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산전마을] 원조 ‘머루포도’ 이름값…마을 떠받치는 효자로
‘자타공인’ 경북 우수농산물 손꼽혀
생과 판매 넘어 와인생산까지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경산 산전마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경산시 남천면 산전마을의 팔월은 청포도가 아닌 머루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금성산과 병풍산, 동학산이 마을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산전마을에 들어서면 알알이 영글어가는 포도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끈다. 멀리서 동이 터오는 새벽 5시 즈음이면 산전마을 주민들의 아침은 시작된다. 여름 해가 뜨거워지기 전, 포도가지에서 새로 돋아나는 순도 쳐내야 하고 잠깐만 내버려두면 쑥쑥 자라나는 잡초와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건 어떻게 알고 제일 먼저 찾아오는 새의 부리로부터 포도를 지키는 일도 빠질 수가 없다. 아침을 잊은 바쁜 손놀림 덕분에 탐스럽게 맺힌 초록색의 포도알이 한달 뒤면 다가올 출하날짜를 기다리며 하나둘씩 검게 물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마을회관에 들러 부녀회에서 함께 주문한 멸치박스를 나누며 그간 밀린 이야기들도 나눈다. 노동과 운동은 다른 법이라며 마을회관 2층에 마련된 무료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주민들도 보인다. 70대가 넘는 어르신들 몇분이 마을회관을 지키고 있는 대부분의 농촌마을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예로부터 밀양 손씨와 경주 최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산전마을은 지하에 넓은 맥반석층이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 배수와 영양공급이 잘되는 천혜의 토양을 선물로 갖게 되었다.
마을 주변의 천수답에서 쌀농사를 주로 짓던 산전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은 40여년전인 1978년, 포도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새마을 지도자였던 손병기 선생은 다른 마을에서 심기로 했다가 여러 가지 상황으로 갈 곳을 잃은 MBA(머스켓 베리에이) 포도를 산전마을에 심으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새로운 작물을 받아들이는데 대한 반발도 있었다. 당시에도 10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라 한꺼번에 바꾸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차례 차례 포도농사로 전환을 하기 시작해 지금은 MBA포도의 원조마을로 불리며 자타공인 최상급의 포도를 생산해내고 있다.
MBA포도는 유난히 포도송이가 크고 알이 많이 달려있으며 산도가 낮고 당도가 매우 높은 특징을 갖고 있다. 일명 머루포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수량이 적고 일조량이 높아 포도 재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산전마을에서 생산된 포도는 평균 당도가 22브릭스가 넘는 등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며 경북도 우수농산물로도 손꼽히고 있다. 지금은 산전마을 뿐 아니라 남천면 전체에서도 효자 작물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5년 전부터는 좋은 토양과 수질에서 재배한 맥반석 미나리 재배를 통해 봄철 인근 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발길을 마을로 향하게 하고 있다.
산전마을은 보통의 농촌마을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노령화가 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주민들이 늘어나는 마을이다. 교통이 편리해 대구에서 출퇴근과 통학이 가능해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는 이들이 많이 정착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재 170가구까지 늘어난 주민들 중에 젊은 층의 비중도 높다.
