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인량마을] 마을 곳곳 역사 깃든 한옥들…전통이 살아 숨 쉰다
학문높은 선비 배출 끊이지 않아
마을 한옥 절반이 문화재 지정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영덕 인량마을
유서 깊은 양반마을로 손꼽히는 곳은 보통 한두 성씨의 집성촌이지만,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는 여러 성씨가 함께 뿌리를 내리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뒷산 모습이 학이 날개를 펼친 것 같다 하여 비개동, 나래동, 익동으로 불리다가 광해군2년(1610)에 인량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또 나랏골로 불리기도 하는데, 나래골의 변형으로 보는 설도 있고 이곳이 삼한시대 ‘우시국’의 도읍이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설도 있다.
영해부지에서는 인량리를 예부터 풍속이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어지지 않으니 부내에서 으뜸가는 동리라 했다. 광해 7년(1615)에 군내에서 처음으로 향약을 제정했고, 숙종 3년(1677)과 1928년에 규약을 시대에 맞게 고쳐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 각 문중은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의병운동,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지사들도 많았다. 현재도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 마을 출신 인재들이 많다. 그런데 인량마을과 관련해 ‘5대성 8종가’, ‘8성씨, 12종실’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으나, 그 범위를 단정 지을 수는 없고 또 시대별 변화도 있었을 것이다. 이 마을의 오래된 성씨로 재령이씨, 안동권씨, 무안박씨, 함양박씨, 야성정씨, 대흥백씨, 영양남씨, 영천이씨, 웅성주씨, 야성정씨, 평산신씨, 선산김씨 등을 들 수 있다.
인량 마을에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지어진 전통 한옥이 20여 채가 있고, 그중 10여 채는 문화재로 지정됐다. 가옥의 형태도 다양해 각 고택들을 비교해보며 마을을 찬찬히 둘러본다면 전통가옥에 대한 안목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마을 가장 깊은 곳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68호로 지정된 충효당이 있다. 퇴계의 학맥을 이은 영남 남인의 적통이라 할 갈암 이현일의 출생지로, 충효당에서의 전망은 인량마을과 들판, 안산, 동해까지 보일 정도로 뛰어나다. 갈암 이현일의 종택은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1992년 갈암의 태실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마을 중앙에 있는 오봉종택(경북문화재자료 제538호)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화를 입어 낙향한 오봉 권책의 종택으로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안채와 사랑채인 오봉헌, 벽산정이 있다.
우계종택은 재령이씨 영해 입향조 이애의 손자인 희령현감 이함의 차남 우계 이시형의 살림집이다. 선조 39년 건립된 후 현재까지 400년 가까이 우계파 종가로 보존되고 있으며 사랑 공간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중기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괴헌(경북문화재자료 제209호)은 본래 야성정씨의 고택이었으나 1843년 신재수가 구입한 이후 평산신씨 종택이 됐다. 15세기 처음 지어졌고 19세기에 개축했으며, 영덕 지역의 특성을 살린 ㅁ자형 주택의 전형이다.
이렇듯 고택도 많고 인재도 많이 배출한 전통마을이지만, 인량마을의 전통은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전통이다. 2004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된 인량마을은 주민 자부담으로 폐교된 인량분교장을 구입해 체험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추고 ‘나라골 보리말 체험학교’를 열었다. 이후 농어촌 체험휴양마을 선정, 농어촌인성학교 지정, 창조적마을만들기사업 선정 등으로 인프라와 역량을 확충해오고 있다.
