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가람마을]대가천 휘감아 도는 명당서 피크닉과 힐링 ‘만족 두배’
100년 역사 품은 문화재 중매댁
2m 축대 위 건축한 독특한 양식
솔가람권역권에 만든 어울마당
지역민 위한 종합힐링장으로
매년 10월엔 ‘메뚜기잡이 축제’
황금들판 누비며 가을정취 만끽
수령 2백년 자랑 ‘큰 왕버들나무’
최적의 피서지이자 회의장 역할
2021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성주 가람마을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하동군 평사리를 두고 풍수가들은 최고의 명당이라고 말한다. 지리산의 능선인 형제봉의 완만한 경사지에 마을이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넓은 악양들판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살기에 넉넉한 곳이기 때문이다.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가 딱 그런 곳이다. 가야산의 동북쪽 끝자락인 연감산(466.9m)의 완만한 경사지에 마을이 터를 잡았고, 앞에는 대가천이 휘감아 돌면서 넓은 수성들판을 만들었다. 자급자족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라 인심 좋은 마을로 소문난 곳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인성도 부드럽고 정이 넘쳐난다. 이런 인심과 품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풍족한 물산을 바탕으로 한 넉넉한 인심과 학구열은 문화와 인물을 낳았다. 조선 중기 최고의 성리학자로 불리는 ‘한강 정구’ 선생이 이곳 출신이다. ‘한강’은 다섯 살때부터 신동으로 불릴 정도로 총명했다. 20살에 향시에 합격했으나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학업에 전념했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연구에 전념했다. 선조 임금이 여러 차례 관직을 내리고 불렀으나 사양하다가 37살에 창녕현감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가 형조참판, 대사헌을 역임했다. 퇴계학의 계승자로 불리면서, 강안학(낙동강중류학문)을 일으켰다. 성주 회연서원과 천곡서원, 칠곡 사양서원, 창녕 관산서원, 충주 운곡서원, 현풍 도동서원에 제향 되었다.
수성2리에 있는 중매댁(고택)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 86호로 지정됐다. 1903년 안채 건립을 시작으로 사랑채 대문채, 고방채, 안대문채 순으로 1915년에 완성된 특별한 건축물이다. 특히 안채는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2미터 높이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축된 것이 특이하다.
2012년에 수성1.2리와 송계 1.2리, 신정리를 한 구역으로 한 솔가람권역권사업(위원장 이훈식)을 추진하고 대가천 주변에 어울마당을 조성했다. 어울마당에는 캠핑장과 축구장, 다목적광장, 연못, 갈대밭, 흙놀이장, 온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지역 주민은 물론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 종합 힐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어울마당과 수성들판에서는 매년 10월에 ‘황금들녘 메뚜기잡이 축제’가 열린다. 어린이들은 매미채를 들고 논두렁을 누빈다. 어른들은 빈 PT병이나 양파망을 들고 다니면서 맨손으로 잡는다. 매미채에 잡힌 메뚜기를 끄집어 낼 때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즐거운 표정이다. 시식코너에서 구워먹는 고소한 메뚜기 맛은 지난날의 추억을 단번에 불러낸다.
고구마와 땅콩 등 농작물 수확체험을 통해서는 가을의 풍성함도 맛본다. 축제를 위하여 봄부터 마을 주민들이 참여해 1만㎡의 고구마밭과 2천㎡의 땅콩밭을 가꾼다. 봄부터 사육장에서 기른 메뚜기를 축제 때 들판에 방사한다. 매년 2만여 명이 축제장을 찾는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난해부터는 잠정적으로 중단 된 상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연다는 계획이다. 어울마당으로 가는 길목에 설치된 메뚜기 조형물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벼 줄기위에 앉아서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자세다.
텐트 가림막과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는 피크닉캠핑장은 단연 인기다. 내부에 평상이 있어 이용하기 편하다. 기본 그늘막이 있기 때문에 개인용 텐트가 없이도 캠핑이 가능하다. 캠핑사이트별로 물놀이장이 있어 여름철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바로 옆에는 예전에 국제하키장으로 사용하던 잔디구장이 있어 축구나 배구, 배드민턴 등 운동을 즐길 수도 있다. 주변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조성한 200 m에 이르는 개울물이 있어 발을 담그면 여름철 더위를 날려 보낼 수 있다. 솔가람활력센터 2층에 마련된 펜션시설을 이용 할 수도 있다. 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대형하우스는 어린이용 흙놀이터장이다. 특별한 주제가 없는 자유공간이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흙놀이를 할 수 있도록 깨끗한 모래를 깔았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성을 쌓고 산을 만든다. 소꿉놀이도 하고 두꺼비집도 짓는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다함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다오’ 하면서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면 금세 친구가 된다. 중간 중간에 설치된 평상은 아빠들을 위한 공간이다. 아빠들은 평상에서 쉬면서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아이들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어울마당에 들어가는 길 양편에 설치된 스톤아트는 천영덕 작가의 작품이다. 대가천에서 가져온 돌에 천 작가가 직접 색을 칠하고 토끼와 호랑이 등 갖가지 동물들을 그렸다. 유명 작가가 솔가람마을을 위하여 재능기부를 한 것이다. 100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넉넉한 주차공간이 있어 주차 걱정이 없다.
