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인물 조선 성리학자 김우옹
속자치통감강목 저술 판목 보관
1729년 청천서원 만들어 봉향
1868년 훼철됐다 1992년 복원
주민들 ‘한옥카페 청천’ 새단장
떡·한과 만들고 맨발걷기 체험
2023년 관광두레 공모 ‘으뜸’

 

성주군 대가면 칠봉2리 사도실마을은 600여년을 이어온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동강 김우옹 선생과 그의 13대손이자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을 배출한 유서깊은 마을이다. 칠봉산 자락에 안긴 20여호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성주군 대가면 칠봉 2리, 사도실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배롱나무가 가지를 넓게 펼치고 진분홍 꽃들을 휘날리며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잡는다. 겉껍질을 벗겨낸듯 매끈하고 하얀 외피가 겉과 속이 같은 선비의 청렴결백함을 닮아 서원이나 정자 옆에 심어왔다는 배롱나무가 독립운동가의 산실이자 조선시대 사대부 명문집안의 전통이 깃든 이 마을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옆으로는 창녕조씨 열부각과 독립유공자 직산 김창열선생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다.

 

사도실 마을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배롱나무. 옆으로 창녕조씨 열부각과 독립유공자 직산 김창열 선생 기념비가 있다.
사도실 마을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배롱나무. 옆으로 창녕조씨 열부각과 독립유공자 직산 김창열 선생 기념비가 있다.

 

사도실 마을은 600여년을 이어온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대과급제자가 5명이나 되고, 심산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를 5명이나 배출한 유서깊은 마을이다.

통일신라 이래로 마을 앞을 흐르는 사천(沙川)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칠봉산 월명봉(月明峰)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사월(沙月)이라 부르다가 동강 김우옹 선생의 후손들이 도덕과 윤리를 사모한 선생의 뜻을 기려 사도실(思道室)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청천서원은 동강 김우옹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2년 복원됐다.

 

 

청천서원은 동강 김우옹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2년 복원됐다.
청천서원은 동강 김우옹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2년 복원됐다.

 

청천서원에서 내려다보면 칠봉산 자락에 안긴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강 김우옹(1540~1603) 선생은 한강 정구(1543~1620) 선생과 함께 성주권의 양강(兩岡)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로 정치적, 학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선생을 배향하는 청천서원은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의 세심교(洗心橋)다. 양 옆으로 해태가 지키고 있는 구름다리를 지나 서른개 남짓한 계단을 오르면 ‘올바름을 지킨다’는 수정문(守正門)을 만난다.

 

청천서원에서 내려다보면 칠봉산 자락에 안긴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면 칠봉산 자락에 안긴 20여호 남짓한 고즈넉한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청천서원
청천서원의 일중당에 걸린 현판은 백범 김구 선생의 글씨다.

 

청천서원은 영조 5년(1729)에 창건되었으나 고종 5년(1868)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2년에야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서원의 강당인 일중당에 걸려있는 편액은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이다.

 

성주마을이야기속자치통감강목판목
속자치통감강목 판목

 

심산 김창숙 생가

수정문 옆에 자리한 경정각에는 김우옹 선생이 저술한 속자치통감강목을 판각한 속자치통감강목판목(경북 유형문화재 259호)이 보관되어 있다. 속자치통감강목은 1589년 기축옥사로 유배를 떠난 선생이 중국 송나라 태조 원년(960)에서 명나라 태조 원년(1368)까지 408년 간의 중국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36권 20책의 분량을 673매의 배나무 목판에 새겨 보관중이다.

선생의 13대손인 심산 김창숙(1879~1962)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고, 광복 후에는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해 초대총장을 지내는 등 민족사학 육성에 힘을 쏟았다.

 

 

성주마을이야기심산김창숙생가

청천서원에서 조금 걸어내려가면 선생의 생가인 심산고택을 만날 수 있다.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두 아들을 잃고 일본군의 고문에 다리가 마비되어 앉은뱅이 노인이라는 뜻의 벽옹( 翁)이라는 별호를 쓰기도 했다. 선생의 삶 속에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생가는 선생의 며느리가 지켜오다 지금은 비어있다.

청천서당은 청천서원이 훼철된 후 김호림 선생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이후 김창숙 선생이 이곳에 성명학교를 열어 애국계몽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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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서당은 청천서원이 훼철된 후 김호림 선생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이후 김창숙 선생이 이곳에 성명학교를 열어 애국계몽활동을 펼쳤다.

 

심산고택에서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곳에는 청천서당이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261호인 청천서당은 청천서원이 훼철된 후 김우옹의 12대손이자 심산의 아버지인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청천서당 대청 중간기둥에 성명학교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유학을 가르치던 서당에 학교라는 현판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심산 선생이 1910년 서당을 성명학교로 바꾸고 이곳에서 신학문을 가르치며 애국계몽활동을 펼쳤다. 이 때 지역의 유생들은 “심산때문에 유림이 망한다”며 반대를 했지만 선생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성주마을이야기체험
한옥카페 청천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20여가구 30명 남짓한 주민이 거주하며 참외와 벼농사 등을 짓고 있다. 퇴직 후 귀향, 귀촌한 이들도 많아 주민의 평균 연령이 65세를 넘어서며 실제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많지 않고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만드는게 급선무였다. 주민이 주인이 되어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내 한옥카페 청천을 열었다. 그동안 전국에서 동강과 심산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을을 찾는 이가 많았지만 주변에 마땅히 휴식이나 체험 공간이 없어 안타깝던 차였다. 무조건 문을 닫아걸고 보존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드나들고 이용해야 더 빛이 나고 오래간다는 것에 마을 어르신들도 뜻을 같이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청천서원에 문을 연 ‘한옥카페 청천’은 건강환 만들기, 참외·복숭아 등 과일청과 곤약젤리 만들기, 호두·도라지 등 각종 정과, 떡만들기, 전통한과 만들기 외에도 서원 마당 맨발 걷기 등 힐링과 건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체험형 카페다. 김장체험도 몇년 째 이어오고 있다. 색이 고운 꽃차를 직접 티백으로 만들고 차를 우려내 마시는 프로그램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어 인기다. 모든 프로그램은 예약을 통해서 이용이 가능하다.

