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높고 평야있는 최적의 땅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10곳 피난처 중 1등으로 꼽아

 

소백산 자락 노적봉과 갈매봉 줄기가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아 마치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 지세를 갖고 있는 금계마을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서 말하는 십승지 중 제1승지로 꼽히는 마을이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풍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삼과 인견이다. 풍기인삼, 풍기인견은 이제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불린다. 풍기읍내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인삼과 인견이라고 적힌 간판을 만날 수 있다. 풍기역에서 2km 남짓이면 닿는 영주시 풍기읍 금계마을 입구에는 ‘鄭鑑錄 第一勝地 豊基人蔘 始培地 金鷄一里’(정감록 제1승지 풍기인삼 시배지 금계1리)라고 한자로 쓰여진 커다란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마을 입구에는 정감록 제1승지이자 풍기인삼시배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조선시대의 예언서 ‘정감록’에서는 전쟁, 흉년, 전염병이 들어올 수 없는 10곳의 피난처, 십승지(十勝地)를 이야기한다. 어수선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이상향으로 여겨졌던 승지는 대부분 마을을 둘러싼 산이 높아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으며, 중간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으로 환난을 피해 자손을 이어갈 수 있는 최적의 땅에 자리잡고 있다. 금계마을은 이러한 십승지 중에서 제1승지로 꼽히는 곳이다.

 

십승지터에는 마을의 역사와 풍수에 관한 비석이 서있다.

소백산 자락 노적봉과 갈매봉 줄기가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아 마치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 지세를 갖고 있는 금계마을은 임실(부계밭), 잿밭, 소발리, 공원산, 용천동 등 5개의 산재부락으로 되어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잘 조성된 무궁화길을 따라 가다보면,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에 십승지터가 자리잡고 있다. “동국의 명승이요 세상을 기리는 보배로다, 적선한 집안의 후손이라야 들어가 살리라. 금계가 첫째이니 좋은 운이 천년에 뻗으리라”로 시작되는 풍수이야기와 마을의 역사를 담은 비(碑)가 보이고, 바닥에는 전국의 십승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석도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해마다 음력 2월 15일에 동제를 지내는 제단도 마련되어 있다.

 

풍기인삼 시배지 앞에 세워진 개심각.

 

 

주세붕 풍기군수 인삼 첫 재배
풍기인삼 탄생 주제 마당극 제작
주민 연기·감독…절로 어깨 들썩

금계마을은 마을 표지석에서 알 수 있듯이 풍기인삼이 처음으로 재배된 곳이기도 하다.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나라에 공물로 바치는 산삼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을 보고 소백산에서 산삼 종자를 채취해 이곳에서 처음으로 인삼 재배를 시작했다. 최초의 인삼농사를 지었던 밭 앞에는 주세붕 선생을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개삼각이 자리잡고 있다. 2017년 건립된 개삼각에서는 해마다 5월 8일에 개삼제를 여는데 이때는 함안 무릉마을에서 주세붕 선생의 후손들도 마을을 찾는다. 지난 2020년에는 TV조선 ‘뽕숭아 학당’에서 트롯맨 F4(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이 앞에서 촬영을 해 전국적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풍기인삼의 탄생을 알리는 ‘금계야, 날아라’는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으로 펼치는 마당극이다.

 

주세붕 선생의 활약과 풍기인삼의 탄생과정은 마당극 ‘금계야, 날아라’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백성들이 처음으로 풍기인삼 길러낸 곳, 세워보세, 세워보세, 개삼터를 세워보세” 신나는 노래가락에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해지는 마당극에 등장하는 13명의 배우와 2명의 감독 모두 마을 주민이다. 아마추어라고 해서 어설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60세부터 76세의 마을 주민이 30여분간 펼치는 마당극은 2022년 영주 세계풍기인삼 엑스포에서도 선을 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을의 주수입원 사과
풍기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한 마을이지만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사과 농사를 짓는다.

풍기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한 마을이지만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사과 농사를 짓는다. 여느 시골 마을처럼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인삼을 경작할 인력이 없고 인삼의 소비가 줄어 값이 떨어진 것도 이유다.

정감록의 제1승지마을로 알려진 덕분인지 금계마을에는 6.25때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지금은 피난 1세대 어르신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2세대 몇 가구가 남아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풍기읍 체육대회를 하면 우승을 도맡아 할 정도로 활기찬 마을이었지만 현재 164세대, 350여명에 이르는 주민의 평균연령이 70세를 넘어서고 있어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정감록 제1승지 마을, 풍기인삼 시배지라는 의미있는 마을이 고령화로 점점 쇠퇴해지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주민들은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마음을 하나로 모을 방안을 궁리했다. 대를 이어 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집성촌이 아니고 외지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많아서인지 그동안은 ‘우리 마을’보다는 ‘우리 집’이라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부녀회, 노인회, 청년회가 고민한 결과 노후된 마을회관 리모델링을 통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마련했다. 회관 앞에 쓰레기 분리수거 집하장을 만들어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분리수거 행사도 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한다. 함께 꽃을 심고 풀도 뽑으며 자주 만나다 보니 ‘우리 마을’이라는 공동체 의식도 높아지고 화합은 저절로 되기 시작했다.

