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대다수 도정공장 조합원 참여
마을 공동체 재산도 많은 부자 마을
영해박씨 박세통의 촌락 개척 설화
거북 살려 준 음덕에 3대가 재상에
고을 부역 면제해 준데서 마을명 유래
영덕대게 키토산 성분 넣어 만든 한과
직접 기른 천연재료 활용 마을특산품
영덕군 병곡면 거무실마을 전경. 벼가 익어가는 드넓은 들판 가운데로 7번국도와 공사중인 동해선 철도가 지나간다.그 너머로 고래불해수욕장과 푸른 동해바다가 보인다. 전영호기자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 마을 전경. 벼가 익어가는 드넓은 들판 가운데로 7번국도와 공사중인 동해선 철도가 지나간다.그 너머로 고래불해수욕장과 푸른 동해바다가 보인다. 전영호기자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영덕 거무역리 마을 

7번국도(경북대로) 양쪽으로 드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볏잎은 아직 초록이지만 이삭은 누렇게 익었다. 높은 도로에서 내려와 바다를 등지고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간다. 태풍 타파로 군데군데 쓰러진 벼들이 있지만, 방문객의 눈에는 가을 들판이 풍요롭게만 보인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경로당에서 나온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스듬한 햇살을 받으며 느리게 걷는 뒷모습이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 주로 벼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고소득 작목을 하는 마을보다 벼농사 수익은 적을지 모르지만, 농토가 넓어 부자마을로 손꼽힌다. 마을 공동체 재산이 많아 마을도 부자다. 도정공장(정미소)계, 답(논)계, 임야계 등 3가지가 예부터 내려온다. 마을의 거의 모든 가구가 참여한 도정공장은 조합원이 170명이나 된다. 지금은 마을에 110여가구 180여명이 살고 있다.

경로당
거무역리 경로당.

 

 

이 마을은 13세기 고려 원종 때에 영해박씨 박세통이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그와 관련해 거북이와 삼대정승 설화가 이제현의 ‘역옹패설’과 ‘영덕군읍지’ 등에 기록되어 내려오고 있다. 영해 앞바다에 큰 거북이가 들어왔다가 썰물 때에 주민들에게 잡혀 죽게 됐는데, 현령이던 박세통이 주민들을 만류하고 거북이를 새끼에 묶어 두 척의 배로 끌고 나가 바다에 놔 주었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큰절을 올리고 내 자식을 살려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그 음덕으로 삼대가 재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후 박세통은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으며 아들 홍무 또한 시중이 되었다. 손자 함은 주색에 빠져 재상이 되지 못했는데, 거북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그날밤 다시 현몽이 있더니 “네가 주색에 빠져서 그렇다. 그러나 곧 기쁜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고, 그후 손자도 마침내 시중에 올랐다.

운계서원1
삼대정승설화의 주인공 박세통을 비롯한 영해박씨 선조를 배향하고 있는 운계서원.

 

‘거무역(居無役)’이는 동네 이름도 이 마을 한 집안에서 3대 정승이 나왔다 하여 나라에서 이 마을의 부역을 면제해주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그 후 영해박씨 집안은 이 마을을 거의 떠났고, 권씨, 이씨, 주씨 등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거무역리 들판 가운데에는 금줄이 둘러진 제당이 있다. 예전에는 제당 옆에 큰 소나무가 있었으나 큰 태풍이 왔을 때 쓰러지고 지금은 후계목과 다른 나무들이 제당 주변에 둘러서 있다. 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매년 동제를 지내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거무역마을의 동제는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지낸다. 설을 쇤 뒤 정월 나흗날에 제관 다섯을 뽑았다. 제관들은 정해진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열흘 동안 근신을 했다. 1년간 궂은일을 피해야 하는 등 금기도 엄격했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적어 제관을 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서 지난해 부터는 제관을 세 사람만 뽑고, 금기도 조금 느슨해졌다. 그렇지만 마을 전통을 이어가려는 주민들의 마음은 굳건하다. “다른 마을처럼 ‘천년 뒤에 보시더’하고 제사를 치우는 동네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못할 같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또 키토산한과를 만드는 업체인 ‘예인키토산한과’가 있다. 영덕 특산물 대게에서 추출한 키토산과 거무역마을의 곡식이 만난 특산품이다. 영덕 강구에 있는 회사에서 키토산 가루와 액을 공급받아 반죽할 때 넣어 만든다.

