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자산골 새뜰마을] 예술 입은 달동네, 곳곳 야외 갤러리 변신
6·25 피난민 산비탈 깎아 형성
2015년 ‘새뜰마을 사업’ 시작
주민 주도 마을 되살리기 나서
집 앞 LED도로명 주소판 설치
사고 위험 지점 소방도로 확보
자투리땅 가꿔 마을 정원 조성
자전거 바퀴 등 화분으로 제작
골목·담장 특성 살린 벽화 ‘눈길’
바람개비에 소망 작성 체험 준비
마을기업 ‘카페자산’ 명소 등극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승용차도 못 다니던 작은 달동네 마을이 이젠 김천시에서 꼭 들려야 할 명소가 됐다. 김천시 자산골 새뜰마을 주민들의 집 앞에는 베고니아, 채송화, 국화 등 갖가지 꽃들이 우그러진 주전자, 빈 페트병, 컵라면 그릇, 자전거 바퀴, 낡은 헬멧 속에 활짝 피어있다.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운이 좋으면 재활용품 집하장에서 잠자고 있을 물건들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로 거듭나 마을 전체가 깨끗하고 환해지는 계기가 되자, 전국에서 마을정원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왔다. 뿐만 아니다. 마을의 빈집에 조금의 아이디어를 더했더니 SNS에서 핫한 카페가 됐다. 이 모든 건 자산골 새뜰마을 주민들이 10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이뤄낸 뿌듯한 결과다.
자산골은 해가 뜰 무렵이면 산이 자줏빛으로 변한다고 하여 자주색 자(紫)에 볕 양(陽)자를 써서 자양산, 또는 줄여 자산(紫山)이라 불리는 산의 서쪽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다. 한국전쟁 이후 6.25 피난민들이 산비탈을 깎아 집을 짓고 살면서 경사지에 형성된 달동네다. 한여름에는 언덕길을 오르느라 비지땀을 흘려야 했고, 연탄 배달을 시키면 한 장에 몇십 원씩 웃돈을 얹어 주어야 했다. 점점 사람들은 떠나가고 빈집이 하나둘 늘어났다. 대문들은 녹이 슬고 담장 모서리는 군데군데 부스러졌다.
달동네 자산골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지난 2015년 정부의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인 ‘새뜰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대상지역은 자산동 31~34통으로 약 250가구, 5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은 자산골 새뜰마을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주민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을 조정해 가면서 마을을 되살리는 일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여기에 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협동조합 ‘숲속애’ 여해련 대표 등 마을활동가들이 힘을 보탰다.
좁은 골목과 낡은 주택이 많은 전형적인 노후 저층 주거지인 자산골은 방범과 보안에 취약했다. 밤에도 눈에 잘 띄는 LED도로명 주소판을 집 앞에 설치해 생활 터전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환경 미화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화재 등 재난 발생 시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주요 지점에는 보이는 소화기 36대를 설치했고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위치를 선정해 소방도로를 확보하면서 안전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노상 주차가 다반사였던 공간은 축대를 조성해 공터로 만들면서 8개의 마을 주차장이 생겼다. 덕분에 길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져 어르신들은 불편함 없이 마을을 거닐 수 있게 됐고, 주민의 80%가 집에서 50m 안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정을 심는 마을정원 조성 프로젝트’는 단순히 마을의 외형을 단장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주민들이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십시일반 푼돈을 모아 자투리땅을 가꾸고 재활용품 화분으로 꾸민 마을 정원은 집 앞은 물론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잡초를 뽑고, 나무를 심고, 꽃밭을 가꾸고, 마을 구석구석 청소를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이웃 간 정이 깊어졌다. 그저 ‘한 동네 사는 사람’에서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되었다.
마을의 빈집을 철거하고 붕괴 위험이 있는 담장을 정비하면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자산골 벽화길도 탄생하게 됐다. 구간마다 테마를 정해 골목의 형태와 담장의 특성에 맞게 구성한 벽화는 마을을 찾은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는다. 11개의 골목에 호국길, 자산오솔길, 청룡길 등 다양한 벽화길이 있는데 그중 마을 언덕에 위치한 ‘성내동 할머니’ 벽화는 생전에 국밥 장사를 하며 번 재산을 후진양성을 위해 기부한 할머니를 기리고자 그려졌다.
바람개비를 입체화해 표현한 ‘너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람개비’는 야외 갤러리에 온 느낌을 준다. 앞으로 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의 소망을 바람개비에 적어 방명록을 남기는 체험도 준비할 예정이다. 또한 ‘정을 심는 마을정원’ 벽화에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기는 골목음악회, 골목극단 모습이 담겨있다.
새뜰마을사업에서 협의체의 가장 많은 고민의 흔적이 담긴 곳은 자산골 커뮤니티센터다. 위치 선정부터 설계까지 수많은 전문가와 주민들 간의 회의를 거쳐 탄생한 이 공간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당시 김천 읍장이 살았던 일본식 목조건축물이었다. 본래의 건물을 최대한 활용한 리노베이션을 통해 필요한 공간을 새롭게 증축하면서 차별화를 둔 점이 2020년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우수상, 국토교통부 ‘빈집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
커뮤니티센터 내 위치한 마을기업 ‘카페 자산’은 원목 나무와 흰색 색상으로 꾸며진 외형과 맛있는 디저트 덕에 SNS에서는 ‘김천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 알려져 주말이면 젊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원래 커뮤니티 센터를 마을 상품 판매, 동아리 활동,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하자는 주민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마을 주민의 70% 이상이 고령인 상황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고려해 김천 청년들이 직접 내린 커피와 구운 빵을 파는 카페 공간으로 탄생하게 됐다.
