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해평면 해평리] 세월 속 켜켜이 쌓인 이야기…인문 기반 ‘새 활로’ 찾다
마을회관 옆 300년 넘은 느티나무
낙동강·얕은 산, 동네 감싸 ‘아늑’
7개 자연부락 묶어 해평동 명명
중요 민속문화재 ‘쌍암고택’
내년 공사 완료…고택체험 제공
2022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구미 해평면 해평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300여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의 넉넉한 풍채만 봐도 마을의 오랜 역사가 가늠이 된다. 마을 앞으로 넓은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얕은 산이 버티고 있는 것이 한없이 아늑해 보인다.
늦은 오후가 되자 경로당에서 나온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스듬한 햇살을 받으며 느리게 걷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묻어난다.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마을도 마찬가지다. 마을 곳곳엔 마을의 어르신의 골 깊은 얼굴 주름처럼 깊은 역사가 다양하게 녹아있다.
해평리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해평 지역의 대표성을 갖는 마을이다. ‘해평’이라는 명칭은 신라 때 병병현이었다가 경덕왕 때 파징현으로 바뀌고 고려 태조 때 해평군으로 승격된다. 이후 일제의 강점으로 토지조사와 함께 실시된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해평면으로 결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대 해평면장 유용택씨는 해평 들판을 앞에 두고 있는 ‘앞뜸’, 남쪽에 있는 마을 ‘남촌’, 소나무가 있는 동산이 있는 ‘솔미’,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보천사가 있는 ‘보전’, 전주 최씨 종손이 대대로 살았던 마을로 큰 집(안)에 간다는 의미를 담은 ‘골안’, 낙동강으로 왜구의 침입이 있어 토성을 쌓아 방비책으로 이용했던 ‘산성마’, 마을 뒤편에 있는 ‘뒷마’ 등 7개의 자연부락을 묶어 해평동으로 결정했다.
지금의 해평리 마을 앞에서 곧바로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하천 ‘습문천’도 많은 이야기를 지닌다. 1960대까지만 해도 습문천이 마을을 감싸 흘러 여름밤이면 개울에 모여 목욕을 했고, 아침이면 모래 웅덩이가 만들어 준 물을 길어 식수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전래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옛날 낙동강 물이 마을의 뒷산과 동산 옆으로 흘렀다고 한다. 거센 낙동강물이 모래를 싣고 와 만든 퇴적층에 주민들은 땅콩을 심기 시작했고, 이 땅콩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1980년 대까지 전국 1등 땅콩 재배 마을로 유명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세월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회관을 지나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서면, 마을 앞 느티나무를 보고 들었던 감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마주 보고 있는 쌍암고택과 북애고택의 풍채는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햇빛 바랜 역사가 오롯이 담겨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듯하다.
중요 민속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쌍암고택’의 이름은 원래 대문 앞을 버티고 서 있었다는 커다란 바위 두 개 때문에 붙여졌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이 흐르며 바위 하나는 이웃에 새집이 지어지면서 묻혀 버렸고 다른 하나는 그 집 담벼락 안에 숨어 있다.
쌍암고택의 길 건너에는 ‘북애고택’이 있다. 영정조 시대의 실학자 최광익이 정조 12년(1786)에 지은 둘째 아들의 살림집이었으나 나중에 그 형과 집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쌍암고택의 북쪽 언덕(북애)에 있다 하여 ‘북애고택’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재 해평리 최열 이장의 생가이기도 한 쌍암고택은 2020년부터 선조가 남긴 고유한 문화유산의 그윽함을 느껴볼 수 있는 고택체험을 시도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직 제대로 이용한 관광객은 없다. 운영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미뤄둔 사랑채 공사를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고쳐야 할 곳이 많아 2년간 수리 중이다. 내년이면 공사가 마무리되어 새 단장을 마치고 많은 관광객들에게 고택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온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마을 입구 담장에 꽃 그림·시
‘인문마을 공동체 사업’ 선정
‘해평하리 이야기’ 책 발간
관광객에 마을 역사 설명도
또한 마을 입구 담벼락에는 꽃 그림과 시가 있다. 꽃송이 대여섯 개에 아주 서툰 글씨로 쓰인 시는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벽화는 2018년 구미시 전역에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한 ‘온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자원봉사자, 주민, 만화가 이루비씨의 도움으로 동네 담장에 여러 풍경화가 그려지면서 마을은 한층 밝아졌다.
