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역사와 설화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조성
8개월 대장정 역사 고스란히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할 때
월광태자가 이 마을서 피신
고려왕조 지키던 이미숭 잠들어
낫질신리마을은 옥담(옥달), 낙골(낫골), 음지마 등 세 마을로 이뤄져 있는데 인구가 점점 줄어 지금은 70호 정도만 남았다. 사진 아래쪽 마을이 옥담, 신동저수지 옆이 낙골, 왼쪽 위가 음지마이다. 신동저수지를 지나 올라가면 미숭산자연휴양림과 대가야고령생태숲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전영호 기자
낫질신리마을은 옥담(옥달), 낙골(낫골), 음지마 등 세 마을로 이뤄져 있는데 인구가 점점 줄어 지금은 70호 정도만 남았다. 사진 아래쪽 마을이 옥담, 신동저수지 옆이 낙골, 왼쪽 위가 음지마이다. 신동저수지를 지나 올라가면 미숭산자연휴양림과 대가야고령생태숲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전영호 기자

 

2020 경상북도 마믈이야기 – 고령 낫질신리마을

고령군이 추진하고 있는 대가야 걷는 길 관광자원화 사업이 완공되면, 미숭산 자락 낫질신리마을에서 다락논, 다락밭 옆길을 거쳐 대가야 고분군이 있는 주산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생긴다. 앞으로 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마을인 고령군 대가야읍 낫질신리마을도 더 널리 알려지고 찾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신리마을은 지금도 오염원이 없는 깨끗한 시골 마을과 저수지, 숲속 산책길을 갖춘 걷기 좋은 마을이다. 

팔만대장경 이운(移運)순례길도 이 마을을 지난다. 대장경판은 강화도에서 배로 서해, 남해를 돌아 낙동강을 거슬러 개경포에 도착했으며, 당시 영남 일대의 승려와 신도들이 경판을 이고 지고 열뫼재, 대가야읍, 낫질신동재를 거쳐 해인사까지 운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7년(1398) 5월 10일 ‘임금이 용산강에 거둥하였다. 대장경의 목판을 강화의 선원사로부터 운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5월 12일에는 대장경 목판을 지천사로 운반하는데 군사 2천 명을 동원한 사실이 적혀있다. 그 후 정종1년(1399) 1월 9일 기사에 경상도 감사에게 명하여 불경을 해인사에서 인쇄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제공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로써 대장경판이 8개월만에 강화도에서 한양 지천사를 거쳐 해인사로 옮겨진 역사적 사실은 확인이 되지만 그 정확한 경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대장경판의 엄청난 양과 무게를 고려했을 때 바다와 낙동강 물길을 이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개경포에서 약 40㎞가량 떨어진 해인사까지 옮긴 경로도 기록은 없다. 그래서 고령, 성주, 합천 3개 군이 공동으로 조성한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도 순례의 길과 성찰의 길 두 코스로 나뉘어있다. 순례의 길은 낫실신리마을을 지나 미숭산과 문수봉 사이 낫질신동재를 넘어 합천 야로면을 거쳐 해인사로 가는 코스이고, 성찰의 길은 고령 덕곡면을 지나 성주 수륜면과 가야산을 넘어 합천 해인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실제로는 험한 가야산을 넘는 길보다는 낫질신동재를 넘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신동저수지에서 내려다본 신리마을
신동저수지에서 내려다본 신리마을

 

그보다 800여 년 전 낫질신동재로 이어지는 이 길은 또 한 번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됐다고 전해진다. 진흥왕 23년(562) 이사부와 사다함이 거느린 신라군에게 대가야가 멸망할 때, 월광태자가 이 마을로 피신해 하룻밤을 묵고 합천으로 넘어갔다는 설화다. 월광태자는 대가야 이뇌왕과 신라의 이찬 비조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설과 끝내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설이 있다. 옥담, 낙골 등 이 마을의 지명에도 그와 관련된 유래담이 전해진다.

고령신리마을-벽화2
신리마을 벽화
신리마을-벽화
신리마을 벽화.

‘낫질’이라는 지명은 중화저수지(낫질못)가 있는 중화리에서 신리까지를 함께 일컫는 마을이름이기도 하고, ‘질’이 길의 사투리이니 그 길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월광태자가 납신 길이라고 해서 ‘낫질’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하는데, 어쩌면 ‘신라의 길’이라는 이름일 수도 있겠다. 만약 낫질이 신라를 뜻하는 ‘나(라)’, 사이시옷, ‘질(길)’이 결합한 말이라면, 대가야 사람들이 이 길을 가야의 길이 아니라 신라의 길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고, 낫질은 대가야 사람들의 망국의 한이 서려있는 이름이 된다.

낫질신리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미숭산 또한 망국의 한이 서린 이름이다. 원래 이 산의 이름은 상원산이었는데 고려왕조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이미숭 장군을 기려 미숭산으로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미숭은 고령사람인 예부상서 이헌의 자손으로, 정몽주에게서 경학을 배웠으며, 무반으로 출사해 많은 전공을 세워 안동장군의 자리에 올랐다. 선죽교에서 스승인 정몽주가 피살을 당하고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우자, 이미숭은 군사들을 이끌고 고려를 지키기 위해 수차례 접전을 치렀으나 패배했고, 상원산(미숭산)에 들어가 후일을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전사 혹은 자결했다. 정상 주변에는 미숭산성 성문과 성터 잔해가 있고 샘물이 성문 터 옆에 있다.

