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산 정상 오른 옛 사람들
산 중턱 350m 자리 잡고 살림
전망대서 내려다보면 평화로워
메뚜기·우렁이 잡기 좋은 반응
우렁이 쌀농사 짓고 퇴비 사용
덕분에 사라진 제비 둥지 틀어
친환경 찰수수·고추 수요 증가
정보화마을 만들어 판로 확보

 

병풍처럼 둘러싼 백두대간 국사봉의 보호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국사골 마을은 가재가 살고 제비가 돌아오는 친환경 청정마을로 무농약 우렁이쌀과 찰수수, 고추 등 친환경농법으로 먹거리를 생산하는 자연생태 우수마을이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전래동화 ‘해님달님’에서 호랑이는 오누이를 잡아먹기 위해 하느님에게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하지만 나쁜 호랑이에겐 썩은 동아줄이 내려온다. 이를 모른 채 올라가던 호랑이는 도중에 줄이 끊어지면서 죽창처럼 잘린 수숫대 위로 떨어져 죽는다. 이때 수수밭이 핏빛으로 물들었는데 이후 수수의 잎과 줄기가 붉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매년 9월이 되면 경북 예천군 유천면 사곡리 국사골마을에서는 땅에서 올라오는 붉은 노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불그스름한 찰수수가 옅은 아침 안갯속에서 넘실대는 풍경이 마치 노을처럼 보인다.

예천군 남서부에 위치한 국사골마을은 병풍처럼 둘러싼 국사봉 아래 해발 약 350m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국사봉 아래가 모두 잠기게 됐는데, 높은 곳을 찾아 올라온 사람 수백 명이 국사봉 정상에 옹기종기 모여 홍수를 피했다고 한다. 비가 그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아래로 내려오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국사골 마을이 위치한 사곡리는 옛날에 절이 있었다 하여 절골이나 사곡(寺谷)이라 불렸다. 사곡은 ‘사골’로 음이 변해 불리다가, 국사봉의 ‘국’자를 따 ‘국사골’로 이름이 정해졌다.

 

찰수수밭전경
불그스름한 찰수수가 자라고 있는 마을의 공동작업장.

 

마을은 하루에 버스가 한두 번만 지나다닐 정도의 오지마을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오손도손 살아가며 푸근한 산골 냄새가 풍기는 정겨운 곳이다. 사람들은 정이 많아 손님이 올 때면 미나리, 산나물 무침, 손두부를 정성껏 대접했고 마을의 농사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함께 모여 일했다. 오늘날 개인주의와는 사뭇 다른 마을의 풍경에서 훈훈한 인정이 느껴진다.

 

마을제비
친환경 농법으로 마을로 돌아온 제비들

 

국사골 마을에서는 요즘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제비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마 밑 제비 둥지에서는 부화한 새끼들이 어미에게 먹잇감을 달라고 ‘지지배배’하며 합창을 한다. 마을 31가구 중 제비집이 없는 집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몇십 년 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제비가 마을을 다시 찾은 이유는 친환경농법 덕분이다. 마을에서는 농약이나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이용해 벼농사를 짓고, 수수나 마늘, 양파, 고추 농사에는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사용한다. 전체 31개 농가 중 농사를 짓지 않은 5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2008년에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되면서 전국에서 알아주는 친환경 청정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소포장되어 판매되는 마을의 대표 친환경농산물 찰수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하는 농산물은 맛도 좋고 품질도 뛰어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농산물이 있어도 판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국사골마을은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찰수수, 우렁이 쌀, 마늘, 고추 등 유기농작물은 정보화마을 조성을 통해 온라인 판로가 생겨났다. 1~2인 가구 소비자들을 위해 소포장으로도 판매를 진행하면서 전국의 고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히 마을에서 생산하는 찰수수는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재구매율이 높다. 마을에서는 ‘수꾸’란 사투리로 불리는 수수는 예부터 잡귀를 쫓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아이의 돌상에 수수떡을 올릴 만큼 복되고 귀한 곡물로 여겨진다.

친환경 무농약 찰수수가 생산되기까지 과정은 꽤나 험난하다. 진딧물 약을 쓰지 못하니 수작업으로 풀을 뽑으며 각종 병해충과 싸워야 하는데 풀은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니 하루 종일 밭에서 수수를 돌볼 수밖에 없다. 새들도 말썽이다. 사람들이 식사 시간에 맞춰 밥을 먹듯이 새들도 하루 세 번씩 수수밭에 찾아와 몰래 수수를 쪼아 먹고 도망간다. 좋은 걸 알면서도 쉽게 친환경 농법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약을 치는 농산물보다 수확되는 양도 적고 손이 많이 가지만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수확한다는 자부심이 고된 과정을 꿋꿋하게 견디게 한다.

