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카페 가은역’ 주민사업체] 폐선로 따라 ‘추억의 기차역’ 사과밀크티향 ‘솔솔’
2년 전 주민들 힘모아 문화공간 일궈
대표메뉴 하루 30병 생산 ‘사과밀크티’
역사 벽엔 그 때 그 시절 ‘역무원 제복’
레일 위엔 기차 대신 ‘철로자전거’ 씽씽
2019 경상북도 마을 이야기, 문경 ‘카페 가은역’ 주민사업체
기차역은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이다. 누군가는 그 곳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나가고 또 누군가는 그곳으로 들어온다. 때로는 누군가를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차역에는 이별의 슬픔, 만남의 기쁨,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있다.
가은역 역시 그런 곳이었다.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능리에 위치한 가은역은 1955년 개통된 문경선(이후에는 가은선으로 바뀌었다)의 첫 출발지였다. 점촌-가은간 이어진 22.3km의 가은선은 가은 일대의 무연탄 개발을 위한 산업철도였다. ‘가은역’은 처음에는 은성광업소의 이름을 따 ‘은성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해 94년 은성광업소가 폐광하기 전까지 석탄을 실은 화물차와 수많은 사람이 오가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광산이 문을 닫으며 한때 국민학교 학생수가 3천명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던 가은읍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열차 이용객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문경온천의 활성화로 잠시 관광열차가 운행되며 되살아나는 듯 했으나 결국 2004년 가은선은 폐선이 되고 가은역 역시 그간의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켜켜이 쌓인 사연들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듯 했다.
이후 20여년간 방치되며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가은역이 2017년 왕릉 3리 주민들에 의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목조역사이자 한때 번창했던 석탄산업과 관련된 역사(驛舍)로 희소적인 가치를 갖고 있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 304호)으로 지정된 가은역은 이제 기차 역사로서의 기능은 끝이 났지만 옛 추억을 되살리면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향기 가득한 카페로 탈바꿈했다.
왕릉 3리 주민사업체인 ‘카페 가은역’은 단순한 카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방치된 가은역을 안타깝게 여기던 마을 주민들이 낸 아이디어가 ‘등록문화재 활용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문경을 담은 음료와 디저트를 선보이는 로컬푸드 카페가 탄생한다. 2017년 7월의 일이다.
이상과 현실은 늘 거리가 있는 법이다. 카페를 운영해 본 경험도 없고 가은역을 살리고 싶은 마음만 갖고 있던 ‘카페 가은역 주민사업체’는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다.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시행하는 ‘2018 관광두레사업’ 주민사업체 공모에 선정이 되어 메뉴 개발은 물론 경영개선과 관련된 조언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전국적인 사업이 아니라 지역을 돌아가며 벌이는 사업이니 때마침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사과 밀크티, 사과스프, 사과버터, 사과 그래놀라 등 문경에서 생산된 사과로 만드는 다양한 메뉴들이 관광두레와 전문 셰프의 컨설팅을 통해 탄생했다. 하루에 30병 정도 밖에 내놓지 못하는 사과밀크티는 카페 가은역의 대표메뉴다.
60도 이하에서 우려낸 홍차에 꽃사과청, 흑설탕시럽, 그리고 비밀의 수제청을 더한 사과밀크티는 슬로우푸드다. 하루동안의 기다림을 통해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양도 생산하지 못한다. 우리 쌀과 아몬드 가루, 그리고 문경꿀을 더한 디저트인 마들렌과 잘 어울려 세트메뉴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 가은역의 대부분의 메뉴는 문경에서 생산된 재료들만을 고집해서 만든다. 단순히 이윤을 위한 카페가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화유산의 틀을 그대로 간직한 역사 벽에는 역무원 제복이 걸려있다. 제복과 모자를 갖춰입고 직접 철로에서 깃발을 흔들며 그 때 그 시절로의 추억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한 켠에는 가은역의 마지막 역무원이었던 황동철씨의 시가 붙어있다.
그 시절 가은역을 이용했던 어른들이 카페 한 켠에 앉아 추억을 떠올리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한달에 1천500명에서 2천여명이 찾는 가은의 명소가 되었다. 카페 가은역에는 1명의 매니저가 상주를 하고 바쁠때는 운영진들이 나와 일손을 돕는다.
