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세심권역
경주 안강 옥산1~4리·하곡리 등
680가구 1천600명 주민 ‘한 권역에’
농어촌 인성학교 계절별 프로그램 운영
지역 유산 활용 생활예절교육 진행
조청·참기름 제조 주민 소득증대 기여
체험장서 요리·농작물 수확체험 제공

마을이야기-경주세심마을-전경
효를 중심으로 농촌체험, 문화유적체험, 예술체험, 먹거리체험 까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경주 세심권역. 드론 촬영= 전영호기자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경주 세심권역

4차산업혁명시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이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인성교육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도심과 학교를 벗어나 농어촌에서의 다양한 체험활동과 함께 나눔과 배려 등 인성교육까지 아우르는 농어촌 인성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신라 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주 시내에서 30분쯤 달리면 북쪽으로는 도덕산, 동쪽으로는 화개산, 서쪽으로는 자옥산에 포근히 안긴 농어촌인성학교 세심권역에 닿는다.

권역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세심권역’은 경주시 안강읍 옥산1리~4리, 하곡리, 두류 1리 등 6개 리, 680여 가구, 1천 600명이 넘는 주민을 하나로 묶는 넓은 의미의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의 세심(洗心)은 조선시대 대표적 성리학자이며 동방 5현 중의 한분으로 꼽히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말씀에서 따왔다.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아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

세심권역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머물렀던 독락당과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옥산서원, 화랑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법사가 수련했던 금곡사 등 신라와 조선 역사의 숨결이 서려있는 유적은 물론 송당솔숲, 세심대, 관어대 등 아름다운 풍광, 생태공연장, 다목적구장 등 편의시설이 잘 어우러진 마을이다. 이를 바탕으로 회재선생, 화랑도정신, 쌍봉 정극후(조선 선조때 문인) 테마존을 구성해 놓고 있다.

경주세심권역-한과만들기
세심권역 향토음식체험장에서 조청을 이용한 음식만들기 체험이 한창이다.

세심권역의 주축이 되는 농어촌 인성학교에서는 전통문화의 기본인 효(孝)를 중심으로 계절별 농촌체험, 문화유적체험, 예술체험, 먹거리체험까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농어촌체험지도사를 비롯해 실천예절지도사, 다도, 교원자격증 등 인성교육에 걸맞는 자격증을 갖춘 각 분야의 체험 전문가들이 체험을 이끈다. 4계절 농장에서는 고구마, 감자, 옥수수 수확체험을 하고 향토음식 체험장에서는 약과, 꽃절편, 무지개 떡케이크만들기 등 먹거리체험을 한다.

옥산 1리에 자리한 전통예절관에서는 생활예절과 다도체험을 할 수 있다. 조만간 한복까지 갖춰 더욱 알찬 체험을 선보일 예정이다. 송당솔숲을 지나 옥산서원까지 꽃마차를 타고 달리는 체험도 인기다.

농촌의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주민의 고령화는 세심권역이라고 해서 비껴갈 수 없는 문제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보다 잘살 수 있을까? 활기찬 마을을 만들 방법은 없을까?” 고민 하던 중 주민들의 수익사업으로 시작한 조청과 참기름은 주민들의 일자리 만들기는 물론 소득증대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선물받은 참기름의 맛을 잊지 못해 물어 물어 찾아온 고객이 사무장과 52년만에 만난 친구였더라는 사연도 재미가 있다. 조청과 엿기름은 옥산마을의 보리를 수매해서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다.

세심권역-냇가
회재 이언적선생이 머물던 독락당 앞 계곡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집에만 계시지 말고 장날에는 꼭 시장에 나가서 활기를 느껴보세요”라고 세심권역의 이종희 사무장은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당부를 한다.

처음에는 유모차나 보조기구에 의지해 마을 회관 나들이도 힘들게 하시던 어르신들이 지금은 활기찬 세심권역의 일꾼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이 있다고 한다.

엿기름 가공작업을 하시는 88세의 어르신은 “여기 나오면서 손자에게 용돈도 줄 수 있고 경로당에 한 턱도 낼 수 있어 사는 맛이 있다”며 즐거워하신다.

“좀 천천히 가더라도 농촌의 따뜻함을 전하다보면 차츰차츰 많은 분들이 찾으시겠지요”라는 것이 세심권역 사람들의 생각이다.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천연염색 스카프 하나를 만들어도 쓸모가 있게 큰 사이즈로, 세심체험관과 한옥체험관 등 숙박시설 요금도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책정을 했다.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의미처럼 그렇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2015년 경상북도 행복마을 사업계획 발표회 때 최우수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독락당 500년 빗장을 여는 퓨전힐링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조청과 절편, 도토리 묵 등을 제공했더니 해마다 이맘때면 올해는 언제 행사를 하냐는 문의도 많다고 한다.

올해는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박람회에서 세심권역의 조청과 절편을 선보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을주민들의 마음은 설렌다.

안영준·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경주세심마을-옥산정사
 

◇독락당

일명 옥산정사라고도 부르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고향으로 내려와 머물던 곳이다.

홀로즐기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옥산정사라는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다. 독락당에서 계곡을 바라볼 수 있게 담장에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이 특이하다. 자연과 하나가 된 듯 계곡 위에 서있는 계정에 앉아 계곡의 물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독락당 앞 계곡은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나라 4대서원 중 하나인 옥산서원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우리나라 4대 서원 중의 하나이다.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온 역락문을 지나 서원으로 들어서면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가 나오고 그 앞쪽에 강학공간인 구인당이 나타난다. 옥산서원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하니 눈여겨 보도록 하자. 서원 앞 외나무 다리를 지나 나타나는 너럭바위에는 세심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봄철에는 서원앞 나무에 날아드는 호반새를 보기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정혜사지 13층석탑

 

◇정혜사지 13층석탑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정혜사, 그 흔적은 사라지고 탑 하나만이 오롯이 남아있다. 국보 40호인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그 시대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고요한 정혜사지에서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나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르신들 위한 공동생활공간 조성 꿈꿔”

<이종희 세심권역 사무장>

경주세심권역-담당자
 

 

집 앞마당에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소박한 밥상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며 여생을 조용하게 보낼 꿈을 꾸며 2010년 남편의 고향인 두류 1리로 내려온 이종희(64·사진) 사무장.

그렇지만 세심권역사업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삶은 도시에서보다 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마을 토박이보다 더 농촌에 동화됐다. “처음에는 막중한 업무가 달갑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내부에만 있었다면 볼 수 없었을 부분들도 도시생활을 오래해서인지 더 잘 보이기도 하고요.”

경주지진이 났을때는 마을 어르신들이 걱정돼 차에서 대기하면서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이때부터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며 안전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지금은 불가능한 꿈처럼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물 한방울 한방울이 떨어져 바위를 뚫듯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다.

“머릿속의 생각은 흑백이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면 선명한 컬러로 바뀝니다”

목표로 하는 일들이 컬러로 눈앞에 드러날 그날을 떠올리며 이 사무장의 하루는 오늘도 바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이 사무장의 모습은 바로 이런 열정 덕분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