 

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마을의 대표 농산물 고추
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마을의 대표 농산물 고추

 

무엇보다 친환경 농사는 화학비료 없이 작물이 잘 자라야 하니 땅의 힘이 좋아야 한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고추농사는 설이 지나면 모종하우스 모판에 고추씨를 붓는 것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충분히 자란 모종들은 땅이 충분히 녹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5월이 되면 밭으로 나간다. 옮겨 심은 작물은 친환경 소재로 비료를 만들어낸 땅에 뿌리를 내리며 무럭무럭 자란다. 잘 자란 고추는 고춧가루로 가공하거나 동결건조 형태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국사골마을이 정보화마을로 조성되고 판매하는 상품 수가 늘어나면서 마을의 농산물을 찾는 단골들이 늘어나자 주민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보수가 없어도 체험객이 오면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와서 청소도 하고 밥을 하며 봉사한다.

 

공동작업
모내기, 김매기, 수확까지 모두 공동으로 작업하는 벼농사

 

메뚜기잡기체험
메뚜기잡기 축제를 즐기는 관광객들.

 

재잘재잘 논이야기, 우렁이 잡기 등의 농촌체험은 방문객들에게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향나무와 참나무로 꾸며진 황토방에서의 휴식과 사곡 전망대에서의 내려다보는 풍경은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가을이 되면 열리는 메뚜기 잡기 축제도 마을의 자랑거리다. 논에 메뚜기가 돌아다닌다는건 친환경 농업의 상징과도 같다. 축제 기간이 되면 남녀노소, 유치원 아이들까지 마을에 북적이며 밭에 지천으로 뛰노는 메뚜기를 잡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마을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이곳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촌마을의 장점을 살려 봄이면 산과 들에서 지천으로 볼 수 있는 나물을 직접 채취하고 구별법과 효능도 알아보는 봄나물 채취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가을에 진행하는 송이따기 체험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오랜 역사와 깨끗한 자연이 공존하는 국사골 마을은 도시의 소음과 분주한 생활에서 벗어나 힐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농촌이 주는 아름답고 평온한 순간을 선사하는 휴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노력과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곳 국사골에서 오롯이 힐링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권중신·김민주기자

 

 

 

<우리 마을은>

 

국사골마을 최인기 운영위원장
최인기 위원장

 

최인기 위원장, “유기농 자부심…가공식품 개발 계획”

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인기 국사골마을 위원장은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다 지난 2020년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을 지키고 있다. 4개월 전 위원장직을 제안받은 그가 흔쾌히 자리를 맡을 수 있었던 건 동네의 따뜻한 정 덕분이다. “우리 마을은 31가구, 40명 남짓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다들 돕고 살다 보니 단합이 잘됩니다. 풀 뽑기, 마을 대청소, 메뚜기 잡기 행사 등 마을의 대소사가 있으면 모두들 열일 제치고 달려 나오거든요.”

4개월 차 새내기 위원장인 그는 농촌마을이면 어디나 겪고 있는 노령화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젊은 귀농 귀촌인들이 마을로 많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친환경 농법에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아요. 지금 마을의 청년 농부들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나가서 살다 귀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유기농 농업에 대한 사명감 있는 젊은 청년 농부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오손도손 함께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얻은 노하우를 다들 알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는 국사골마을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은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1차 산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건강한 먹거리를 가공해 다양한 상품들도 만들어 볼 계획을 갖고 있다.

“산과 물, 그리고 풍수적으로도 빠질 것 없는 여행지로 우리 마을이죠. 더구나 조금 덜 알려진 편이고 인적도 드물어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놀러 와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아 갔으면 좋겠어요.”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가볼만한 곳>

회룡포

◇회룡포…용이 만들었다는 육지 속 섬마을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회룡포는 한삽만 뜨면 섬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마을로서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용이 날아오르면서 크게 한 바퀴 돌아간 자리에 강물이 흘러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국가명승 제 16호로 지정돼 있다. 회룡포는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인근 비룡산의 숲속 등산로와 원산성, 봉수대 등 역사적 정취가 숨쉬는 자연공원으로 산책과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 장안사가 산중턱에 있으며 사찰의 뒷산에 올라가면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어 회룡포 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여다 보인다.

회룡포가 알려진 것은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인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소개되면서부터다. 이후 1박2일이 촬영되면서 전국구 명소가 됐고, 최근에는 TV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진이 ‘회룡포’를 열창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삼강주막

◇삼강주막…낙동강ㆍ내륙 잇는 전통주막

 

낙동강 1천300리 중간에 위치한 삼강나루는 강과 내륙을 연결하는 터미널이었다.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시인 묵객,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유생과 보부상, 농사꾼, 뱃사공 등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숙식처가 필요해지면서 삼강주막이 생겼다.

규모는 작으나 본래 기능에 충실한 평면구성으로 건축사적 희소가치와 옛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2006년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치되었으나 2008년 예천군에서 주막의 옛 모습을 살려 복원했다. 주막 부엌의 흙벽에는 젓가락으로 금을 그어 표시한 외상 장부가 있다. 글자를 모르던 주모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막걸리 주전자의 숫자를 표시한 것이다.

주막 건물 뒤에는 수령 약 500년 이상의 회화나무가 서 있어 옛 정취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