마을 한 복판에 있는 큰 왕버들나무는 마을의 보물이다. 수령이 2백년 정도로 추정된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마을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모여드는 일등 피서지가 된다. 때로는 회의장이 되기도 한다. 둘레가 장정 4명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다. 2019년에는 치매보듬마을로 선정됐다. 치매가 있어도 가족과 이웃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돌봄으로써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7년에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찾아라 경북행복마을 21호’ 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경북 예술마을 가꾸기 버드나무 풍류방’과 ‘농촌건강 장수마을’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등 건강과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한 마을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마을의 가장 큰 재산은 마을 주민들이 화합하고 정을 나누면서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여학연 이장은 강조했다.
추홍식기자·강현 수필가
< 우리마을은>
“외부 도움없이 마을 자력으로 행사 추진 방안 마련”…여학연 수성1리 이장 ·이훈식 솔가람권역 운영위원장
“제가 2번째로 마을 이장을 맡아서 일을 하지만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정이 넘치고 화합하는 마을”이라고 여학연(69)이장은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여 이장은 마을 토박이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으며,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87년부터 5년 동안 이장직을 맡아 마을을 위해 일했었다. 다시 2018년부터 현재까지 이장직을 맡았다. 진취적인 성격과 긍정적인 자세로 일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추대에 의해 두 번째로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장 취임 후에는 주민 건강을 위해 수륜면에서 가장먼저 광역상수도 설치사업을 추진해 맑은 물을 공급함으로써 주민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마을단위 오폐수정화시설을 설치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조성에도 앞장섰다. 성주향교 총무직을 맡아 전통문화의 전승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잇다. 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이훈식(66) 위원장은 대구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다가 8년 전 귀향했다. 귀향 후 줄곧 채소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아왔다.
지난해 주민들의 추대로 운영위원장직을 맡았다. 귀향 후 마을 일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활동적인 모습을 보고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추대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올해 들어 농사일을 중단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솔가람마을을 이끌어가기에는 힘에 부치고, 마을 일에 전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마을 일을 위해 자기 일은 포기한 것이다.
올해 메뚜기잡기 축제를 위해 축제추진위원장과 힘을 합쳐 고구마와 땅콩을 심고 가꾸었으나 코로나 장기화로 무산됨에 따라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솔가람마을에서 추진하는 많은 행사들이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추진됐다”면서 ‘이제는 마을 주민이 주인이 되어서 행사를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라고 이 위원장은 말한다. 이를 위해 마을기금을 적립해 외부 지원없이 마을만의 힘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캠핑장과 펜션, 가래떡 가공장의 운영을 활성화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면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가볼 만한 곳>
세종대왕자태실…한국 생명존중문화의 산실
장태문화는 우리 조상들의 생명존중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출산 후에 배출되는 태(胎,태반과 탯줄)를 격식을 갖추어 땅에 묻고 복을 비는 문화다.
생명을 귀하게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태’도 신체의 일부로 여겼다. 아기와 어머니를 이어주던 생명줄이었기에 태어난 후에도 소중히 여겼다. 민간에서는 불에 태우거나 물에 띄워 보냈지만 왕실에서는 명당을 찾아서 봉안했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장군의 장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항아리에 태를 담고 석물을 설치했다. 남자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하고 여자는 얼굴이 예쁘고 단정해 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명당을 찾아서 태실을 만들었다.
성주군 월항면 태봉 정상에는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다. 세종대왕의 왕자 18명과 세손인 단종의 태실이 있다. 5950㎡의 면적에 조성되어 있으며 사적 444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개첨석과 중동석, 석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조성당시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으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금성대군을 비롯한 다섯 왕자의 태실은 파괴됐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태실은 즉위 후에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고 가봉비를 세웠다. 훗날 세조를 미워한 백성들이 비석에 오물을 붓고 돌로 갈아서 글자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한 단면으로 보인다.
태실이 있는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 중시조인 이장경의 묘가 있었으나 왕실에서 태실을 만들면서 이장시켰다. 성주군에서는 생명존중문화를 모티브로 한 성주생명문화축제를 연다. 태실 바로 앞에 있는 선석사는 신라때 의상대사가 건립했고, 조선시대에 태실수호사찰로 지정됐다. 태실법당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