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구산마을] 조선시대 울릉 지킨 수토사 숨결 ‘오롯이…’
전국 각지서 관광객들 몰려
오토캠핑장·솔밭 연일 북적
[2020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울진 구산마을
울진군 기성면 구산해수욕장은 울진군 내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인기 높은 해수욕장으로 연인원 약 10만 명이 찾아온다. 특히 지난해 핑클 멤버들이 출연한 JTBC ‘캠핑클럽’을 통해 구산해수욕장 소개되면서, 지난여름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구산마을의 깨끗한 바다 그리고 넓은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동해의 일출은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해수욕장이 폐장한 뒤에도 카라반, 글램핑, 오토캠핑, 나무데크 등을 갖춘 오토캠핑장과 솔밭에는 캠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해수욕장 북쪽 구산방파제는 낚시꾼들도 많이 찾는다.
구산마을 가운데에 있는 구산어촌체험마을 건물은 1층은 사무실과 강의실, 2층은 펜션으로 사용되고 있다. 펜션은 소박하지만 화장실, 냉장고, 싱크대, 에어컨, TV 등이 갖춰져 있으며, 무엇보다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구산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체험프로그램은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준비돼 있는데, 아이들의 색다른 체험학습거리로 좋다. 바닥에 투명창이 달린 배를 타고 바다 속을 관찰하는 창경보트체험, 배를 타고 나가 문어 등 해산물들이 갇힌 통발을 끌어 올려보는 통발체험을 비롯해 갯바위낚시, 조개잡이 체험, 대게 경매체험 등이 있다.
개관 앞둔 ‘수토문화전시관’
역대 수토사와 관련 유적
동해안 수군 등 다양한 기록
독도 조형물ㆍ아트월 눈길
어촌체험마을 건물 뒤편으로 한옥 두 채가 보이는데 최근에 지은 것이 수토문화전시관이고, 단청이 있는 건물이 경상북도 기념물 165호 울진 대풍헌(待風軒)이다. 대풍헌 처마에는 대풍헌 현판 옆에 기성구산동사(箕城龜山洞舍) 현판도 걸려있다. 이 건물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51년(철종2년)에 중수하고 대풍헌 현판을 걸었으며, 1906년에 다시 중수했고 201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중건·복원했다는 내용이 내부 현판에 기록돼 있다.
대풍헌은 ‘바람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뜻이다. 기성구산동사는 요즘말로 풀면 ‘구산리 마을회관’ 쯤 되겠다. 옛 사람들이 기다린 바람은 바로 울릉도로 가는 순풍이었다.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에 가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명백히 하고 돌아온 이후, 조정에서는 1694년 삼척영장 장한상을 최초의 수토사로 울릉도에 파견했다. 그 후 200년동안 2~3년 마다 수토사를 보내 울릉도와 독도를 조사, 관리하도록 했다.
수토사의 임무는 당시 거주가 허락되지 않았던 울릉도에 몰래 들어가 사는 주민을 수색하는 것, 일본인의 불법 어로활동을 살피는 것, 울릉도 지세를 조사하고 토산품과 산삼을 채취해 진상하는 것 등이었다. 수토사는 해안경비부대 지휘관 격인 삼척영장과 월송만호가 번갈아 맡았다.
수토사의 규모는 처음에는 6척 150명이었다가 나중에는 4척 80명 정도였는데, 이들은 출발하기 전 구산리 마을회관에 머물며 울릉도를 향한 순풍을 기다렸다. 대풍헌 소장문서 ‘완문’과 ‘수토절목’에는 수토사 일행의 체류비용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 완문은 수토비용 마련에 대해 평해군수가 구산마을에 발급한 문서인데, 인근 8마을과 함께 비용 분담을 하도록 했으나 구산마을에 부담이 집중되자, 평해관아에서 각동에 120냥을 분배하고 그 이자로 수토비용에 충당하라는 내용이다. 수토절목은 수토 때 지켜야할 12항목을 적은 것이다. 수토비용과 관련해서는, 추가로 상선과 선주에게 세를 받는 등의 방법을 쓰도록 평해군 관아에서 결정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 대풍헌 내부에 걸린 현판 중에도 수토비용 부담이 과중한 구산마을에 돈과 땅을 내어준 평해군수의 덕을 기리는 것도 있다. 대풍헌에 걸린 현판 중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12점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일괄 지정됐다.
대풍헌 앞 수토문화전시관은 아직 정식 개관은 하지 않았지만, 내부를 둘러볼 수는 있었다. 대풍헌, 역대 수토사와 관련 기록·유적, 울진 대풍헌과 울릉도 대풍감, 동해안 수군 등에 대한 다양한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전시관의 마지막 부분에 걸려있는 대형 한반도 고지도와 실시간 독도 영상은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전시관 건너편에는 독도 조형물과 수토선, 수토사의 활동을 그림으로 담은 아트월이 있다. 대풍헌 뒤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수토사 추모광장과 전망대도 조성돼 있다.