현재 마을의 주요작물인 포도작목반은 54가구, 미나리작목반은 7가구가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포도농사에 큰 어려움이 없고 수익성도 높아 대를 이어 포도농사를 짓는 주민들도 많고 외지로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2세대들도 많다. 3대가 대를 이어 포도농사를 짓는 집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산전마을에서 주로 생산하는 MBA포도는 당도가 높고 산도가 적당해 생과로 먹기도 좋지만 와인의 재료로도 인기있는 품종이다. ‘신의 물방울’로 불리는 와인은 프랑스나 칠레산을 먼저떠올리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국내산 와인도 품질이나 맛에서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산전마을에도 마을에서 생산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있다. 마을 출신의 한성식(57) 대표가 운영하는 ‘비노캐슬’에서 생산하는 와인 ‘비노페스티바’는 현재 연간 생산량이 4천병에 이르고 국내 대형호텔에도 납품을 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와인대회의 수상실적도 많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별도의 장치 없이도 연중 12~17도의 온도와 70%의 습도가 유지되는 숙성실에서는 발효를 거친 와인이 고객의 테이블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통 레드와인은 2년, 로제와인은 1년, 화이트 와인은 6개월 정도의 숙성기간을 가진다. 비노캐슬은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가 함께하는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산전마을 둘레로는 누구나 쉽게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생명누리길이 조성돼 있다. 마을 회관에서 출발해 와이너리 ‘비노캐슬’을 지나 포도밭사이를 걷는 ‘포도내음길’부터 남천의 발원지와 이목지의 주변경관과 생태를 탐방하는 ‘수변생태길’, 신라시대 창건된 경흥사와 분청사기요지를 걸으며 산전리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천년고찰길’등 6개의 다양한 코스에는 전망대, 정자, 쉼터, 체육시설 등이 설치되어 등산객은 물론 산악자전거 애호가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남천임도라 불리는 산전~흥산간 임도는 산악라이딩의 메카로 알려져 전국의 라이더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산전마을의 맥반석 MBA포도는 9월 10일께부터 출하가 시작돼 10월말까지 맛볼 수 있다.
매년 포도농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10월 중순이면 ‘맥반석포도&와인축제’가 열린다. 고품질의 맥반석 포도를 홍보하기 위한 시작된 이 행사에는 포도따기, 포도씨 뱉기, 포도와인담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는 물론 마을에서 생산된 포도도 맛보고 구입할 수 있어 도시민들에게 인기다. 잘 익은 포도의 달콤한 향기가 어우러진 포도밭길을 걸으며 마을의 정취를 느끼는 프로그램과 밀양 손씨 재실인 녹가재에서 열리는 한옥음악회도 역시 특별하다. 2017년까지는 산전마을에서 열렸던 축제는 6회째인 지난해부터는 규모를 더 키워 남천면 전체를 아우르며 경산의 대표행사로 손꼽히고 있다.
최대억·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트렌드 맞춰 예쁘고 먹기 편한 과일 재배”, 손유목 경산 산전마을 이장
맥반석의 효능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자 “돌에 보리밥 알갱이가 붙은 것 같아 맥반석이라 불리는 이 돌은 민간에서는 유해물질 제거 및 중금속 분해 작용 등의 다양한 효능을 지닌 신비의 돌로 여겨져 왔습니다. 간단한 예로 마을의 청소년들 중 여드름이 난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어요.”라며 입을 뗀다. 마을 토박이인 손유목(53·사진) 이장은 올해부터 이장을 맡아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농업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야 합니다. 요즘은 영양성분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봐서 알이 굵고 모양이 예쁜 과일, 먹기에 편한 과일이 더 인기를 끕니다. 산전마을에서 최근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샤인머스켓 재배량을 늘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포도재배산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 층의 변화하는 입맛을 따라잡는 것도, 다른 농촌마을과는 달리 늘어나는 외지인들과 토박이 주민들 사이의 화합도 손 이장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산전마을은 최근 창조적 마을 선정으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앞으로 포도터널 조성 등을 통해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 즐길거리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구상 중이다.
<가볼만한 곳>
◇경흥사…경북서 가장 큰 목불상 모신 사찰
천년고찰 경흥사는 신라 무열왕 6년(659) 혜공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때 전소된후 연규대사가 중창한 경흥사에는 보물 제 1750호인 목조석가여래삼존화상이 모셔져 있다.
1644년 대표적 조각승인 청허가 제작했다고 알려진 불상은 경북에서 가장 큰 목불상이며 17세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되고 있다. 전성기때는 매일 쌀 씻은 물이 산전마을까지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은행나무가 물드는 가을에 찾으면 더 아름답다.
◇삼성역…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봄이면 벚꽃 만발
삼성역은 경산시 남천면 삼성리에 위치한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921년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2004년부터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봄이면 역사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간이역만이 가진 정취와 벚꽃놀이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드물지 않게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