인량마을 어린이들을 길러낸 창수초등 인량분교장은 문을 닫았지만, 주민들이 힘을 모아 연 ‘나라골 보리말 체험학교’는 이제 전국 어린이들과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인성을 길러주는 학교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체험객들과 대학생·성인 단체들도 인량마을에서 다채로운 체험 활동을 하며 휴양과 정서 함양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이진석·김광재기자
“옛 농촌의 정서 고스란히 느껴보세요”
박기수 인량전통테마마을 사무장
“우리 체험학교에 찾아오시는 분이 연 7천 명 정도 되고, 별도로 인량마을을 찾아오는 분들까지 포함하면 한 해 1만명 이상이 우리 마을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고택, 전설 등 문화유산이 많고 농산물도 풍부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요. 특히 여름에는 고래불해수욕장이 가까운 것도 방문객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나라골보리말체험학교 박기수 사무장은 인량전통테마마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촌의 숨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체험휴양마을’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인량마을은 옛 농촌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다채롭게 마련돼 있다.
트랙터마차 타고 종가답사, 전통놀이, 김장담그기, 그리고 보리밟기와 고사리·오디·감자·복숭아·옥수수·고구마·사과 등 사계절 수확체험, 메뚜기잡기·당나귀엄마되기·풍등날리기 등 자연생태체험, 천연염색, 대게호루라기, ​오색팔찌, 여치집 만들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고택을 돌아보며 건축양식과 전통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과, 이 마을에서 많이 나는 보리짚을 이용한 여치집만들기 등 짚풀공예가 특히 인기 높다. 숙박은 폐교를 리모델링한 펜션에서 100명까지 가능하며, 민박은 운영하는 마을 내 고택을 이용할 수도 있다.
모두 85가구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인량전통테마마을영농조합법인은 농어촌개발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힌 곳이다. 하지만 이 마을도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마을에 상주할 젊은 인구 유입이 적다는 것이 큰 고민이다. 박 사무장도 “우리 마을은 생산물도 풍부하고, 6차 산업화에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젊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볼만한 곳
◇영덕 블루로드
소비자선정 최고의 브랜드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영덕블루로드는 빼어난 절경과 푸른 동해바다의 내음을 즐기며 걷는 명품 트레킹코스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688km의 해파랑길의 영덕군 구간으로, 영덕대게공원을 출발해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64.6km 코스다. 동해바다와 풍력발전단지, 대게원조마을, 축산항, 괴시리마을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쪽빛파도의 길(D코스 14.1㎞, 대게공원-산사해상산책로-강구터미널), 빛과 바람의 길(A코스 17.5㎞, 강구터미널-신재생에너지전시관-해맞이공원), 푸른대게의 길(B코스 15.5㎞, 해맞이공원-축산항-남씨발상지), 목은사색의 길(C코스 17.5㎞, 남씨발상지-목은이색기념관-고래불해수욕장) 등 4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블루로드를 완주하고 각 지역의 확인스탬프를 찍어 가면 완주메달을 받을 수 있다.
◇삼사해상공원
동해의 청정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이다. 이북 5도민의 망향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1995년도에 세워진 망향탑과 경북개도 100주년 기념사업인 경북대종, 영덕대게와 어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공연장과 폭포 기타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다. 1997년 1월 1일 처음 개최한 ‘해맞이축제’는 신년 행사로 대성황을 이뤘고, 이후 대표적인 신년 해맞이 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역 음악동호회가 참여하는 관광명소 주말 공연도 열리고 있다.
◇칠보산자연휴양림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국 유일의 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 내 곳곳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며 일부 객실은 발코니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소나무가 울창한 휴양림 숲길(1.6km)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왕복 3시간 반 정도의 칠보산(810m) 등산도 할 수 있다. ‘금강송 숲탐방’ 무료 숲 해설과 소나무 도마 만들기 등 목공예체험 프로그햄도 마련돼 있다.
◇신·재생에너지 전시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교육과 체험을 위한 시설로, 천혜의 자연환경과 해맞이공원, 풍력발전단지와 연계해 관광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댜. 전시관 1층에는 휴게 카페와 편의시설이 있고, 2층은 태양·바람·물·지열 등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의 생성 원리를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전시시설과 태양열을 이용한 창포 족욕탕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야외에는 빛을 이용한 프리즘 체험 코너, 태양광을 이용해 앉으면 음악이 나오도록 한 벤치 등 야외 놀이터와 동해안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고성능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