한옥카페 청천은 2023년 관광두레 공모사업에서 으뜸두레로 선정됐다. 서원이 새단장을 끝낼 가을이면 역사 속 이야기를 담은 한옥체험도 할 예정이다.

성주하면 참외를 떠올리는 이가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적, 지리적 명소를 많이 품고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성주를 천천히 머물고 가는 관광지로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사도실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성주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에서는 2km, 3분 남짓이면 닿는다. 가야산을 비롯한 성주의 명소 어디를 가더라도 15~20분 내외면 닿을 수 있다. 대구지하철 2호선 문양역까지도 25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다.

 

성주마을이야기심산문화테마파크
칠봉산 자락에 조성중인 심산문화테마파크 조감도.

 

 

독립운동 앞장선 김창숙 선생
서당, 애국계몽운동 거점 활용
청천서원 마주한 칠봉산 자락
심산문화테마파크 조성 공사
김창숙 선생 정신과 관광 접목
내년 개관…활력 촉진 기대감

 

사도실 마을은 물론 성주를 체류형 관광지로 변신시키기 위한 노력은 심산문화테마파크 조성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청천서원에서 마주 보이는 칠봉산 자락에 조성중인 심산문화테마파크는 7만8천㎡의 부지에 심산 휴(休)문화센터, 칠봉산 휴(休)테마관 등 전시·공연, 교육 시설과 휴양·숙박시설 등을 갖출 예정이다. 심산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지역 문화관광 콘텐츠에 접목해 조성중인 공원이 1차 사업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내년 1월 즈음이면 소멸위기의 마을은 물론 성주군 전체에 활기가 넘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추홍식·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김민수 대표, 김영 노인회장, 배우경 이사, 정창수 이장(왼쪽부터)
김민수 대표, 김영 노인회장, 배우경 이사, 정창수 이장(왼쪽부터)

 

정창수 이장 “심산문화테마파크 중심엔 우리마을, 책임감 가질 것”

“우리 마을은 인심이 좋고 알아서 화합하고 단결해서 다들 잘하니 제가 입 댈 것은 없어요. 다른 마을에서 다들 부러워하지요”

마을토박이인 정창수(65)이장은 30대 때부터 30여년간 이장직을 맡아왔다. 그간 힘든 일이 왜 없었겠냐만 묵묵히 마을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역할을 자처한다. “사도실마을은 수십년간 범죄없는 마을입니다. 인심히 후해 외지인들이 들어와도 텃세도 없어요.”라며 덧붙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마을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게 아니다. 사도실마을 역시 주민수는 적지만 마을 일이라면 열일 제치고 앞장서는 사람들이 많다. 이장이 마을의 대소사나 행정적인 일을 두루두루 살핀다면 공직에서 퇴직 후 귀향한 김영(78) 노인회장은 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는데 힘을 쏟는다. 성균관 전학이기도 한 김회장은 외지에서 마을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심산고택과 청천서당의 문을 열어주고 해설사 역할을 자처한다. 얼핏 본 그의 수첩은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전통을 현대와 접목해 마을의 문화적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한옥카페 청천을 운영하는 주민사업체 ‘청담1942’의 몫이다. 맑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곳이라는 의미에 심산선생이 고향에 돌아온 해를 기념해 이름을 지었다. 김민수 대표와 배우경 이사는 어떻게 하면 옛것을 잘 접목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각자 맡은 부분은 달라도 마을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같다. 이들 모두 심산문화테마파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심산문화테마파크는 관광객들이 여러곳을 돌아다닐 필요없이 그곳에서 먹고, 놀고, 숙박까지 할 수 있는 시설로 조성됩니다. 그곳을 거점으로 관광객들이 머물면서 성주의 가야산, 성주호, 포천계곡 등 아름다운 풍광과 한개민속마을, 세종대왕자태실, 성산동 고분군 등 역사적 유적도 즐길 수 있어서 앞으로 성주관광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중심에 사도실 마을이 있으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옥련생태공원

◇옥련생태공원

사도실마을에서 5분거리에 있는 옥련생태공원은 지산지로도 불린다.

잘 꾸며진 연못 중간에 정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고 돌다리와 데크로드를 따라 100여 종류의 수련과 수생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아직은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라 조용하게 탐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회연서원

◇회연서원

조선 선조때 문신이었던 한강 정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회연서원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51호이다. 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한강선생이 회연초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라고 알려져있고 서원 앞뜰에는 한강선생이 백매원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그시절 매화나무는 두세그루만 남아있지만 봄이면 매화와 어우러진 서원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찍기 좋은 명소이기도 하다. 서원 뒤편에는 무흘구곡 중 1곡인 봉비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