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화북면 입석리] 수백년 역사 댐 속에…수몰 아픔 딛고 ‘관광명소’ 거듭나다
용수 공급·홍수예방 위해 댐 건설
입석리 마을 일부 물에 잠겨
20여 가구 ‘은하수 마을’ 이주
새로 지은 마을 깨끗하고 쾌적
영천 화북면 입석리 은하수마을은 긴 산허리를 따라 보현산 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다. 수백년 동안 대를 이어 살던 마을은 댐 속에 수몰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새로 조성된 마을은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깔끔하고 잘 다듬어져 있었다. 댐이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은 모르고 보면 별장 마을인가 싶게 아름다운 동네였다.
은하수 마을의 원래 이름인 입석리는 한글로 풀어내면 선돌마을인데 이름 그대로 마을 입구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댐에 수몰되어 그 바위 역시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바위가 어디쯤에 있는지 눈 감고도 짚어낼 수 있다고 했다. 경로당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물만 가득한 댐 위를 손짓하면서 저기, 저기 하는데 허공을 가리키는 그 손짓이 조금은 애달파 보였다.
마을이 수몰되고 새로 조성된 마을은 밤하늘의 은하수가 유난히 아름다워서 은하수 마을로도 불린다. 영천과 경산에 용수를 공급하고 마을 앞을 휘돌아가던 고현천의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0년 7월, 정부는 보현산 댐을 건설하기로 하고 마을 사람들의 이주를 시작하여 2014년 수몰민의 이주단지인 은하수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다. 댐에는 입석리와 용소리, 하송마을 일부가 수몰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지고 20여 가구가 은하수 마을로 이주한 것이다. 현재 입석리는 은하수 마을을 포함하여 80여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사태가 일어나면 언제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동시에 일어나듯이 입석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등을 기대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타향으로 떠나면서 졸지에 사람들은 이웃을 잃어 버렸지만 은하수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조성되면서 남은 사람들은 주거 환경이 쾌적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여기저기 스며있던 전설들이 사라지고 많은 이야기도 함께 수몰되었다. 지금은 물 위의 허공에서 아득한 옛 이야기를 쓰는 것처럼 댐과 함께 수몰된 전설과 이야기들은 덧없다.
은하수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보현산 댐에는 댐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눈길을 끈다. 무려 530m에 이르는 출렁다리는 말 그대로 사람이 올라가면 흔들리며 출렁거리는 스릴을 느낄 수 있는 다리다.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보현산에서 짚와이어를 타고 발 아래로 댐을 조망하며 가로질러 내려오거나 이 출렁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최고의 놀이 장소로 인기를 끌 듯 하다. 스릴이 싫은 이는 출렁다리 주변으로 조성되는 둘레길을 걷는 힐링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댐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준공
짚와이어 레포츠시설 인기
보현산 자연휴양림 힐링 명소
출렁다리 불빛 ‘야경 명소’ 꼽혀
휴식을 위해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은 짚와이어와 같은 레포츠 시설과 출렁다리에서 스트레스를 풀면서 밤이면 보현산 자연휴양림에서 아름다운 별빛도 볼 수 있다. 특히 출렁다리를 비추는 불빛은 영천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고 있다.
은하수 마을의 뒷산은 영천의 대표적인 산인 보현산인데 이 산의 여러 골짝 중 하나인 먹배기 골짝에는 염천(炎天)의 더위가 기세를 부리는 중복이 되면 노천에 얼음이 생긴다고 한다. 날이 더울수록 얼음은 더 많이 단단하게 생기는데 중복 날이 덥지 않은 해에는 얼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중복날 이 얼음을 먹으면 약이 된다는 전설에 따라 지게에 등겨를 담아 산을 오르는데 얼음을 등겨 속에 넣어오면 잘 녹지 않기 때문이다. 얼음을 캐러 갈 때 고기를 먹고 가면 부정을 탄다고 하여 모처럼 구운 고등어도 못 먹고 얼음을 캐러 간 아쉬운 추억은 입석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노천에 있는 얼음은 흙이 묻어서 겉으로 보기엔 까만 돌처럼 보여 까만 얼음이라고 하는데 이 얼음을 가지고 와서 물에 씻어 먹었다고 한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 이 마을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준 냉동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냉장 냉동 시설이 잘 되어 있는지라 마을 사람 누구도 얼음을 캐러 가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중복날이 되면 산에는 얼음이 얼어 있을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보현산의 한 자락인 마을 윗산은 부약산으로 불리는데 지아비 부(夫)에 약 약(藥)자를 쓴다고 한다. 지아비가 나병에 걸려서 산삼을 캐기 위해 산을 헤매던 여인이 지쳐 잠이 들었는데 꿈에 봉황 두 마리가 날아가는 꿈을 꾸고 깨어나 보니 누운 자리에 산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그래서 이름도 부약산이라고 한다는데 영천은 우리나라에서 산약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없는 약초가 없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약초가 산에서 나오는데 이 부약산의 전설도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마을 이장의 말에 따르면 마을의 산 어디쯤에 고려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장은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허구라는 말도 있지만 이런 설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장의 말에 따르면 산 밭 끄트머리쯤에 가마 모양의 입구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고려장터라고 이장의 어머님이 말씀해 주었다는 것이다. 노인과 함께 삼일치의 식량만 넣어 주고는 입구의 문을 닫아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했다니 이렇게 고려장에 대해서 생생한 증언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수치스러운 풍습이라고 여겨서 어른들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가운데 고려장터도 사라지고 고려장은 하나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상황에서 귀한 증언이었다. 전해지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형은 되었겠지만 이러한 풍습은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 생겨났던 풍습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선돌과 짚은기미, 배나무정이라는 세 개의 부락으로 이루어졌던 입석리는 이제 새로운 마을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마을을 상징하던 선돌은 사라져 입석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그 흔적만 찾을 뿐이지만 보현산 댐의 출렁다리와 짚라인, 보현산 자연휴양림으로 자연 속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옛 것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산골마을이 출렁다리의 아름다운 야경처럼 아름답게 빛나기를 기대한다.
