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물도 전설도 없이 평범
전통 살린 시 쓰고 노래하고…
인문학 사업 통해 문화 조성
올해 정부 지원 없이 축제 개최
논두렁 사이 단체 학춤 없지만
학다례·국악공연 등 행사 풍성
주민 이야기 듣는 ‘사람책’ 인기
복합문화공간 명상·다례 체험
올 관광두레사업 선정 새 도전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는 예로부터 학이 날아들어 노닐었다는 마을이다. 도심에서 가까우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은 농촌체험휴양마을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김선국 객원사진기자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 유학산 기슭 후평지 둘레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그 사이로 ‘웅~웅~’하는 은은한 울림이 퍼져나간다. 크기가 각각 다른 사발 모양의 싱잉볼을 스틱으로 치거나 문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잠시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데도 마음 속을 가득 채웠던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자연이 그자리에 들어앉는다. 학상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싱잉볼 명상체험 시간이다.

 

후평지 둘레길에서 열리는 싱잉볼명상체험
후평지 둘레길에서 열리는 싱잉볼명상체험

 

가산IC를 빠져나와 구미쪽으로 5분 남짓 달렸을까, 왼쪽으로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너른 논이 펼쳐진다. 예로부터 학이 노닐었다는 학상리 마을은 노갱이, 들마, 칠송정(칠송징이), 토실(토곡), 사부테(사부동) 등 다섯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219가구에 3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학상리는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들이 있어서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지만 마을 경계에 학상공단도 있고, 구미까지 10분, 대구까지도 40분 남짓 밖에 안 걸려 인근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도 꽤 된다.

특별한 특산물도 없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은 칠곡인문학사업을 통해 학수고대마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칠곡 인문학마을은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 고유의 역사, 전통 등 특색을 살려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인문학 활동을 하며 자기 마을만의 소박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린다는 의미의 ‘학수고대’는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자취를 감춘 학이 다시 날아오기를, 더불어 마을을 떠난 사람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학수고대 무대에서 열리는 학춤 퍼포먼스
학수고대 무대에서 열리는 학춤 퍼포먼스

학수고대마을의 인문학은 처음에는 경로당에서 음악회를 열고 영화상영을 하며 주민들이 함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러던 중 마을 이름에서 착안한 ‘학춤’을 마을 고유의 특색있는 문화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30대부터 70대까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9명의 주민이 주축이 되어 학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존에 있던 학춤을 췄지만 2017년에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학상리 마을만의 학춤이 만들어졌다.

 

다시-학춤퍼포먼스
논두렁에서 펼쳐지는 학춤 퍼포먼스.

 

가을이면 1년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힘들었던 것을 잊고 다음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학수고대축제’를 여는데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흰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사람들이 황금 들녘의 논두렁 사이에서 학춤을 추는 순간이다. 해마다 축제기간에는 300명~400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아 전문가들의 가르침에 따라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학춤을 추고 다양한 체험과 전시를 즐겼다.

 

학수고대마을숲명상체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솔숲에서의 명상체험.

 

올해 10월에 열리는 ‘2023 학수고대 축제’는 그동안의 축제와는 결이 조금 달라져 오롯이 마을 주민을 위한 작은 축제로 바뀐다.
그동안은 농축산부의 지원이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온전히 마을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게 돼 이전과 같은 대규모 행사가 불가능해진 까닭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상징적인 축제를 포기하기보다 조금 축소하더라도 꾸준히 지속하는 쪽을 택했다. 들녘에서 단체로 추던 학춤은 볼 수 없지만 학다례와 국악공연, 어르신 노래자랑, 장구트롯 등 알찬 프로그램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학다례 공연은 마을의 상징인 학춤과 다례의 만남이다.

이렇게 작은 마을축제로 명맥을 유지해가면서 다시 인간학이 황금들판을 가득 채울 날을 준비할 예정이다.

학상리의 특별함은 또 있다. 바로 마을 이곳저곳을 느린 걸음으로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사람책’이다. 사람책은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어르신들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칠곡학수고대마을사람책
사람책 안내판.

‘달동네식당’ 강백수 어르신은 15년동안 달동네식당에서 순대국밥을 팔며 만난 인연을 소개해주고 ‘정 많은 서울댁의 정파는 구멍가게’ 이현정 어르신은 경로당에 구멍가게를 열어 주민들과 정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 다 퍼주는 스타일이에요 윤영숙’. ‘동물농장 김성환’ 등 책 제목도 흥미롭다. 마을을 찾기 전 미리 신청을 하면 마을 어르신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사람책
마을 어르신들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사람책

 

지난해는 마을 어르신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자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촬영해 상영회도 열었다. ‘화양연화-꽃다운 청춘, 그대에게 들려주는 노래’라는 영상을 통해 부부,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 알지 못했던 속내를 확인한 가족들이 감동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마을이 가진 인문학적 자산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스탬프투어도 있다. 지도를 보고 사람책 안내판을 찾고, 후평지와 유학산 둘레길을 걸으며 스탬프를 찍어오면 선물도 준다.