 

 

 

창조적마을가꾸기 사업 진행
스마트건강관리시스템 구축
市보건소에 데이터 바로 전송

 

마을 회관에 마련된 U헬스존
마을 회관에 마련된 U헬스존

2013년부터 시작된 ‘농촌건강장수마을’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의 건강관리는 물론 서예, 공예, 건강체조, 풍물 등 다양한 동아리활동도 시작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마을회관에 심장제세동기, 음파진동마사지기, 안마의자, 각종 운동기구까지 갖추고 U헬스존을 만들어 스마트건강관리 시스템도 구축했다. 마을회관에서 혈압 등 건강상태를 체크하면 영주시보건소로 바로 데이터가 전송돼 어르신들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한다.

 

마을 제방길을 따라서 사과나무길이 조성되어있다.
마을 제방길을 따라서 사과나무길이 조성되어있다.

 

십승지 터부터 7㎞ 사과나무
인삼축제 걷기대회 코스 포함
코로나로 중단된 음악회 재개

 

마을에는 특별한 가로수길이 있다. 십승지터에서 이어지는 제방길에는 사과나무가 나란히 줄지어 서있고 마을 입구에서 금계천을 따라서 무궁화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7km에 이르는 사과나무 길은 봄에는 하얀 사과꽃이, 가을에는 빨간 미니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길은 가을에 열리는 영주풍기인삼축제 행사의 ‘소백힐링 걷기대회’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길을 걷는 참가자들은 출발할 때 나눠준 봉지를 들고 길가에 열린 미니사과를 따는 재미있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오는 9월 2일에는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마을음악회도 다시 열린다. 국수와 팥빙수 등 마을에서 준비한 음식도 먹고 주민 노래 자랑, 초대가수 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음악회는 이웃마을 주민들까지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날 마을 배우들이 펼치는 마당극도 무대에 오른다.

과거에는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제1승지로 꼽혔던 금계마을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조용하고 인심좋은 금계마을에 청장년층이 많이 들어와 새로운 활력이 더해지기를 바라본다.

김교윤·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이장길 금계마을 이장
이장길 금계마을 이장

 

이장길 이장 “볼거리ㆍ먹거리 넘치는 문화마을 조성 계획”

“토박이는 아니지만 금계마을로 이사온지 2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마을 사람이 다 됐지요”

농협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하고 풍기에서 농기구수리센터를 하고 있는 이장길(70) 이장은 9년째 이장직을 맡아 마을 대소사를 두루두루 챙기고 있다.

“금계마을이 제1승지 마을이라는 자부심이 큽니다.”

이 이장은 ‘지붕없는 박물관 사업’의 일환으로 금계마을을 십승지 문화마을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마을 회관 앞에 건물을 짓고 주세붕 역사관이나 문학관으로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마을에는 한해에 700~800명 정도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단체 관광객이 찾아오면 지금은 이장이 직접 마을회관에서 차도 대접하고 십승지터와 개심각 등 곳곳을 함께 다니며 해설사 역할도 자처한다.

마을을 찾는 이들을 위한 볼거리는 물론 먹거리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인삼을 활용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나 카페도 생각중이다.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우리 마을로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온 어르신들의 지나온 삶도 기록으로 남겨 오랫동안 지켜갈 생각이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금계마을 사람박물관을 준비중입니다.” 사람박물관은 마을 주민들의 생애를 담은 이야기책이다. 일단 마을에서 40년 이상 사신 분들의 이야기부터 차곡차곡 담기 시작할 생각이다.

마을 주민이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마당극 ‘금계야, 날아라’ 외에 금계주를 주제로 한 새로운 작품도 구상중이다. 시나리오는 벌써 써놓았다고 하니 아마 내년쯤에는 새로운 마당극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일정과 앞으로의 계획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마을에 애정을 쏟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

◇소수서원…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

소수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개 중 하나다.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인 안향을 기리고자 세운 ‘백운동서원’이 1550년 퇴계이황의 건의로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소수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수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수령이 3백년에서 천년에 이르는 500여그루의 적송이 군락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2023~2024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서원에 들어서면 안향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와 안향과 주세붕, 이덕형 등 6명의 초상을 봉안한 영정각,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강학당, 장서를 보관한 장서각 등이 있다.

취한대와 경렴정 등의 정자에서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서원 앞 개울 건너편 바위에는 주세붕이 직접 쓴 ‘경’(敬)자가 붉게 새겨져 있다.

 

가볼만한곳-금선정

◇금선정…자연 그대로의 바위 위에 조화롭게 배치

1781년 풍기군수 이한일이 금계 황준량(1517~1563)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과 함께 세운 정자다. 500년 세월의 소나무숲 사이로 금선대라 불리는 너른 바위 위에 얹힌 금선정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살려 조화롭게 배치했으며 모든 기둥의 길이가 다른 것이 특색이다. 금선정사에서 학문에 몰두하던 황준량 선생이이곳을 자주 거닐었다고 알려져있다. 금선정 위쪽으로는 황준량 선생 추모비가 있고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인 계양정이 자리잡고 있다. 옆으로 누워 자라는 소나무도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