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옛날솜씨마을] 술 빚고, 부각 만들고…홀로서기 성공한 ‘금손’ 어르신들

옛날의 어르신들은 모두 자신만의 솜씨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다. 술을 잘 빚거나, 두부를 잘 만들거나, 바느질 솜씨가 좋거나, 공예품을 잘 만드는 등 다른 사람보다 특출난 솜씨 하나씩으로 마을에서 상부상조하며 지냈다. 마을에 상을 치르거나 결혼식을 하는 날이면 술을 잘 빚는 사람은 술을, 두부를 잘 빚는 사람은 두부를, 바느질 솜씨가 좋은 사람은 예복을 만들어 마을 공동으로 의례를 치러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공장에서 기성품으로 생산되면서 어르신들은 더이상 솜씨를 발휘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이미 나이도 많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어르신들에게 솜씨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노년의 삶을 보람 있고 활기차게 만드는 마을이 바로 김천 옛날솜씨 마을로 불리는 장뜰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어르신들 각자가 솜씨를 발휘해서 도시민들이나 학생들에게 체험의 장을 마련해서 소득을 창출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이 일로 서로 소통하고 의지하며 지냄으로써 자연스럽게 노인복지까지 해결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 이 마을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는 두부, 약초로 만드는 석감주, 전통 고추장, 술 담기, 인절미, 사찰 음식인 감자부각, 남자 어르신이 주로 하는 짚풀 공예, 겨울철에는 김장, 에코백과 머그컵까지 분야가 무한대이다. 특히 전국식품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감자 부각은 마을 근처의 청암사에서 주로 해 먹던 음식으로 절에 큰일이 있을 때면 마을 사람들이 도우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음식으로 일반 가정에는 흔하지 않은 음식이다.

농촌관광마을로 체험 마을을 꾸려온 지 17년째인 이 마을은 초기부터 농업진흥청과 농림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정도로 탄탄하게 꾸려왔다. 보여주기보다 마을 어르신들의 솜씨를 통해 내실 있게 운영되어 온 이 마을은 휴양마을, 팜스테이 등록이 되어 있어 마을의 회원 집에서는 민박이 가능하다. 물론 음식은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공동으로 만든 것을 제공하는데 어르신들의 솜씨로 만들어내는 비빔밥이 특히 인기가 높아 비빔밥을 먹으러 이 마을에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안동 이야기 박람회에서는 이 비빔밥과 황토 염색으로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비빔밥은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들로 만들기 때문에 아마도 맛이 더한 듯 하다.

원래 장뜰마을은 청암사의 사하촌으로 절에 큰일이 있을 때 음식을 도우러 가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때 익힌 솜씨 덕분에 할머니들의 음식솜씨가 뛰어나다. 특히 사찰 음식 쪽으로 특화되어 있어 건강식을 찾은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마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솜씨가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면서 마을은 활력이 돌기 시작했고, 아침이면 회원 어르신들이 사무실에 오시면서 자연스럽게 매일 안부도 묻게 되었다. 무엇보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더이상 어른들의 안부 때문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니 옛날솜씨마을의 사무실은 어르신들의 사랑방 돌봄 역할도 톡톡히 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나오지 않는 어르신들 집에는 꼭 전화를 걸어 나오시도록 하는데 그럼으로써 노인들의 생활을 저절로 돌보게 된다. 농촌 마을의 수익 창출과 더불어 생각지도 않았던 어르신 돌봄이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염색이나 짚풀 공예 등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동네 할아버지가 직접 가르쳐 주시는 짚풀 공예뿐만 아니라 황토 염색이나 감물염색 등은 주변의 재료를 직접 채취해 사용했다. 황토 염색은 처음에는 근처 수도산에서 황토를 채취해 왔으나 채취의 어려움으로 지금은 황토가 좋다고 소문난 강진에서 가져다 쓴다. 감물염색은 파란색 감을 사용해야 하는데 감이 익기 전에 수확해서 일 년 동안 쓸 것을 저장해 둔다. 마을의 모든 생산물이 어르신들의 솜씨에 동원되는 것이다.

평균연령이 76. 5세로 고령이지만 이 마을은 활기가 넘친다. 각종 음식과 공예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회원 어르신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는데 매월 60∼70만원 정도를 나눈다. 10년 전 2천만 원에 불과하던 마을 수입이 지금은 1억 8천만 원 정도로 늘어났다. 평촌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1500년대 말 성주이씨와 청주한씨, 밀양박씨 등이 어울려 마을을 형성했다. 평촌이라 불리는 마을 이름은 대가천을 따라 나 있는 산간오지마을로 형성된 증산면에서 유일하게 들이 넓은 지역이라 하여 붙여졌다. 옛날솜씨마을이라고 불리는 장뜰마을은 평촌리의 세 마을 중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주변의 들이 넓어 장평이라 적고 장들이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장뜰로 불리게 됐다.

