 들른 이장과 함께 사과 수확시기와 시세까지 나눌 이야기가 많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꾼 꽃밭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꾼 꽃밭 옆이 남관 화백 생가터다. 뒤로 보이는 하얀집은 구천마을 경로당.

 

정자 옆으로 보이는 빈터는 동양의 피카소로 불리는 남관화백의 생가터다. 옆 마을인 대전리에 남관화백을 기리기 위한 남관생활문화센터가 들어서 있지만 정작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곳에는 제대로 된 푯말 하나 없이 어르신들의 기억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농촌지역에 아이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구천리에는 초등학교(부남초)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경로당 앞에는 자전거와 씽씽카가 학교에서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나무 위로 새를 쫓기위한 비닐 독수리가 날고 있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나무 위로 새를 쫓기위한 비닐 독수리가 날고 있다.

 

사과가 대표작물인 구천리에는 눈길 닿는 곳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빨간 사과가 수확의 계절이 가까워 옴을 알려준다. 주민들의 고령화로 언제까지 사과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최근에는 젊은 농부들을 중심으로 복숭아 등 사과를 대체할 작물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고 있다.

 

유네스코 지정 지질명소인 '병암 화강암 단애'는 병풍을 친 것 같이 보여 병풍바위로 불린다.
유네스코 지정 지질명소인 ‘병암 화강암 단애’는 병풍을 친 것 같이 보여 병풍바위로 불린다.

 

 

 

최고 140m ‘병암 화강암 단애’
유네스코 지정 지질명소 중 하나
병풍친 듯 해 ‘병풍바위’라 불러
절벽 아래 나무 한가득 ‘범덤숲’

 

경로당을 지나 얼음골 쪽으로 조금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이 눈에 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에는 24개의 지질명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구천리에 있는 ‘병암 화강암 단애’이다.

마치 병풍을 친 것 같이 보여 병풍바위(屛巖,병암)로 불리는 이곳은 마그마가 굳어져 만들어진 화강암 바위 절벽이다. 최고 140m 높이의 수직절벽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생긴다. 절벽이 높은 만큼 그 아래 그늘도 시원해 마을이장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이곳이 단골 소풍장소였다고 한다. 옛날에 호랑이가 놀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주민들은 이곳을 ‘범덤’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송범덤숲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와 무대까지 설치되어 있는 범덤숲은 숨은 캠핑명소다.

 

데크·무대 있는 숨은 캠핑 명소
율곡 이이· 사계 김장생 방문 기념 건립 ‘병암서원’
숲-바위절벽-서원 따라 데크길

절벽 옆으로 펼쳐진 구천 숲도 범덤숲이라 불린다. 느티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로 가득한 숲은 숨은 캠핑명소다.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이곳은 텐트를 치기 좋게 데크도 마련되어 있으며 작은 무대도 있다.

 

범덤숲 앞 계곡은 물이 맑고 물고기가 많다.
범덤숲 앞 계곡은 물이 맑고 물고기가 많다.

 

물고기가 노니는 계곡물은 맑고 깊이는 깊지않아 물놀이 하기에도 좋다. 주차장과 화장실, 온수가 나오는 급수대까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캠핑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마을 청년회에서 관리하는 범덤숲은 현재까지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병암서원
병암서원.

 

병암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병암서원이 나타난다. 병암서원은 숙종 28년(1702) 청송부사 이문징이 율곡 이이와 사계 김장생이 병암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세운 사액서원이다.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청송군에서 옛 자리에 다시 복원했다. 범덤숲과 병풍바위를 지나 서원까지는 걷기 좋게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에 어르신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들어놓은 의자
산책로에 어르신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들어놓은 의자

 

마을 앞에서 강을 따라 범덤숲까지 가는 길은 나무를 심고 올레길을 조성중이다.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이 산책로로 이용하는데 군데군데 놓인 의자가 눈길을 끈다. 걷다가 힘들면 앉으시라고 외지에 사는 자식들이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들어 보냈다는 의자는 기성품 벤치보다 모양은 어설퍼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 정겹다.

