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석보면 포산리] 순교자 아픔 서린 산간 오지, 청정 휴양지 도약 꿈꾼다
19가구 31명 거주 ‘오손도손’
대중교통 없어 자가용 필수
주민들은 매달 ‘행복택시’이용
지명의 유래
산골짜기 깊은 곳 화전민 개척
주위에 산머루 많아 차용
주로 고추 등 고랭지 채소 재배
[2021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영양 석보면 포산리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는 본래 진보군 진성현 지역이었으나,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때 화매동의 일부와 합하여 포산리로 하고 영양군 석보면으로 편입되었다. 포산리는 산골짜기 깊은 곳에 화전민들이 개척한 마을로서 포산이라는 지명은 마을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때 주위의 산에 산머루(이 지역 말로는 구머리)가 많이 있어서 머루의 한자어인 포를 차용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머루산을 한자로 표기하면 포산이 된다. 포산리는 지질이 산지형 습지로 인해 논과 밭이 있기는 하나 물을 댈 수가 없기 때문에 논농사를 짓기가 어려워 주로 고추와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포산리의 자연부락으로는 포산, 복골, 원터, 장구매기 등이 있다. 복골(봇골, 복곡)은 화전민이 개척한 마을로 논밭을 일구어 농토를 마련할 때 논을 만들기는 했으나 워낙 산간 지방이어서 논에 물을 댈 만한 저수지가 없어, 작은 보를 많이 만들어 논에 물을 대었기 때문에 봇곡ㆍ복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물을 가두어 논밭에 대기 위하여 만든 간이 못을 보라 하는데, 보가 있는 골짜기가 바뀌어 봇골 혹은 복곡이 되었으니 결국 소리가 닮아서 그리 굳어져 쓰인 것이다. 장구매기(작은 구머니)는 구머리 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매기라고도 불린다. 구머리의 구머-구매는 소리의 비슷함으로 생겨난 마을의 이름으로 추측하고 있다. 원터는 포산리에서 제일 낮은 곳에 있는 마을로 조선 시대에 이곳에 원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원터라 하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근처 고을의 원님이 부인이 있는 영해의 속실로 가는 도중에 앞이 훤히 트인 이곳에 앉아서 잠시 다리를 쉬면서 심한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는 들을 바라보면서 걱정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꿈결에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나 “어르신네 내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몇 달 전의 큰 비로 원님이 앉아 계신 뒷산에 산사태가 났는데, 그 때 내 뼈들이 두 곳으로 나누어져 묻혔습니다. 흩어진 내 뼈를 찾아 한 곳에 묻어 주시면 비를 내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원님은 여우가 가리킨 곳에서 그 뼈를 찾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정성껏 묻어 주었다. 그 후에 가뭄은 걷히고 비가 내려서 풍년이 들게 되자 주민들은 원님이 앉아 있던 곳을 원터라고 불렀다 한다.
포산 마을로 가는 길은 승용차로도 만만하지 않다. 911호 지방도를 따라가다 화매삼거리에서 다시 917호 지방도로 접어들어 따라가다 보면 홀무골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는 머루산 성지로 가는 방향과 ‘바람개비 동산 포산 마을 입구’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로 금강송으로 둘러싼 숲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외길이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협소한 길을 굽이굽이 가파르게 오르는 길 밖에 없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로 자칫 마주치는 차라도 만나면 비킬 곳을 찾기가 힘든 외길이다. 이러한 길을 약 3km 이상 올라가면 비로소 포산 마을 입구 주차장과 아래로 동네가 나타난다.
경북에서 오지라고 불리는 일명 BYC(봉화, 영양, 청송)지역 중에서도 오지인 두메산골 포산리에는 현재 19가구 31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여느 농촌지역에서와 같이 연령층은 40대 부터 80대까지 다양하나 6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자가용을 제외하고는 3km 아래에 있는 산 아래 마을과 오고 갈 수 있는 대중교통편이 없다. 군에서 자가용이 없는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1달에 1인당 6장의 행복택시 이용권을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태백산맥 줄기로 낙동정맥 길인 포도산 아래 심산유곡 마을 포산리는 임진왜란 때는 피난지로, 1801년 신유박해 후에는 인근 청송 노래산 교우촌과 같이 충청도의 홍주, 예산 등 여러 곳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이루어 살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1815년 포졸들이 이곳까지 덮쳐서 모든 신자들이 체포되었는데, 관변문서인 “일성록”에 의하면 박사행 등 20명은 즉시 석방되었고 그중 13명은 끝까지 신앙을 증거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머루산 교우촌에서 생활하다 을해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한 김시우 알렉시오(1783-1816년)와 이시임 안나( 1782-1816년), 한때 머루산에서 신앙생활하다 울진에서 체포되어 원주에서 순교한 김강이 시몬( ?-1815년) 3명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 천주교의 준 성인)로 시복되었고, 이곳은 천주교의 복자 3명을 배출한 성지가 되었다.
