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택전다육이마을] 마을 곳곳 ‘초록물결’… 주민 합심으로 일군 ‘다육정원’
경북형 ‘행복씨앗마을’ 시범지 선정
함께 아트 작업하며 이웃愛 돈독
다육체험·팜파티 열며 마을 ‘활력’
세대 간 단절·외부인 간 벽 허물어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포항 택전다육이마을
‘마커스, 레티지아, 프리티, 신동, 십자성, 염자, 핑크루비…’
이 낯선 단어는 다육식물의 이름이다. 다육식물은 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 위의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요즘은 다육식물보다는 친근하게 다육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식물에 정서적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이젠 식물도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반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공기정화 등의 장점과 함께 아기자기 모양도 예쁘고 키우기도 쉬운 다육이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걸맞는 마을이 있다.
포항시 연일읍 택전마을은 임진왜란 전부터 마을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져오는 전통이 깊은 마을이다. 채소는 집에서 직접 먹을 정도만 키우거나 이웃과 나눠먹는 정도로 인식되었던 60년대부터 상추나 포항초(시금치) 등을 재배하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시장에 내다팔며 앞서간 덕분에 그동안 먹고 사는 걱정 없는 부촌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이 올해는 새로운 수식어를 하나 더 붙였다. ‘다육이에 빠진 택전마을’
택전 1리 마을 회관 앞 다육이 공동작업장 안은 사람 몸보다 더 큰 조형물을 앞에 두고 4명의 부녀회원이 앉거나 서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오늘은 미리 철제로 만들어 놓은 커다란 구조물 안을 버려진 스티로폼을 잘라 채워넣고 그물망을 꼼꼼하게 씌우는 중이다. 다음에는 넬솔(물을 섞으면 밀가루 반죽처럼 되는 다육아트 전용 흙)을 바르고 다육이를 심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조형물의 크기가 큰 만큼 다육이를 심기 전 밑작업만 해도 4일에서 5일이 걸린다. 조형물을 예쁘게 장식할 다육이 26박스는 비닐하우스 한 켠에서 기다리고 있다. 완성이 되기까지는 열흘이 넘게 걸리는 큰 작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형물은 형산강 강변 레저시설에 설치될 예정이다.
택전마을은 예전에는 120여 세대가 살고 있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90여 세대 정도가 있다. 거기에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서며 새로운 주민들이 가세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과거가 현재,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마을이다.
이런 마을이 다육이마을로 변신하게 된 데에는 여러 사람의 공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회적 협동조합 ‘숲과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첫 인연은 숲 전문가 40여명으로 구성된 ‘숲과 사람’이 택전마을의 빈집에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마당에 비친 햇살에 반해 사무실로 찜한 빈집을 리모델링하며 제일 먼저 담장을 없앴다. 벽이 사라지자 마음의 벽도 허물어졌다. 마당 한켠에는 예쁘게 정원을 가꾸고 무더위 쉼터도 만들었더니 마을 주민들과 더 가까워졌다. 아침마다 마을 어른들이 놓고 간 채소며 반찬 등이 마당 한켠에 놓여있기 시작했다. 마을 어른들의 따뜻함에 반해 마을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고민하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마을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식물전문가들이 모인 단체인만큼 답은 쉽게 나왔다. 바로 요즘 대세인 ‘다육이’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고 함께 경북형 행복씨앗마을 공모를 준비한 결과 지난해 17곳의 시범마을 중 한 곳으로 선정이 됐다.
행복씨앗마을사업은 유·무형의 역사 문화자원을 문화·예술·복지와 결합, 수익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해 침체된 농촌의 공동체 기능을 회복 하기 위한 농촌마을 재생사업이다. 그동안의 농촌마을 재생사업이 단순히 환경개선에만 치중해 왔다면 행복씨앗마을 사업은 주민이 주도하는 농촌마을재생의 모범모델로 사람과 콘텐츠, 그리고 공간의 가치에 대해 종합적인 접근이라고 보면 된다.