김명란대표는 “2000년부터 시작했지만 자신 있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한 10년 정도가 지난 뒤부터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영해 농협하나로마트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고, 설을 앞두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찹쌀, 쌀, 깨, 흑미 같은 한과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직접 농사짓는다. 색을 넣는 재료도 치자, 자색고구마 등 모두 천연재료를 쓴다. 키토산을 넣은 한과는 영양도 높고 오래 두어도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김명란 대표의 남편 이호삼 이장은 6년째 마을일을 맡아 보면서 5만평이 넘는 농사를 짓고 있다. 바쁜 중에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외부 프로그램 유치에 힘쓰고 있다. 영덕군종합자원봉사센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과 연계해 100세 운동회, 벽화그리기, 공예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이진석·김광재기자

 

<우리 마을은>

“도포 입고 동제 지내는 마을 전통 이어가야죠”, 이호삼 이장과 김명란 대표 부부

이장부부1
 

“친정은 저기 보이는 마을이예요. 우리 이장님도 바깥바람 한번 안 쐰 이 마을 토박이고요. 두 집안 어른들이 약속을 해서 결혼하게 됐지요.”

거무역리 이호삼 이장과 예인키토산한과 김명란 대표는 카메라 앞에서 지난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들판을 바라보며 예전에는 바다까지 들판이 죽 뻗어있어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4차선 국도가 높게 들어서는 바람에 마을이 답답해졌다. 그 앞에 동해선 철도가 더 높이 건설되고 있어서 철도가 완공되면 도로에서는 마을이 보이지도 않고 산봉우리만 보일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산 아래쪽으로나 바닷가 쪽으로 도로가 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한다.

“처음 이장이 되고 동제는 날 눈이 엄청나게 왔어요. 의관을 갖추고 도포를 입고 제관들이 걸어가고, 이장님은 제물을 차에 싣고 조심조심 뒤따라 가는데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기 좋았습니다. 보름날에는 동민들 모두가 음식을 나누고 윷놀이도 하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마을의 전통을 오래도록 이어가야겠지요.”

농사, 키토산한과업체, 한우사육까지 두 사람 힘으로 다 해내기 버거워 도시에 나가 있던 아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였다. 이장 부부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들어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뜻깊은 마을 사업도 벌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가볼만한 곳>

 

칠보산
칠보산.

 

◇동해바다 눈에 담고 금강송길 걷고…칠보산자연휴양림

영덕군 병곡면 해발 810.2m의 칠보산 동남쪽 자락에 있는 휴양림으로 1993년 개장했다. 전국 유일하게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연휴양림이다. 연초에는 해맞이 행사를 열고 있어 많은 이용객이 해맞이를 하러 찾아온다. 또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이 가까워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소나무가 울창한 1.6km의 휴양림 숲길에서는 솔향을 맡으며 괘적한 산책을 즐길 수 있고, ‘금강송 숲탐방’이라는 무료 숲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소나무 도마 만들기 등 목공예도 유료로 체험할 수 있고 왕복 3시간 반 정도의 칠보산 등산도 할 수 있다. 칠보산의 원래 이름은 등운산이었으나 고려 중기 이곳을 지나던 한 중국인이 샘물을 마셔 보고 “물 맛이 여느 샘물과 다르니 이 산에는 귀한 물건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에 부락민들이 찾아보니 돌옷, 산삼, 황기, 멧돼지, 철, 더덕, 구리 등 일곱 가지 보배가 나와 그후부터 칠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울창한 송림 에워싼 20리 백사장…고래불해수욕장

병곡면의 6개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20리에 달하는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이다. 모래사장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대진해수욕장과도 연결된다.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 모래는 굵고 몸에 붙지 않아 예로부터 여기에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긴 백사장, 얕은 수심, 깨끗한 에메랄드빛 바닷물, 울창한 송림이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로 가족 피서지로 적합하다.

또 해수욕장 내에 샤워장, 화장실, 급수대, 매점,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원래는 경정(鯨汀) 혹은 장정(長汀)이라 하였다. 고래가 보인다고 해서 ‘경정’이라 불렀고 긴 백사장이 있다고 해서 ‘장정’이라고 불렀다. 고래불은 경정의 순우리말 이름이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상대산에 올랐다가 고래가 뛰어노는 걸 보고 ‘경정’이라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