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화산마을] 개척민 손으로 일군 산동네…끈기 이어받아 ‘천하절경’ 가꾸다.
1962년 산지개간정책 따라
180가구, 고도 7백m로 이주
7평에 방 1칸·부엌 1칸 전부
거친 산, 밭 만드는데만 2년
20가구 남았다 현재 71가구
6.7㎞ 진입로 주민 직접 조성
군위호 지원금으로 도로 포장
2022경상북도 마을이야기-군위 화산마을
‘가장’이란 단어를 사전에선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라고 설명한다. 가장이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마을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 가장 공기가 맑은 마을. 경치가 가장 좋은 마을, 멍 때리기 가장 좋은 마을, 가장 시야가 넓은 마을, 역사가 가장 짧은 마을, 여기는 어디인가. 군위군 화산마을이다. 화산마을은 근래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화산마을은 화산(828m) 정상 부분, 고도 7백 미터 부근에 있다. 대부분의 농촌 마을들이 자연스럽게 취락이 형성된 것과는 다르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1962년에 만들어 졌으니 그 역사는 이제 60년이다. 그럼 누가 이 높은 산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짧은 역사와는 다르게 수많은 이야기와 개척민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경관이 좋고, 공기가 맑고, 뷰가 좋은 것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가장 핫(Hot)한 마을로 떠오르고 있다.
의성에서 영천으로 가는 28번 국도에서 벗어나 마을 진입로에 들어서면 내비게이션에 이상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리저리 돌고 도는 꼬불꼬불한 도로의 모습이다. 마치 속리산 말티재를 연상시키는 수십고비를 돌고도는 길이다. 이 꼬부랑길은 6.7km에 이른다. 운전이 서툰 사람들은 걱정부터 한다. 내려오는 자동차와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이제 마을 진입로를 많이 확장해 차량이 넉넉하게 교행 할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중간 중간에 피난공간도 있다.
돌고 도는 산길이라 지루하지 않다. 길 양편에 늘어선 큰 소나무들은 언제 봐도 정겨움 그 자체다. 좁고 긴 꼬부랑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이 훤해진다. 인간세상이 아닌 것 같은 별천지가 펼쳐진다.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4리, 화산마을이다. 현재 71 가구 117명의 주민들이 생활한다.
1960년대 산업화에 따라 ‘향도이촌’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을 때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갈 때 이들은 도시를 떠나 산골로 들어왔다. 180가구에 1천여명이 넘는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지게에 솥단지를 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이불 보따리를 이고 좁고 험한 산길을 올랐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랐다. 1962년 국토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산지개간정책에 따라 산골로 이주해온 개척민들이다.
이들에게는 방 1칸, 부엌 1칸의 7평짜리 작은 집이 주어졌다. 3대가 함께 온 대가족들도 이 좁은 집에서 함께 살았다. 어쩔 수 없이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고 가적을 달아내어 조금이라도 넓게 쓰려고 안간힘을 썼다. 개척민들에게는 가구당 임야 6천평이 주어졌다. 이 산을 스스로 개간해서 살아야 했다. 과연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산비탈에는 아름드리 낙엽송과 잡목이 가득했다. 나무를 베고 곡괭이와 쇠스랑으로 땅을 팠다. 수없이 나오는 돌을 들어내고 밭을 일구었다. 장정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매달려 아름드리나무 뿌리 하나를 캐내는 것도 벅찼다. 땅을 파면 총알과 탄피가 수두룩하게 나왔다. 누군지도 모르는 유골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땐 그 이유를 알지도 못했지만, 이곳이 6.25 전쟁의 격전지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산비탈 개간에 2년 이상이 걸렸다. 개간을 하는 동안에는 원조로 들어온 옥수수와 밀가루가 식량으로 배급됐다. 쌀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든 일은 물이었다. 산꼭대기라 물이 귀했다. 큰 웅덩이를 파고 빗물을 가두어 식수로 사용했다.
그렇게 개간한 밭에는 옥수수와 감자, 콩을 심었다. 옥수수밥과 감자밥은 주식이 됐다. 논이 없으니 쌀밥은 구경 할 수도 없었다. 옥수수와 콩을 등짐으로 지고 신녕장이나 의흥장에 내다 팔고 보리쌀을 사왔다. 간혹 가다 사온 쌀은 할아버지의 밥에 조금 섞는 것이 전부였다. 힘든 노동에 옥수수밥과 꽁보리밥으로 연명하다시피 했다.
그러는 동안에 변화도 많이 겪었다. 180가구로 시작한 마을은 육군3사관학교 훈련장이 들어서고, 불편한 마을을 떠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20가구로 줄었다. 최근에 귀촌이 늘어나면서 다시 71가구로 늘어났다.
화산마을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경관과 단합이다. 어디로 눈길을 돌려도 절경이다. 어디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인생샷이 나온다. 발아래에 펼쳐진 운무는 구름바다다. 멀리 군위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환상 그 자체다. 여기에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맞으면 가슴이 뻥 뚫린다. 밤에는 별빛이 쏟아진다. 사람이 살기 가장 좋다는 고도 700m도 한몫을 한다.