서영진기자·천영애시인
<우리 마을은>
구본문 이장 “관광지 조성에 돌아오는 사람 늘어”
입석리 구본문 이장은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현재 보현산 자연휴양림에서 근무하는 이장은 쉬는 날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일을 돌보고 있다. 시골의 여느 마을이 그렇듯이 입석마을도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나마 보현산댐의 출렁다리와 짚와이어, 보현산 자연휴양림 등의 관광지가 조성되면서 마을로 돌아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입석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구본문 이장은 지금도 댐에 수몰된 마을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마을의 맞은 편 산 허리를 돌아가던 강과 그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던 들판이 모두 수몰되면서 마을 사람의 일부는 다른 지역의 땅을 구해서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이주를 했고, 일부는 도시로, 일부만 여기 남았다. 매년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이 모여 대동계를 열지만 예전과 같은 흥성거림은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어 아쉽다고 했다.
복숭아와 포도, 사과가 농사의 주요 생산 품목인데 산 마을이라서 그런지 과일맛은 일품이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아쉬움은 없었을까.
“무슨 일이든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함께 있잖아요. 우리 마을도 수몰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어릴 적 놀던 마을이 이젠 흔적도 없어서 아쉽지만 댐과 함께 마을이 관광지로 거듭나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은하수 마을도 시골 마을로는 보기 드물게 주거 환경이 좋잖아요. 이주 마을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주거 환경을 갖춘 마을로 거듭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장의 말처럼 마을은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마을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을 것이다. “시골 마을 어디라도 그렇지만 여기도 인심이 참 좋았어요.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가족이나 친척처럼 지냈거든요. 지금 여기 남아 계시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예요. 수자원 공사에서 깨끗한 마을을 조성해 준 덕분에 주거 환경은 시골 마을로는 최고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이장이라고 왜 아쉬움이 없겠는가. “그러나 전 늘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나쁜 일도, 절대적으로 좋은 일도 없죠. 그냥 상황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앞으로 출렁다리가 개통되면 마을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야경 한번 보셨어요? 출렁다리 야경이 정말 아름다워요. 마을의 밤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죠.”
항상 긍정적인 면을 찾는 이장의 말은 그래서 생기가 있었다. 마을을 찾은 날도 마을 뒤 보현산에는 짚와이어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고, 아직 개통하지 않은 출렁다리를 아쉽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숙박과 놀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입석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천영애시인
<가볼 만한 곳>
◇보현산댐 짚와이어…시속 100㎞ 짜릿한 스릴
보현산댐이 보이는 은하수 마을의 뒷산인 보현산에서 출발하여 댐 건너편까지 한 줄의 와이어에 몸을 싣고 낙하하는 레포츠 시설이다. 고도차가 345m, 낙하하는 거리가 1,411m에 이르는 짚와이어는 매표소에서 짚와이어 출발지까지 산악용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다. 최고 100km/h의 속도를 자랑하는 짚와이어는 90초 정도의 시간에 완주할 수 있을 정도로 스릴감을 자랑한다.
◇보현산 자연휴양림…천혜의 자연공간서 힐링
소나무가 좋은 보현산 자연휴양림은 휴양림 내에서 산책과 휴양, 휴식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공간이다. 목재체험관에서 목공체험을 할 수도 있으며, 휴양관 외에 별도로 야영을 할 수 있는 야영데크 9곳도 조성되어 있다. 숙박시설로는 숲속의 집 14호와 휴양관 8호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림치유체험관에서는 VR체험을 할 수 있다. 명상치유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별빛이 아름다운 보현산의 자연휴양림은 여유롭게 산 속 생활을 즐겨볼 수 있는 곳이다.
◇오리장림…300그루 아름드리 나무 장관
영천시 화북면 자천마을 주변에 2km에 걸쳐 있는 천연기념물 제404호의 나무숲이다. 바람과 홍수를 막고 제방을 보호하려고 약 400여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만든 것이라고 전해져 온다. 숲이 자천리 일대 좌우 5리(2km)에 걸쳐있어 오리장림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국도 확장공사로 많이 잘려 사라졌다. 그렇지만 수령 150년이 넘는 굴참나무, 은행나무 등 10여종 300여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여전히 장관을 이룬다. 자천리에 있어서 자천숲이라도 부르며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봄에 숲의 잎들이 무성하면 그 해에는 풍년이 온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