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경남 합천군 경계 산골
옥담·낫골·음지 3개 부락 구성
팔만대장경 순례길 일부 포함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미숭산 기슭에 자리 잡아 예로부터 공기 좋고 물 맑은 청정 지역으로 손꼽혔다. 우렁이농법을 이용해 재배한 무농약 쌀은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미숭산의 산림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송이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경험할 수 있다.

 

어릴 적 방학이 오면 며칠 시간을 내어 부모님 손을 잡고 시골 할머니 집으로 가곤 했다. 밭둑과 숲길을 놀이터 삼아 달리고 개울가에서 신나게 물장구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가버렸다. 하지만 외딴 시골이었던 할머니 집도 논을 메꿔 건물이 생기고 점차 현대화되면서 자연 속 놀이터는 줄어들었다. ‘정과 사랑이 넘치는 외갓집 같은 체험마을’ 고령 신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의 안내 문구이다. 한동안 그리웠던 정겨운 풍경을 신리마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신리마을을 감싸고 있는 미숭산

 

신리마을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과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의 경계를 이루는 미숭산(美崇山·757m) 산골에 위치해있다. 산촌마을이라고 하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며 한참 고생을 해야 닿을 것 같지만 신리마을은 골짜기를 따라 잘 닦인 도로로 편하게 갈 수 있어 전형적인 산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옛날 대가야가 신라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의 아들 월광태자와 그의 아내인 무후황후가 신리로 피신해 하룻밤을 묵고 합천으로 넘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귀한 분이 납신 길이라고 해서 ‘낫질’을 붙인 낫질로에 신리마을이 위치한다. 마을은 옥담, 낫골, 음지마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담은 군사들이 월광태자를 옥처럼 둘러싸고 지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낫골은 비단옷을 입은 귀한 사람들이 올라갔다고 해서 ‘비단 라(羅)’자를 써서 나곡, 낫골이라고 했다.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에 포함되어 있는 신리마을

 

신리마을로 고령, 성주, 합천 3개 군이 공동으로 조성해 놓은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중 ‘순례의 길’ 코스가 지나간다. 몽골 침입 때 강화도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겼는데, 그때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온 배가 도착한 곳인 고령 개경포나루에서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신리마을을 거쳐 미숭산과 문수봉 사이 낫질신동재를 넘어 해인사로 갔다고 전해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을 포함해 고령의 문화를 걸으며 즐길 수 있는 ‘대가야 둘레길’에도 마을이 포함되어 있다. 중화저수지에서 시작해 신리마을을 거쳐 미숭산 능선의 청금정까지 14km를 순환하는 5코스 ‘다락길’은 숲길을 따라 걷는 길이지만 거리 표식이 정확하고 나무 데크로 구성되어 있어 많은 트레킹족들이 찾는다.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무농약 쌀.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우렁이 활용한 무농약 쌀 재배
밤줍기 등 체험 프로그램 운영
산림문화시설 연계 활동 인기

 

예로부터 공기 좋고 물 맑은 청정 지역으로 손꼽히는 신리마을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친환경 농산물들을 생산한다. 대표적인 농산물은 쌀과 양파, 마늘이다. 특히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무농약 쌀은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마을 곳곳에 드넓은 논에는 올여름 살인적인 폭염과 가뭄을 이겨내고 살이 오른 채 익어가는 이삭들이 논바닥을 굽어보며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물속의 풀을 먹어 치우는 우렁이의 습성을 이용해 논의 잡초를 없애다 보니 농약 등 화학물질 남용으로 자취를 감췄던 메뚜기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리마을의 특산물인 토종꿀로 만들어진 꿀비누

 

신리마을은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오지의 산촌마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마을이 되었다. 미숭산 밤톨이 찾기(밤줍기 체험), 꿈나무 정원(관엽식물 심기), 유기농 무농약 쌀로 만드는 가래떡 뽑기와 떡볶이 만들기 체험, 감자·고구마·옥수수 등 사계절마다 다양한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마을을 둘러싼 미숭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고 오염원이 적어 벌을 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그래서 토종 벌집 꿀 체험, 꿀비누 만들기 체험 등도 인기가 있다.

최대 20인이 숙박 가능한 옥담방부터 가족 단위가 이용하기 좋은 원룸 음지마방 등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도 준비되어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대나무 물총 놀이, 성인들은 마을에서 가까운 미숭산 자연휴양림, 대가야 고령생태숲 트레킹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으며 이용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현재 숙박시설은 일손이 부족한 농가들을 위해 라오스에서 고령으로 온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숙소로 사용하며 마을 주민들과 깊은 유대감을 쌓고 있다.

 

2015년 창조적마을만들기를 통해 조성된 벽화. 벽화에는 마을의 자랑인 무농약 쌀을 생산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2015년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체험객 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체험관을 갖추고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과 녹색쉼터도 조성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이지만 잘 닦인 도로로 편안하게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덕분이다. 마을 환경 개선을 위해 금이 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면서 동네 속 작은 벽화마을도 만들었다. 벽화에는 마을의 자랑인 무농약 쌀을 생산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집집마다 달린 문패도 눈길을 끈다. 벼가 그려진 대나무 문패는 주민이나 외지인이 쉽게 건물을 인식할 수 있어 주민들이 가장 만족하는 변화이다.