장사가 잘 될 때도 안될 때도 ‘카페 가은역’은 늘 주민들과 함께 가는 방법을 모색한다.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화려한 간판도 세우지 않고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해마다 어버이날 주간이 되면 가은역 앞 광장은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짜장면 무료나눔 행사도 연다.
가은이 번성하던 시기에는 가은역 주변이 늘 작은 장터가 되어 북적였다. 그 때를 떠올리며 역사 앞 광장에 문경의 농특산물을 사고파는 가은 철로시장도 열었다.
이제 기차가 달리던 레일 위로는 철로자전거가 달린다. 가은역 길건너편 아자개장터에 이르는 벽화거리도 한번 거닐어 볼만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을 만나게 되면 늘 입가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가은역은 간이역이 아니라 폐역이지만 역시 그 앞에 서니 노래가 먼저 입에서 흘러나왔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키작은 소나무 대신 한그루 인 듯 다정하게 붙어있는 두 그루의 커다란 미루나무가 인상적인 가은역 철로가에는 성미 급한 코스모스가 벌써 하나둘씩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미루나무를 카페 운영진들은 부부나무라 부른다. 카페 가은역을 찾은 연인이나 부부들은 그 나무를 찾아 사랑을 맹세하며 사진 한장 남겨도 좋겠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 되고 우리들에게 버려진 추억들은 나무 되어’라는 노랫말처럼 자칫 ‘잊혀진 이야기’와 ‘버려진 추억’만 뒹굴뻔 했던 가은역에는 마을 주민들의 열정과 함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쌓이고 있다.
전규언·배수경기자
‘주민 합심의 결실’ 등록문화재활용 공모 선정, 문경 ‘카페 가은역’ 주민사업체 운영진
“첫 시작은 ‘귀중한 문화재가 저렇게 방치되다니..’하는 안타까움과 속상함때문이었어요.” 가은역에서 만난 왕릉 3리 임분남 부녀회장과 3명의 운영진(매니저 김은하, 운영진 이옥이, 이경자)은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폐역이 된후 20여년간 문을 닫은 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역사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 폐허로 바뀌었다.
결혼하고 광산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처음 가은역에 발을 내딛던 기억, 통학하느라 매일 하루 2번 비둘기호 기차에 올랐던 기억, 역 앞 광장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기억 등 각각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방치된 가은역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은 똑같았다.때마침 등록문화재활용 공모사업 소식을 듣고 왕릉 3리 주민들이 뭉쳤다. 4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도 다양했다.공모 프리젠테이션때 쟁쟁한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이들이 선정된 것 역시 지역주민들의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믿는다.단순히 돈벌이를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오늘도 지역에서 난 사과, 오미자 등 농산물로 음료와 디저트를 만들며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며 지역 경제에 환원을 하는 선한 기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가은역을 살리고 가은에 생기를 불어넣고 더 나아가서는 가은을 알리는 그들의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가볼만한 곳>
◇문경 에코랄라…거미열차 타고 갱도체험 ‘GO’
문경에코랄라는 기존의 문경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에 에코타운과 야외체험시설 등의 새로운 시설 및 다양한 콘텐츠를 더해 탄생한 충청이남 최대규모의 테마파크이다. 우리나라 제 2의 탄전이었던 문경에 세워진 문경석탄박물관은 석탄의 역할과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해 전시함으로써 잊혀져가는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1, 2, 3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실을 보고 난뒤 거미열차를 타고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도 유익하다. 야외로 나오면 실제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을때까지 사용했던 은성갱도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고 그 시대 광부사택을 재현해 놓은 공간도 만나볼 수 있다. 새롭게 조성된 에코타운은 미디어전시, 영상스튜디오, 친환경 미래농법 등을 만날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이외에도 고증을 통해 정교하게 재현해놓은 가은오픈 세트장도 볼만한다. 고구려궁, 신라궁, 안시성, 요동성을 비롯해 성내 마을, 시장으로 구성된 세트장은 ’연개소문‘, ’대왕 세종‘, ’선덕여왕‘, ’군도‘ 등의 촬영지로 활용되었고 지금도 사극촬영지로 인기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