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하범곡 휴양마을] 조용하던 산골마을서 사시사철 체험명소로
가족 단위·단체 체험객 방문 잇따라
아이들 농산물 수확체험장으로 ‘각광’
외국인 관광객·다문화가정 주부 대상
고추장 등 ‘우리 장 담그기’ 행사 인기
경상북도 마을이야기-경주 하범곡 휴양마을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주,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하범곡 휴양마을을 찾아가는 길.
잘 닦인 도로에서 살짝 벗어나 마을까지 올라가는 2km 남짓한 산길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신비롭다. ‘여기 마을이 있나. 길을 잘못든 건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살포시 들 때 쯤 토함산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듯한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2019 ‘봄꽃나들이 가기 좋은 농촌체험휴양마을 6선’에 선정된 하범곡 휴양마을은 경주시 양북면 토함산 중턱 해발 450m에 자리하고 있다. 봄에는 도로변에서 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벚꽃길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봄에만 아름다운 마을이 아니다. 2014년에는 ‘올 여름 휴가 가고 싶은 체험마을’, 그리고 2016년에는 ‘가을의 정취 느끼기 좋은 농촌관광코스 10선’에 선정 되는 등 계절마다 매력이 넘치는 마을이다.
지금이야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하범곡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전에는 토함산의 호랑이가 놀고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깊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던 마을이다. 어느날 석굴암 아래로 산나물을 캐러 간 어르신 세 분이 호랑이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의리없이 도망가버리고 한 사람만 남아 망연자실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는 지금도 마을 경로당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대왕암을 참배하기 위해 동산령을 거쳐 이 마을을 지나다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범곡 마을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2010년 11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면서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감자, 산딸기, 더덕, 땅콩 등 계절마다 다양한 농산물 수확 체험과 연중 상설로 된장, 고추장 담그기 등 알찬 체험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산골마을에 가족단위 체험객 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다문화 주부 모임 등 단체 체험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들만 해도 2천여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나 경주지진의 여파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조금 뜸해진 것이 안타깝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과 경주를 관광하고 하범곡마을에서 고추장만들기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은 단순히 농촌 마을 탐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과 몸짓으로 소통하고 서로 친구가 되어 사진을 찍는 등 정서와 문화를 교류하는 시간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지역 유치원, 어린이집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수확체험도 인기다. 여름에는 흙의 촉감을 느끼면서 직접 수확한 감자를 삶아 맛보고 가을에는 더덕캐기와 땅콩캐기 체험도 한다. 앞치마, 두건, 팔토시 등을 잘 갖춰입고 고춧가루, 조청, 효소 등을 섞어서 고추장 한통을 만들어 갖고 가는 체험 프로그램도 알차다. 직접 만든 고추장으로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거라는 기대에 들뜬 아이들의 표정도 마을 주민들에게는 선물같은 시간을 선사해준다.
지역사회를 함께 아우르는 의미에서 베트남, 중국 등 다문화 가정의 주부를 위한 무료 고추장 체험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입맛에 익숙해진 다문화 주부들이 연신 ‘고추장 맛있다’를 외치는 장면도 체험을 진행하는 동안 자주 볼 수 있다. 가끔씩 체험장은 삶은 시래기나 산나물, 감자 등을 갖고 나온 마을 어르신들과 체험객들이 만나는 직거래 장터로 변신하기도 한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콩에 토함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 그리고 바람과 햇살이 더해진 된장은 하범곡 마을의 인기 품목이다.
콩농사를 지으면서 ‘우째 다 파노’ 걱정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이제는 판로걱정 없이 ‘올해는 콩농사를 얼마나 지으꼬?’라는 이야기를 한다. 마을에서 생산된 콩은 체험장에서 전량 수매하고 함께 메주를 만들어 팔아 농가의 수익창출에도 기여를 한다. 좋은 재료로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체험을 하고 소비자에게 판매를 한다는 것이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순간이다.
하범곡 휴양마을은 국립공원 내에 있는 마을인만큼 청정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동해안을 바라보는 일출도 장관이다. 길을 가다 보면 꿩, 다람쥐, 노루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가끔씩은 아기 다람쥐가 체험장 안에 들어오기도 한다.
현재 22가구, 2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하범곡 마을은 주 농산물이 감자, 산딸기, 더덕, 콩 등이지만 주민 평균연령이 70대에 이를 정도라 점점 농사짓는 주민수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귀촌인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어 올 연말쯤 세 가구가 마을 주민으로 새롭게 합류할 예정이다. 2016년 한수원 본사가 마을 아래쪽으로 이전하면서 접근성도 훨씬 좋아졌다.
올해부터는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 방치된 논밭과 마을에 이르는 진입로 주변도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가득한 꽃동산으로 만들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하범곡 마을을 찾으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으로 가는 왕복 2시간 정도의 도보 트레킹 코스도 한번 걸어봄직하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은 두갈래가 있지만 숲이 우거진 동산령 길보다는 임도를 택해 느긋하게 걸어가는 것을 권한다.
마을과 차로 10분~15분 거리에 석굴암, 불국사, 감은사지, 문무대왕릉 등 역사 문화유산이 많은 것도 자랑할만한다. 청소년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의 역사문화체험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립공원 내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은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힐링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안영준·배수경기자
“산나물 맛과 향에 반해 이 마을 사람이 됐어요” , 황지운 위원장
“산나물 사러왔다가 그 맛에 반해 이 마을 사람이 됐어요.”
대형 장독이 줄지어 서 있는 체험장에서 만난 황지운(59) 위원장은 마을과의 첫 인연을 이렇게 기억한다. 우연히 맛본 하범곡 마을의 산나물 맛에 반해 해마다 이 곳을 찾다가 결국 2007년 마을에 아예 정착하게 되었다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주 김씨 집성촌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치고는 너무 평범한 듯 하지만 그만큼 청정자연에서 생산된 이곳의 산나물은 맛과 향이 좋았다.
처음에는 낯선 외지인에 대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도 받았지만 한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마을에서 거의 막내인만큼 두 손 걷어붙이고 마을 일에 뛰어든 덕분이다. 이제는 마을 어르신들이 농산물을 수확하면 위원장과 사무장 몫이라면 슬쩍 건네주고 가기도 한다. 돈으로 치면 얼마 안되는 작은 것이지만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져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는 의미다.
가을에 콩을 수확하면 전량수매해서 마을 콩만으로 된장을 담그는 황 위원장은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나가겠다’며 ‘마을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어주신다면 더 바랄게 없다’라고 덧붙인다.
주변 가볼만한곳
◇석굴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은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불교건축물이다. 통일신라시대 불국사와 함께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석굴암을 일컬어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자는 보았기에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일주문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길은 사시사철 아름답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부처님 오신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본존불을 유리창 너머로만 볼 수 있다. 사진,동영상도 촬영금지다.
◇한수원 홍보관
한수원 본사에 마련된 홍보관은 6개의 체험존을 통해 원자력, 수력,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전기의 생성원리를 쉽게 알 수 있고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체험학습 및 진로지도에도 도움이 되는 공간이다. 오는 9월 30일까지 로비 전시관에서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더냥전시회’가 열린다.
◇경주 주상절리
경주 양남면 주상절리는 자연이 연출한 조각품으로 일컬어지는 천혜의 자연경관이다.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틈을 절리라고 하고, 굳어가며 커다란 기둥모양으로 형성된 것을 주상절리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조성된 파도소리 길을 따라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망대가 완공되어 부채꼴 주상절리를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읍천항 벽화마을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