서애 유성룡은 화산에 올라 옥정의 맑은 물을 마시고 ‘신선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구나’라고 하는 한시를 남겼다. 자연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들도 있다. 마을을 개척할 때 동고동락한 결과로 서로 간에 단합이 잘 되고 정이 많다. 어렵던 시절에는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옥수수나 보리쌀을 문 앞에 두고 갔다. 식량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6.7km에 이르는 진입로는 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로 만들었다.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확장됐으나 여전히 자갈길이었다. 얼마나 길이 험했던지 자동차 타이어가 한 달을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군위호가 만들어지고 댐 주변 지원사업비로 10억 원이라는 거금이 배정됐을 때 분배하지 않고 도로포장 공사비로 사용했다.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큰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반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주민들의 단합력을 나타내는 단적인 사례다.
경관분야·아름다운마을 금상
7월엔 3천평 황금빛 해바라기
주차장 조성·관광마차 등 준비
이제는 천하제일의 절경이라는 화산마을을 더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힘을 모으고 있다. 자연경관이라는 바탕 위에 사람의 향기를 심는 일이다. 풍차전망대를 만들고 꽃밭도 만들었다. 7월 말이면 황금빛 해바라기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3천평에 이르는 해바라기꽃밭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철 땡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물을 주고 키웠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9년에 농식품부의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분야 금상을 수상했다. 콘테스트에선 마을의 개척 역사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여 극찬을 받았다. 마을 주민 40명이 배우가 되어 100일 동안 연습했다. 이후에 경북도청과 농촌진흥청의 초청을 받아 앵콜공연도 했다. 2020년에는 국가균형발전 우수마을로 선정됐고, 아름다운마을 만들기 경진대회 금상도 수상했다. 이제는 주말에 1천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핫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는 않는다. 6.7km에 이르는 진입로는 고도에 따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 아래쪽과 위쪽은 한 달 정도의 차이가 난다. 벚꽃 가로수길을 만들어 고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피는 벚꽃을 이색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늘어나는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도 만든다. 3천평 규모의 대형 주차장이다. 승용차 300대와 관광버스 10대가 주차할 수 있다. 트랙터를 이용한 관광마차도 준비 중이다. 관광객을 태우고 화산마을 전체를 돌아보는 것이다.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마을 개척 당시부터 60년을 이어온 물 부족을 해소하는 것이다. 워낙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라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엄두도 못 낸다. 화산마을의 가장 숙원사업이다. 현재 지하수를 사용하지만 수량이 부족하고, 펌프가 고장이라도 나면 소방차로 식수로 실어 와야 한다. 관광객들이 먹고, 머무를 수 있는 식당과 카페, 숙박시설 등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병태기자·강현수필가
우리 마을은
이종은 화산마을 이장…”무분별한 개발 막아 자연 보전 힘 쓸 것”
“제가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화산마을로 들어왔습니다. 들어온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부모님들이 험한 산을 개간하면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면서 자랐습니다. 이후에 서울로 가서 학교를 마치고 생활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 고향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릴 적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졌던 화산마을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제 고향을 가꾸고 보전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이종은(66) 이장은 여섯 살에 화산마을에 들어왔다가 열 살에 서울로 나가 줄곧 서울에서 생활 했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수구초심’의 마음이었는지, ‘귀거래사’의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그 둘 다였을 수도 있다. 5년 전 귀향해 2019년부터 마을 이장을 맡아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이 이장은 2대 이장이다. 예전에 아버지도 이장을 맡아 마을을 위해 일했었다. 이장직을 맡으면서 처음 시작한 일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전하면서 좀 더 아름다운 마을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었다.
3천평의 밭에 해바라기를 심어 황금빛 화원을 만들었다. 해바라기밭 조성에는 전 주민이 참여했다. 전국의 사진 애호가들과 관광객을 열광시켰던 해바라기의 황금빛은 주민들이 흘린 땀의 결정체였다. 이 같은 경관 조성사업에 주민들의 정과 사랑을 담은 것이다.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부문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국가균형발전 우수마을, 아름다운 마을만들기 금상 수상 등 굵직굵직한 상들을 많이 받았다.
“이제 약간의 성과도 거두었고, 자신감도 생겼다”면서 “모든 사람들과 힘을 모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훼손을 막고, ‘화산다움’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이 이장을 강조한다. 주민 스스로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키자’라는 마을 경관규약을 정하고 화산경관 지킴이단으로 활동하고 있어 화산다움을 지키는 일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도 한다. 또한 화산마을이 우리 농촌의 새로운 롤모델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강현수필가
가볼만한 곳
△사라온이야기마을
‘사라온 이야기마을’은 군위의 역사와 문화관광, 조선시대의 생활과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테마공원이다. 조선시대 실제 마을처럼 꾸며진 마을에서 당시의 생활을 체험하고,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적라촌, 적라청, 적라골 등 3개 테마로 구성됐다. 적라촌에서는 마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신명나는 놀이도 할 수 있다. 동제당과 성황골 점집, 껏득골 기생학교, 밤마실다원, 우무실 민가. 마시리 주막, 장수골 한의원, 쇠똥골 서당, 화실 도화원이 있다.
적라청은 덕치본청을 중심으로 까치래기 치안대, 피밭골 검안소, 가지골 미로 등에서 마을의 분쟁을 다스리고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관리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왜적의 침략에 맞서는 용맹한 의병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구성된 적라골에서는 착시의 방 지나기와 활쏘기, 깃털화살 던지기 등 의적 훈련체험을 할 수 있다. 굴렁쇠돌리기, 제기차기 등 다양한 전래놀이체험을 비롯 호랭이와 해님달님 여덟고개 미션도 진행된다. 미션을 모두 마치면 선물도 받아간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사라온 인형극장도 운영한다. 군위읍 동서길 49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