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자산골 새뜰마을] 주민 손으로 마을 새단장…함께 땀 흘리며 ‘화합의 꽃’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 김천 자산골 새뜰마을
폐타이어, 우그러진 주전자, 빈 페트병, 낡은 헬멧, 컵라면 그릇들이 채송화, 베고니아 등 갖가지 꽃을 품에 안아 키우고 있다.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운 좋으면 재활용품 집하장에서 잠자고 있을 물건들이 마을 사람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고 있다. 김천 자산골 새뜰마을 주민들이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십시일반 푼돈을 모아 자투리땅을 가꾸고 재활용품 화분으로 꾸민 마을 정원이다.
자산골은 김천시내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자산(紫山) 서쪽 자락에 형성된 마을로, 6.25 피난민들이 산비탈을 깎아 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달동네다. 한여름엔 언덕길을 오르느라 비지땀을 흘려야 했고, 연탄 배달을 시키면 한 장에 몇십 원씩 웃돈을 얹어 주어야 했다. 떠날 사람들은 떠나갔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남았다. 빈집이 하나둘 늘어나, 대문들은 녹이 슬었고 담장 모서리는 군데군데 부스러졌다.
자산골에 새 바람이 분 것은 지난 2015년 정부의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인 ‘새뜰마을 사업’에 이곳이 선정되면서부터다. 대상지역은 자산동 31~34통으로 약 250가구 5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2018년까지 소방도로 개설, 축대 정비, CCTV 설치, 골목길 정비, 노후주택정비, 주민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주민들은 자산골 새뜰마을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주민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을 조정해 가면서 마을을 되살리는 일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여기에 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협동조합 ‘숲속애’ 여해련 대표 등 마을활동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정을 심는 마을정원 조성 프로젝트’는 단순히 마을의 외형을 단장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잡초를 뽑고, 나무를 심고, 꽃밭을 가꾸고, 마을 구석구석 청소를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이웃 간 정이 깊어졌다.
매일 저녁 화분에 물을 주러 나왔다가 자리 펴고 앉으면 바로 ‘길거리 밥상’이 펼쳐진다. 수박도 가져오고, 감자를 쪄오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한다. 거의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따로 회의가 필요 없을 정도가 됐다.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일이 주민들의 삶속에 깊이 뿌리내려 이젠 일상이 되었다. 그저 ‘한 동네 사는 사람’에서 ‘4촌보다 더 가까운 이웃’으로 바뀌었다.
주민협의체 이정길(65) 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골목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였지요. 요새는 너무 친해져서 혹시 이게 깨어질까 걱정이 될 정돕니다. 어제도 한 집에서 아들이 감자, 고구마 보내왔다고 해서 그 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에는 또 할머니 한 분이 생신이라고 길거리 밥상에서 같이 밀면을 시켜 먹었습니다. 도시재생사업 하면서 참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 이런 재미로 삽니다. 하하하”
기존 주택을 밀어버리고 고층아파트를 짓는 방식과 달리 주민들의 참여가 바탕이 돼야 하는 새뜰마을 사업은 마을공동체 회복이 관건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산골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산골 주민협의체는 세종시에서 열린 2017 도시재생한마당 ‘주민참여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마을정원 조성 활동 사례를 발표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해 개최된 경상북도 고향사랑 크라우드 펀딩 대회에 참가, 912만원을 모금해 장려상을 수상했고, 주민협의체 소속 12명이 마을기업 설립 전 교육을 수료해 2년간 마을기업 육성사업 지원 자격 획득했다.
이렇게 마을이 되살아나면서 자산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졌다.
동네 위 자산공원은 산책과 운동을 하기에 좋고, 마을은 온종일 햇살이 가득하고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도시 한복판이어서 각종 생활 편의시설 이용에도 편리하다. 그래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마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이 동네 집을 살 사람이 없어서 못 팔았는데, 지금은 팔려고 내놓은 집이 없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떠나 빈집이 됐지만, 그 자녀들이 나중에 들어와 살겠다며 관리 하는 집도 많다.
