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신평벽화마을] 동화 속 주인공이 반기는 곳…잠자던 동심 깨우다

市-LG-주민-사회복지단체
3년간 힘모아 다채로운 그림
지역 예술인들도 모여들어
생기 넘치는 벽화거리 조성
골목길 보안등·로고젝터 설치
칙칙하던 마을 밝고 안전하게
마을 전경 한눈에 보이는 갈뫼루
관광객들 필수 코스 자리잡아

 

 

 

세월이 변해도 순수한 동심의 세계는 꽤 오래 간직되곤 한다. 구미시 신평2동 신평벽화마을에 가면 ‘키다리 아저씨’, ‘빨간머리 앤’, ‘플란다스의 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어릴 적 봤던 명작동화 속 주인공들이 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동심의 길로 안내한다. 햇살이 뜨겁지만 발길이 닿는 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알록달록 정겨운 그림이 그려진 담벼락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신평벽화마을은 구미 IC에서 차로 5분 거리, 국도 33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해있다. 과거 밀양박씨, 달성서씨, 동래정씨, 창녕조씨 등이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로 큰 들에 마을이 새로 생겼다는 뜻을 담아 신평(新坪)이라 불렸다. 1965년 구미시 공단동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그 땅에 살던 주민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을 내주고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잡은 곳이 신평2동이다. 그래서인가, 마을 주민들에게는 오늘의 구미를 있게 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과거에는 금오공과대학교와 국가산업단지로 많은 사람이 거주하던 곳이었지만 대학교 이전과 산업단지 확장으로 거주 인구가 감소하면서 마을에는 빈집이 많아지고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5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은 마을 곳곳에 남겨졌고, 마을 환경 개선이 필요해졌다. 마을 주민은 물론 구미시와 사회복지단체, LG 기업이 함께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 마을의 환경 개선을 위해 2019년부터 3년간 벽화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LG경북협의회, 금오종합사회복지관의 ‘행복한 신평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2019년 6월, 낡은 담벼락에 벽화마을의 시작이 될, 첫 그림이 그려졌다.

‘꿈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화가들이 그린 밑그림에 주말마다 주민들과 LG 임직원, 자원봉사단체가 색을 채웠다. 전문 예술인부터 동네 주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이 더해져 1.6km가 되는 거리에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2020년에는 구미시에서 마을을 위한 도움을 더했다. 신평2동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술인들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공간의 품격 제고를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동네 미술’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벽화와 조형물을 구성할 수 있는 거리가 2.8km로 늘어나게 됐다.

캔버스 대신 담벼락이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지역 예술인들이 마을로 모여들었다. 마을 주민들도 벤치 마킹을 위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벽화마을을 조성한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과 전주 자만벽화마을에 직접 방문해 벽화 콘텐츠 선정, 벽화 유지 보수 방안 등을 물었다. 열의 가득한 질문 속에는 신평2동만의 장점을 살려 독창적이고 생기 넘치는 벽화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때 명작 동화의 스토리를 마을 주민들의 삶과 융화해서 그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마을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희생과 용기’, ‘배려와 응원’, ‘인내와 행복’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명작동화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플란다스의 개’가 벽화의 주제가 됐다.

 

비좁은 골목길, 낮은 건물 외벽, 촘촘한 지붕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전문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색칠을 했다. 3년간 벽화 조성에 참여한 봉사자는 500여명이 넘는다. 한 명이 그린 것이 아니니 벽화마다 그림체가 살짝 다른 것도 오히려 보는 재미를 준다. 전봇대에도 색을 채우고 각 코스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그려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벽화와 설치물이 주민들이 기르는 화분들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벽화마을 자체가 크지 않아 산책하듯 느긋하게 거닐며 벽화와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모두 둘러보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신평벽화마을에서는 한류스타도 만나볼 수 있다. 케이팝 솔로가수 황치열이 그 주인공이다. 신평2동에 위치한 신기초등학교를 졸업한 황치열은 구미시가 낳은 스타로 성장하며 신평벽화마을 담벼락 한 공간에 그의 타일 벽화가 조성됐다. 덕분에 신평벽화마을은 황치열의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말레이시아, 중국 등의 해외 팬들이 기념 사진을 남기고 가는 주요 관광 코스가 됐다. 가수 황치열도 지난 설 연휴 기간에 직접 마을을 찾아 자신의 벽화를 구경하고 가기도 했다.

 

신기초와 마을의 경로당 사이 키다리 아저씨 조형물을 따라 언덕을 살짝 오르면 신평벽화마을의 또 다른 명소, 갈뫼루에 도착한다. 금오산의 너른 품안에서 흐르는 낙동강과 구미 도시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갈뫼루는 마을을 들린 관광객들이 꼭 함께 들르는 코스이다.
과거 마을 근처 비산마을에는 신라 때부터 물물교역의 중심에 있던 비산 나루터가 있었다. 비산 나루터는 근대까지 선산 남부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며 물자교역과 각 지역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부산 등 아래쪽 항구에서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을 내려 장사하던 매우 큰 시장이 있었는데, 그 시장의 이름이 갈뫼시장이였다.