구천마을은 어르신들의 발걸음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마을이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옛날,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땅 위로 올라와 오랜 세월을 거쳐 아름다운 절벽이 되었듯이 이곳에 오면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느린 시간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을 듯 하다.

윤성균·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우리마을은청송구천리-박재철이장
박재철 이장

 

박재철 이장…”산책로·꽃밭·경로당…주민 단합의 결과물”

마을 토박이인 박재철(60) 구천리 이장은 마을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집성촌이 아닌 각성받이 마을이지만 주민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한마을에서 살아온 터라 단합이 잘 된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아서 짓는게 일반적인데 우리 마을은 주민들이 힘을 모아 벽돌을 나르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더 애정을 갖고 가꿀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다. 어르신들은 꽃밭가꾸기와 산책로 정비 등 마을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부녀회에서는 휴지나 병을 주워 모은 돈을 마을 기금으로 내놓는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어르신들 식사대접도 하고 마을 잔치도 연다. 이장직을 맡은지 3년차인 박이장은 코로나로 인해서 주춤했던 마을 행사들을 새로 열어 주민들끼리 단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구천마을에는 수령 300년쯤 되는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나무다. 이장이 어릴 때는 아름드리 나무 그늘 아래서 단오에는 그네를 뛰고 동네 어른들이 집집마다 음식을 해와서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대보름에는 윷도 놀고 보름 행사를 하며 즐겁게 보냈다.

“예전에는 경로잔치도 하고 대보름이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도 하고 시끌벅적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런게 사는 재미인데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은 모든게 중단이 되었습니다. 이제 슬슬 예전처럼 재미를 되찾아야겠지요.”

“범덤숲과 병암은 마을의 자랑입니다. 여름에는 물을 막아서 놀기 좋게 해놓는데 물고기도 많아 저녁에 고기를 잡으러 많이 옵니다. 지금은 숲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데 방문객 중 일부가 장기간 머물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전기와 온수를 마구 쓰는 바람에 앞으로는 비용을 받고 관리를 하는 방법도 생각중입니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는 무분별한 사용을 막고 숲을 지키고자 짜낸 궁여지책이다. 전기는 화재위험 때문에 지금은 사용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구천리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씩 이뤄나가는 것이 인상적인 마을이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 한 곳>

남관미디어아트홀

◇남관미디어아트홀(남관생활문화센터)…미디어아트로 만나는 남관화백 작품

남관(1911~1990)화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1세대 추상화가로 한국인 최초로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폐교된 대전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남관생활문화센터는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서 태어난 남화백을 기리고자 조성했다. 지난 7월 건물 2층에 개관한 남관미디어아트홀에서는 남화백의 작품과 그림기법을 미디어아트로 만나볼 수 있다. 미디어아트와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상호작용 실감콘텐츠도 흥미롭다.

 

◇항일의병기념공원…우리나라 의병 역사 ‘한눈에’

청송은 전국에서 항일의병 유공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항일의병기념공원이 조성된 청송로 4123 일대는 구한말 청송의진이 관군의 기습을 받고 교전한 곳인데 이때 희생된 이름없는 무명의병용사충혼탑을 비롯 전국의 의병 유공선열 전원의 이름을 새겨놓은 명각대, 위패가 봉안된 사당 충의사, 의병의 역사를 영상과 문헌 등 다채로운 자료들을 통해 알려주는 의병기념관 등이 조성돼 있다.우리나라 의병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산소정원 청송카페
산소카페 청송정원

 

산소카페 청송정원
산소카페 청송정원

 

◇산소카페 청송정원…전국 최대 규모 백일홍 정원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14만㎡로 전국 최대 규모의 백일홍 정원이다. 지난해 9~10월 두 달동안 약 15만 명이 찾았던 관광명소로 올해 9월 1일 다시 개장했다.
알록달록 백일홍과 사랑의 징검다리, 벤치와 그네 등 다양한 포토존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최근에는 맨발걷기 힐링 건강명소로도 인기를 끌고있으며 주말에는 버스킹과 음악 공연 등이 열린다.
정원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서 청송정원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입장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