 

신리마을 입구. 마을 진입로에 그려진 할아버지 벽화는 과거 신리마을에 살던 할아버지를 모티브로 그려졌다.

 

활력 넘치는 마을에도 고민은 있다. 67가구 100여 명의 주민 중 80대가 70명으로 전체 주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50~60대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18년 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고 30여 명이 넘는 주민들과 함께 노동조합형태로 운영됐다. 주말에는 예약이 힘들 정도로 인기 있는 체험마을로 성장했지만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으며 지금은 소규모 체험이 많이 늘었다. 현재는 문성열 위원장과 서영선 사무국장, 마을의 어머니들이 힘을 모아 전체적인 운영과 체험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신리에서 휴휴(休休)’ 프로그램. ‘촌캉스’와 같이 산촌의 강점을 살리고 당일 간단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일일 피크닉 ‘休休’ 개발 추진
자연 체감 가능 프로그램 구성
고령 대표 체험마을 도약 ‘꿈’

 

고령 대표 체험마을로 도약하기 위한 신리마을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촌캉스’와 같이 산촌의 강점을 살리고 당일 피크닉이 가능한 구성을 만들어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마을의 정자, 야외 파라솔, 족욕 존에서 자연을 몸소 느끼며 만드는 꿀비누, 원예테라피 등 체험과 피크닉이 함께 섞인 ‘신리에서 휴휴(休休)’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사무장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마을의 새로운 부흥을 꿈꾸고 있다.

평일에는 유치원, 어린이집, 노인 돌봄 센터,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체험을 즐기러 마을을 방문한다. 취재를 위해 마을을 찾았을 때도 추석맞이 꽃송편 만들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딸기, 단호박, 모시 잎 가루 등을 넣어 예쁜 색을 입힌 익반죽에 달콤한 깨소를 넣어 꽃, 조개 모양을 만들어냈다. 송편을 만들던 한 어르신은 “선물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송편을 빚을 때마다 마음속 보물 하나가 들어차는 것 같다”며 행복한 마음을 표현했다.

 

신리저수지에서 내려다본 신리마을

 

마을 인근의 미숭산 자연휴양림과 대가야 고령 생태숲을 둘러보고 내려오다 신리 저수지 둑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짙푸른 산자락과 황금빛의 들판, 그 사이사이 숨어있는 지붕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그리웠던할머니 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벼가 익어가는 풍경을 보니 왠지 마음이 풍성해진다.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신리마을을 방문한 모든 이들의 마음에 남겨질 것이다.

<이채수·김민주기자>

 

 

[우리 마을은]

 

문성열 신리 녹색농촌체험마을 위원장

 

문성열 위원장 “깨끗한 자연에 반해 재방문 많아”

“처음에 우리 마을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될 때 청정 자연이라는 큰 보물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시설도,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현재까지 깨끗한 자연을 보존하고 있어 한번 와본 사람들은 다들 좋다며 여러 번 방문합니다.” 신리 녹색농촌체험마을 문성열 위원장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인 신리로 돌아온 지 40년이 넘었다. 문 위원장은 지난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18년간 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 위원장은 신리마을뿐만 아니라 고령군 이장연합회장으로도 수십 년간 일을 해왔다. 수박이며 참외며 과수부터 농사일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벼, 양파, 마늘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신리마을의 무농약 쌀은 급식용으로 학교에 많이 제공된다. 일교차가 큰 고지대인 신리마을은 병충해 발생이 덜하다. 신리 저수지에 풍부하고 깨끗한 물도 맛있고 건강한 쌀을 만드는데 큰 몫을 한다. 마늘도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보다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아 인기가 높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해왔어요. 여느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축사도 저희 마을에는 없어요. 마을을 방문한 체험객들에게 깨끗한 공기를 선물할 수 있어 기쁘죠. 마을 사람들의 인심과 성품도 더없이 깨끗해요. 또 마을에서 체험 농가로 참여하는 주민들은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관광객들에게 작물 수확 방법을 알려주거나 소정의 농산물을 제공해 이익을 얻고, 관광객들은 특색 있는 경험으로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 서로 ‘윈윈’입니다”

 

 

[가볼만한 곳]

 

미숭산자연휴양림

 

△미숭산자연휴양림…산림문화로 지친 일상 재충전

미숭산은 고령군 대가야읍과 합천군 야로면의 경계, 대가야의 산이다. 정상에 서면 우두산·독용산·황악산·비슬산과 낙동강까지 굽어볼 수 있다.

미숭산 자연휴양림은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의 집, 황토집 등 친환경적인 자재를 사용한 숙박시설과 숲속 화장실, 소운동장, 산책로, 등산로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산림문화 휴양시설이다. 해발 300m 지점에 위치해 주변 경치가 좋고 울창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공간이다.

 

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가야금 창제’ 우륵 자료 한눈에

가야금을 창제한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전시하고 있다. 가실왕의 총애를 받던 궁중 악사 ‘우륵’은 고령에서 태어나 오늘날 가야금의 전신인 12현의 가야금을 만들었고, 또 연주곡 12곡을 지었다. 훗날, 신라로 귀화하여 신라 음악을 꽃피운 ‘악성(樂聖)’으로 불렸다. 가야금 제작과 연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악 가야금, 산조 가야금, 18현 가야금, 21현 가야금, 25현 가야금 등 다양한 가야금을 전시하고 있다. 또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