자산골 일대는 외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볼거리와 스토리가 담긴 지역이다.
봄철에는 도심의 숨은 벚꽃 명소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산공원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자산의 아들’ 최민호 산책길이 있다. 또 시가 있는 오솔길,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사모바위 할미바위 조형물도 조성해 놓았다. 공원 인근에는 자산벽화마을, 독립운동가 이명균선생 순국기념비가 있다.
글=최열호·김광재기자
사진=전영호기자
<가볼만한 곳>
93m 짚와이어…김천 절경 ‘한눈에’
◇레인보우 짚와이어
김천시 부항댐 위에 설치된 ‘레인보우 짚와이어’의 철탑은 높이 93m로 국내 최고이며 길이는 왕복 1.7km에 달한다. 출발타워 85m 높이에는 둘레 38m의 둥근 공간을 안전줄을 매고 한 바퀴 둘러보는 스카이워크 체험시설도 마련돼 있다. 주변에 산내들 오토캠핑장, 어드벤처파크 등 김천 부항댐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명소가 곳곳에 있다. 짚와이어 왕복 체험 이용료는 4만원에는 부항면 지역상품 교환권 5,000원이 포함되어 있어 특산품을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짚와이어 체험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85m 상공에 위치한 전망대(입장료 1만원)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옛날솜씨마을 연계한 가족 캠핑장
◇증산수도계곡캠핑장
산 좋고 묽 맑기로 이름난 증산수도계곡캠핑장은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캠핑장 주변을 흐르는 옥동천은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로 그만이고, ‘수체험장’이라 불리는 물놀이장과 캠핑장 사이트를 따라 이어지는 족욕장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캠핑장은 총 27면의 사이트가 3구역에 걸쳐 나누어져 있다. 음수대도 구역별로 배치돼 있으며 야외무대, 전망정자, 명상의 길, 체력단련장 등 부대시설도 갖춰져 있다.
캠핑장 인근에 청암사, 수도암, 인현왕후길, 지례흑돼지 거리 등이 있으며, 바로 옆 마을인 옛날솜씨마을에서 공예와 음식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다.
구곡 10.3km 구간 ‘문화 트레킹길’
◇수도산 무흘구곡
주선중기의 학자 한강 정구는 수도산에서 발원해 성주로 흘러가는 대가천의 명승 9곳을 소재로한 무흘구곡가를 남겼다. 구곡 가운데, 제5~9곡이 김천시에 속한다. 김천시는 이 구간 10.3km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벼슬을 버리고 살고 싶은 곳이라는 사인암엔 무흘구곡 시비와 정자가 들어섰고, 옥류동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음수대와 화장실이 설치되었다. 달이 가득차는 연못이라는 뜻의 만월담에는 전망대와 별빛 정원이, 용이 누워있는 모습같다는 와룡암에는 용을 형상화한 시비를 세웠다. 마지막 용추폭포에는 숲속 정원을 조성했다. 무흘구곡 트레킹이 한결 안전하고 편안해졌다.
“커뮤니티센터서 마을기업 운영 목표”
<이정길 주민협의체 위원장 인터뷰>
마을 정원도 예산 들여서 전문업체에게 맡기면 지금보다 번쩍번쩍하게 잘 만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마을 정원을 가꾸면서 도시재생사업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변화가 생긴 거지요. 이제 이웃에 누가 아프면 다들 병문안도 가고, 축하할 일 있으면 함께 축하해줍니다. 도시에서 이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처음에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 다르고 또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다 보니 갈등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제 4년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심도 전달이 되고 지금은 자신감도 좀 생겼습니다. 주민협의체 회원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만큼 해낸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해요. 앞으로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에 커뮤니티센터가 만들어지면 거기서 마을기업을 해볼 작정입니다. 마을기업이 잘 돼서 커뮤니티센터가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 마을의 꿈도 거기에 다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경험을 살려 작은 화훼를 판매하고 카페, 식당도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2년 뒤에는 아마 많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그런 희망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