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시장 중심의 상가밀집지역
600여세대 주민 850명 거주
영덕서 가장 큰 오일장 열려
장날마다 사람들 ‘북적북적’
시장 곳곳 걸린 태극기 눈길
1919년 일어난 만세운동 기념
세계적 미술가 아트페스타 진행
구석구석 숨겨진 작품들 볼거리

 

영덕군 영해면 성내5리는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으로 알려져있는 영해만세시장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주민 대부분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만큼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와 농촌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장(場)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지만 사람사이의 정(情)도 함께 오가는 곳이다. 영해만세시장은 매월 끝자리 5일, 10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평소에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다가 장날이 되면 새벽부터 전국에서 오는 상인들과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북적 활기를 띤다. 소쿠리에 담긴 과일과 가득 쌓인 무·배추, 대게·문어·오징어·물가자미 같은 수산물, 집에서 직접 쑨 메밀묵, 옛날 과자, 의류 등 100개가 넘는 좌판이 펼쳐진다. 없는게 없다.

새벽에 바로 잡아 온 물고기는 수족관이 아닌 좌판에서 살아서 펄떡인다. 늦게 온 상인들은 물건을 펼 자리를 찾지 못해 시장 밖까지 노점이 늘어선다. ‘사이소’, ‘얼만교’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즉석에서 벌어지는 흥정도 재미있다. 장을 보다 배가 고파지면 국화빵, 호떡, 어묵 같은 간단한 주전부리로 시장기를 속여도 좋고 보리밥, 잔치국수, 소머리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도 좋다.

 

영해만세시장 장날에는 전국의 상인들과 물건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영덕군 영해면 성내5리는 영해만세시장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잘 오시소! 반갑니더! 내일 또 보시더!’라는 인사말이 반겨주는 만세시장은 영덕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으로 동해안 일대에서도 거래량이 많은 장으로 손꼽힌다. 예로부터 안동, 영양, 청송 등 내륙지역에 수산물을 공급해왔던 관문으로 영해·축산면에서 많이 잡히는 대게, 멸치, 미역 등 수산물과 창수·병곡면의 농산물이 주로 거래됐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재래시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이곳은 여전히 꽤 큰 규모의 장이 열리고 있다.

성내5리는 지난 1998년 성내1리에서 분동이 되었다. 만세시장을 끼고 있는 성내5리는 600여세대에 850여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주민 대부분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만큼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와 농촌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3.18 만세운동기념탑.

 

영해만세시장을 둘러보다보면 곳곳에 걸린 태극기가 눈길을 끈다. 1919년 3월 18일 영해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3.1운동보다 17일 늦은 3월 18일 오후 1시, 영해주재소(현 영해파출소) 앞 장터에는 3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도 많았고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격렬한 저항이었다고 한다. 시장은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자리에서 196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지만 그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영해만세시장으로 부른다.

영덕 북부권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영해면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이 1만3천여명에 달할 정도였으나 현재는 절반 이하로 떨어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성내5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큰 시장을 끼고 있는 마을의 특성상 다른 농산어촌에 비해 평균 연령도 낮고 소멸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낮에는 시장에서 일을 하고 거주는 다른 지역에서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주민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장날에는 지나다니기도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150여개의 상설점포가 있는 시장은 평상시에는 조용하다.

인구 증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장 활성화가 급선무였다. 다행히도 영해면 활성화를 위해 진행중인 ‘도시재생사업’, ‘근대역사문화공간 확산 사업’,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이웃사촌마을 확산 사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영해만세시장이 관련되어 있어 성내5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물론 이전부터 비가 와도 이용할수 있도록 지붕을 덮어 현대화를 하고 2012년부터는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되는 등 일반적인 전통시장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은 이미 진행중이었다.

성내5리는 상가밀집지역이라 시장을 빼고는 딱히 내세울 만한 관광지는 없지만 마을에서 5분에서 10분이면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 대진·고래불해수욕장 등 주변 관광명소에 닿을 수 있다. 괴시리 전통마을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지리적 위치가 좋으니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조금만 더해진다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도 늘어날 것이다. 마을에서는 ‘이웃사촌’사업의 일환으로 만세시장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회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를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가까운 관광지를 찾아 투어를 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시장에서 가서 장을 보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역경제도 자연스레 살아날 것이다. 별관 상가는 청년창업몰로 만들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에게 창업공간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관광객과 젊은이들이 마을로 많이 들어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물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마을회관 이전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민투표에서 93%의 찬성이 나왔다. 그만큼 마을 주민들도 마을활성화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는 의미다.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 ‘3월18일’. 옆집의 뻥튀기 간판이 이채롭다.

 

시장에는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도 있고 새내기 상인도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카페 ‘3월18일’은 조용한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가게 중 하나다. 김정연(27)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병원근무로 몸과 마음이 지쳐 귀촌을 결심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월세가 싸서’였다. 장날을 제외하고는 오가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시장 안에 카페를 연 젊은 사장을 지켜보던 주변 상인들은 ‘손님이 있겠나’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만세시장의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만세시장 곳곳에 얀 보만의 레고작품이 숨겨져있다.