 

힐링하기 좋은 곳
미숭산휴양림서 산림 관광
인근 대가야고령생태숲 조성
조용한 숲길 사색에 안성맞춤
떡메치기·벌 생태 관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인기

대가야고령생태숲의 가을풍경
대가야고령생태숲의 가을풍경

낫질신리마을에서 미숭산으로 올라가면 미숭산자연휴양림이 조성돼 있다. 산림 문화 휴양관, 숲속의 집, 황토집 등 숙박시설과 운동장, 산책로, 등산로 등 편의시설과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휴양림 인근에는 약 49만㎡의 산림에 향토 수종을 식재·복원한 대가야고령생태숲도 조성돼 있다. 숲 교육 체험원, 소리 향기원, 자생 식물원, 숲 테라피원, 꽃채원, 시원 그늘 숲, 대가야 쉼터 등의 시설이 있다.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깨끗한 숲속을 걸으며 조용히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마을, 걷기 좋은 마을인 낫질신리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에서는 벌 생태 관찰과 밀랍초 만들기,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가을철에는 메뚜기 잡기, 밤 따기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오염원이 없는 마을이다 보니 여름철에는 아이들 물놀이장도 인기가 높다. 체험객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체험마을식당은 닭, 오리 백숙, 도리탕, 주물럭, 쇠고기버섯전골, 된장찌개, 김치찌개, 부추전, 국수 등 메뉴를 갖추고 있다. 추홍식기자·김광재객원기자

 

<우리 마을은>

 

인터뷰
문성열 위원장

“물 맑고 공기 좋은 모범적 농촌체험마을” 문성열 위원장

“화려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체험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연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청정지역이어서 한번 와본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합니다.” 낫질신리마을 문성열 위원장은 지난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처음 지정될 당시의 지원 외에 다른 외부지원 없이 마을 자체적으로 체험마을을 꾸려오고 있다. 문 위원장은 “앞으로 체험마을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화리, 저전리 등 낫질 전체 마을을 묶어 더 다양하고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리가 고향인 문 위원장은 대구에서 학교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40년이 됐다. 그동안 수박이며 참외며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벼, 양파, 마늘을 주로 재배하고 있는데, 노동력이 부족한 농촌 현실과 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작물들이다.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신리마을의 쌀은 급식용으로 학교에 많이 들어간다. 들이 넓은 다른 지역에서 병충해가 발생해 심각하다고 하는데 일교차가 큰 고지대 마을인 이곳은 생생하다. 양파도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 보다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아 인기가 높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속 들어오지 못해 인건비가 많이 올랐어요. 요즘 농촌은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다면 유지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또 장마가 기록적으로 길어져서 나중에 바람이 불면 벼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멧돼지도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서 농작물 피해가 커요. 고구마 같은 것은 가까운 데나 심지 떨어진 밭에는 심지도 못합니다. 고라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낫질신리마을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물 맑고 공기 좋은 마을, 모범적인 녹색농촌체험마을이지만, 농사를 짓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른 마을처럼 위기를 겪고 있는 농촌이었다.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
개경포기념공원

 

◇개경포기념공원 – 대장경 이운행렬 조각상 볼거리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은 조선 초기에 강화도에서 물길을 따라 개경포에 도착해 해인사로 옮겨졌다. 예전에는 개산포라 불렸는데 경판이 도착한 곳이라 하여 개경포(開經浦)라 부르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이름을 변경됐다가 다시 개경포로 바꾸었다.

공원에는 유래비, 대장경 이운행렬 조각상, 이규보의 대장각판 군신기고문 기념비, 전시마당, 팔만대장경이운순례길 조형물, 팔만대장경 이운 조운선 모형, 탐방로, 팔각정, 주막 등이 조성돼 있다. 이운행렬 조각상은 대장경 운반을 감독하는 관리, 독경을 하면서 행렬을 인도하는 스님, 머리에 경판을 이거나 등짐을 진 사람들의 모습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시마당에는 개경포구의 모습, 고령의 옛모습, 팔만대장경 제작과정, 이운행렬 재연행사 등이 사진과 함께 설명돼 있다.

 

고령대가야수목원 산림녹화기념관
고령대가야수목원 산림녹화기념관

 

◇고령대가야수목원 – 수종 4천100만본 식재 

낙동강 대홍수로 황폐해진 땅에 주민 모두가 합심해 사방사업 3만4천㏊, 토사 방지 수종 4천100만 본을 심은 ‘낙동강 유역 산림녹화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70㏊의 면적에 숲속놀이터, 분수광장, 조형물광장, 분경·분재관, 암석원, 야생화단지, 대나무숲길, 미로원, 산림녹화기념관, 금산재 구름다리, 전망대, 금산인공폭포, 목재데크 숲길, 숲속교실, 잔디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광장에는 일제의 조직적인 산림자원 수탈 현장인 송탄유 가마를 재현해 놓았다. 산림녹화전시관은 숲의 역할과 혜택, 산림 자원의 조성 과정, 낙동강 유역 산림의 녹화 과정 등 숲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