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장승배기마을] 義와 禮의 고장…심금 울리는 ‘효자의 전설’ 흐른다
2020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의성 장승배기마을
마을 이름의 유래
입구에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주막 오고가는 길손들 반겨
지금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
의성군의 서쪽 끝, 상주시와 맞닿은 단밀면의 중심에 장승배기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이름때문인지 마을을 방문하는 이는 장승부터 먼저 찾기 마련인데 지금은 장승은 없고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약 400년전 해주 오씨가 처음 개척했다고 전해지는 이 마을 입구에 오래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새긴 커다란 장승이 서있고 그 앞에 주막이 있어 오고가는 길손들의 휴식처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남쪽으로는 만경산이 솟아있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장승배기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의성군 단밀면 생송1리로 송상, 새동네(새마을), 솔티 등 세 개의 자연부락이 합쳐진 마을이다. 세 개의 자연부락은 드문드문 퍼져있어 마을의 시작지점에서 끝까지 거리가 4km에 이른다. 각 마을의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주민들 간의 정은 가깝고 두텁다.
효심 DNA
마을 곳곳에 효자각·열녀각
젊은이들 어른들에 지극 정성
주민 주도 마을봉사 모임도
이 마을은 의(義)와 예(禮)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의성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효자와 열부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무심히 길을 걷다가도 전설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효자각이나 열녀각을 만날 수 있다.
낙단보에서 912번 지방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보면 왼쪽에 작은 정각이 보여 잠시 가던 길을 멈춰본다. 김형석 정려각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붙어있다. 정려각은 충신이나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집이다. 그는 어떤 이유로 정려각을 받게 되었을까 궁금해 안내판을 읽어본다. 1848년 태어난 김형석 선생은 단종 복위때 죽은 김문기 선생의 후예로 아버지를 따라 이 마을로 왔다고 전해진다. 어느날 어머니가 병중에 소고기를 드시고 싶어하자 상주까지 구하러 갔으나 얻지를 못하고 버드나무 아래 앉아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을 한탄했는데 까마귀들이 소고기 한 꾸러미를 나무 위에 달아놓고 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기이한 일이 생긴 것이 바로 그의 효심 덕분이라고 칭찬을 했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할 때는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마을 뒤편에 묘소를 짓고 3년간 시묘살이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효행을 기려 정려각이 세워졌다. 마을의 폐교 근처에도 또다른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1870년에 태어난 권상두 선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옷자락에 피눈물이 나도록 울었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주었다고 한다.
효심의 DNA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70·80대가 많은 마을이지만 어른들을 대하는 젊은이의 마음은 남다르다. 물론 젊은이라고 해도 50대다. 외출을 하다가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을 만나면 둘러가더라도 모셔다 드리고 타지에 있는 자식보다 더 알뜰살뜰 정성을 기울인다. 마을주민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단은 어르신들 머리에 흰머리가 자라나면 염색을 해드린다. 일주일에 두세번 마을회관으로 어르신들이 한글수업을 갈때면 기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덕분에 마을이 넓게 퍼져있어 회관과 거리가 멀지만 출석률이 높아 외부에서 오는 강사도 놀란다고 한다.
가지로 마을에 ‘활력’
하우스 재배로 사시사철 생산
말린가지로 만든 비빔밥 인기
가지꼭지차 등 가공식품도 개발
장승배기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다. 그 중에서도 벼와 가지의 비중이 크다. 의성하면 보통 마늘을 떠올리지만 가지 역시 전국 생산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에서는 노지재배와 하우스재배를 겸해 사시사철 가지를 생산한다.
모든 작물들이 다 그렇겠지만 생산량이 많이 늘어날 때면 가격이 폭락한다. 특히 가지는 오래 보관하기 힘이 들어 손해를 보더라도 헐값에 팔아야 한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가지를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지가 많이 생산될 때 저장을 해서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가지를 말려 보관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은 만경산농장의 박귀자대표다.
