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옻밭마을] 주민 모두가 작가…옻밭마을 외양간 예술이 꽃 피었네
매주 주민 도예·수묵화 수업 진행
인문학 마을 선정 비용 부담 해소
솟대·벽화 등 마을 곳곳서 작품 선봬
군청로비·낙동강평화축전 전시도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칠곡 옻밭마을
옻나무골이라는 이름의 칠곡(漆谷)군에는 옻과 관련된 지명이 꽤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동명면 송산3리 옻밭마을이다. 임진왜란 무렵 형성되었다는 옻밭마을은 그당시만 해도 옻나무 군락지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최근에는 청정미나리와 함께 인문학마을로 이름이 높다.
마을이야기와 인문학,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칠곡 옻밭마을에서는 농촌마을이 인문학을 만나 일상이 예술이 되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예술가가 되는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동락외양간갤러리’ 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전시공간이 나타난다. 이름 그대로 외양간을 개조해 만든 소박한 갤러리다. 마을 곳곳에는 어르신들의 소망이 담긴 도자기 솟대가 반겨주고 담벼락 위에도 어르신들의 작품들이 무심히 자리잡고 있다.
동락외양간갤러리 뒤편에 자리잡은 김희열 도자회화연구실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 오후 2시면 선물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아이고, 나는 월요일 저녁이면 설레서 잠이 안와. 얼매나 재미가 있는동 몰라” 배명숙(83) 어르신을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땀을 닦으며 이곳으로 들어선다.
칠순이 넘은 어르신들을 사춘기 소녀처럼 설레게 만드는 이곳은 논, 밭에서 평생을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일만 하셨던 어르신들을 예술가로 변신시켜주는 고마운 곳이다.
도시에서 살다 이 마을을 찾아 터를 잡은 김희열, 김진숙 작가 부부가 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거기에 칠곡군이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인문학마을만들기’ 사업이 힘을 보탰다. 인문학마을 사업은 주민들이 자기 마을만의 소박한 문화를 하나씩 만들어 가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송산3리 옻밭마을은 2016년부터 인문학마을로 선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처음 시작은 외지에서 들어온 작가부부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문화가 있는 삶을 선물하기 위해 작업실을 개방하고 도자기 작품들을 함께 만들면서 부터다. 흙은 농사지을 때 논, 밭에서 질리도록 봤는데 흙이 작품으로 변하는 걸 보고 ‘흙이 참 희한하다’하고 신기해하던 어르신들, 그렇지만 처음 접하는 예술이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손이 저리다’하면 손을 주물러 드리고 ‘어려워서 못 따라하겠다’ 고 하면 차근차근 그림에 깃든 의미를 설명해 드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르신들의 연륜이 작품에 배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차츰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어쩐 일인지 알아보니 “미안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던 차에 2016년 칠곡군 인문학 마을 사업에 선정되면서 재료비 부담없이 수묵화와 도자기 수업을 격주로 번갈아가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 소나무, 꽃 등 주변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어르신들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탄생한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제대로 그림을 배우지 못하고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그 갈증을 달랬다는 어르신은 밤새 스케치북 한 권을 다 그려서 들고 오시기도 했다. 평생 붓이라고는 잡아본 적 없던 어르신들이 만들어내는 작품 속에는 그분들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알고 보면 어르신들의 삶 자체가 바로 예술입니다.”
2016년부터는 1년에 한번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멋이 담긴 어르신들의 작품을 모아 ‘동락외양간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이날 만큼은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지난해 열린 ‘나도 도예가, 나도 화가’전은 칠곡군청로비갤러리와 칠곡의 대표적인 축제인 낙동강평화축전에도 초대를 받아 작품을 선보였다.
옻밭마을에는 매년 가을이면 마을 꿀밤 숲에서 잔치를 연다.
송산리 꿀밤잔치에서는 꿀밤묵 쑤기, 누렁호박전 만들기, 떡메치기 등 만들기체험부터 꿀밤나무 아래에서 열리는 보물찾기, 꿀밤 팽이 돌리기, 도토리 키재기, 참나무에 오래 매달리기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는 다양한 체험행사로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농촌의 향수와 추억을 선물해준다.
작품이 상설전시되어 있는 동락갤러리는 앞으로도 쭉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마을을 찾는 외부인들에게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마을 곳곳을 어르신들이 만든 솟대와 벽화들로 더 채워갈 예정이라니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옻밭마을의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가 된다.
박병철·배수경기자
“주민과 예술로 소통…함께하는 즐거움 느껴”
동락외양간갤러리 김희열 관장 부부
“동락(同樂), 말 그대로 같이 즐겁자는 말입니다”
내로라하는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도 인기있는 도자회화작가 김희열(52), 양·말작가로 불리는 도예가 김진숙(50)부부. 그렇지만 동락마을에서는 유명세를 내려놓고 어르신들의 미술선생님 겸 기사이자 상담사를 자처한다.
“2011년 도자회화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가마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대구와 가까운 지역을 찾던 중 이 마을로 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마을이든 외지인을 달갑게 생각지는 않지요. 소소한 갈등들도 당연히 있었구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과 소통도 할 겸 작업실로 초대를 했습니다. 작업실을 방문한 주민들이 작품들을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자기와 수묵화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흙을 만지는 작업은 치매예방과 정신건강에도 좋으니 칠팔십대가 대부분인 마을주민들과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이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마을 어르신들이 다 부모님 같이 생각되서 한해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많이 안타까워요. 요즘은 병원 가신다고 못오시는 분들도 많으시거든요. 어르신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작품활동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만의 작품생활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작가 부부, 동락외양간갤러리에서 본 이 부부의 작품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유에 대한 답은 인터뷰를 하면서 저절로 얻어졌다.
<가볼만한 곳>
병인박해 때 순교한 37명 묘역
◇한티순교성지
팔공산과 가산사이 해발 600여m 한티재에 자리한 한티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37명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2013년 칠곡군이 가실성당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가는 ‘한티가는 길’ 45.6km를 조성해 천주교신자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6.25전쟁 다부동전투 기록 ‘생생’
◇다부동 전적기념관
6.25전쟁의 최대 격전지이자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다부동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다부동 전적기념관. 야외전시장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대공포, 곡사포 등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내부전시실에는 한국전쟁과 다부동전투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을 볼 수 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겨나며 평화라는 것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세상사 시름 잊게하는 숲속 사찰
◇송림사
칠곡군 동명면에 자리하고 있는 송림사는 팔공산 순환도로의 일부분인 908번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바로 만날 수 있다. 신라 진흥왕때 창건되었다는 송림사는 울창한 송림은 찾아볼 길 없지만 넓은 터에 자리한 절에 들어서면 세상사 시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남는다. 너른 마당에 솟아있는 송림사5층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우리나라에서 몇 안남은 전탑 중 상륜부까지 남아있는 희귀한 탑이라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