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빨래터 현대적 재해석
주민 모여 동네 사랑방 역할도
마을축제때 하얀저고리 입고
머릿수건 쓰고 퍼포먼스도

 

경주 안강읍 산대11리, 화전마을은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아파트나 빌라 등이 많이 눈에 띄어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마을이 갖고 있는 ‘정’이 살아있는 곳이다. 칠평천의 물이 흘러들어오는 화전빨래터는 주민들의 마음세탁소로 불린다.

 

경주 안강읍 산대11리, 화전마을은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아파트나 빌라 등이 많이 눈에 띄어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마을이 갖고 있는 ‘정’이 살아있는 곳이다. 칠평천의 물이 흘러들어오는 화전빨래터는 주민들의 마음세탁소로 불린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수도시설이 없었던 과거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여 빨래를 했다. 그시절 빨래터는 단순히 빨래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바깥 출입이 쉽지 않았던 여인들이 눈치보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빨래를 두드리고 치대면서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씻어내던 곳이었다. 이제는 수도시설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세탁기가 보급되어 빨래터는 그저 옛 이야기 속 공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경주시 안강읍 산대 11리, 화전마을에서 이제는 잊혀진 정겨운 빨래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경주시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안강읍은 교통의 요지다. 경주는 물론 포항, 영천도 20분 내외면 닿는다. 안강IC에서 5분여 달리면 닿게 되는 산대11리는 지난 2021년 1월 산대4리에서 분리가 된 신생마을이다. 땅이 척박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던 땅에 유일하게 잘 자라던 작물이 목화라 가을이 되면 꽃처럼 하얀 목화가 만개해 화전(花田)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지금은 그 땅에 대부분 아파트가 들어서 예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간간이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목화를 볼 수 있다.

1천여세대 2천7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은 교통이 편리하고 주거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 도시의 삭막함과 번잡함을 피해 이곳에 거주하면서 도시로 출퇴근 하는 이들도 많다. 벼농사를 비롯해 토마토와 멜론 등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도농복합마을의 이야기다.

화전마을의 특별함은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잡초 하나 눈에 띄지 않는 잘 정돈된 잔디밭을 지나 걸어 들어가니 팔각정과 벤치, 운동기구 몇가지, 그리고 작은 시내가 보인다. 그 사이사이로 알록달록 예쁘게 핀 꽃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작은 시내로 보이는 곳은 일제 강점기때 일본군의 수로였다. 칠평천의 물이 흘러들어오는 이곳은 수문을 닫아놓았을 때는 지하수가 흘러나온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풍경은 부녀회원들이 연출한 빨래터 퍼포먼스로 가을에 열릴 마을 축제때 선보일 예정이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라는 현수막 아래 화전빨래터라는 글씨가 보인다.

요즘 세상에 웬 빨래터인가 싶었는데 과거에 마을 어르신들이 멱도 감고 빨래도 하던 곳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되살렸단다. 빨강, 노랑, 분홍, 색색깔의 백일홍이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사이로 하얀저고리에 꽃무늬의 일바지를 입고 머릿수건을 쓴 여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빨래를 물에 담궜다가 치대고 방망이로 신나게 두들겨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이 모습은 부녀회원들이 연출한 퍼포먼스로 가을에 열릴 마을 축제때 선보일 예정이다.

이름만 빨래터인건 아니다. 실제로 주민들은 집에서 빨기 어려운 커다란 돗자리같은 것들을 이곳에 갖고 와서 씻는다. 환경보호를 위해 화학 세제는 금지다.

주민들은 화전빨래터를 ‘마음세탁소’라고 부른다. 빨래를 핑계로 모여앉아 수다도 떨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물멍을 하다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고 한다. 낮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주변 주간보호센터의 어르신들이 꽃구경하러 찾아 오고 오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찬다. 저녁에는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운동기구도 이용하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는 동네 사랑방이 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군의 수로였던 곳을 ‘빨래터’로 조성해 주민들의 힐링을 위한 ‘마음세탁소’로 활용한다. 왼쪽에 보이는 팔각정이 임시경로당이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안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이 곳은 각종 영농폐기물과 쓰레기, 잡풀로 가득차 지저분하고 냄새난다는 민원이 빗발치던 곳이었다.

10여년 전. 당시 산대4리 이장이었던 김영철 씨가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왜 사서 고생이냐. 미쳤다’라는 반응이 먼저였다. ‘복개해서 주차장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보기 싫다고 냄새난다고 다 덮어버리면 너무 삭막해질것 같았다. 이곳을 마을의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생각에 부녀회와 청년회도 뜻을 같이 했다. ‘왜 이걸 우리가 해야되나, 나라에서 해줘야 되는게 아니냐’ 라는 생각을 버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영농폐기물과 쓰레기를 치우고 무성하던 잡초를 뽑아냈다. 서서히 공원의 모양새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장미 하트 포토존 뒤편으로 화전빨래터가 보인다.

 

 

‘화전마을 꽃두레’ 공모 선정
영농폐기물 치우고 공원 조성
주민 힘으로 힐링공간 만들어
9월 ‘화전마을 꽃두레 한마음 축제’ 예정

 

지난 2021년 부녀회와 청년회가 주축이 된 ‘화전마을 꽃두레’가 경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주관한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부터 공원 만들기에 속도가 붙었다. 첫 지원금으로 받은 3백만원으로 철마다 피는 꽃을 심고 가꿨다. 마을주민이 화합해 성과를 보이니 3년 연속 공모사업에 선정되는 결과를 얻어냈다. 지원금도 늘어나 나무도 심고 하트모양 장미포토존도 세웠다.

공원이 어느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마을 공동체의 기틀이 다져진 후에는 마을 기업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꽃누르미 식탁매트나 에코백 만들기, 수제양갱이나 전통 고추장 만들기 등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도 다양하게 모색 중이다.