박대표는 자칭타칭 ‘가지아지매’라 불린다. 인근 상주시 낙동면에서 30년전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 가지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15년째다. 가지를 말려서 판매에 나섰지만 다들 말린 가지는 처음이라 선뜻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박 대표가 직접 음식을 해서 시식코너를 마련하고 말린가지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고객에게 맛을 먼저 보였다. 말린 가지는 가지의 영양소는 그대로 갖고 오면서 생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쫄깃한 식감까지 있어 한번 맛 본 사람은 대부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보관과 저장이 쉬워지니 수출까지 가능해져 홍콩의 한식당에서 가지비빔밥의 주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한 농가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조만간에 단밀면에 가지 가공공장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마을은 물론 단밀면 전체의 가지 판로에도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 예정이다.
박대표는 말린 가지와 가지꼭지차 외에도 가지부각 등 가지를 이용한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박대표의 만경산농장은 마을의 문화센터 역할까지 맡고 있다. 말린 가지 생산 외에도 김장철에는 절임배추 작업 등으로 쉴 틈이 없지만 복지관이 공사중이라 마땅히 수업할 장소가 없는 마을주민들을 위해서 쾌히 장소를 제공한다.
덕분에 일주일에 두번씩 아침 저녁으로 마을주민들이 모여 천연염색 수업도 하고 난타수업도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지만 때로는 수다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라는 뜻밖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머리 맞대고 천에 염색도 하고 장구 두드리고 노래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지요.” 듣고보니 만경산농장이 지금은 사라진 우물가나 빨래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시콜콜한 집안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동안 마을주민들 사이의 정도 더 두터워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든 것이 농사지만 그 와중에 이렇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과 아끼지 않고 함께 나누는 이들이 있어 장승배기마을 사람들은 즐겁다. 김병태·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이끌고 베풀고…마을이 잘되는 이유죠” 이춘옥 이장
“얼떨결에 이장을 맡게 되었지만 우리 마을은 화합이 잘되서 힘이 하나도 안 들어요.”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춘옥 이장은 마을 주민들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이 마을에 시집온지 28년째, 그사이 부녀회장 12년을 거쳐 이장이 된지도 3년째다. 이장은 부녀회원, 청년회원을 비롯한 마을주민들이 너무 잘 도와준다며 자랑하기 바쁘고 만경산농장 박귀자 대표는 “본인이 어째 자기 자랑을 하겠노”라면서 “이장님이 오늘 모여라 하면 바로 다 모인다. 앞에서 잘 이끌어주지 않고 베풀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나.”면서 슬쩍 귀띔을 한다. 지나가다 만난 주민은 부침개를 부쳤다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이끌더니 결국에는 부침개 몇장을 담아와 손에 쥐어준다. 잠깐사이에도 정이 오가는 것이 느껴지며 잘되는 마을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행복마을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에 꽃길을 조성할 예정이예요. ‘이런거 해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니 다들 ‘우리도 한번 부딪쳐보자’고 적극적으로 동의를 해줘서 벌써부터 내년이 기대가 됩니다.”
그 밖에도 이 이장은 마을에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중이다. 지금도 어디 가실 때는 전화하시라고 하고 편찮으시다고 하면 부녀회장과 함께 달려간다.
“코로나 때문에 경로잔치가 밀리고 밀리는게 안타까워요.” 마을 공동자금을 모아놓고 얼른 경로잔치 할 날도 기다리고 있다.
<가볼만한 곳>
◇생송리 마애보살좌상
의성 생송리 마애보살좌상은 2010년 10월 낙단보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됐으며 낙단보 마애불로도 불린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좌우로 약간 벌어진 삼산형(三山形)의 보관을 쓰고 한 손에는 연꽃가지를 쥐고 낙동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전체 높이가 213cm, 보살상의 높이는 164cm에 이르며 신체는 평면적으로, 얼굴 부분은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새긴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2011년 9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2호로 지정이 되었다. 낙단보 문화관에 주차를 하고 마애불과 낙단보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