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학수고대 마을] 학춤으로 유명한 인문학마을…황금들판에 인간학 ‘날갯짓’
예로부터 학 날아들어 노닌 마을
잇단 개발·환경오염에 자취 감춰
매년 학춤 추며 돌아오길 기원
축제 기간 300~400명 마을 찾아
특산물·전설도 없는 평범한 시골
인문학 활동 통해 고유 문화 조성
2021년 행복농촌만들기 금상
2022 경상북도 마을이야기-칠곡 학수고대마을
가산 IC에서 나와 구미방면으로 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유학산 아래 넓게 펼쳐진 논이 나타난다. 아직은 초록색의 논에 흰색의 새들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들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예로부터 학이 노닐었다는 마을,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의 초가을 풍경이다. 순간 학인가 하고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들었으나 요즈음 마을을 찾는 새는 학이 아니라 왜가리란다. 행정구역상의 이름인 학상리보다는 최근에는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은 ‘학수고대’ 마을로 불린다.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자취를 감춘 학이 다시 날아오기를, 더불어 마을을 떠난 사람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학상리 마을은 노갱이, 들마, 칠송정(칠송징이), 토실(토곡), 사부테(사부동) 등 다섯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가장 큰 마을인 들마에 학수고대 마을 사업의 중심이 되는 복합문화공간과 교육장이 자리잡고 있다.
240가구 450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학상리는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들이 있어서 예로부터 살기에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토박이들 중에는 3대가 함께 사는 집도 많다. 주민의 80% 이상이 벼농사를 짓는다. 최근에는 버섯과 꿀 등의 작물도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을 경계에 학상공단도 있고, 구미까지 10분 거리밖에 안돼서 농사를 짓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도 꽤 된다.
학수고대마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학’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학상리의 황금 들판에서 수백마리의 인간학을 만날 수 있다. 천연기념물인 학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흰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사람들이 논두렁 사이에서 학춤을 춘다. 1년 농사를 지으면서 힘들었던 것을 잊고 내년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2015년부터 시작된 ‘학수고대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축제기간에는 해마다 300명~400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는다. 최근 2년간 제대로 축제가 열리지 못해 오는 9월 17일에 열리는 축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학춤을 출 줄 몰라도 상관이 없다. 학춤 전문가들의 가르침에 따라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학이 날아가는 시늉을 하고 양반 걸음을 걷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 다양한 체험과 전시공간도 마련된다. 학상리 주민들이 준비한 오케스트라와 줌바댄스, 민요 공연도 펼쳐진다.
특별한 특산물도 없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이 학수고대마을로 주목을 받게 된 데는 칠곡 인문학마을사업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칠곡 인문학마을은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 고유의 역사, 전통 등 특색을 살려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인문학 활동을 하며 자기 마을만의 소박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학수고대마을은 처음에는 인문학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주민들이 모여 함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공연을 보러 다니고 경로당에서 음악회를 열고 영화상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 고유의 특색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학춤’을 떠올리게 된다. 38세부터 72세까지 나이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9명의 주민이 주축이 되어 학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존에 있던 학춤을 췄지만 2017년에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학상리 마을만의 학춤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경로당에 모이면 고스톱이나 치면서 시간을 보내던 어르신들은 처음에는 “와 이렇게 귀찮게 하노”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동참을 한다. 자칫 젊은이들 위주의 활동으로 소외될 수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사람책도서관도 만들었다. 사람책은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어르신들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달동네식당’ 강백수 어르신은 15년동안 달동네식당에서 순대국밥을 팔며 만난 인연을 소개해주고 ‘정 많은 서울댁의 정파는 구멍가게’ 이현정 어르신은 경로당에 구멍가게를 열어 주민들과 정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 다 퍼주는 스타일이에요 윤영숙’. ‘동물농장 김성환’, ‘와아이라농사법 박진하’, ‘학마을 생생정보통 문희학’ 등 책 제목도 흥미롭다. 마을을 찾기 전 미리 신청을 하면 11명의 마을 어르신이 들려주는 사람책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이 가진 인문학적 자산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스탬프투어도 있다. 지도를 보고 사람책 안내판을 찾고, 후평지와 유학산 둘레길을 걸으며 스탬프를 찍어오면 선물도 준다. 가을이면 후평지 둘레의 갈대가 아름답다.
학수고대 복합문화공간은 원래 보육정보센터였다. 농촌마을에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것은 학상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없어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마을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체험공간으로 만들었다. 1층은 최대 15명까지 이용가능한 숙박시설로 활용한다.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면서 다른 마을에서 선진지견학도 많이 오고 1박 2일 단체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학춤을 배우고 명상과 다도, 숲체험을 하고 밤이면 쏟아질 듯 밤하늘에 가득한 별도 만난다. 간식은 옥수수와 감자다. 멀리 가지 않아도 도시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크게 홍보하지 않아도 찾은 이들이 많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행복하고 활력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결과 지난 2021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행복농촌마을만들기 콘테스트 문화·복지분야에서 금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인 경로당 2층은 마을 주민들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들의 작품전시공간이다. 이름도 재미있는 ‘미다지빼다지전시관’이다. 미닫이는 옆으로 여닫는 문, 빼다지는 서랍이라는 의미를 지닌 경상도 사투리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인두화, 뜨개작품, 야생화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심에서 가까우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채워가는 학수고대 마을의 이야기는 가을 들녘처럼 무르익어가고 있다.
박병철·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이순옥 추진위원장“학상리 화양연화 연말 상영회 계획”
구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순옥위원장은 20대 후반에 남편을 따라 얼떨결에 학상리로 들어왔다. 첨에는 ‘아이들이 크면 도시로 나가야지’ 했는데 이제는 여기가 더 편해졌단다.
처음부터 마을 일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15년 전쯤 마을 언니들을 따라 칠곡군에서 진행하는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상담, 노인복지로 이어졌다. “칠곡군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평생학습이나 학점은행제를 통해 교육을 시키고 다시 마을을 위해서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함께 나눌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학상리 김학봉 이장은 전반적인 마을 일을, 이 위원장은 마을 사업과 행사를 맡아 추진한다.
학수고대 복합문화공간의 자립방안을 찾는 것이 지금까지도 고민거리고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래도 저는 복이 참 많아요. 마을 어르신들은 ‘위원장이 하면 무조건 다해주께’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하시거든요” 그리고 외부강사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준다며 자랑이다. 그는 혼자서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책도서관에서 더 나아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학상리 주민들의 행복했던 순간을 담아내는 영상작업, ‘학상리 화양연화’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행복했던 순간들을 모아 기록하고 있는데 연말쯤 상영회도 계획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은 사진으로도 남겨놓는다. 학수고대의 외부벽면을 이용한 토요영화상영회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학상리만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를 발전시켜 주민들이 즐거운 마을,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가산수피아…4만평 규모 전국 최대 민간정원
학이 무리지어 놀았다는 유학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가산수피아는 공원면적이 4만평에 이르는 전국 최대 민간정원이다. 봄이면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장관을 이루며 테마정원, 허브원, 분재원에서 수많은 나무들과 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공룡뜰에는 몸길이 42미터로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브라키오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 등 움직이는 초대형 공룡 조형물이 있다. 숲속 레일썰매와 알파카랜드도 재미를 더해준다. 가을이 되면 공원 곳곳을 가득 채운 핑크뮬리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댑싸리, 구절초, 코스모스도 한몫 거든다.
또한 국내희귀, 미기록 이끼식물이 자생하는 이끼정원과 천년솔숲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오감을 만족시키고 힐링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환혼’ 촬영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