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마을일연, 인각사서 어머니와 함께 여생 보내다민족 주체성 정립한 역사서 ‘삼국유사’ 집필주민 61명 자두·복숭아 등 복합영농생활역사·체험 아우르는 문화콘텐츠 개발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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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마을 전경. 마을에서 약 300미터 거리에 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가 있다. 사진 위쪽에 인각사가 조그맣게 보인다.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 군위 인각마을

군위군 고로면 908번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도로 바로 옆에 일주문은커녕 울도 담도 없는 사찰이 하나 나타난다. 이 소박한 모습의 절이 바로 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麟角寺)이다.

사찰의 남쪽으로는 화산, 북서쪽으로는 옥녀봉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찰 앞으로는 물이 맑기로 유명한 위천이 흐르고 북쪽에는 학소대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인각사라는 이름은 기린이 위천에 물을 마시러 오다 뿔이 절벽에 걸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때의 기린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물원의 목이 긴 기린이 아니라 몸통은 사슴, 꼬리는 소, 다리는 말의 모습을 하고 하나의 뿔을 갖고 있다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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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인각사.

삼국유사는 우리나라의 고대 신화와 설화, 그리고 향가를 집대성하고 단군신화를 처음 기록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주체성을 정립한 역사서로 인정받고 있다. 인각사는 몽골과의 오랜 항전으로 힘겨워하던 백성들에게 민족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일연스님의 정신이 담겨있는 곳이다. 고려 충렬왕 시절, 국사로 추앙받던 일연은 속가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인각사로 내려온다. 출가와 함께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여느 출가승과는 달리 일연스님은 효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재 일연스님 생애관 바로 앞에 있는 부도탑(보각국사 정조지탑)은 원래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화북3리 둥딩마을에 넘어져 있던 것을 옮겨서 복원한 것이다. 원래 자리는 인각사의 동쪽언덕, 어머님의 묘소가 바라보이는 곳에 있어서 해가 뜨면 부도 탑에서 빛이 나면서 어머님의 묘를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죽어서도 어머님의 묘를 따뜻하게 지켜드리고 싶었던 스님의 효심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그중에서도 인각마을은 그야말로 삼국유사 마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인각마을은 인각사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는 화북1리에 속해 있다.

수령 200여년의 왕버드나무가 반겨주는 진입로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삼국유사의 설화를 옮겨놓은 벽화가 반겨준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기자가 마을을 찾은 날, 마을회관에는 이장, 부녀회장과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마을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의논을 하는 중이었다.

인각마을은 특별한 작물보다는 자두, 복숭아, 사과 등의 과일과 쪽파, 도라지 등 복합영농을 하는 마을이다. 경주이씨 집성촌이었던 이 마을은 지금은 36가구 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인각마을은 지난 2015년 창조지역사업인 ‘희희낙락기쁨만들기’의 일환으로 삼국유사 인형극 공연과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전통손칼국수만들기 체험 등 역사콘텐츠와 체험을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몇 년이 지났지만 마을 어르신과 함께 했던 칼국수 만들기 체험을 잊지 못하고 문의가 오기도 한단다.

여느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인각마을도 비껴갈 수 없는 고민은 바로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다. 1차산업인 농업에만 매달리지 않고 삼국유사라는 문화콘텐츠를 연계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각마을은 지난 2015년 ‘희희낙락기쁨만들기’ 사업 성공을 밑거름 삼아 더욱 새롭고 알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인각사와 인각마을이 갖고 있는 고유의 이야기를 잘 활용해서 역사와 체험을 아우르는 스토리텔링 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글=김병태·배수경기자
사진=전영호기자

<가볼만한 곳>

◇보각국사비

인각사에서 보각국사 정조지탑 외에 놓치지 말아야할 보물은 바로 보각국사비이다. 비각 안에 있지만 부서지고 깨진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일연스님의 사후 충렬왕이 그를 기리기 위해 당대의 문장가 민지에게 비문을 짓도록 했고 4050자에 달하는 글자는 왕희지의 글씨를 6년 동안 집자해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비의 말미에 “괴겁(壞劫)의 맹화(猛火)가 대천계(大千界)를 태워 산하가 모두 재가 될지라도 위대한 이 비는 홀로 남고 이 비문도 영원이 남으라”고 맺음을 한 것과는 달리 심하게 훼손되어 왕희지의 글씨는 거의 흔적만 남아있어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탁본이 남아 그 문장과 글씨를 알 수 있음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연테마로드
총 5.3km의 구간에 전망대와 재현한 부도탑, 징검다리, 일연스님과 모친의 조형물 등 일연스님이 출가할 때부터 노모를 모시기 위해 인각사로 내려와 삼국유사를 집필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효를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 테마로드로 효 교육의 장소로 크게 각광 받고 있다.

◇일연공원
일연스님을 기리고 기념하는 의미가 담긴 일연공원은 군위댐이 생기면서 그 하류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일연공원에는 건국신화공간, 향가의 공간, 고승의 공간, 설화의 공간, 일연스님의 공간 등 삼국유사를 테마로 한 다섯 개의 공간이 있다. 일연공원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군위군 기억의 방’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2010년 군위군 고로면에 군위댐이 들어서면서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수몰민들의 추억과 향수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인각사 연계 계절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추진”
<이규열 인각마을 이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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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마을의 자랑은 바로 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풍광도 너무 아름답죠. 그래서 삼국유사의 고장에 걸맞은 이야기가 있는 마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규열(61) 이장은 인각사와 연계한 스토리텔링 체험프로그램을 계획하느라 마을주민들과 토론이 한창이었다. 마을 토박이로 마을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이기에 ‘더 나은 마을 만들기’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 듯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여름이면 마을 앞을 흐르는 위천의 깨끗한 물에서 다슬기 잡기와 물놀이를 하고 마을에서는 전통손칼국수만들기 체험을, 봄, 가을이면 둘레길 걷기와 곤충체험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각사와 인각마을 주변으로 보다 걷기 쉬운 둘레길을 조성해, 그 길을 걸으며 삼국유사에 담긴 일연스님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효를 배우도록 하면 좋겠다는 구상도 들려주었다. 그밖에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마을 앞산의 바람구멍을 관광명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마을 인근에 공원도 완성단계에 있고 삼국유사이야기극장을 체험장 겸 식당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체험을 연계한 스토리텔링 마을로 손색이 없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