마을 기업인 카페 자산의 수익 일부분을 마을에 기부하고, 기부금을 주민 공동체 활동에 활용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청년들이 서로 상생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선순환 관계가 됐다. 카페 자산은 지난 6월 행정안전부에서 전국의 약 1천700곳의 마을기업 중 ‘2023년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됐으며, 김천혁신도시에 2호점도 생겼다. 오래되고 볼품없었던 적산가옥에서 자산골 커뮤니티센터로 재탄생한 이 공간은 마을 주민들의 지역공동체의 거점 공간이 되어 따뜻한 온기가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마을이 되살아나면서 자산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졌다. 주민협의체가 마을의 발전을 위해 봉사한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회색빛으로 우울했던 마을은 생활환경 인프라를 개선하고 직접 마을을 꾸미면서 정감 있고 깨끗한 동네로 발전했다.
동네 위 자산공원은 산책과 운동을 하기에 좋고, 마을은 온종일 햇살이 가득하고 탁 트인 조망은 일품이다. 김천시의 한복판이어서 터미널, 기차역 등 각종 생활 편의시설 이용에도 편리하다. 그래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마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이 동네 집을 살 사람이 없어서 못 팔았는데, 지금은 팔려고 내놓은 집이 없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떠나 빈집이 됐지만, 그 자녀들이 나중에 들어와 살겠다며 관리하는 집도 많을 정도로 이젠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가 됐다. 2020년 새뜰마을사업은 끝이 났지만 지역기업과 연계해 계속해서 마을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금도 끝없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예술인 마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주민들은 또다시 힘을 합치고 있다. 자산골 마을에는 내일도 희망찬 해가 솟아날 것이다.
윤성원·김민주기자
<우리마을은>
이정길 위원장 “마을서 살고싶단 얘기에 어깨 으쓱”
“마을 자체가 김천시 중앙에 위치해있어요. 큰 마트, 터미널 등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어 살기 좋은 동네임에도 도시재생사업을 하기 전까지는 동네에 활기가 없었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던 동네가 이제는 깨끗하고 꽃향기 가득한 동네가 되서 마을을 찾는 분들마다 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면 절로 어깨가 으쓱해요”
만나자마자 마을 주민들의 노력을 하나씩 얘기하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이정길 자산골 주민협의체 위원장의 표정에는 감사함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2014년 도시재생사업 공모를 위해 만들어진 자산골 주민협의체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66세부터 84세까지 고령의 회원들이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마을을 위한 활동을 하자는 생각으로 모였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입장과 생각이 다르니 갈등도 있었지만 이젠 서로 눈만 마주쳐도 쿵짝이 맞는다.
“우리 마을 같은 곳도 잘 없죠. 매일 저녁 화분에 물을 주러 나왔다가 자리 펴고 앉으면 바로 ‘길거리 밥상’이 펼쳐져요. 누군가 된장국을 끓여 나오면, 누군가는 찬밥을 들고 나오죠.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수확해서 비빔밥도 해먹으며 함께 밥을 먹어요. 거의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따로 회의가 필요 없죠”
올해로 자산골 주민협의체 위원장 8년차인 이 위원장은 아직도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작년에는 마을 정원에 폐드럼통을 활용해 빗물을 모아 물을 주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상했다. 점차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픈 고령의 주민들에게 자동화 물주기 시스템은 편의를 제공했고 드럼통에 귀여운 그림을 더하면서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포토존이 됐다.
몇 년 전, 동네 커뮤니티센터를 만드는 게 꿈이라던 그의 소망은 이미 이뤄졌다. 심지어 이곳은 김천의 유명 명소가 됐다. 올해부터는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예술인 마을을 구상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며 예술의 정취가 더해진 자산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민주기자
<가볼만한 곳>
◇직지문화공원…시립박물관 등 볼거리 풍성
직지문화공원은 천년고찰 직지사 바로 앞에 있다. 2004년 7만 9160㎡ 규모로 조성됐다.
공원 가운데로 직지천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 청량감을 더해 준다. 공원 내부에 우거진 수목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좋고 중간 중간에 설치된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파트 7층 높이의 커다란 장승 2기를 만날 수 있다.
공원 곳곳에 설치된 세계 유명작가들의 조각품 50점과 20점의 시비를 감상할 수 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2단 인공폭포와 하늘을 향해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분수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한여름의 무더위가 단번에 날아간다.
야간에는 ‘빛과 풍경’을 모티브로 한 형형색색의 조명이 색다른 야경을 연출한다. 공원 내부와 인근에 세계도자기 박물관과 시립박물관, 백수문학관, 사명대사공원, 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 기념비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사명대사공원의 대형 5층 목탑인 평화의 탑과 대형 화합의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한 장의 인생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좋다.
◇레인보우 짚와이어…부항댐 중심 곳곳 관광명소
김천시 부항댐 위에 설치된 ‘레인보우 짚와이어’의 철탑은 높이 93m, 길이는 왕복 1.7km에 달한다. 출발타워 85m 높이에는 둘레 38m의 둥근 공간을 안전줄을 매고 한 바퀴 둘러보는 스카이워크 체험시설도 마련돼 있다. 주변에 산내들 오토캠핑장, 어드벤처파크 등 김천 부항댐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명소가 곳곳에 있다. 짚와이어 왕복 체험 이용료에는 부항면 지역상품 교환권 5,000원이 포함되어 있어 특산품을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스카이워크는 예약이 필수이며 짚와이어 체험은 전화, 인터넷 예약이나 현장 발권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