 

영해만세시장은 물건을 팔고 사러 오는 곳만은 아니다. 구석구석 둘러보면 재미있는 문화콘텐츠도 숨어있다. 시장 안에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7월 영덕문화재단에서는 독일출신의 설치미술가 얀 보만과 미국의 현대미술가 브래드 다우니를 초청해 ‘만세, 아트페스타’를 진행했다. 행사를 끝낸 그들은 영덕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시장 곳곳에 작품으로 남겨놓았다.

얀 보만은 장난감 블록(레고)를 사용해 오래되거나 부서진 곳을 메우는 ‘디스패치워크’(Dispatchwor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장 중앙무대 근처의 부서진 기둥과 주변 빈틈을 알록달록 레고로 채웠다.

 

미국의 현대미술가 브래드 다우니가 그린 고양이 벽화.

 

브래드 다우니는 중앙무대 뒷면에 자신의 고유한 캐릭터와 고양이 벽화를 그려놓았다. 그의 고양이 작품은 시장안 골목 안에 두 점 더 있다. 또한 그는 스텐실 기법을 거리에 최초로 시도한 존 페크너의 오리지널 핸드컷 스텐실 원본을 새겨놓은 작품도 남겼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냥 스쳐지나가면 보통의 시장일 뿐이지만 구석구석 보물처럼 숨어있는 예술 작품을 찾아보고 시장 안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면서 옆집에서 들리는 뻥튀기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된다. 성내5리는 이렇게 전통시장이 있는 마을을 넘어 관광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강석·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우리마을은영덕-신두수이장

신두수 이장

신두수 이장 “마을회관 중심으로 주민들 단합 이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신두수(56) 성내5리 이장은 학교와 직장생활로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지 20년이 넘었다. 그가 마을의 이장을 맡은 것은 지난 4월부터다. 이장이 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코로나 이후 거의 폐쇄되어 있던 마을회관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3월부터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의 점심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외부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기 마련인데 성내5리는 마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노인회에서 2-3회 정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비용을 선뜻 내놓았고 그 다음에는 어르신들이 앞다퉈 반찬값이라도 보태라며 쌈지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음식준비도 노인회에서 당번을 정해서 한다.
메뉴는 김치찌개, 회덮밥, 잔치국수, 떡국 등 다양하다. 8팀 16명이 돌아가면서 식사당번을 맡아 40명 넘는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안 힘드세요”라는 질문에 “너무 재밌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식사만 하고 가면 섭섭하니 좋은 프로그램이 없을까 알아보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지원을 받아 화요일과 목요일 주2회 1시간씩 실버체조 수업도 한다. 40명이상의 어르신들이 꾸준하게 마을회관을 찾는다.

 

경로당에서 식사도 하고 화투도 치면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 셈은 현금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바둑알로 한다.
경로당에서 식사도 하고 화투도 치면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 셈은 현금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바둑알로 한다.

 

“우리 마을이 짧은 기간에 상당히 단합이 잘되고 있어요.” 김경창(91) 노인회장은 이렇게 자랑을 한다. 식사를 하고 나서는 윷놀이도 하고 화투도 친다. 현금대신 바둑알이 오가는 것이 재미있다. 바둑알 10개를 잃으면 게임 멤버가 교체된다.

이장이 건네는 명함에는 ‘함께하고 참여하며 행복한 성내5리’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마을회관으로 들어서는 골목에도 같은 글귀가 있다.

“이렇게 만들거예요. 이장이 주축이 되어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 한명 한명이 주인의식을 갖고 마을일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을의 수익을 위한 사업은 일단 주민들의 결속력이 탄탄해지고 나면 진행할 예정입니다.”

재가센터를 운영하며 방문요양사업을 하는 신 이장은 복지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하고 있는 사업은 물론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마을을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다.

마을회관 바깥으로 어르신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터져나온다. 신 이장이 생각하고 있는 행복한 성내5리는 벌써 이루어진 듯하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벌영리메타세쿼이아숲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함께 화석식물로 불린다. 높이가 35m 직경이 2.5m 정도까지 자라는 거목이면서 자태가 단정하고 귀족적 기품이 있다는 평을 듣는 나무다.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은 한 개인이 20년 전부터 정성스레 심어 기른 명품숲이다.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에 자리잡고 있는 숲은 ‘전국 비대면(언택트) 관광지 100선’, ‘언택트 경북관광지 23선’에도 선정되었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숲이지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입구부터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 사이로 걷다보면 청량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벤치 외에는 인공을 최소화 하고 숲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흙길이다.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추고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나무 밑에는 억새풀과 고사리, 닭의장풀, 자리공 등 온갖 풀과 꽃이 함께 자란다. 메타세쿼이아 주변으로 측백과 편백숲도 있다. 완만한 계단을 올라서면 멀리 동해도 볼 수 있다.

 

가볼만한곳-괴시리전통마을

◇괴시리 전통마을

괴시리 전통마을은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100여호의 가옥 중 30여호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마을은 원래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골이라 불렀는데 목은 선생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이곳이 중국의 괴시(槐市)와 비슷하다 하여 괴시리로 부르게 되었다. 토담과 돌담사이로 고즈넉한 마을을 산책하고 마을 뒷산을 오르면 목은이색 기념관이 있다.

마을 앞에는 동해안의 3대 평야 가운데 하나인 영해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괴정, 영해 구계댁, 영해 주곡댁, 물소와서당 등 국가 및 도 문화재자료도 14점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