유명한 다육아트 작가(꼰작가)를 초빙해 다육이 심기부터 다육아트까지 기초부터 찬찬히 배우기 시작하고 작품을 마을 곳곳의 빈 공간에 전시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예쁘다고 누가 집에 가지고 가면 어쩌지?’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예쁜 것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으로 마을 분위기는 더욱 훈훈해졌다. 다육이 조형물 주변에는 야생화도 심었다. 오래전에는 빨래터에 나란히 앉아 집안 대소사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다육이 작업장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매일 매일 몇시간 씩 모여 작업을 하다보면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된다.
‘만남정원’. ‘동물정원’. ‘기다림의 강’, ‘엄마의 장독대’ 등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공동정원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육이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고개를 숙인 여자와 무릎꿇고 앉아 반지를 건네는 남자. 옆에 놓인 풍금 위에 놓인 악보도 다육아트 작품이다. 마을에 있는 연리지와 연계한 프로포즈 존이다. 이렇게 마을 구석구석 스토리를 입혀 멀리서도 찾아오는 마을, 다육이로 특화된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다육이 체험, 다육이 정원 해설과 스탬프 투어, 그리고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 시식 및 판매까지 다양하게 준비해 팜파티도 열었다. 그보다 앞서 3월에는 포항시내 일원에 ‘사용하지 않는 화분을 보내주세요’라는 현수막을 걸어 200개가 넘는 화분을 모으기도 했다.
깨어진 장독, 버려진 화분들 모두 마을을 꾸미기 위한 재료로 변신을 한다. 이런 화분을 이용해 마을 정원도 꾸미고 다육이 조형물도 만들어 빈 담장에 설치하기도 했다.
세대간의 단절이나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들과 새로 이사온 주민들과의 눈에 보이지 않은 벽을 허무는데도 다육이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다육이 조형물을 야외에 설치한 것은 전국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마을주민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다육이의 겨울나기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이 또한 시간이 허락해주리라 믿고 있다. 행복씨앗마을조성사업은 다음달이면 끝이나지만 택전마을의 다육이 사랑은 계속 진행형이다.
김기영·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김병철 이장·전명선 부녀회장 ·박희경 대표, “숲과 잘 어우러진 생태마을 조성”
상추와 시금치를 주로 생산하던 택전마을이 다육이 특화마을로 변신하게 된 것은 마을 토박이 김병철(64) 이장과 전명선(66) 부녀회장, 그리고 ‘숲과 사람’ 박희경(53) 대표 세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다. 처음 제안은 ‘숲과 사람’이 했지만 지금은 부녀회가 주축이 돼 사업을 이끌고 ‘숲과 사람’은 조언을 보탠다.
박대표가 다육이 특화마을 이야기를 꺼냈을때만 해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망설였지만 이제는 다육이에 푹 빠져 “끝까지 잘 이어가고 싶다”라고 전 부녀회장은 의욕을 보인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는 김 이장은 “이곳이 중명생태공원으로 가는 길목이 있으니만큼 마을 경계에 있는 숲과 잘 어우러진 하나의 생태마을로 만들면 좋겠다”라는 뜻을 밝힌다.
사무실 때문에 이곳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진짜 마을주민이 된 박대표. 마을사랑은 토박이 마을주민 못지 않다. “다육아트 취미교실 등 앞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관공서나 복지시설 등에 대형작품 설치 문의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택전마을. 다육이를 매개로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마을 주민들이 화합하는 모습이 바로 세 사람 모두가 머릿 속에 그리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주변 가볼만한 곳>
◇중명자연생태공원
포항시 연일읍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넓은 해시계광장과 수변공원 등 아이들과 함께 다양하게 즐길거리가 많다. 약용원, 야생화원, 암석원, 향기원, 습지원 등 테마 공간이 잘 꾸며져 있으며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생태탐방로와 다양한 코스의 등산로도 잘 가꿔져있다. 숲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 주변에서 다람쥐, 산양.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 조형물을 찾을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다. 1.1km의 생태탐방로를 걸은 후 등산로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빛누리 에코타워’(전망대)에서는 포항시내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장기유배문화체험촌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 등의 유배지였던 장기에는 조선시대의 유배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촌이 마련돼 있다.
유배지로 향하는 소달구지의 실물크기 모형이나 여러 가지 형구를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뒤편으로는 민속놀이체험장도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알찬 구성으로 민속체험과 교과서 기행으로도 좋은 곳이다.
고려 현종때 토성으로 축조됐다가 조선 세종 때 석성으로 축조된 장기읍성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