건강한 공동체 정신
마을 원로조직 ‘존위회’ 구성
지역 주민 하나로 묶는 역할
오랜 전통 굳건하게 지켜가
구산해수욕장, 구산어촌체험마을, 대풍헌과 수토문화체험관을 갖추고 있는 구산마을은 캠핑, 어촌체험활동은 물론 문화역사공부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인근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도 있고, 수질이 좋기로 이름 높은 백암온천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부한 관광자원보다 더욱 구산마을을 특별한 마을로 만드는 것은 전통적 주민자치의 계승이다.
예부터 동해안 일대의 마을에는 노반계(老班契)라는 이름의 원로조직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그런데 구산마을은 마을대소사의 최종결정권을 가진 원로회의인 존위회(尊位會)가 주민들의 존경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전통을 굳게 지켜가고 있다. 구산마을은 행정상 구산1리와 2리로 나눠져 있어 이장과 부녀회는 각각 조직돼 있지만, 그 외에는 여전히 하나의 마을로 움직이고 있다. 어촌계도 하나이고 번영회도 하나이고 청년회도 하나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존위회다. 연령만 되면 존위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장, 어촌계장 등 젊을 때 마을일에 헌신한 경력이 인정돼야 한다.
이렇게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마을이니, 귀어귀촌 하려고 왔다가 마을에 뿌리내지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박승순 구산리번영회장은 “우리 마을로 귀어귀촌한 사람은 다 정착했다”면서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잘 협조하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을의 전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와 관련해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존위회에 전해 내려오는 동법(洞法)에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 대대로 내려온 마을공동재산에 대한 지분을 언제부터 인정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정해져 있어요. 그 재산은 옛날부터 이 망우리 동네에 이사 왔다고 존위회에 인사드리는 날부터 시작해 꼭 10년을 채우면 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마을 전통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전존위, 대존위, 시존위, 동수, 시동수 등의 마을 직책과 인명이 새겨진 대풍헌 대청의 현판들이 떠올랐다. 울릉도 독도를 지킨 수토사들의 활약 뒤에는 구산마을 백성들의 건강한 공동체정신이 숨겨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신이 구산마을에서는 아직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놀랍기는 하지만 전혀 이상할 건 없다는 생각도 함께.
김익종기자 ·김광재객원기자
<우리 마을은>
“성대한 풍어제, 마을의 자부심이죠”권창복 이장·박승순 번영회장
구산해수욕장은 지난여름 수차례 태풍으로 피해의 흔적을 아직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코로나 블루’를 날려버리려는 캠핑객들은 맑은 가을 바다와 조용한 송림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깨끗하게 단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태풍으로 어망손실도 많았고 가옥이나 농로 피해도 많다보니 해수욕장 정비는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겠지요.”
박승순 번영회장은 해수욕장, 월송정, 수토문화전시관과 더불어 월송정 인근에 국책사업으로 조성될 해양치유센터가 들어서면 구산마을의 관광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해수욕장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2024년까지 들어설 해양치유센터는 해양 심층수, 온천, 송림 등을 활용한 건강 증진과 레저, 관광을 연계한 해양신산업 육성을 위한 시설이다.
구산마을의 대표적인 수산물은 대게, 문어, 미역 등이다. 왕돌초에서 잡은 대게와 문어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동해안에서 제일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온이 높아진 탓인지 어획고가 줄어 어민들의 걱정이 좀 늘었다고 한다.
구산마을은 마을 원로회의인 존위회가 중심이 되어 4년마다 풍어제를 지낸다. 권창복 이장은 “내년 가을에 좋은 날을 정해 2박3일 동안 굿판을 벌입니다. 인간문화재들을 초청해서 벌이는 인근에서 제일 큰 풍어제입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요즘 이장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마을도 많지만, 이 마을에는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유입되는 인구가 없어 소멸을 걱정하는 동네도 있지만, 이 마을은 외지에서 들어와 낚시, 스쿠버, 배, 모텔 등 여러 사업을 하며 자리 잡은 주민들도 많다. 구산마을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대처할 줄 아는 현명한 원로들과 그들을 신뢰하고 따르는 성실한 주민들이 신구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가볼만한 곳>
◇월송정(越松亭)
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越松亭)은 주변의 넓은 소나무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이다. 연산군 때 강원도 관찰사로 온 박원종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미 고려 충선왕 때에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므로 박원종이 중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일제말기에 연합군 비행기의 공습 목표가 된다하여 월송면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철거당했으나 1969년 평해·기성·온정면 출신의 재일교포들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을 받아 철근2층 콘크리트의 현대식 건물로 정자를 신축했다. 그 후 1980년에 도비를 들여 옛 모습으로 복원했다.
월송이라는 이름은 일만 그루 소나무 숲 속에 있는 정자를 네 신선이 들르지 않고 지나갔다 하여 유래했다고도 하고, 신라 때 네 화랑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하고, 월나라(越國)에서 소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지어졌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