 

학다례퍼포먼스
학춤과 다례의 만남인 ‘학다례’는 학상리만의 특별한 콘텐츠다.

 

학수고대 복합문화공간과 강의실.
학수고대 복합문화공간과 강의실.

 

학수고대 복합문화공간은 마을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체험공간이다. 1층은 최대 15명까지 이용가능한 숙박시설로 활용한다.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돼 다른 마을에서 선진지견학도 많이 오고 1박 2일 단체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학춤을 배우고 명상과 다례, 숲체험을 하고 밤이면 쏟아질 듯 밤하늘에 가득한 별도 만난다. 간식은 옥수수와 감자다. 접근성도 좋으면서 도시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크게 홍보하지 않아도 찾은 이들이 많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행복하고 활력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결과 지난 2021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행복농촌마을만들기 콘테스트 문화·복지분야에서 금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인 경로당 2층은 마을 주민들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들의 작품전시공간이다. 이름도 재미있는 ‘미다지빼다지전시관’이다. 미닫이는 옆으로 여닫는 문, 빼다지는 서랍이라는 의미를 지닌 경상도 사투리다.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작품과 인두화,야생화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올해 관광두레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을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마을이 갖고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콘텐츠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관광사업과도 연계를 할 예정이다. 농촌관광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마을의 소득을 증가시키고 살고싶은 마을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이를 위해 마을 활동가들은 힐링과 명상에 포커스를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도심에서 가까우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채워가는 학수고대 마을의 이야기는 가을 들녘처럼 무르익어가고 있다.

박병철·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이순옥 운영위원장

 

 이순옥 학수고대마을 운영위원장 “학상리서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구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순옥 학수고대마을 운영위원장은 20대 후반에 남편을 따라 얼떨결에 학상리로 들어왔다. 첨에는 ‘아이들이 크면 도시로 나가야지’ 했는데 이제는 여기가 더 편하다.마을 구석구석 눈길 닿는 곳마다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처음부터 마을 일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15년 전쯤 마을 언니들을 따라 칠곡군에서 진행하는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상담, 노인복지로 이어졌다. “칠곡군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평생학습이나 학점은행제를 통해 교육을 시키고 다시 마을을 위해서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함께 나눌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학상리 김학봉 이장은 전반적인 마을 일을, 이 위원장은 마을 사업과 행사를 맡아 추진한다.

칠곡인문학마을 사업과 학수고대 운영위원장을 맡은 지도 10년이 흘렀다. 덕분에 올해 경북 행복농촌만들기콘테스트에서 우수활동가 부문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우리마을은
학수고대 마을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마을 활동가들. 왼쪽부터 최정순 강사, 이순옥 운영위원장, 이정민 감사, 김학봉 이장, 엄은희 강사, 이은주 강사.

 

“저는 참 복이 많아요. ‘위원장이 하라고 하는 건 무조건 다해주께’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마을 어르신들과 긴 세월 곁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마을 활동가분들 덕분에 지금의 학수고대가 있는것 같아요. 학상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널리 알려 더 많은 분들이 마을을 찾아오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겠지요”

학수고대 복합문화공간의 자립방안을 찾는 것이 지금까지도 고민거리고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금까지 마을 주민들끼리 재미있고 행복한 마을의 터전을 다졌다면 지금부터는 지속적으로 소득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올해 관광두레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을에는 새로운 활기가 감돈다.

“마을의 돌담길과 작은 시냇물을 따라 골목길 투어도 구상중입니다. 비어있는 옛집은 리모델링해 농가민박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1시간 남짓 걸리는 유학산 둘레길과 후평지 둘레길은 마을의 큰 자산입니다. 힐링과 명상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준비중이니 마음에 잠시 쉼표를 찍고 싶을 때 찾아오세요”

배수경기자

 

 

 

 

<가볼만한 곳>

 

가산수피아

◇가산수피아

가산수피아는 공원면적이 132,000㎡(4만여평)에 이르는 전국 최대 민간정원이다. 봄이면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장관을 이루며 테마정원, 허브원, 분재원에서 수많은 나무들과 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공룡뜰에는 몸길이 42미터로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브라키오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 등 움직이는 초대형 공룡 조형물이 있다. 가을이 되면 공원 곳곳을 가득 채운 핑크뮬리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희귀, 미기록 이끼식물이 자생하는 이끼정원과 천년솔숲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오감을 만족시키고 힐링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환혼’, ‘연인’ 등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하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함으로써 국가안보와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건물에 컨벤션홀과 4D입체영상관, 전투체험관, 평화체험관, 호국전시관 등이 있다. 기념관 외부에는 낙동폭포와 55m 태극기, 호국평화탑, 호국광장 등이 있다. 중앙홀에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빛바랜 대형 철모는 치열한 전투를 상징한다. 철모 위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55개의 탄피모형은 이곳에서 치뤄진 55일간의 전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