1815년에 신자들이 포졸들에게 붙잡혀 간 후 이곳 머루산 교우촌은 완전히 없어졌고, 남은 신자들 또한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 후 이곳 머루산에는 지형상 심산유곡으로 인해 남의 눈을 피하기 쉬워 동학교도가 성행했고, 구한말에는 의병활동이 성행해서 신돌석 의병대장이 이곳에 드나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00년 초 장구매기에 교회가 들어섰으나,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1919년 3·1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자 이곳의 주민들과 신자들도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일제 강점기 때는 왜경들의 탄압으로 교회의 예배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6·25를 전후해서는 치안이 미치지 못하여 공비들의 발동으로 주민들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어 많은 주민들이 떠나게 되었고, 결국 남은 주민들이 산비탈의 개간지에 의존하여 생계를 이어가게 된 산골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포도산 아래 첫 동네 포산리는 그동안 각종 개발에 소외됨으로써 그야말로 낙후된 산간 오지였지만, 이것이 오히려 자연적인 힐링을 가장 선호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청정 관광지로 도약할 수 있는 최적의 토대가 되고 있다. 즉 비록 좁고 가파른 길이지만 산 아래 마을과 차량으로 왕래할 수 있는 도로를 중심으로 계획 중인 머루산 성지와 산 아래 마을까지의 힐링 산책로가 정비된다면 주변 경관과 함께 최고의 산촌체험 마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수기자·이석형 객원논설위원
<우리 마을은>
유철균 이장 “데크 설치 통한 힐링 숲길 조성”
3년째 이장직을 맡아 봉사하고 있는 유철균 이장은 원래 충남 청양군이 고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릴 때 민의였던 부모님을 따라 영양으로 이주해 온 이후 삼의리에 거주하다 포산리에 정착한지 26년이 되어 이제는 완전한 영양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유 이장이 포산리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아버님에게 치료를 받던 환자들을 보며 예방의학적인 성격의 식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답을 해발 600m의 청정지역인 포산리에서 찾고 있다고 하였다.
유 이장은 하늘 아래 첫 동네 그야말로 청정지역인 포산마을을 널리 알려 주민들의 소득을 창출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포산마을 아래쪽 원터에 있는 ‘천주교 성지’와 연계하여 80m 협곡인 포산 도장골 계곡(성지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계곡)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데크 설치를 통한 힐링 숲길 조성하는데 전력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현재 포산리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판로가 미미하여, 중간 유통업자에게 밭떼기로 파는 삶에서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성지를 찾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을 상대로 마을 부녀회장의 내림음식인 ‘고추죽’도 선보이고, 그믐날 포산마을 하늘을 뒤덮는 별을 관람하는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일반인들이 듣기에 다소 생소한 ‘고추죽’은 원래 산골 오지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으로 고추에 밀가루를 풀어 간장으로 죽을 쑨 것인데 최근에는 사람들의 입맛이 변하여 밀가루 대신 찹쌀가루와 소고기를 넣는다. 특히 포산리의 고추는 고추에 기름기가 많고 깊은 맛이 있어 고추의 고향인 영양에서도 다른 지역의 고추보다 가격이 높다고 한다.
앞으로는 포산리를 찾는 관광객과 순례자를 위해 지금은 많이 사라진 포산이라는 지명을 갖게 만들어 준 자연산 머루 복구 작업에 노력하는 한편 분지형 습지인 포산의 자연적인 특성을 살려 미꾸라지 양식과 연꽃과 같은 경관 식물을 식재하고, 마을 앞동산에 전망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오지 주민들의 문화적 향수를 충족하고, 주민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그믐날 별 빛이 좋은 날을 택해 마을 위쪽 장구매기의 쉼터에서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고 주민 각자 재능기부를 통한 음악회도 열고 있다.
<가볼만한 곳>
◇삼의계곡…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 ‘절경’
맹동산(812m)의 깊은 골짜기에서 시작된 삼의계곡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어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차갑다. 울창한 원시림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천주교 성지인 포도산과 야영장, 주차시설, 펜션 등이 있어 사계절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삼의계곡은 널찍하고 하얀 화강암이 곳곳에서 계곡물을 가로막아 버티고 있어 시원한 물소리를 내지르는 폭포가 여러 군데 있으며, 한여름에는 기온 차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가을에는 골짜기 원시림에 단풍이 들면 더욱 절정을 이룬다.
◇서석지..대한민국 대표 3대 정원
입압면 연당리에 있는 서석지(사진)는 석문정영방 선생이 1613년(광해군 5년)에 축조한 연못과 정자이다. 1979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중요민속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고,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