화전마을은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아파트나 빌라 등이 많이 눈에 띄어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마을이 갖고 있는 ‘정’이 살아있는 곳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마을의 비결은 사람이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 보다 서로 칭찬하기에 바빴다. 이장은 부녀회와 노인회, 청년회 자랑을, 부녀회장은 회원 자랑을, 회원들은 부녀회장과 이장 자랑을 한다.

 

잡초하나 없이 잘 가꿔진 화전소공원의 모습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다.

 

공원만들기를 통해 마을주민들은 화합, 협동, 단결을 알게 됐다고 한다. 보기 좋은 공원을 유지하는 데는 꾸준하게 그곳을 돌보는 부지런한 손길이 필요하다. 화전마을 꽃두레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 관리를 하지만 그곳을 지나는 주민들은 누구랄 것 없이 자신의 꽃밭을 관리하듯 풀을 뽑고 물을 준다.

 

신바람나는 화전마을을 가꾸는데 앞장서고 있는 부녀회원들. 왼쪽부터 허종미 총무, 조귀자 회장, 최순희 공모사업 기획담당, 유준선 부회장, 강원숙 빨래터퍼포먼스 분과장.

 

오는 9월이면 화전 소공원에서 ‘화전마을 꽃두레 한마음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3회 째를 맞는 축제의 주제는 빨래터 즐기기다. 실제로 빨래를 하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퍼포먼스도 하고 떠내려가는 고무신 줍기 등 재미있는 게임도 구상중이다. 보릿짚땋기 등 어르신들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요즘은 기계 수확을 해서 구하기 어려운 보릿짚도 미리 부탁해서 구해놨다. 회원들이 각자 해보고 싶은 일을 맡아서 아이디어를 내고 진행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마을의 문화자산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마을은 없어요”라는 주민들의 말 속에 마을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안영준·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경주우리마을은-김영철이장

김영철 이장 “마을 골칫덩이 공간을 공원으로…주민화합·환경정비·건강 다 잡아”

“가진게 없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됩니다. 즐겁고 웃음소리 넘치는 마을에는 사람들이 올 수 밖에 없지요.”

안강토박이인 김영철(54) 이장이 생각하는 마을은 이런 곳이다. 이장이 된지는 10년쯤 됐다. 2013년 산대4리 이장으로 시작해서 2021년 산대11리가 분리되며 지금은 산대11리 이장을 맡고 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지만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그의 이름 석자를 치면 지역 장학회, 취약 계층을 위한 집 수리, 김장봉사, 반찬 봉사 등 봉사활동에 진심인 그의 활약상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마을 가꾸기에는 당연히 열일 제치고 앞장선다. 한해 두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년 넘게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는 일이다. 본인이 앞장서서 김장봉사를 위한 밭을 내놓고 장비를 제공하고 몸을 움직여 쫓아다니니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미담제조기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이렇게 봉사에 진심이면 가정에서는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같이 합니다” 알고보니 부녀회 허종미 총무가 바로 김 이장의 아내였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부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봉사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는 쓰레기가 쌓여 골칫덩어리던 공간을 공원으로 변모시켜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 것에 대해 주민화합, 환경정비, 주민건강 세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공동체 활동을 위한 제대로 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이 없어 어르신들께 늘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지금은 화전소공원 한 켠의 팔각정이 임시 노인정이다. 벽도 없이 임시로 비닐을 둘러놓은 초라하고 불편한 공간에 10여분의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윷놀이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공원을 찾는 주민들은 미안한 마음때문에 오며가며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더욱 성심성의껏 대한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더운 날 풀 뽑고 고생하는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이장님이 앞을 내다보고 이곳을 가꾼 덕분에 이런 공간이 탄생했다”며 연신 자랑을 하는 회원들 옆에서 김 이장은 “저는 이장이니 당연한 일이고 우리 회원들이 진짜 고맙지요”라며 공을 슬그머니 다른 이에게 돌린다. 그들은 이제는 마을 기업이라는 또다른 계획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뜻을 모은다.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신바람나게 가꿔가는 마을이라면 “‘살기좋은 마을’을 넘어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오게 만들어야 된다”는 김 이장의 바람은 금방 이루어질 듯하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집성촌으로 5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유서깊은 반촌 마을이다.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에는 54호의 옛 기와집과 110여 호의 초가 등 옛집들이 설창산 산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들어서 있다.

하촌코스, 물봉골코스, 수졸당코스 등 일곱 개의 코스로 구성된 주요탐방길을 따라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다양한 전통 가옥들을 둘러볼 수 있다.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양동마을 안에는 국보인 통감속편과 무첨당, 향단, 관가정, 손소영정 등 보물 4점을 비롯한 22점의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가 있다. 성인 4천원의 관람료가 있으며 하절기에는 오후 6시까지 매표 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옥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우리나라 4대 서원 중의 하나이다.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온 역락문을 지나 서원으로 들어서면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가 나오고 그 앞쪽에 강학공간인 구인당이 나타난다. 구인당 정면에 걸려있는 옥산서원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가 썼고 무변루의 편액은 한석봉의 친필로 전해진다. 서원 앞 외나무 다리를 지나 나타나는 너럭바위에는 세심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봄철에는 서원앞 나무에 날아드는 호반새를 보기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독락당

◇독락당

일명 옥산정사라고도 부르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고향으로 내려와 머물던 곳이다.

홀로즐기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옥산정사라는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다.

독락당에서 계곡을 바라볼 수 있게 담장에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이 특이하다. 자연과 하나가 된 듯 계곡 위에 서있는 계정에 앉아 계곡의 물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독락당 앞 계곡은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영화 외계+인 1부 촬영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