 

 

2016년 비산 나루터와 갈뫼시장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갈뫼루를 세웠다. 갈뫼루에서 남쪽을 향해 내려다보면 구미시가 한눈에 보인다. 아파트 너머 구미의 명산 금오산도 찾아볼 수 있다. 북쪽을 향해 내려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풍광 또한 장관이다. 뜨거운 한여름에도 땀이 식을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 마을 주민들은 갈뫼루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신평벽화마을은 앞으로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구미경찰서, 자율방범대, LG디스플레이는 ‘LGD 폴벤져스’를 만들어 어두운 골목길에 LED보안등과 로고젝터를 설치하고 야간 합동 순찰을 돌면서 주민들이 바라던 낮에는 활력있고, 밤에는 안전한 마을을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내 자생단체들은 서로 힘을 모아 마을을 위해 봉사한다. 오래된 간판을 새로 교체하고, 부족한 주차 공간을 확장하면서 칙칙하던 마을 곳곳이 밝고 안전하게 변모했다. 그 덕분일까. 최근엔 젊은층들이 모여 들어 맛집 등 상가도 조금씩 들어서고 있다.

누구나 내가 사는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지금의 구미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터전을 내어주고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의 마음을 알아주듯, 세월의 흐름에 점차 낙후되던 동네를 밝고 환하게 만든 건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 덕분이었다. 그렇게 신평벽화마을은 새로운 옷을 입고 동화 속 그림같은 아름다운 골목으로 많은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장소가 됐다.

최규열·김민주기자

<우리 마을은>

 

류경열 주민자치위원장 “벽화 하나로 마을이 참 따뜻해졌죠”

류경열 주민자치위원장은 공단동에서 태어나 1973년 국가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부모님 손에 이끌려 신평2동으로 이사를 왔다. “공단단지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이주한 세대만 246세대에요. 모두 구미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살던 땅을 헐값에 내주고 여기로 와 각자 구역을 나눠 집을 정했죠. 옛날에는 금오공대와 공단 때문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살았어요. 지금은 많이 떠나고 동네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남았죠.”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50년이 넘도록 마을이 변화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흐르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듯 주민들도, 마을도 점차 노후화되는 모습을 보던 그는 더 늦기 전에 마을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평2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마을이 발전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2019년 기업 LG가 마을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 ‘행복한 신평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낡은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지자 마을도 점차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전문 화가들이 그려놓은 그림에 색을 칠하러 많은 봉사자들이 마을을 찾았다. 처음엔 물 한 잔씩 내어주며 고마움을 표하던 주민들도 점차 함께 거리에 나섰다.

“동네를 돌아다니면 제가 색칠한 그림 앞에는 유독 더 머물게 되죠. 어린 왕자의 깃, 장화, 머리, 별까지 주민들이 함께 모여 색칠을 했어요.” 벽화가 늘어날수록 동네를 방문하는 외지인이 많아졌지만 거리는 점점 깨끗해져갔다. “벽화마을이 조성되고 골목길에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변화하는 동네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벽화 하나로도 마을의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마을이 참 따뜻해졌죠.”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다양하다. 산책 삼아 마을을 찾은 구미 시민,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 황치열의 벽화를 보기 위해 온 해외 팬들도 있다. 신평2동 이금향 동장은 먼 곳에서 우리 마을을 방문한 황치열의 해외 팬들을 위해 직접 행정복지센터에서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제는 벽화 골목 탐방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최근 백종원 유튜브 ‘님아 그 시장을 가오’, EBS ‘고향민국’ 등 많은 TV 프로그램에서 갈뫼루의 풍경을 담아 갔어요. 갈뫼루에서 바라본 금오산과 낙동강의 풍경은 주민인 제가 매일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지죠.”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구미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갈뫼루 앞에 나무를 이용한 포토존을 만들어 마을로 견학을 오는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구미시의 도움을 받아 가수 황치열을 스토리텔링해 벽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만들어 마을이 한류관광 코스로 발돋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가볼만한 곳>

◇지산샛강생태공원

지산샛강 생태공원은 지산을 흐르던 샛강이 구미공단 조성으로 물길이 줄어 만들어진 습지를 그대로 보존해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재탄생 시킨 곳이다. 도심에서 자연의 생태를 즐길 수 있어 체험학습장으로 인기가 있으며 접근성이 좋아 인근 주민들의 저녁 산책을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갈대, 겨울에는 고니떼 등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샛강 전망대에 올라 철새들의 비상을 감상할 수도 있다. 특히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가시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수생식물과 습지생물은 물론 멸종 위기의 수달과 고니도 만나볼 수 있다. 2015년부터는 연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지산샛강생태문화축제도 열리고 있다.

 

◇도리사

구미 해평 태조산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했다고 한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 숙종 3년(1677)의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 뒤, 영조 5년(1729년)에 아미타불상을 개금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도리사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아도화상 석상·세존사리탑·아도화상 사적비, 조선 후기의 탱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