현재 해평리는 1990년대 이후 구미시 낙동강 상수원지로 규제지역이 되면서 개발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예전엔 낙동강변 모래사장에 땅콩을 심어 땅콩 산지로는 1등을 했지만 이젠 마을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평리 마을 주민은 총 252명으로 평균 연령은 62세를 넘는 고령화 마을이기도 하다.
고령화 마을을 극복하고자 마을 주민들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구미시에서 진행 중인 ‘인문마을공동체 조성사업’에 작년 2월 해평면 해평리가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인문을 기반으로 한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해 나가고 있다. 해평리 인문마을공동체(해평리 새마을회)는 ‘해평하리 이야기’를 책으로 담은 마을 이야기 기록단과 마을해설사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이야기 기록단은 해평리 마을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원주민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을 발간하여 해평리를 기록하고 간직하고자 한다. 또한 해평리의 주민 6명이 마을해설사로 활동하며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마을의 역사를 설명한다. 현재 해평리의 주민들의 60%가 외지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문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알리고 마을에 대한 애향심과 자긍심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규열·김민주기자
우리 마을은
최엽 이장…”고택·산·낙동강 이용 둘레길 만들고파”
최엽 이장은 이곳 해평리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3학년까지 마을에 살다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떠났다. 방학에는 할머니 집인 마을에 와 노상 살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마을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다. 10년 전, 전주 최씨 고택의 대를 잇고자 마을로 돌아온 후 2년 전부터 해평리의 이장이자 마을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마을엔 예로부터 전해오던 이야기가 참 많아요. 어렸을 적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 상여와 정월대보름, 꼼비기 날의 풍경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있죠. 이제라도 우리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남길 수 있어 참 뜻깊은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최 이장은 이장이 된 후 면사무소로부터 인문마을 만들기 제의를 받았다. 이후 해평리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책을 발간하고 이 내용을 설명하는 마을해설사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21년 3월, 마침내 구미시의 ‘인문마을공동체’에 선정되면서 ‘인문마을 만들기 해평하리 이야기’ 현판 제막식을 가졌을 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꿈이 이뤄지는 것 같았다. “해평리 마을의 해설사는 이 마을의 주민인 김일두, 예경희, 최종방, 최재성, 김정선씨와 이장인 제가 맡고 있어요. 무더운 여름, 농사로 바쁜 시기에도 12주의 긴 시간 동안 해설사가 되기 위한 교육에 열심히 참석해 준 주민분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려요.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된다는 말처럼, 이번 인문마을 활동을 계기로 해평리의 새로운 문화나 역사가 또 발견되길 바라고 있죠”
최 이장은 마을의 자랑인 쌍암고택·북애고택, 베틀산, 낙동강을 이용한 둘레길 코스를 만들어 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해평리는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정착해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예요. 동북쪽으로는 베틀산과 냉산이 호위하고 낙동강이 마을 뒤에서 흘러와 옆을 지나가는 명당이죠. 둘레길이 만들어지면 자연의 풍경과 마을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고 사계절마다 제각각 다양한 매력이 숨겨진 우리 마을을 찾아오는 분들이 더욱 늘어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김민주기자
가볼만한 곳
◇도리사…신라 최초 사찰
구미 해평 태조산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했다고 한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 숙종 3년(1677)의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 뒤, 영조 5년(1729년)에 아미타불상을 개금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도리사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아도화상 석상·세존사리탑·아도화상 사적비, 조선 후기의 탱화 등이 있다.
◇금호연지…멸종위기 식물 가시연꽃 자생지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금호연지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식물(2급) 가시연꽃의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8월쯤이면 홍련이 가득 피어올라 전국 방방곡곡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도화상이 “이 못에 연꽃이 길이 피거든 나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알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