회원 마을 집 입구에는 재미있는 문패가 있다. 금잔디집에는 “언제나 신혼같이-최병술, 남정임 어르신”이라는 문패가 있고, “우리 할배가 오토바이 타는걸 좋아했지-김봉수, 조정자 어르신”댁이라는 술 빚는 집, “소싯적 내몬생깃다고 남장하라 카더라 가운데가 내라예-김순연 어르신”댁이라는 사거리 정자집 등 집집마다 특색있는 문패로 집을 알리고 있다. “언제나 신혼같이”라고 되어 있던 금잔디집 할머니께 지금도 신혼이냐고 여쭤보았더니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창고에서 일을 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어느새 나오셨는지 가만히 바라보시던 그 금잔디집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옛날솜씨마을로 생기는 수익은 가구마다 균등 분배할 뿐만 아니라 일 년에 두 번씩 꼭꼭 해외여행도 간다고 한다. 인솔은 마을의 일을 도맡아 하는 사무장 부부가 한다는데 덕분에 시골 노인들이 해외여행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는데 코로나로 그 여행도 중단되고 수익도 줄어 걱정이란다.

무엇보다 회원 어르신들이 점점 노령화되어 가는 것이 가장 걱정이라서 그분들이 가진 솜씨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마을 특유의 솜씨는 대를 이어 내려갈 것 같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일이 없는 날이면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 마루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장뜰마을 어르신들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계시는 것 같다.

최열호기자·천영애시인

[우리 마을은]

 

수익 창출하고 어르신 돌보는 ‘복지마을 신모델’…박정미 사무장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연세가 많았던 어머니께 치매가 왔어요. 남편이 어느날 친정에 와보고 깜짝 놀라서 전화를 해왔어요. 엄마 아버지가 음식을 못해 먹고 지낸다고요. 형제들이 모두 외국에 있어서 누구도 돌볼 형편이 안됐죠. 한국에 있던 남편이 자주 왔다갔다 했는데 결국 제가 귀국했죠. 그런데 그때 마침 마을이 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제가 자랐던 마을이라 모두 언니 오빠였고, 부모님과 마찬가지인 분들이었죠. 어쩔 수 없이 일을 돕게 됐습니다.”

조용하지만 할 일은 다하는 것 같은 이미지의 박정미 사무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돌아가는 듯이 보였다. 사무실은 동네 사랑방이 되었고, 사무장은 스스로를 맥가이버라고 부른다. TV가 고장 나도, 냉장고가 고장 나도, 심지어 밥솥이 고장 나도 마을 어르신들은 박 사무장을 부른다.

“제가 기가 좀 센 편이예요. 어르신들은 저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으니 뭔가를 하려 하면 안 도와주면 안 된다는걸 아시죠.”

그런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박 사무장이 마을의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어르신들의 솜씨를 이용해 마을 사업을 펼치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매일 아침마다 어르신들은 사무실로 나와서 안부를 체크 당해야 하 는데 안 오시는 어르신이 있으면 전화해서 나오라고 채근을 한다. 그래야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면서 돈 벌 때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고향 마을로 돌아와서 일을 하니 보람이 커요. 어르신들이 모두 어릴 때 부모처럼 보고 자랐던 분들이어서 속정도 깊고요. 지금은 이 일을 돈벌이 사업보다는 복지사업이라고 봐요.”

박 사무장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이 이 산골 마을에서 다시 일을 벌이다 보니 무엇에든 사업 마인드가 적용된 듯이 보였다. 그것이 이 옛날솜씨마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지금은 외지로 나가 있는 친구들이나 선배, 후배들이 고맙다고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고 한다. 부모님이 연락이 되지 않을 때도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박 사무장이다. 박사무장은 어느새 마을 지킴이가 되어 있었다.

[가볼만한 곳]

◇무흘구곡 전시관

한강 정구가 노래했던 대가천을 따라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무흘구곡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구곡 중에서 가장 길다는 무흘구곡을 따라가면 비경이 펼쳐진다.

◇용추폭포

무흘계곡 중에서 구곡인 폭포이다. 비가 오는 여름이면 수량이 풍부해 시원한 폭포를 볼 수 있다.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고 근처에는 인현왕후가 거닐었다는 인현왕후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