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연당마을조선시대 석문 정영방 선생
‘군자의 꽃’ 만발한 서석지서
자연 벗삼아 성리학 매진하던 곳
후손들 남아 선비정신 명맥 이어
2016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선정
‘연당축제’ 등 지역 활성화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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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연당마을. 조선의 대표적인 민간 정원인 서석지를 만든 석문 정영방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 영양 연당마을

영양군 입암면 연당마을은 연당(蓮塘) 즉, 연꽃을 심은 못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 연당은 바로 서석지(瑞石池)를 가리킨다. 광해군 5년(1613) 성균관 진사를 지냈던 예천 태생의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 선생이 지은 별서(別墅)다. 별서는 누정 중에서 성리학자의 학문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라는 성격을 갖는다고 한다.

석문은 선조 38년(1605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스승이 관직에 나갈 것을 여러 번 권했으나 당시 혼란한 정치 상황을 싫어하여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영양 입암으로 이주해 경정(敬亭)과 주일재(主一齋)를 짓고 서석지를 만들어 연꽃을 심고 은거했다.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시 특히 5언 절구에 능했다. ‘경정잡영삼십이절(敬亭雜詠三十二絶)’, ‘임천잡제십육절(林泉雜題十六絶)’ 등을 남겼다.

서석지 안에는 못을 팔 때 나온 것으로 보이는 60여 개의 돌이 있어 상서로운 느낌을 준다. 서석지라는 이름도 거기서 비롯됐다. 석문은 이 서석들 중 19개에 이름을 붙이고 그에 대해 시를 읊었다. 나비를 닮은 바위를 ‘희접암(戱蝶巖)’이라고 이름 짓고 마주보는 바위를 꽃술을 닮았다고 아여 ‘화예석(花蘂石)’이라 이름 지은 뒤, 희접암을 두고 이렇게 읊었다. “훨훨 나는 한 마리 고운 나비/꽃 피는 곳 좇아서 날아가려는 듯/제발 변해서 장자의 꿈속에 가지 말아라/세상의 옳은 도리 다 무너지게 하는구나” 연못 속 바위 하나를 노래하면서 호접몽 고사를 가져와 도가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성리학 이외의 사상에 대해 비타협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경정, 주일재라는 건물의 이름도 주희와 퇴계의 사상을 계승해, 수양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敬)이 늘 삼가고 두려워하며 마음을 닦는 태도를 가리키고, 주일무적(主一無適)이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석지로 물이 들어오는 도랑을 읍청거라 하고, 물이 나가는 도랑을 토예거라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즉 깨끗함을 받아들이는 도랑에서 들어온 물이 더러움을 뱉어내는 도랑으로 나가게 되는데, 이는 군자의 꽃인 연꽃이 가득 핀 서석지도 결국 물을 더럽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된다. 더 나아가 서석지가 인간을, 그 바깥이 자연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인간이 자연의 도와 조화를 이뤄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석문이 서석지를 조성한 뜻은 아름다운 원림을 완상하겠다는 것보다, 경을 바탕으로 수양과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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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에서 바라본 주일재.

그는 비록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하며 지내는 선비였으나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벼슬길에 오른 선비들과 다르지 않았다. 석문이 남긴 2개의 상소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수탈당하는 용궁현의 사민들을 위해 광해군 때 정해진 전세 등급을 내려주기를 청하는 상소이고, 다른 하나는 영해에 속해 있는 영양을 다시 현으로 복구시켜 달라는 상소이다. 이 두 상소문은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날카롭고 치밀한 논리가 돋보이는 글로 꼿꼿한 선비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도 연당마을에는 석문 정영방 선생의 후손들만 살고 있다. 자손들이 외지에 살고 있어서 빈집은 제법 있지만, 매물로 내놓지 않으니 타성바지가 들어올 수 없었다. 또 산림처사로 살았던 석문 선생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후손들이 서석지와 석문 선생을 알리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은둔자의 마을로 남아있던 연당마을이 최근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연당마을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연당마을이 건축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서린 정신이 조화된 전통마을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재춘·김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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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담장이 정겨운 연당마을 고샅길.

가볼만한 곳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연당마을 뒷산 너머에는 영양산촌생활박물관이 있다. 경북 북부의 산촌 문화와 선조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생태체험장에는 저수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생동식물과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 자연관찰 코스, 전통생활체험장은 투방집과 너와집 등 조선시대 산촌마을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체험 코스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전통문화공원은 각종 조형물과 소공연장을 갖춘 여가활동 코스가 마련돼 있다. 앞으로 산책로와 숙박체험 시설인 선바위 자연생태마을이 조성되면 체류형 문화관광자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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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

선바위는 남이포 절벽 앞에 거대한 촛대처럼 우뚝 서 있는 바위로 신선바위라고도 불린다. 선바위는 일월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반변천과 서석지 앞을 지나 반변천과 합류해 흐르는 청계천(동천)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남이포 양쪽 줄기의 하천과 산세를 동시에 지키는 장승처럼 영양군 초입에 우뚝 서 있다.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 쌍계입암이 바로 이 선바위를 그린 작품이다. 여름 휴가철에는 선바위와 관광단지를 연결하는 석문교의 음악분수 쇼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저녁 9시부터 30분간 180m의 석문교 다리난간에 설치된 100여 개의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오색 조명, 클래식 음악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영양수석분재야생화전시관

입암면 신구리 선바위관광지 안에 있는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분재와 수석, 야생화들이 전시돼 있다. 2001년 개관한 이곳 전시장에는 수령 450년의 주목을 비롯해 200년 이상의 모과, 적송, 단풍나무 등의 분재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영양지역의 특산물인 폭포석과 일월산에서 자생하는 금낭화, 메발톱 등 야생화 5천여 본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소품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시설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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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고택 민박에 활용…마을 활기 되찾을 것”

주민협의회 정휘택 위원장

지난달 20일과 21일 이틀간 영양 연당마을에서는 제2회 ‘연당 마을축제’가 열렸다. 주민은 37가구 50여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젊은 사람은 드물지만, 주민 모두가 함께 나서서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꽃심기, 문패만들기, 나만의 에코백, 한복 향낭 체험, 지끈 소쿠리 만들기, 얼음다리 건너기, 연당마을 투어 스탬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나와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해주었고, 식사와 음료, 직접 기른 과일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했다.

“모두 한 집안사람들이다 보니 의견도 분분하고 일을 추진하는 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하기로 결정이 되면 뒤로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 힘을 모아 잘 해냅니다.”

연당마을 주민협의회 정휘택(75) 위원장은 관람객들에게 제공한 연잎밥을 만드는 일은 마을 여성 중 가장 젊은 65세부터 위로 5명이 도맡았다고 귀띔했다.

지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연당마을은 마을 고유의 문화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주민공동체 중심의 마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을 축제 외에 연당마을 주민작품전시회, 석문 정영방 선생 학술대회를 열었다.

정 위원장은 앞으로의 구상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서석지에 물이 흐르지 않는데 관정을 뚫든지 해서 다시 물이 흐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들을 더 잘 가꾸고, 그 정신을 잘 계승해 연당마을의 문화와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을의 빈 고택을 민박에 활용하는 등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방안을 여러 방면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